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명/ 수필/ 한강문학 6호, 봄호/ <남궁명 스토리 에세이 6호>
창조의 법칙
남 궁 명
성형미인들로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태어나면 어디를 손 봐야 할 것인지 미리부터 점검도 하고, 견적도 뽑아보고, 언제 수선을 해야 할지 시기도 맞춰보고, 자라면서 뜯어고치는 것이다. 자르고 붙이고, 빼내고 집어넣고, 망치질에 대패질에 사람이 아닌 물건을 만들어 낸다. 언제부터 사람이 물건이 되었을까? 어느 병원 어느 의사의 작품인지 척보면 다 안다고 할 정도다. 코도 눈도 똑 같고 쌍둥이가 따로 없다고 한다. 과학인지 창조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산도 강도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다. 깎아내고, 잘라내고, 수술대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나를 닮은 낯선 할머니가 있었다. 나는 성형을 한 적도 없는데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나는 분명히 어느 누구에게도 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한 적이 없다. 바뀐 모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그리 깊이 잠들어 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언제 누가 나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일까? 아, 그랬구나! 짓 굿은 세월, 바로 그 녀석이었어, 그래도 그렇지, 내 의향을 한번쯤은 물어봤어야지, 뭔가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다. 터질 것처럼 팽팽하다. 뽀얗고 보송보송한 피부는 하나같이 이십대 같다. 나도 수선 좀 해볼까? 젊어지고 싶었다. 보톡스를 맞을까? 아니면 필러? 엉덩이 지방을 얼굴에 집어넣으면 부작용이 없을라나? 성형외과 상담을 해봐? 점도 빼고 검버섯도 없애고 주름살이 지워지면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견적은 얼마나 나오려나?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부끄러웠다. 거울을 피했다. 볼륨 없이 늘어진 피부가 싫었다. 주름진 얼굴이 싫어서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들어난 쇄골을 감추려고 머플러를 두르고 고양이 상으로 바뀐 얼굴을 감추려고 마스크를 착용 했다. 당당한척 겁나는 게 없는 척 하면서 상대의 눈을 피하며 대화를 했다. 주름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려고 애써 근엄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런지 사감선생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름이 들어 날까봐 웃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워 보인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주름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웃음을 참았지만 결국 주름은 얼굴 전체를 점령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마음은 숨길 수 있었지만 주름은 숨길 수 없었다.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에, 젖가슴까지 드러내고, 잘 룩 한 허리에, 허벅지부터 다리까지 쭉 찢어진 드레스를 걸쳤다. 긴 다리를 옆으로 꼬고, 부러질 듯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었다. 한쪽팔로는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긴 머리는 어깨를 거쳐 등허리까지 흘러내린 모습이 가히 매혹적이었다.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은 또한 고혹적이기도 했다. 나는 한쪽 벽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모저모 뜯어보며 생각을 가동했다. 탤런트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배우겠지.’ 생각하면서 물었다.
“할머니, 이 사진 누구예요?” “네?” 깜짝 놀랐다. 그 사진의 주인은 할머니의 딸이었던 것이다. “따님이 미스코리아, 저리 가라네요.” 내말에 할머니의 대답이 의외였다. “미친년 이예요.” 이어 할머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 천 만원을 들여가며, 수차에 걸친 성형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스스로도 딸이라니 딸인가 보다 하는 것이지 자신이 낳은 딸은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비만치료를 하다하다 안돼서, 밥그릇을 줄이기로 했단다. 그렇다면 밥공기를 작은 것으로 바꿀 것이지, 위를 잘라 냈다고 한다. 그릇이 작아야 밥을 적게 담는다는 이유로,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세 번 이었다고 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배를 가르고 애꿎은 밥통을 세 번씩이나 잘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뱃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술을 한 후 삼년이 지나면 다시 살이 찐다는 얘기였다. 우리교회에 나오시는 할머니 댁에 구역예배를 드리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뉴스에서나 들었던 이야기가 실제로 내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도 의외였지만 사진 속 여인이 내가 알고 있던 그 여인이 아니어서 더욱 놀란 것이다. 그 여인은 그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당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모르지만, 위풍당당하게 그녀와 맞서 원래의 모습을 지켜낸 그녀의 위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작용으로 힘든 경우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여기도 복제, 저기도 복제, 개나 양 같은 동물을 복제로 탄생시킨다고 한다. 과학일까? 창조일까? 세계 각국에서 복제기술을 연구 개발 중이다. 중국에는 경주 말이나 애완동물을 복제하는 공장도 있다고 들었다. 툭하면 남녀의 성별도 바꾸는 세상이다. 그런 병원은 분명 사람을 작품으로 만드는 공장일 것이다. 분명히 아들을 낳았는데, 딸이 되어 나타났다는 소리도 들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나 아닌 내가 나라고 우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반백년을 눈물로 공들이고, 이제 겨우 가정을 안정시켰는데, 나에게는 이 세상 전부를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인데, 나 아닌 내가 내 자리를 내 놓으라면 끔찍한 일 아니겠는가. 누군가 나를 복제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렇지,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잖아, 세월이 나를 바꾼다 해도 나는 그냥 나야, 할머니가 되었어도 나는 그냥 나인거야, 주름살이 있으면 어때? 활짝 웃자. 더 이상 주름살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제부터 주름살을 구박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여보 당신은 주름도 예뻐.”
열두 살 소녀의 눈웃음이, 주름살투성이의 할머니로 변했어도 변함없이 아껴주는 남편 앞에서 주름을 들어내고 활짝 웃고 있었다.
약력
강원도 속초, 한강문학동인회 회원, 한국문학네트워크 이사, <수필시대>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