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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에는 삼보(불보, 법보, 승보) 사찰이 있으며 이 세 곳을 필두로 수많은 절집의 전각이 있고 불상이 모셔져 있다.
지심 귀명례의 삼보 종찰 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1,370년을 이어온 한국 불교의 성지이며
최고의 절집으로써 수 많은 불자들이 찾는 곳
이번에 걸음 하고자 하는곳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1,363년 전 중국 오대산에서 21일간 기도를 마치고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부처님 진신사리 100과와 가사, 그리고 400여 편 경전을 가지고 와 봉안한 5대 적멸 보궁길이다.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 유학을 마치고 신라땅으로 돌아가고자 "중국 장안현의 종남산에 계시는 원향선사에게 머리를 조아려
"대사!~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 인사를 드리니"신라땅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우면 발해의 여러 나라가 그대의 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자장이 신라로 귀국하여 이를 왕(선덕)에게 알리자 왕은 진흥왕께서 창건한 황룡사에 9층목탑을 만들도록 허락을 하셨고
645년 황룡사를 건립하여 이듬해 병오년에 황룡사 9층목탑을 완공한다.
자장율사께서 가장 애지중지하셨으나 고려 고종 25년 때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없는 곳, 흔적만 남아 있는 황룡사와 태화사
그리고 한국 삼보 사찰의 대표적인 계율종의 통도사
지금은 두곳은 불타 없고 통도사만 남아있으니 이 길은 또 어떤 길일지 머나먼 수행길로 떠나본다.
*당대 최고의 절집 경주 황룡사는 70년대 후반에 발굴과정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5과 출토되었으며 지금은 불국사 무설전에 보관 중이니 친견하시기 바랍니다. 울산 태화사의 사리는 어디로 갔는지 확인이 안되구요
5대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을 말하며
설악산 봉정암,오대산 중대암,영월 사자산 법흥사.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양산 통도사를 말하고 나머지 3대는 강원도 건봉사,선산의 도리사,대구 현풍의 용연사가 있다.
성지중의 성지인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는 것이 최고의 신앙이기에 그 뜻하는바도 아주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새벽 04시 무렵에 도착한 금강산 건봉사
1,500년된 역사를 가진 사찰이지만 한국전쟁때 모두 소실되고 30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산밖에 없다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사찰로는 북녘땅의 금강산의 유점사와 평창의 월정사 그리고 이곳 고성의 건봉사가 있지만
근대에 와서는 유점사는 갈 수 없기에 빠지고 대신 신흥사가 대표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른 새벽이지만 건봉사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스님께서 새벽 예불을 드리고 계신다.
이번 걸음은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가는 700km 이상의 길이니 부처님께 안전한 발걸음 되어 달라고 기도 드린 후
밖으로 나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에 법당 안에서 들리는 스님의 지심귀명례를 염불 하시는 소리가 듣기 좋고
이름 모를 산새소리도 좋다.
건봉사 적멸보궁
이곳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치아 사리이며 모두 12 과가 있었지만 1986년도에 도굴되었는데
8과는 다시 찾았으나 나머지 4과는 실종되었다.
그중에 5과는 친견할 수 있으나 나머지 3과만 저곳에 봉안되어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 중 치아사리는 전 세계에 15개뿐인데 건봉사에 12과 스리랑카에 3과가 존재한다.
건봉사 적멸보궁에는 불이 켜져 있고 스님께서 새벽 예불을 드리고 계셔서 조용히 108배를 하고 나온다.
8대 적멸 보궁 중 유일하게 진신사리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아직 시간이 일러 친견은 못하고
예불문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지심귀명례" (至心歸命禮)와 반야사상의 핵심을 담은 260자의 "반야심경"이다
지심귀명례라는 문구가 일곱 번 나오기 때문에 칠정례라고도 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부처님께
세 번째는 법보(法寶)
네 번째와 일곱 번째는 승보(僧寶) 전에 올리는 절이다.
적멸보궁에 모셔진 삭가모니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
건봉사와 능파교
이제 본격적인 길을 찾아가야 하니
코스로는:강원도 고성 건봉사 적멸보궁-화암사-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오색-단목령-조침령-구룡령-오대산 적멸보궁-
월정사-진부-문재-사자산-법흥사 적멸보궁-영월 한반도면-선돌-영월-함백-미륵재-사북-정암사 적멸보궁-만항재-영월상동
삼동재-경북 봉화 도래기재-옥돌봉-오전약수-부석사-고항치-경북 예천 용문면-용문사-회룡포-의성 대곡사-경북 다인면-냉산-
도리사 적멸보궁-왜관-대구 강정보-용연사 적멸보궁-비슬산-한재-오치령-정각산-표충사-재약산 사자평-배네골-영축산-통도사
적멸보궁
전체 거리: 720km
하루 평균: 50km
비박 준비를 했지만 수행이 부족하고 휴대폰 배터리 문제로 민박집을 많이 이용
건봉사에서 도로따라 걸어 나오며 본 자작나무 군락지
제 한몸 크자면 꼭 껍질을 벗어야 하니 사람도 저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휴전선 아래 고성 건봉사에서 설악산 중청 옆에 자리하는 아름다운 절집 봉정암 적멸보궁까지 쉬운길이 아니지만
내일 새벽에는 도착할듯 하다.
14일간 지나간 경로와 거리
이른 아침 풍경 속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청아하게 들리는 새소리와 아카시아 향이 어우러져
눈과 코와 귀를 즐겁게 하고
고성 육송정 홍교
건봉사의 능파교와 더불어 1704년도 무렵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육송정 홍교
고성 개인택시 기사분 (73세)
이른 새벽에 고성에서 건봉사까지 태워 주셨던 분이신데
먼 길 떠난다고 했더니 꼭 아침 한 끼 사주시고 싶다고 해서 건봉사에서 고성으로 들어와
연락을 드렸더니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소고기 국밥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감사하게 잘 먹었고요 그 덕분에 무사히 통도사까지 걸음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고성 갈 기회가 되면 제가 밥을 사야겠죠
배낭무게 물 4개 넣으면 딱 20KG이라 통도사까지 어찌 내려갈지
지도를 보며 왕곡마을로 이어 간다.
고성의 왕곡마을
고려말에서 조선초기 고려에 충성했던 강릉 함씨가 이곳에 들어와 동족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오음산을 중심으로 5개의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송지호(湖)와 함께 마을을 보호해 주고 있어
오봉리 마을이라 부른다.
마을 입구에서만 보이는 규봉(마산봉) 일명 도적봉이라 하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규봉은 보이지 않는다.
속초 경찰서에 근무하시는 분이신데 지나는 길에 차 한잔하고 가라시며
자리를 권한다.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니 대구 계명대학교 경찰 행정학과를 다녔다고 한다
멀리 마산봉에서 이어지는 대간길이 보이고
길은 임도길과 농로로 이어진다.
고성 죽왕면 어명기 고택에 들러
어명기 고택을 들렀다 나오는 길에 고택을 찾아오신 부부께 부탁해서 한 장 남겨보고
나무 지팡이가 영 힘이 없어 보이지만 길을 걷는 동안 이 지팡이가 멋지다는 분들이 더러 계셨다.
마산봉에서 이어지는 대간길
앞에 삿갓을 닮은 작은 산은 운봉산이며 그 옆은 죽변산이다.
논에는 모심기가 모두 끝나고 한가로운 들판이 펼쳐진다.
운봉 마을의 애국지사 구국충정 숭모비가 서있고
3,1 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조직된 비밀 결사조직단체의 산하 조직인 강원도단에 가입하여 핵심 단원으로 활동한
고성 출신의 독립운동가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비를 건립했다고 쓰여있다
시간이 없어 미모의 처녀를 닮은듯한 운봉산은 오르지 못하고
화채봉과 설악 대청 울산바위 황철과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백두대간 마산봉이나 신선봉에서 흘러온 문암천은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메말라있다.
임도길에 소나무와 운봉산이 지척이다.
거대 농부 연못을 지나
고성군 토성면 지난날 대간 둘레길과 같은 길을 걷다 보니 동루골 막국수집에 들어가 점심으로 막국수 하나 시키고
있으니 옆에 앉아 계시던 분이 나무 지팡이 멋진데 어디서 구했냐며 하신다.
ㅎㅎㅎ 웃으며 "오다가 주웠는데 드릴까요!"~~
막국수로 배를 채우고 나니 없던 힘도 생기고 그늘 없는 도로길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강원도라 그런지 그나마 시원함은 있다
금강산 화암사
오늘 두 번째 절이다
금강산 자락에 수많은 사찰 중 가장 아래 있는 화암사로써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아 불자님들을 기다린다.
화암사 수바위가 보이고
대한 불교 조계종 3 교구 본사인 신흥사 말사의 절집이며
뒤로 대간길에 만나는 금강산 상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주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는 곳이다.
화암사 대웅전에 들러 3배 하고 나와...
이곳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중 남한에 있는 5개 향로봉, 칠절봉, 둥글봉, 마산봉, 신선봉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수바위
아주 오래전 수암바위에 쌀 나오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그 구멍이 지팡이를 넣고 세 번 흔들면 2인분 정도의 살이 나왔으나
몇 년 뒤 욕심 많은 객승이 300번 흔들면 200인분 정도 나올 거라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어 구멍에서 피가 나왔고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그런 전설이 있다.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
소노캄 골프장에 들어와서 본 울산바위
소노 호텔 안으로 들어와
속초 종합운동장으로 진행
목우재 터널을 지나고
설악산 국립공원은 아직 산불 방지 기간이라 개방되지 않았고 내일 새벽 -3시에 개방된다니
오늘은 설악동에서 자고 새벽에 설악으로...
아직 해가 한 뼘이나 남았는데 어느 식당에 들러 저녁밥으로 산채비빔밥을 시키니 단체 손님 때문에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성질 급한 놈 진득하게 앉아 기다릴 수 없어 바로 옆집에 가니 손님은 없고
이런 것만 된다고 하니 다 먹지도 못할 것 이렇게 시킨다.
새벽 02시에 긴 옷으로 갈아입고 설악동에서 나와 설악 산문으로 들어가니
달빛은 밝고 설악의 산새 소리 듣기 좋다
신흥사에 들러 극락보전에 불은 환하게 켜져 있지만 아직 스님들께서 주무시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아미타여래 부처님께 3배 하고 나온다
산방이 끝나는 날이지만 월요일이라 산객은 없고 산악 마라톤하는 팀인가 남녀 두 분씩 네 명이 빠르게 올라가는데
비선대까지는 비슷하게 걸어갔지만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짧은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어디로 내빼고 보이지 않는다.
천불동 계곡
천불동을 지키는 장군의 모습을 한 바위를 만나 인사 나누고
그동안 물을 찾아다니며
물 닮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래로 흐르다 막히면 돌아가고 차면 비울 줄 알고
폭포에서 떨어질 때는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떨어질 줄 알고
산분수합(山分水合) 수만 갈래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도 서로 잘났다 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사물에 생명을 주지만 정작 본인은 더러움을 안고 바다로 흐른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떨어지는 물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물은 다치지 않고 대양으로 향하지만
사람은 강하고 물은 약한가? 물은 언제나 사람을 만나면 더러워진다.
신선대가 바로 지척이니
희운각에 들러 햇반 하나 사고 물 4병 보충해서
아직 전반전이라 소청까지 40분이면 오를까 입에 단내 나도록 한번 올라보자.
설악 공룡과 비슷하게 올라온 듯하고
진달래는 곱게 피어있고
40분 만에 소청 대피소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서
아침 식사로 햇반 하나 비우고
5대 적멸보궁 중 첫 번째 봉황을 품은 봉정암으로 잠시 다니러 갑니다.
왕복 2,2KM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공식적으로는 경주의 황룡사, 양산 통도사, 그리고 공업도시인 울산의 태화사에 3분의 1씩 봉안해서
보관했지만 경주 황룡사와 울산 태화사는 몽골과의 전쟁으로 흔적만 남아 있고 , 지금은 설악산 봉정암과 영월 법흥사,
오대산 중대암.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가 있다
하지만, 봉정암이나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는 자장께서 수행목적으로 다녀간 적은 있으시지만 당대의 최고의 사찰(황룡사, 태화사 통도사)에 보관하던 부처님 사리를 별도로 옮겨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있을 것이라는 추론에 따라
자장율사께서 왕명에 의해 당나라로부터 진신사리를 모셔올 무렵이 643년이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제위 기간 632-647) 집권 12년(643) 그 시기를 살펴보면
신라는 주변 변방의 나라로부터 위협을 받았으니 위로는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 2년, 연개소문이 집권해서 왕으로써
실권은 없던 시절이었고
백제는 의자왕 3년 무렵이니 허구한 날 신라에 싸움을 걸어오던 시기인데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서 신라로 오기 1년 전
642년에 대야성 전투 때 김춘추의 딸 김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을 잃은 계기로 신라는 17년간 당나라에 구걸 외교를 하던 때이다.
나라는 인접한 국가로부터 동네북이요, 안으로는 여자가 왕이니 신하들이 말 들을 리 만무하고 상대등과 비담이란 녀석이
무시하며 반란을 일으키던 때였으니...
당나라에 간 자장을 불러 국사로 앉혀 서라벌 중심에 황룡사를 건립 646년에 하고, 울산 태화강변에 자장율사로 하여금 태화사를 만들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다.
이처럼 선덕여왕께서 엄청 애를 쓰셨지만 647년도에 상대등과 비담과 싸우느라 병사를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17년 뒤
660년과 667년에 삼국을 통일하면서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자장께서 신라의 국사로써 호국불교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셨지만 선덕여왕이 병사하자 신흥 세력(김춘추, 김유신)에 밀린
자장은 명주(강원도 강릉 인근)로 떠나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가 제기를 하고자 했지만
말년은 태백산 정암사에서 쓸쓸하게 보내다 부처님 곁으로 떠나셨다
자장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올 무렵의 신라는 안팎으로 어려운 때인걸 감안하면 선덕여왕께서는 부처님의 힘을 빌어 나라를 살릴 생각만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설악은 백두의 중심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장엄하게 펼쳐지고
일곱 부처의 현신인가
마치 부처가 나란히 서있는 듯한 모습의 용아 장성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더 선명하게 보이고
불뇌사리보탑이 보이는 곳에 만들어 놓은 108 법당
이곳으로 오느라 다리힘은 어디로 간 건지 사리탑을 바라보며 108배를 하고 나와
저짜 사리탑 보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리탑이며
봉황(鳳凰)이 자장대사를 인도해서 찾은 자리이기에 봉황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명당터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뇌사리를 5층 석탑에 봉안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뇌사리보탑
불교인들은 말한다 이곳이 성지중의 성지이며
3번 찾으면 무슨 소원이던 이루어진다고 한다
바위 전체를 기단 삼아 서 있으며 천년의 흐른 세월의 흔적은 기암괴석의 설악과 잘 어울려
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인양 홀로 하늘을 향해 서 있으며
누구를 저리도 애타게 기다리는지 수시로 바뀌는 설악의 비, 바람 풍상을 온몸으로 맞으며 서있다.
조선후기까지 양산 통도사와 월정사 중대암의 사리를 2대 보궁이라 하였지만, 이후에 정암사와 법흥사를 4대 보궁이라 하다가
1970년도 무렵에 5대 적멸보궁으로 설악산 봉정암의 사리탑(불뇌사리탑)이 포함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는 이곳에 사리가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오대산 중대암에도 뇌사리가 들어 있다는 건 확실한데 이곳에도 뇌사리가 있다니
사리가 있건 없건 마음이 중요하지 5대 , 8대 적멸보궁중 이곳 봉정암 적멸보궁이 통도사와 더불어 최고로 많이 알려져 있는 건 사실이다.
사리탑에서 본 봉정암
맨 위에 보이는 곳은 백팔 법당인데 사리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다
사리탑과 용아
가자
다음 갈 곳으로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야 할 곳은 지천을 널려있으니
가다 보면 끝나리오
그 길에 고단하고 지친 몸 누일 곳도 한 끼 식사할 곳 없을까?
오르고 내리면서 석가모니불을 수없이 옹알이하며 걷는데
일전에 어느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처님 한번 불러보고 말씀 없으면 그만 불러라고...^^
나 말고도 찾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한 번이면 족하지 않겠나
다시 설악을 품은 곳을 오르며
아직 전반전이라 설악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진달래는 어느덧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며
달콤한 향기는 바람에 실어 보낸다.
이른 시간이라 산객은 몇 명 없고
잠시 조망을 즐기는 동안 오색에서 산객분들이 올라옵니다.
오색으로 내려가 볼까나
오색으로 내려가니 수도권 전임 지부장님이셨던 블랙님을 만납니다.
지난날 제주 서-동 종주할 같이 걷고 이렇게 뵙는군요
오색에서 대청으로 1시간 40분이면 오르는데 내려오는 길은 2시간 30분 걸립니다.
뭐가 문제인지...
망대암산과 오색
평일이라 지나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망대암산과 오색천
문제는 이곳인데
오색마을 상평 초등학교에서 오색천을 건너
단목령 올라가는 길,
오대산 중대암으로 가려면 이 길을 올라가야 그나마 빠른 길이다.
300미터가량 비포장 임도길로 오르다 보면 수년 전까지 사람이 거주하던 민가 3채가 나타나고
이후로는 길은 희미해지다가 없어진다.
수십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곳 만큼 머리가 바짝 서는 날도 없었으니... 왜 이리 무서울까
이리저리 물을 건너고 수많은 폭포와 담(潭)을 지나는데 고생 꽤나한다.
단목령에 도착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도착
암릉을 기어오르면서 얼반 죽었다.
대간길에 혹시라도 단목령 초소뒤로 이어지는 임도길로 내려가고자 한다면 꿈 깨시기 바랍니다.
곰배령 마을에 내려와 지난날 대간할 때 밥 먹고 잠자던 식당이 있지만 입맛에 맞지 않아 지나치기로 하고
지겨운 임도길이지만 가다 보면 어느덧 목적한 곳에 도착할 것 같다.
곰배령 마을에 돌배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후손을 남기는 것을 근본(根本)으로 하니 100년은 족히 될 것 같은 돌배나무의 자식사랑이 느껴지는 건
들판에 나 홀로 하얀 꽃을 피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로가로 민박집이며 펜션과 식당이지만 식당은 영업을 안 하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직 해가 서, 너뼘이 남아있으니 일단은 가는데 까지 가보고 잠을 청해야 할 듯
조침령 터널 90km 지점
이곳은 강원도 인제 기린면 땅이고 조침령 터널을 지나면 양양 땅이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니 도(道)의 길이나 마음의 길이 이런 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잡는 조침령 굽이길
저녁 무렵에 양양군 56번 지방도로에 도착해서 도로가에 있는 무인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지만
허구한 날 돌아다니며 라면만 먹다 보니 굶어 죽더라도 라면은 안 먹을 생각이라 국물만 마시고...
오늘은 하루 종일 햇반 하나에 라면 국물이 전부다.
100km 지점
미천골 인근 도로가 그루터기 민박집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8시 넘어 켄 맥주 하나 사들고 들어가 반쯤 마시고 새벽 02시 조금 넘어 나온다.
*참고로 시골길에 간이 버스 승강장에 자고 가는 건 좋은데 마을분들이 지나가다가 신고할 수 있으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후답자분들은 정자 같은 곳을 이용하시기 바란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위험하다는 구룡령 아래 첫 동네 갈천마을
갈천약수 마을을 지나
일제강점기 무렵에 수탈의 목적으로 만든 구룡령으로 오른다.
구룡령 아홉룡이 얼마나 헤집어 놓았으면 오르막길은 끝도 없고
구룡령 오르는 56번 지방 도로길에 점봉산과 설악산 방향 무려 4시간 동안 올라왔다.
새벽부터 시작한 임도길이 구룡령에서 끝나나 싶었지만 다시 홍천군으로 내려갈 일이 더 걱정이다.
56번 지방도로 삼거리에서 오대산 내면 분소까지 3,2km
공단 직원분께서 나무 지팡이를 하나 선물로 주셨고
내면 분소에서 임도길 따라 5KM가량 오르면 산길로 오르는 674개 정도의 3단으로 된 나무 계단이 나온다.
임도길은 길게 이어져 두로령으로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세월아 네월아 해야 하고
오르막길이지만 산길로 가는 게 더 빠르다.
잠시 쉬다가
나무계단을 오르면
두로령이 나타나고
임도길은 북대암으로 이어져 상원사까지 갈 수 있다.
상왕봉에서
북대암에 계시는 스님을 만나서 인사 나누고
오대산은 문수보살께서 현신(現神) 하셔서 그런가 산길이 참 유순하고 아름답고
거의 평지길이나 다름없는 능선길은 상왕에서 비로봉까지 금방 갈 수 있을 정도다.
지나온 상왕봉 방향
상왕봉에서 천천히 내려오면 오대산 중대암의 적멸보궁을 만난다.
사찰에서는 전(展)이란 단어를 쓰는데 도교에서 영향을 받은듯한 단어 "신선이 산다는 궁(宮)" 이란 단어를 쓴 곳이 이곳이다.
보궁(寶宮)이란 말을 처음 쓴 곳이 이곳 중대암이니 적멸보궁이란 말 역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월정사 중대암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입을 크게 벌린 용이 좌, 우에서 협시하듯 길게 엎드려 있고
계단을 오르면 적멸보궁 뒤로 마애불탑이 보이고 돌무더기에 진신 뇌사리가 있다고 한다.
사리는 저짜 돌무덤에 모셔져 있다고 하지만 오대산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중심이며 풍수지리적으로 용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모셔져 있다고 하니
불자라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대산 중대암 자장율사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적멸(寂滅)이란 번뇌의 세상을 벗어난 높은 경지를 이르며
보궁(寶宮)이란 보배로운 궁전을 의미한다
마침 2시가 넘은 시간이라 스님 두 분이 예불(지심귀명례)을 드리기에 뒤에서 108배를 하고 나온다.
계단 오르는 곳에 문수보살님께서 타고 다니시던 사자가 좌, 우에서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웅크리고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중대 사자암
계단에는 용맹하고 지혜를 상징하는 사자가 좌, 우에서 사자암을 지키고 있고
참고로 오대산에는 오대(五臺)가 있는데
동대는 1만 관세음보살
서대는 대세지보살
남대는 1만의 지장보살
북대는 미륵보살
상원사 문수보살
가운데 중대는 오만(五萬) 보살을 모신 신앙의 중심(中心)이기에 적멸보궁의 호국 법신불로 공양하고 있다
이곳에서 3배 하고 나와
중대암의 멋진 기와집
조선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오대산의 상원사
세조 임금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찰이며 문수보살을 모신곳이다.
3배 하고 나온다.
상원사 안에 자리하는 커피숍
지난 1월 추운 날 저녁에 대간 둘레 길하며 잠시 앉았다 갔는데 여주인께서 알아보시더니
몇 가지 더 챙겨 주신다.
이거 하나 시키고 오늘 아침과 점심 공양으로 대신한다.
일반 서민이 먹으면 밥이요
양반이 먹으면 진지상이요
왕이 먹으면 수라상이요 (수라라는 말은 고려 때 몽골에서 비롯된 말이라 한다.)
부처님이 드리면 공양이라 했으니 절집에서 먹는 밥을 공양이라 한다.
오대산 상원사를 나오며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발원해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오대천
전나무숲을 지나
월정사에 들러 저녁 예불 시간을 맞춰가며 걷는다
월정사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647년)이 죽자 신라의 신흥 세력(김춘추, 김유신)에 밀린 대국통 자장께서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오대산 기슭에 작은 암자를 짓고 3일 밤, 낮으로 기도하며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기도를 했다는 곳에
월정사를 지었다고 한다.
자장께서는 이후에 이곳을 떠나 태백산 함백산 아래 정암사로 길을 떠난다.
대국통의 높은 자리에서 젊고 유능한 신흥세력에 밀린 자장의 발걸음이 어땠을까
그것도 욕심이라면 쉽게 자리를 떨쳐내지 못하셨을 테고
마음을 비우셨다면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해서 경상도 땅을 지나 강원도 첩첩산중으로 들어오셨어
이 꼴 저 꼴 안 보고자 하셨을지도 모른다.
월정사로 이어지는 다리
월정대가람
일주문은 탄허 스님의 친필이며 태백산 정암사의 현판 글씨도 탄허스님의 글씨다.
일주문은 절의 입구임을 알라는 문으로써, 절에 들어가기 전까지 세 개의 문(門) 중에서 첫 번째 문이 바로 일주문이다.
어느 절이 건 첫 번째 일주문은 모든 중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라는 의미에서 대문을 달지 않는다.
월정사 전나무숲
해는 넘어가고 월정사 앞 매표소 인근에 자리하는 오대산 산채 1번가 식당가를 찾아서
돈가스 하나 시키니 여주인께서 막걸리 한 병을 주신다.
어디 민박집 없냐고 하자 바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달빛 민박집이 있는데
가격 저렴하고 아주 깨끗하다며 가보라 한다.
8시 무렵에 찾아간 달빛 민박집 여주인께서 미리 나와주셨고 방에 들어서니 향긋한 향과 함께 아주 깨끗하다.
내일은 60km 조금 더 걸어가야 하니 발바닥 마사지해 주고 일찍 잠든다.
새벽 01시 조금 넘어 나와 진부면을 지나며
편의점에 들러 아가씨 한데 뭘 먹으면 좋겠냐 하니
햇반과 미역국이 좋을 거라며 드셔 보란다.
유명한 편의점 셰프의 손놀림으로 물을 부어 전자레인지에 몇 분간 돌리고
햇반을 넣으니 이런 맛도 있나 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적멸보궁 5대와 8대 길을 걸으며 가능한 누구나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임도길을 따라왔지만
백두대간 단목령 구간은 위험하니 오색에서 산을 돌아가는 임도길로 따라 조침령 아래로 양양 미천골로 이어온다면
될 것 같다.
첫댓글 적멸보궁의 길이 순례의 길이 맞는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움과 힘들때가 있을때 눈군가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모두
있을 겁니다.
그누군가가 신이여도 주변의 누구라도 잘극복을 하신다면 좋은 일이죠
그누가 시켜서하는일 아닐건데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하러 떠너고 극복하여 돌아와서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고이 남아 있을 겁니다.
적멸보궁의 길들을 보니 나름 신선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네요
성지중의 성지길이죠
신라시대때부터 이름난 고승대덕 승려분들이 모두 적멸을 찾아 다녔으니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순례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길고 길었던 그길에 잠시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리며
대장님의 대간길 무사한 길이 되시기 기원드립니다.
2편이 기다려지는 1편 많이 배우고 갑니다 힘든길 이지만 행복한 웃음 지을수 있는길 수고하셨습니다
길이란 사람이 가는길이고
道란 그 길도 결국은 사람이 가는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일에 있어 사람이 가장 우선이라 할수있겠죠
수많은 경전을 통해 보더라도 사람이 우선이구요
길을 걸으며 물을 닮아 가려고 수도를 해보지만 집에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니 그것도 역시 사람인가 합니다.
삼보(불보,법보,승보)에 대한 잘들었습니다
5대 8대 적멸보궁 최고의 성지순례 고행의 길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길을 배우고 인문을 배우다 보니 산문을 잠시 떠나게 됩니다.
참 많은걸 배웠다고 생각이 드는데
집에만 오면 다 잊어 버리니
머리속에 지우개가 들었나 생각이 드네요
워낙 긴 여정이라 8부 정도 나올 것 같네요 ㅎㅎ
지난 백두대간 원샷때는 비와함께 했는데
이번 순례길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1부 잘봤습니다.
2부도 기대해봅니다.^^
강원도 구간이 길고 낙동강 유역은 짧아집니다.
비가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야 걷는 맛이 더 진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운건 힘드네요
글 감사합니다.
방장님 걸음하신 그 큰 마음
조금은 아니까...
그 모든 걸음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적멸보궁길
이 길은 훗날 국토종주길만큼이나
귀한 길이 될꺼라 여겨지며
그냥 산행하며 쓰윽 지나던 곳들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며 걸음하시길 빌며
수고 많으셨어요 방장님
성지순례길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잘 만들어 졌나 모르겠습니다.
훗날 시간이 된다면 꼭 한번 가보시기 바라겠구요
스스로 찾아가면 배우는 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청에서의 햇반에 고추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 어릴때 밥에 고추장 많이 비벼먹었는데...ㅎ
적멸보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사찰들이
8대적멸보궁 외에도 산행을 하다 보면 종종 보이던데
그 사찰에도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고행의 길 걷느라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불사리를 모신곳은 많지만
대표적으로 5대적멸보궁이나 8대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제가 걸은길이 5대와 8대구요
많은 불교 신자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며 기도를 하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지맥길 잘이어 가시기 기원드립니다.
봉정암 정면에서 바로보는 통유리 설악풍경은 가희.. 낙원이라고할수있죠..
진행하신 길을 거의 설악구간이라서 다 알겠습니다
지겨운 임도길 도로길...고생하셨습니다...
백팔법당에서 보는 경치와 불뇌사리탑은 최고죠
참 많은걸 배운 적멸길이었으며
여름날 또다른길을 찾아 가려고 지도를 보고 길을 외우고 있습니다.
의미있는 걸음에 아름다운 풍경까지,
경이로운 여정 잘 보고갑니다~
지리태극종주 완주 축하 드리며
다음산길도 건강하고 즐겁게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좋은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려 한달 이상 선덕여왕이나 자장 율사에 관해 공부를 하고 가야할 길을 외우고 다녔는데
다녀오고 나니 머리가 멍해지네요
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설악의 진달래꽂이 반겨주는 순례길 기도 하신대로 모두다 이루어지길 바라며 좋은글과 그림 2부가 기다려집니다.
이번나들이 길에 그 고마운 마음 어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편에 뵙기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놀라고.. 또 감탄하며..
말문이 막힙니다..
대단하시고.. 대단하십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