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크리슈나(흰두교 신화에 나오는 영웅신으로
악왕을 죽이고 많은 악귀들을 퇴치 정복하여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위업을 쌓았으며
나중에 비슈누신의 제8의 화신이 되었다.)의 모습도 보였고
아그니(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으로, 암흑을 물리치고 부정을 태워 없애며,
제물을 제단에서 하늘로 나르는 일을 한다.)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 모든 형상들과 얼굴들이 각각 서로서로 도우면서,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서로 미워하면서, 서로서로 파멸시키면서, 서로서로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시키면서
서로간에 수천 가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형상들과 얼굴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 일종의 죽음에의 의지였으며,
덧없음에 대한 심히 고통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 모두는 단지 모습을 바꾸고 있었을 뿐이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났으며,
그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얼굴과 다른 얼굴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가로놓여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모든 형상들과 얼굴들은 멈추어 서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떠내려가기도 하다가 마침내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어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어떤 무언가가, 실체는 없지만
그래도 존재하는 어떤 얇은 것이 마치 한 자의 얇은 유리나 한 겹의 살얼음처럼,
마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살갗처럼,
마치 물로 된 껍질이나 물로 된 틀, 또는 물로 된 가면처럼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 가면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이 가면은 바로 싯다르타의 미소짓는 얼굴이었다.
고빈다 자기가 바로 똑같은 순간에 입술을 갖다대고 있던 그 싯다르타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고빈다는, 가면의 이러한 미소, 흘러가는 그 온갖 형상들을 내려다보며 던지는 이 단일성의 미소, 수천의 태어남과 죽음을 내려다보며 던지는 이 단일성의 미소,
수천의 태어남과 죽음을 내려다보며 던지는 이 동시성의 미소,
싯다르타의 이 미소야말로 자신이 수백 번이나 외경심을 품고 우러러보았던
바로 그 부처 고타마의 미소와 하나도 다르지 않고 영락없이 똑같은 미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부처 고타마의 미소,
그러니까 그 한결같은, 잔잔한, 우아한, 측량할 길 없이 불가사의한,
어떠면 자비로운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조소하는 듯하기도 한,
현명한, 그 속뜻을 가늠하기 힘든 신비한 비소와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고빈다는 완성을 이룬 자들은 이렇게 미소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이러한 직관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이 일 초인지 백 년인지 조차 이제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싯다르타라는 어떤 한 인간, 고타마라는 어떤 한 인간,
나와 너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이제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마음속 가장 내밀한 곳이 어떤 신성한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처 부위가 달콤한 맛을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속 가장 내밀한 곳이 마술에 걸려 녹아 없어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빈다는 그 후에도 여전히 한참 동안 자기가 방금 전에 막 입을 맞추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형상들과 모든 생성과 모든 존재의 무대였었던
바로 그 싯다르타의 고요한 얼굴 위에 몸을 굽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싯다르타의 얼굴은 그 표면의 아래쪽 저 깊은 곳에 있는
수천 겹의 신비로운 문이 다시 닫혀버리고 난 다음에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잔잔하게 미소짓고 있었으며, 그윽하고 부드러운, 어떠면 매우 자비로운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조소하는 듯하기도 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것은 세존 고타마가 미소를 지었던 모습과 아주 똑같은 모습이었다.
고빈다는 허리를 굽혀 큰절을 올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그의 늙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그의 가슴속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온 가장 열렬한 사랑의 감정,
가장 겸허한 존경의 감정이 마치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그에게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사랑했었던 그 모든 것,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치 있고 신성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는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싯다르타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