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머레이 북친 지음, 박홍규 옮김, 민음사
북친의 생태 아나키즘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착취와 파괴로 인한 생태문제는 곧 인간의 인간의 지배 방식에 기인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라 환경주의의 미온적 타협주의나 생태근본주의의 정적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자본주의와 국가를 비롯한 권위를 해체하고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들의 연대를 통해 사회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책의 장점은 문명에 대한 장단점을 역사적 맥락을 통해 살펴보며 균형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과, 이상을 견지하는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점이다.
북친의 책을 읽으며 나는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했다. 모든 현대인은 개인이다. 도시적 개인, 자본주의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개인, 경쟁에 노출되고 상품 소유에 매달리고,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 고독한 개인, 가족을 상실한 개인. 이런 개인은 18세기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부르주아적 사고에서 파생되고 변이되며 완성되었다. 이 개인을 거점으로 모든 담론이 진행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런 개인의 한계를 돌파하는 이야기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 의식을 지배하는 '부르주아화'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통찰하고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안의 제시도 어려울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68혁명 세대에 대한 단상이다. 북친은 신좌파와 대항문화를 중심으로 그 의의와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90년대 이후 한국사호를 지배하고 있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위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지첵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 이론에서 만나는 존재도 현대의 개인들이다. 다중이든, 아우또노미아든, 특이점이든, 주체이든 그 태생은 자본주의적 환경을 내면화한 개인들이고, 때문에 자본주의를 전복하기보다 흡수되고 통합될 운명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68혁명의 세대는 19세기말 20세기 초 혁명의 세대와 다르다. 뭔가 좀더 무력하고 개인화되어 있다. 비록 생태주의와 패미니즘이 탄생한 배경이 되지만 보다 근원적인 통찰과 대안을 내놓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은 어떤가?
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던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 초반의 100년을 생각한다.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혁명이론으로써 실험되고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공동체 운동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암울하게도 아나키즘의 유토피아가 보편적 현실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그것은 인류사가 결국 비인간의 기계에 의해 인간을 착취하는 인간들의 승리에 의해 지속되어 왔다는 성찰에 기인한다. 혁명 이상의 좀더 근본적이고 충격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도덕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우선 지배적이었다.
요즘 나는 예수를 생각한다. 이기적 욕망이 뻔뻔스레 주창되는 시대에 어떻게 도덕을 삶과 행동의 잣대로 삼을 수 있을까? 그것은 내면의 숭고함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리는 이미 이기적 욕망에 길들여지고, 도덕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이 더이상 싸움의 대상이 아닌 시대. 오히려 그것에 대응하거나 타협해 살지 않고 완전히 진리와 공동체적 이상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 주류가 되고 전체가 되는 것은 북친의 비유처럼 '악의 윤리학'이 되는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도덕성을 갉아먹는 것은 언제나 타협이 하는 일이다. 차선이 곧 최악을 낳는다. 최악을 방지하는 길은 최선일 뿐이다.
첨가: (2014.7월)
3년만에 같은 책을 다시 봤다. 3년 전의 강렬함과 비교해서 강도는 좀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더불어 이번에는 특히 7장에서 전개한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와 시민의 원리 부분이 더 눈에 띄었다.
한나 아렌트를 읽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만났는데, 북친의 문제의식도 아렌트와 일치함을 발견했다. 민중회의와 직접민주주의, 연합의 원리, 그리고 시민의 자격과 미덕, 역할 등은 유심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한편 레버테리언 지역 자치주의자로서의 전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과 공동체를 실험한 오언과 푸리에의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 차례 =
1. 왜 이 책을 쓰는가?
2. 사회와 생태
3. 계층, 계급, 그리고 국가
4. 역사의 전환점
5. 자유의 이상
6. 혁명적 과제의 정의
7. 여기에서 저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