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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원부춘-화개법하 구간
*법하-기탄-정금중촌-원부춘
*총거리; 14KM
최고고도/최저고도/고도차; 825/37/788
이 구간이 가장 골치 아픈 구간이다.
먼저, 부춘에서 악양 활공장 가는 시멘트 포장도를 따라 고도를300에서 800까지 약500을 올려야 한다.
지리산둘레길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고도 800의 임도에서 산길을 따라 중촌까지는 고도를 다시 250 수준으로 낮추기 위하여 급 경사 내리막을 걸어가야 한다.
문제는 중촌에 내려서고난 이후에 정금리에서 대비-백혜 마을로 끊임 없는 밤나무 과수원 단지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외진 곳도 많아 여성 혼자는 절대 가지 말아야 하는 구간인데, 차라리 정금리를 거치지 말고 신촌으로 바로 내려가 화개천변 도로를 따라 가탄교까지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봄철 건너편 벚꽃길을 바라보며 걸을 수도 있고...
지리산둘레길 제14구간 원부춘-가탄 개념도. (출처_ 행복한 걷기여행 지리산둘레길).
원부춘~가탄 구간별 거리
원부춘마을-형제봉임도삼거리(4.2km)-헬기장(1.1km)-중촌마을(1.7km)-정금차밭(2km)-대비마을(0.68km)
-백혜마을(2.8km)-가탄마을(1.1km)
거리 : 약 12.6km
시간 : 휴식포함 약 7~8시간
자료 제공_ (사)숲길.
구간별 소요시간.
2013년 10월 5일(토)
오전 11시 08분 부춘마을 출발. (이후 꾸준한 포장도로 오르막).
오후 12시 57분 갈림길. (왼쪽 흙길 임도 방향)... 잠시 휴식. 화장실. 이후 숲길 내리막.
2시 31분 하늘호수 매점.
3시 28분 출발... 이후 평지 내리막.
3시 51분 갈림길... 이후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
4시 02분 차밭... 이후 내리막. (사진 촬영).
4시 22분 대비마을 입구. 이후 오르막. (포장도로).
4시 44분 대비암. (이후 숲길 임도. 오르막과 내리막).
5시 29분 백혜마을. (백혜마을 가탄마을까지는 약 10분 소요. 내리막).
* 중간중간 사진 촬영으로 시간 지체.
시골 공무원 조문환과 걸은 원부춘~가탄 12.6km
길 위에 서다, 걷다, 그리고 꿈을 찍다
지리산은 등 뒤에 있기도 하고, 눈앞에 있기도 하고, 머리 위에 펼쳐져 있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 발밑에 있다. 조용한 마을을 지나고, 텅 빈 들녘을 지나고, 산새조차도 숨죽인 숲길을 지나고, 왁자지껄 사람 냄새 가득한 쉼터도 지나며, 때로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듯한 장관 앞에서 멈칫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길 위에 모든 것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자락을 돌고 돌아 만나는 풍경들이 지금도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글·사진 황소영 <행복한 걷기여행 지리산둘레길> 저자|협찬 트렉스타
원부춘마을은 지난 구간의 종점이자 이번 구간을 새롭게 여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지리산 형제봉 능선을 우측에 두고 길을 잇는다. 모기에 뜯기며 넘었던 깊은 고갯길은 아직도 저 산속에 남았지만, 한 달 동안 내린 비와 바람과 계절의 흐름 때문에, 우리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테고, 먹이를 제때 구하지 못한 모기떼도 먼 길을 떠났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흔적은 하나둘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마음속에 각인된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글이나 사진으로 남았을 땐 더더욱 그러하다.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
길은 부춘마을 가슴팍을 관통해 해발고도 1천m가 넘는 형제봉 활공장까지 이어진다. 악양 들판 위를 휘휘 돌아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는 패러글라이더들의 날갯짓은 이곳 형제봉에서 시작된다. 형제봉 능선은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의 경계이자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한 지맥이 삼신봉 거쳐 섬진강까지 내달린 남부능선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부춘마을 동쪽은 이 형제봉이, 북쪽엔 아득히 주능선, 서쪽 역시 700고지 이상의 무명능선, 남쪽으론 발아래 섬진강, 그리고 그 건너 거대한 백운산을 마주하고 있다.
행정지명은 ‘부춘’이지만 마을이 형제봉 산허리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해서 ‘부치동’ 또는 고려시대 때 원강사 라는 큰절이 있어 ‘부처골’로 부르던 게 변하여 부춘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엔 ‘불출동(不出洞)’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학식은 높지만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던 한유한이 왕의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고 이 마을에 숨어 살았으며, 바위에 ‘불출동’이라 쓰고 평생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결국엔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화개면지>에 따르면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부처가 나는 동네’ 즉 불출동(佛出洞)이고, 지금과 같은 부춘이 된 건 1879년부터다.
책 <<하동편지>>를 쓴 하동군 공무원 조문환씨의 기록에 의하면 부춘은 ‘다란이 동네’다. 산허리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을 부르는 이름으로, ‘달려 있다’ ‘매달려 있다’란 뜻의 지역 말이다. 예전엔 꽤 부촌이었던 모양인데 산업화 등으로 주민들이 떠나 빈촌이 되었다가 근래 다시 부촌으로 거듭난 마을.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이번 구간의 동행은 ‘시골 공무원’이란 이름표를 달고 선 여행작가 조문환씨다.
“지난 2011년 1월은 이 나라 농촌이 근 100년 만의 한파와 유례가 없었던 구제역으로 온 산하가 얼어붙었고 농민들의 가슴은 썩고 문드러질 때였습니다. 신령스럽게까지 여겨졌던 차나무가 동해로 말라죽어갔고 죄 없는 가축들은 동토의 땅, 차가운 주검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축산인들은 말할 것 없고 일선에서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과로와 사고로 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조씨의 책 <<하동편지>> 프롤로그에 적힌 글로, 하동에서 나고 자라 하동군민의 친구이자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살아온 조문환씨가 하동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의 일을 술회한 것이다. 객지에 나가 있는 지인들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 고향 소식을 알리는 메일을 발송한 게 벌써 3년째고, 편지 수취인도 수백 명에서 2천 명까지 훌쩍 늘어났다. 하동에 태를 묻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반백년. 군생활을 제하곤 고향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 하동의 공무원이다. 조씨처럼 하동에 대해 ‘빠삭한’ 사람은 드물다.
고향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리산둘레길은 활공장 가는 길을 따라 4km쯤 꾸준히 올라서야 한다. 간혹 활공장비를 가득 실은 용달차들이 둘레꾼 옆을 달린다.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걷는 것과 나는 것,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정점에 산이 있다는 건 둘 사이의 공통분모다.
임도 삼거리에서 활공장 가는 오르막을 버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가풀막 오르막이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화장실이 있다. 원부춘부터 2시간 가까이 포장도로를 올라섰으니 한껏 다리쉼을 하기로 한다. 조씨의 아내이자 하동보건소에 재직 중인 서미옥씨가 배낭 안에서 주섬주섬 샌드위치와 뜨겁게 내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꺼낸다. 남편 몫은 물론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의 입과 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줄 분량이다.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매주 하는 일인 걸요. 손에 익은데다 거창하지도 않고요.”
조문환씨의 뒤, 때로는 앞과 옆에서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사람이 아내 서씨다. 차량 지원을 하고, 먹을 것을 챙기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훌륭한 모델이 되어준다. 모델이 지나치게 예쁘거나 화려하면 주변 풍광이 살아나지 못하는 법. 서미옥씨는 숲에서, 길에서, 강에서, 늘 그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들어서 있다.
구제역 등으로 온 나라, 특히 시골의 공무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유난히 고단했던 시절 시작된 조문환씨의 ‘하동편지’는 달리 보면 조씨 자신을 위한 특별한 처방전이기도 하였다.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한 줄 한 줄 정성들여 써내려간 고향의 이야기와 사진들은 삶의 돌파구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격려하였고, 또 다른 많은 이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객지의 지인들에게 고향의 아픔과 그리움을 전하려 시작했던 이 편지글에 뒤이어 ‘섬진강 에세이’와 ‘평사리 일기’ 등이 지금도 전국의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특히 2012년 내내 주말을 이용해 섬진강 걷기를 하였고, 그만의 특별한 감성이 담긴 글과 사진이 조만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올 참이다. 섬진강은 그에게 대화가 가능한 하나의 생명체였다. “섬진강과 나를 위해” 꼭 한 번은 걸어야 할 길이기도 했다. 주중엔 직장에 다녀야했고, 주일엔 교회에 가야 했다. 토요일 새벽, 아내가 준비한 식사를 챙겨 하동을 떠났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조금씩 조금씩 남하했다. 아내 서미옥씨는 출발지점에 남편을 내려주고 곧장 구간 마지막 지점으로 이동, 차량을 주차하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남편과 함께)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식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다녀와라. 난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라고 할 법도 한데, 차량 지원만도 감지덕지한데, 서씨는 그렇게 2012년 한 해를 남편과 함께 했다.
“지난 1년간 50회에 걸쳐 섬진강을 걸었는데, 혹시 업무에 등한시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하여, 오후엔 하동으로 돌아와 (토요일인데도) 출근을 하였습니다.”
하산지점으로 떠난 아내가 다시 거슬러 올라올 때까지, 구간의 절반은 조문환씨 혼자 걸어야 했다. 그럴 땐 유독 생각이 깊어졌고, 돌아와서는 글을 남기는 일이 무척이나 기다려질 정도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안으로부터 넘쳐날 때였으니까. 잠못 드는 새벽, 아니 글을 쓰고 싶어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새벽에 주로 작업했는데, 어떨 땐 1개의 테마를 단 30분만에 써버린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매주 새벽같이 일어나 이동하고, 걷고, 찍고, 돌아와 글쓰고, 아무렇지도 않게 업무에 복귀해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쉬어가는 곳, 하늘호수
화개까지 내려가는 임도가 있으니, 둘레길 또한 그 임도를 따를 것이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길은 이제 산으로 이어진다. 가깝게는 시루봉과 원강재 능선, 멀리는 노고단과 반야봉, 손톱보다 작은 벽소령대피소까지 보이는 등 전망이 좋지만 숲이 우거진 계절엔 그나마도 보기 힘들 것이고, 설령 보인다 해도 지리산 능선에 까막눈인 사람에겐 조망의 즐거움도 딱히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곳에서 구간 종점인 가탄마을까진 9km에 이르며 가장 가까운 중촌마을까지도 오금이 저리는 내리막 일색이다. 걷기에 이력이 난 일행들도 후들후들 다리가 떨리고 무릎이 아리다. 누군가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다면 아무리 마음이 흉한 사람이라도 그 이를 걱정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내려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다. 건조한 날은 건조한대로, 비가 온 다음날은 또 그런대로 상당히 미끄럽다.
사방은 온통 가을로 접어든 숲인데, 어디선가 아궁이 군불 냄새가 난다. 킁킁, 코를 벌름대며 내려서면 이번 구간의 유일한 매점 ‘하늘호수’다. 원부춘에서 4km쯤, 형제봉 삼거리에선 약 3km쯤, 구간의 절반을 올라갔다 내려선 터라 발목이 시큰하다. 이미 이런 둘레꾼들을 많이 보아왔는지 하늘호수 주인 내외가 세숫대야 가득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 내온다. 족욕 전용이다. 송구하고 면목 없지만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근다. 지리산 저 아래에서부터 솟아난 차가운 물줄기가 발등을 간질인다.
화개 황장산을 정면으로 한 이 매점에선 간단한 요기가 가능하다. 텃밭에서 막 따온 부추와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부침개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는다. 막걸리 두어 잔이 금세 목구멍 속으로 꿀떡꿀떡 사라진다. 커피도 있고, 인도식 밀크티 짜이도 있다. 숲속까지 스며들었던 군불 냄새는 이곳에서 시작된 모양이다. 아직 한낮이지만 아궁이 속에선 타닥타닥 불꽃을 튀며 장작이 타고 있다. 당장이라도 아랫목에 누워 허리를 지지고 싶은데 조문환씨는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제가 주장하는 건 ‘걷자생존’이예요. 산책할 때도 그렇고, 섬진강을 따라 걸어내려올 때도 그랬어요. 걸을 때라야 깊은 사고가 가능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그에게 걷는 일은 온몸 구석구석 잠든 세포를 하나씩 깨우는 생존 방식인 셈이다. 하여 향후 목표도 대부분 걷는 일이다. 일단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할 터이고, 지리산 산행도 심도있게 할 생각이다. 섬진강이 그런 것처럼 지리산은 그가 잉태된 순간부터 삶의 자양분이자 버팀목이 되어준 곳이다. 머잖아 백두대간도 걸을 것이며, 퇴직 후엔 외국도 나가볼 생각이다.
“‘하동편지’를 쓰고 나서 목표가 생겼어요. 앞으로 10권쯤의 책을 더 쓰는 것 말입니다. 하동에는 모두 319개의 마을이 있는데, 일명 ‘319프로젝트’라고 해서, 그 마을들을 모두 다 찾아가보는 계획도 세웠고요.”
조씨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그이보다 사진을 훨씬 잘 찍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수두룩하다. 많은 이들이 하동을 다녀가고, 하동에 관한 글들을 숱하게 썼지만, 그게 조문환씨의 글과 같을 수는 없다. 조씨의 사진 속 소소한 풍경들은 따뜻하다. 고향을 지켜온 이만이 쓰고 찍고 전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저는 하동을 ‘국민 고향’이라고 표현해요. 누구나 응석부리고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전국민의 고향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고향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이가 어머니이다.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탓도 있겠지만 유난히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가 찍어, 책에도 실린 어머니의 다소곳한 사진은 올초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그이의 이야기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이기도 하다. 설령 고향이 하동이 아니라도 누구나 그의 글과 사진 속에서 두고 온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린다. 화려한 기교로는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진솔한 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리산이 키운 ‘왕의 녹차’
중촌마을과 도심촌마을을 내려선 길은 곧 오르막으로 바뀐다. 터덜터덜, 언덕까지 다 올라선 후에야 고개를 드니 눈앞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예까지 걸어온 둘레꾼들에게 이번 코스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왕의 진상품이었고, 그래서 ‘왕의 녹차’로 불리는 하동의 차밭에선 잘 정돈된 인공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산비탈 척박한 땅, 지리산 청정 계곡, 발 옆의 들녘에서도 차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 일대의 차들은 시선이 닿지 않는 산속 깊은 곳에서도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의 세심한 손끝을 거친 후에야 상품이 되지만 꼭 그렇지 않다 해도 화개의 차들은 지리산의 후원을 전폭적으로 받은 셈이다.
하루종일 딴 찻잎은 그날 바로 뜨거운 가마솥에서 덖어야 한다. 4~5월이면 집집마다 막 수확한 찻잎의 싱그러운 향기와 구수한 냄새가 끊이질 않는다. 묻지 않아도 화개의 웬만한 집들은 손님이 오면 차를 내온다. “언제 차 한번 하자.”라는 말이 이곳에선 거짓이 아니다. 차를 만드는 일도, 그 차를 마시는 일도 화개에선 일상일 뿐이다. 혀끝과 입안을 적시는 화개 차의 풍미는 티백으로 우려낸 맛과는 견줄 수가 없다. 굳이 ‘명인’으로 꼽히는 몇몇 이들의 손끝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화개에서 자란 지리산표 녹차면 충분하다. 요즘은 이곳의 차도 대형화 추세지만 그래도 아직은 가내수공업 형태의 농가들이 훨씬 많은 편이다. 특히 차는 이맘때 순백의 꽃을 피운다. 봄과 여름, 가을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여느 꽃과는 달리 차는 찬바람이 불어올 때라야 새하얀 꽃잎을 연다. 그나마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꽃이다.
차 타고 휭하니 왔다가 사진만 찍고 가면 아무런 감흥도 없는 길, 힘들게 걸어온 이들에게만 주어진 힐링의 길, 사계절 내내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길…. 차밭 사이로 열린 길은 계절의 끝자락처럼 쓸쓸하고 아련하게 이어진다. 걸어야 살 수 있다. 발끝에 와닿는 흙의 촉감을, 발바닥을 자극하는 단단한 돌부리의 힘을, 가슴 깊은 곳까지 콕콕 박히는 알싸한 공기를, 걷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특권이다. 길은 저만치 휘어져 있었다.
information
지리산둘레길 14구간 정보
* 원부춘~가탄 구간별 거리
원부춘마을-형제봉임도삼거리(4.2km)-헬기장(1.1km)-중촌마을(1.7km)-정금차밭(2km)-대비마을(0.68km)-백혜마을(2.8km)-가탄마을(1.1km)
거리 : 약 12.6km
시간 : 휴식포함 약 7~8시간
지난해 뒤늦게 개통된 길로 원부춘마을~형제봉 임도 삼거리~헬기장~중촌마을~녹차밭~대비마을~백혜마을~가탄마을을 지난다. 총 거리는 12.6km로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이전 구간의 종점인 원부춘마을회관에서 형제봉 활공장까지 연결된 포장도로 오르막을 4km쯤 꾸준히 올라야 하는데, 간혹 활공 장비를 실은 차량과 마주하게 되므로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형제봉 길을 버리고 둘레길로 접어들면 걷기 좋은 오솔길이 나타나지만 곧 중촌마을까지 가파른 내리막이다. 날씨가 너무 건조하거나, 반대로 전날 비나 눈이 내려 땅이 질퍽하다면 상당히 미끄러워 몇 번씩 고생을 하는 길이기도 하다. 중촌마을 이후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언덕배기를 살짝 넘어서면 사계절 내내 초록빛을 자아내는 차밭이 둘레꾼들을 반긴다. 보성이나 제주의 대규모 차밭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규모지만 둘레길에서 만나는 이 차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아름답다. 이후 대비마을까지 다시 오르막이 이어지고, 백혜마을로 내려설 때까지 숲속 시멘트 포장 임도를 지난다. 만약 4월 초순에 이 코스를 찾는다면 가탄마을과 그 건너편 도로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진 ‘십리벚꽃길’을 볼 수 있다.
* 오가는 길 (지역번호 055)
대중교통 /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 구례를 거쳐 화개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종점 하동행. 아침 6시 30분 첫차부터 밤 10시 심야버스까지 하루 10회 운행하며 요금은 21,800원(심야 24,000원). 원부춘은 화개와 악양의 중간쯤이므로 경상도쪽에서 올 경우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하동이나 악양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좋고, 전라도나 서울쪽에서 올 땐 화개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낫다. 마지막 구간인 가탄 역시 화개면이므로 교통편은 비슷하다.
터미널 연락처 / 서울 서초동남부터미널 02-521-8550, 진주시외버스터미널 741-6039, 741-3637, 하동시외버스터미널 883-2662, 화개버스정류장 883-2793, 하동택시 884-3836, 악양택시 883-3009, 화개택시 883-2332
자가용 / 호남고속도로는 구례화엄사IC로 진입해 19번 국도를 타고 화개 방향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장수IC에서 남원의 17번 국도와 19번 국도 또는 함양IC에서 진주를 거쳐 하동IC(전도)로 들어온다. 가탄마을에는 넓은 주차장이 없으므로 도로변에 주차하거나 화개초등학교 인근의 무료 주차장을 이용한다. 마지막 지점인 송정리 역시 19번 국도변이므로 교통편은 비슷하다. 다만 두 지점을 직접 연결하는 대중교통이 없으므로 차량을 회수하려면 화개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두 지점 간 택시 요금은 15,000원 정도다.
* 기타정보
* 화장실은 원부춘마을, 형제봉 임도, 중촌마을, 대비마을(대비암) 등에 있다.
* 형제봉 임도 삼거리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고, 여기서 1시간 10분 거리에 매점 ‘하늘호수’가 있다. 연락처는 묵을곳 참고. 대비마을 입구에는 정자가 있다.
* 중간에 매점이 있긴 하지만 상시 영업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중간중간 먹을 식수와 행동식을 넉넉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가탄슈퍼는 구간 마지막 지점 도로변에 있다.
* 도엽명 1:25000 악양
* (사)숲길 하동안내센터 055-884-0854
* 먹을 곳 (지역번호 055)
구간이 지나는 곳에는 매점 ‘하늘호수’ 외에 마땅한 식당이 없다. 구간 시작점인 원부춘마을과 구간 종점인 가탄마을, 어디든 상관없이 식사는 화개에서 하는 것이 좋다. 화개의 식당들은 참게탕, 재첩국, 산채비빔밥, 은어회(튀김) 등을 주로 취급한다. 쌍계사 입구의 수석원식당(883-1716)은 영양돌솥밥이 괜찮고, 맞은편의 단야식당(883-1667)은 들깨국물로 맛을 낸 사찰국수가 유명하다. 깔끔한 산채정식은 쉬어가기좋은날(883-4375)이 괜찮다. 가탄마을 맞은편 삼신리 산호식당(883-2447)의 순대국밥도 개운하다.
* 묵을 곳 (지역번호 055)
원부춘마을
토담농가(010-9689-4004), 부춘골산장(011-838-6005), 산마루펜션(010-3644-9665), 옛날그집민박(883-8400), 홍꼴민박(010-9272-2141) 등 10여개 가 넘는 펜션이 밀집돼 있다.
중촌마을
둘레길 바로 곁에 매점을 겸하는 하늘호수(882-8154)가 있고, 대비마을 직전 차밭 인근에 클라우스펜션(010-8788-4875)이 있다.
가탄마을
백혜마을과 가탄마을에는 멀구슬민박(883-2100), 가여울농장민박(010-4921-2654), 길가슈퍼민박(883-6068) 등이 있다.
그 밖에
구간 종점인 가탄마을이 속한 화개면은 쌍계사, 칠불사 등의 명찰과 지리산 등산로가 산재한 유명 관광지여서 가정집을 이용한 민박과 펜션, 모텔 등 숙박시설이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다. 모텔은 주로 화개장터가 있는 진입로 쪽에 밀집돼 있다. 펜션은 모텔보다 가격이 2~3배 비싼 편이지만 주방시설이 구비돼 있으므로 부식거리만 구입하면 저녁과 아침, 두 끼 정도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인근에 게스트하우스 도시고양이생존연구소(010-3606-2456)와 화개펜션게스트하우스(010-4239-3200)가 있고, 악양에 있던 게스트하우스 일리지(010-7503-2270)도 화개쪽으로 이전하였다. 둘레길과 벗어난 숙박업소의 경우 픽업 여부를 미리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