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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뱅클레르의 자전적인 소설.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에 의사 삭스가 개업하면서 겪는 환자들의 애환과 의료체계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 <삭스의 병>이란 원제목은 주인공인 삭스가 환자들과의 기록과 과거의 노트를 정리하여 탈고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프랑스 전역에서 60만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미셸 드빌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
현대 의료 체계의 비인간성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해서 받아들이는 경구 하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히포크라테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에 비교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예술art이란 특정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의 말속에서 art가 의미하는 것은 의술醫術이었다. 고로 히포크라테스가 후배 의사들에게 짧은 경구로 전하고자 한 말은 '의술을 갈고 닦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그 뒤에 생략된 말은, 고로 의학 연구에 전념하라!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현대 과학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 놓은 의료 체계는 저자가 보기에는 실패에 가깝다. 지금 전 세계의 <의사들이 모두 모인다 해도 결코 알아내지 못하는 병들이 더 많고> 과학의 진보가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되었느냐 하면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은 대부분의 병에 대해 치료법을 모른다. <병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알고 증상들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줄>만 알 뿐이다. 지금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는 괴질(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사스>만 봐도 알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이래 수천년이 지났지만 우리 몸에 고통을 가져오고 죽음까지 안겨다 주는 질병들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완벽한 의학을 기대하기에는 수천년도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의 의사들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만하고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권력자>에 가깝다. 저자는 의사들의 권력과 명예에 대한 의지를 다음과 같은 병명들에서 발견한다. 다운 증후군,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라페이론병, 뒤피트렌병 등등, 이 병의 이름들은 모두 그 병을 앓은 환자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 환자들을 대했으나 치료하지도 못했던 의사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의사들이 <그런 몹쓸 병에 자기 이름을 붙이는 일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병에 이름을 붙인 의사들은 그 병으로 죽지 않았고 의사들의 이름은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선적인 덮개> 역할만 할 뿐이다.
의사들은 <술을 마시고 마약을 복용하며 실의에 빠지고 담배도 피우고 섹스는 잘 못하고 경마장이나 카지노에서 큰돈을 걸기도 하고 측근들을 때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방치하기도 한다..... 수중에 남아 있는 삶이 너무도 끔찍하게 싫어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통계학적으로 볼 때 계몽되지 않은 <<일반 대중>>보다 의사에게 더 자주 있는 일이다.>
수술 기술의 발전도 의사의 세심한 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심인성 딸국질 환자에게 기껏해야 횡격막 제거 수술을 받게 만들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삭스가 보기에 종합 병원의 의사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멩겔레(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반인류적인 의학 실험을 주도한 악명 높은 의사)에 버금가는 작자들이다.
현대 의학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주인공 삭스가 의과 대학생 시절에 <우리는 모두 나치 의사다>라는 제목으로 붙인 대자보 내용(이 책의 101장. [종이 위에])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면 이 책의 저자는 동종 업종 종사자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만 가득 찬 불평쟁이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공 삭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다. 이 소설은 대부분은 의사 삭스가 가족과 친구, 환자들과 대화하고 문진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짧은 대화들은 낱개의 퍼즐 조각들이고 그것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다 보면 삭스의 너무나 인간적인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야간에 응급 환자가 있다는 호출을 받고 잠을 깨 졸리운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대답을 할 때도 그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환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은 숨길 도리 없이 드러난다.
그는 어린 아이에게 청진기를 들이댈 때 청진기 끝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따듯하게 한 다음 아이의 배에 갖다 대는 의사다. 치정에 얽혀 있는 정부(情婦)가 자기 신세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으면서 환자도 아니면서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고 하자 <그렇지 않습니다. 부인도 고통받고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하는 의사다. 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베테랑 산모의 눈에 비친 삭스는 <아기가 나오자 배 위에 아기를 올려놓고는 아기를 바라보고 만지느라 한참을 산모 곁에 머물렀고 (아기의 탄생에)남편보다도 더 감동하는> 의사다. 다른 의사가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고 해서> 찾아 온 불치병 환자에게 <병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항상 무언가는 할 수 있습니다>라며 환자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의사다.
주인공 삭스는 어느 날 의학 논문을 열람하다 불현 듯 <....논문 속에 열거된 병들 자체는 추상적 체계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걸 아주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실제로 사람은 의학 서적에서처럼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병을 가진 게 아니라 아픈 거고 고통을 받는 거고 몸이 말라 가고 구토를 하고 더는 잠을 못 자고 눈물짓고 그리고 죽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상적 체계화의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는 학문의 발전 과정은 환자의 고통과는 무관한 것이다. 기술과 학문의 발전에만 몰두하고 눈앞에 있는 환자의 아픔에 대해서는 불감증을 지닌 의사들은 결국 사형 집행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삭스가 불같은 언어로 쏟아 낸 현대 의료 전반에 대한 비판에는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한 의사의 소망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따듯한 비관주의와 소설 집필 의도
삭스는 인생을 고통과 동일한 것으로 바라본다. <삶은 구원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징벌을 위한 것도 아닌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살면서 받아들이는 감각들은 대개 불쾌한 것들이고 이러한 감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악화되다가 결국은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현실이다.>
극복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부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젊은 시절의 삭스를 비관주의자로 만든다. 그러다가 많은 환자를 겪고 삶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삭스는 인생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죽은 자들은 나에게 역설적인 한 가지, 견딜 수 없는,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덜 고통스럽다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는 건 타인의 몸, 사랑 받았던 그 사람의 몸 덕분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건 시간에 대항하여 무력해지는 일이며 그것을 의식하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건, 사랑이란 잠깐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삶의 모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오로지 그 잠깐뿐이라는 걸 아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건 내가 먼저 죽지 않으면 상대방이 죽어 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인생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인 관점에서 삭스의 헌신적인 환자 돌보기가 비롯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비관적인 자만이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맞닥뜨린 곳에서 비관적인 자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삭스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 보지 않은 의사들에 대해 분노한다. 환자들에게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삭스의 모습과 동료 의사들을 멩겔레(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반인류적인 의학 실험을 주도한 악명 높은 의사)에 비유하는 과격한 표현을 하는 삭스의 모습은 얼핏 분열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치열하게 인생의 의미를 실현하려는 한 인간에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작품 속에서 저자는 이 소설을 쓴 의도에 대해 <죽어가는 사람들과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 본 모든 아기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지켜 본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기록할 의무감에서 이 소설을 집필했다. <글을 쓰는 일은 기억에 대항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지 결코 기억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상실을 조절하는 일입니다.> 소박한 문학론에 불과해 보일까?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났을 때 이 소박한 문학론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한 어떠한 문학론보다도 더 감동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삭스의 노트 중에서
(본문 101장 [종이 위에] 중)
어느 날, 미숙아를 밤새 지켜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의무였다. 직원은 모자랐고 인턴들은 신생아의 소생을 위해 며칠 밤을 〈헌신해야〉만 했다. 나는 그럭저럭 살아남은 일곱 달 반 된, 새끼 새우 같은 아기의 방에서 밤새도록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모태에서 너무 일찍 떨어져 나온 아이는 끓는 물에 데친 인간 형상의 작은 바닷가재 같았다. 아기는 플라스틱 상자 속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코에 연결된 하나의 관은 폐의 분비물을 뿜어내었고, 또 다른 관은 뱃살에 구멍을 뚫어 영양 액체를 위로 직접 조달해 주었다. 관류 주입은 다리 하나에 고정되었고, 다른 관은 맨살의 두개골 꼭대기에 고정시켰다. 아기의 체중은 1.5킬로그램 내지 2킬로그램이었다. 플라스틱 관에 덮인 아기의 숨소리는 기계들 돌아가는 소리와 옆방에 입원한 유아들의 울음소리에 섞여 들릴락 말락 했다.아기 이름은 실뱅이었다. 나는 〈예쁜 이름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 작은 인간은 날 힘들게 했다. 사지는 상자의 네 구석에 밴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끔씩 아기는 고사리보다도 작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머리를 손 쪽으로 기울였고, 혀는 그 둘을 가르는 공간을 할짝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초인간적인 힘을 들여 몇 초 동안 손가락을 빠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두 눈은 크게 뜨고 있었다. 방의 불빛은 희미했고 벽은 어두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이 머리 바로 위의 벽에는 간접 조명이 밝혀져 있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밴드에서 풀어 주었다. 그건 금지된 일이었다. 혈관 주입 튜브를 떼어 낼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아이는 절대 그걸 건드리지 않았다. 단지 주먹을 빨아 대고 싶어했을 뿐이다.
난 아이가 울고, 빨아 대고, 숨쉬고, 빨아 대고, 할짝 대고, 한숨을 쉬고, 자고, 빨아 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는 9월 9일 생이었고 그때 날짜는 10월 13일이었다. 나는 병실이라기보다 청소 도구함을 닮은 방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졸음이 왔다. 코를 꼬집으며 잠을 깨보기도 했지만 간혹 아이가 자면서 울음을 터뜨리면 놀라 벌떡 일어나 아이가 아픈지, 꿈을 꾼 건지, 혹은 의사들이 말하듯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신경 미성숙〉 때문에 우는 건지 궁금해했다.
규칙적으로 설탕 수용액이 든 주사기를 전기 영양이 주입되는 관과 연결된 전기 펌프에 넣어 주어야 했다.
매시간마다 서혜부의 움푹한 곳을 만져 맥박을 재서 호흡 운동을 세어 보아야 했다.
4시간마다는 혈압과 체온을 재야 했다. 명령받은 일들을 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이 미숙아, 이 아이, 이 인간을 되도록 조금만 만지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난 장갑을 꼈고 상자의 구멍을 통해 손을 집어넣어 고무 장갑 낀 손끝으로 아기를 쓰다듬었다. 나는 플랙스글래스에 입을 대고 아이에게 말을 했고 이야기도 해주고 노래도 흥얼거려 주었다. 30분마다 허파에서 분비물을 뽑아 내야 했다. 흡입 기계를 작동시키고 깨끗한 요도관을 끼워 그것을 코에 밀어 넣어 뽑아 내야 한다. 그걸 할 때마다 아이는 새파래져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인정사정 없이 계속하라고 했다.
4시간마다 엉덩이에 항생 근육 주사를 놓아 주어야 했다. 맨 처음 주사를 놓을 때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더니 호흡을 멈추고는 한참 동안 고통으로 몸을 비틀었다. 나는 아이를 죽였는 줄 알았다. 난 몸이 굳은 채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요청하러 갈 엄두도 못 내고, 바보처럼 일을 처리해 아이를 죽음에 이끌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물론 나는 주사 바늘을 어디에 어떻게 꽂아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고 지시받은 대로 행했다. 〈하지만 그게 그토록 아이를 아프게 할 거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더 이상 주사를 놓지 않았고 주사약 병은 세면대에 쏟아 버렸다. 30분마다의 흡입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고 인큐베이터에 귀를 대고 듣다가 아이의 호흡이 갸르릉 거리기 시작하면 흡입을 시켰다. 아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치워야 할 때가 된 그 순간에 말이다. 새벽에 나는 장갑을 벗고 10분 동안 비누질을 해서 손을 닦고는 맨손을 아이 손 밑에 집어넣어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내 새끼손가락을 움켜쥐었고, 주먹으로 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쭉쭉 빨았다. 나는 상자에 기대서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침에 그곳을 나왔을 때, 우리 둘을 그 안에 집어넣은 채 그게 무얼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을 증오했다.
잠시라도 문틈에 머리를 들이밀어 볼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던 간호사들을 증오했다. 사형 집행인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떠맡긴 채 부르주아적인 근성을 즐기며 저녁을 먹고 시가를 피우러 떠나 버린 의사들을 증오했다. 아침 식사 시간에, 그건 형성이 잘못되어 고통받는 수많은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미성숙아일 뿐이라고 나한테 설명하던 그 인턴을 증오했다. 거기에 감정을 섞을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원칙에 충실하게 인큐베이터 안에 넣었지만, 잘못된 형성을 수술할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충분한 무게에 이를지는 전혀 확실하지 않다고, 설사 그렇더라도 아기의 뇌가 아주 많이 익어 버렸기 때문에 거듭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거라고, 토스트를 씹어 삼키며 말하던 그 인턴을 증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린 핏덩이의 부모들을 증오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게 내 자식이었더라면 난 밤낮을 아이 곁에 붙어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명령받은 대로 돌보지 않았던 내 탓으로 죽었는지도 모른다. 수술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소아과를 떠나면서 매일 그 아이를 보러 오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마침내 그 아이를 다시 보러 갈 용기가 생겼을 때는 병실이 비어 있었고 난 감히 그 애의 소식을 물어보지 못했다.
☞ 저자 소개
마르탱 뱅클레르
본명은 마크 자프랑. 유대 계 프랑스 인으로 1955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가 1962년에 다시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
수줍음 많던 사춘기 시절 소설을 습작하며 내면으로 몰입하던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대에 진학하여 1982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3년에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프랑스의 소도시 플레이에 일반의로 개업을 했다. 1998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저자의 의료 경험이 많은 부분 투영된 작품으로 환자와 이웃들과 겪는 애환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비평계와 대중들로부터 동시에 호평을 받으며 일약 그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6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미셸 드빌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영화는 시카고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 외에도 뱅클레르는 사회, 문화, 의료와 관련된 수많은 에세이를 발표하였고 니콜슨 베이커, 리처드 파워스, 패트릭 맥니, 데이비드 마크슨 등의 소설을 프랑스 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프랑스의 르 망에서 부인과 여덞 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고 파트타임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역자 윤정임은 연세대학교 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불문과에 출강 중이다. 역서로는 사르트르의 {방법의 탐구},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드니 랭동의 {소설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장 자크 상페의 {랑베르 씨}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어린이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