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계단을 넘다
최성옥
한 장의 사진이 깊은 망각을 깨운다.
전라남도 대둔산에 있는 삼선 철 계단 사진이다. 아침신문을 보다가 계단에 대한 사진과 밑에 간단한 메모가 눈에 띄었다. 삼선계단을 천국의 계단이라고도 부른다는 내용이다. 가을인지 온 산이 단풍으로 뒤덮였고 삼선계단을 오르는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사진이다.
멀쩡한 이름을 두고 왜? 천국의 계단이라 했을까. 하늘로 솟은 계단이라 그렇게 비유했는지. 그곳에서 바라본 산의 전경들이 천국만큼 아름답다고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아니면, 천국에 가기만큼 오르기 만만치 않아 불리게 된 건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 옆에 죄수 한명에게 이르셨다. 누가복음 23:4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낙원이란 장소를 명시하셨으니 그곳이 천국 아닐까.
나는 오래전, 삼선 사다리 넘던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긴장감에 오싹해지는 느낌에 젖는다. 그때는 겨울 끝머리인 2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겨울 산행을 나섰다. 그날 코스는 대둔산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턱까지 오르고, 구름다리를 건너 삼선계단 밑에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꽃피고 단풍 고울 때, 여러 번 찾아왔던 산이라 낯설지 않지만, 두 아들은 초행길이었다. 행여 구름다리를 무서워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흔들대는 구름다리에서 발을 구르고 즐기고 있었다. 짓궂은 사내 녀석들의 장난기는 못 말렸다.
산의 오르니 평지보다 꽤 쌀쌀했다. 산에는 엊그제 온 눈이 녹지 않아 순백의 정취를 뽐내고, 나무에 핀 설화는 햇빛을 받고 보석처럼 빛났다. 설경에 도취되어 조금 춥고 손발이 시린 것쯤이야. 미끄러운 등산로를 아이젠을 신었다 벗었다 하며, 삼선계단 밑까지 왔다. 삼선계단은 절벽과 절벽, 바위산에 턱 걸쳐 하늘과 맞닿아있다. 경사가 급한 127계단인데 올라갈 수 만 있는 외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기요 위를 올려다보면 위용도 당당한 철 계단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있다.
이제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산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가볍게 사우나를 하고 맛있는 거 사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고개를 쳐들고 이리저리 계단을 올려다보던 막내 녀석이 “와! 재미있겠다.” 한마디 하더니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다. 내려오라고 소리를 쳐도 들은 척도 않는다. 그 모습을 보던 큰 녀석도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고 예측도 못한 일이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공포심이 이는데. 뭘 모르는 천방지축 어린 두 아들, 얼마나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는 건지.
계단에는 눈이 얼어붙어있고 바람이 불어 눈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담력도 없는 내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두 아이들이 미끄럽고 가파른 계단위에 있다는 것. 오로지 아이들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내가 밑에서 받쳐주기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굳은 표정으로 남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배낭을 단단히 여몄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발 두발 집중, 또 집중에만 몰입했다. 한 치 여유도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도 따라 올라오는지 조심하라는 말 한 마디 던진다. 철계단은 미끄러웠다. 한발만 헛디디면 그냥 이승과는 영원한 이별이다. 손은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계속 오르긴 하는데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 그 계단을 오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했다. 우리 기족이 이 계단을 벗어나게 해주시라고.
저만치 작은 아이가 계단을 벗어났다. 그곳에 있던 몇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손을 잡아주고 있다. 큰아이도 계단 밖으로 나섰다. 이젠 되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나도 어렵사리 계단을 벗어났다. 몇 계단 밑에 남편이 올라오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아찔하고 가슴이 떨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남편도 무사히 계단을 넘어서자 그제야 힘이 풀린 다리와 잔득 굳어있는 어깨와 벌겋게 언 손의 감각이 전해졌다. 얼굴로 날라 온 눈가루는 녹아내려 흥건했다.우리는 지금 무슨 일을 한 거지.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이런 모험을 하다니. 앞뒤 가리지 않는 혈기 왕성한 어린 아들의 치기가 자칫 위험을 불렀다면 어찌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조심스러운 겨울 산행, 그것도 127계단의 눈이 깔린 아슬아슬한 직선계단 넘다니.
삼선계단을 넘고 보니 그곳에 대둔산 정상이 있었다. 예기치 않은 정상 정복까지 덤으로 얻긴 했지만 다시는 아찔한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계단에서 오로지 아이들이 미끄러질까봐 마음 졸였었다.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염려와 사랑은, 세상의 바다에서 풍랑에 맛서는 힘이 되며 그 사랑이 세상을 맑게 하는 정화수는 아닐 런지.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잘한 것도 참 없다. 열심히 가정과 가족을 보필하며 살았을 뿐. 그저 그것이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모든 것에 초석이 되는 것 일터인데.
신이 인간에 대한 사랑도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죄인들을 구원 하실까. 오래전 읽은 천국의 열쇠라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천국의 열쇠(A. J 크로닌 작품) 주인공 치셤 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느님을 모르고 착하게 살다 하늘나라에 온 할머니를, 하느님은 다른 방법으로 구제해 주 실거라고.’ 천국이란 단어 속에는 죽음과 구원, 희망과 속죄가 두루 포함되어 있지만 인간구원의 사랑이 제일 클 것이다.
여러 모습으로 천국이란 단어가 흔하게 쓰인다. 삼선계단을 천국의 계단이란 비유도 그렇다.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누구나 소망하는 천국에 대한 표현이지만 하루하루 죄짓지 말고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