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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때가 그리워! 김정태(이우회) I. 음치가 엄악을 가리칠려고 했다! 적재적소는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씀’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자신의 가장 알맞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나도 나의 능력에 맞는 위치에서 살길 바라지 않았겠나? 잉태 순간 클로토는 나에게 모든 숫컷이 갈망하는 소세양의 간특함에 니콜라이의 방탕기 까지 덤으로 안겼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가친을 데려가 버렸고 세상에 나온지 10년도 채우지 않고 자친마저 딴 곳으로 유배시켰다. 그 순간 나는 일꾼이 되었다. 도가의 일꾼으로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던 나는 술 배달 갔다 오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만난 떠돌이 영감의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걸 하면서 살아갈게다’라는 넋두리에 그만 나의 위치를 깜박하고 라케시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중학교를 건너 뛰어 상고에 입학했다. 그기서 ‘나는 모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는 엉뚱한 망상에 빠졌다. 화가 난 클로토의 성화에 라케시스가 날 흡입 기관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반년여 혜민국에 감금시켜 발성기관도 함께 뭉게 버렸다. 내가 교대에 가도록 해 놓고도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 자격이 보장되고, 학비 면제라는 천상낙원이 갑자기 나타나 교대 진학이라는 횡재를 얻어 생아와 함께 인생의 탄탄대로로 비상했다! 교대는 나의 삶이었다. 신들도 아마 광대놀이 구경을 무척 좋아하는가 보다. 완전 음치가 이쁜 여학생들로 가득한 교대에 등장했다. 라케시스가 불안 했는지? 아니 시샘이었다고 나는 단정한다. 우리 교대 여학생들은 모두 ‘오드리 헵번’이었으니 말이다! 날 다시 제생원으로 불러드려 6개월 여 배연기관을 들쑤시다 그것도 못미더워 배기가스 분리 기관 하나를 떼가 버렸다. 인간은 더욱 불완전한 요소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렇기에 긍정적 변화와 희망의 가능성도 무척 높은가 보다. 그래도, 세상살이란 신들이 거어 논 트랙만 따라 도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II. 초등학교 교사 내 일생의 희극은 그 때 이미 예견되었다. 우린 경남 진양의 오미란 벽지 학교로 교생실습을 같다. 내가 대 수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제생원에 누워있을 때 교생 실습은 나가야 된다고, 해야 교사로 발령이 날 수 있다고, 그래서 한사코 실습을 가자고 하던 생아 그리고 청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와 함께 교생실습 하면서 귀찮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던 호야, 자야 셋과 복이 모두 고맙기만 하다. 문제는 한번은 수업을 공개해야 한다는 거였다, 남들은 모두 혼자 하는 공개수업을 나는 심술궂은 라케시스 여신이 뽑아준 2학년 음악 시간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을 ~ 정말 나에게는 미치고 팔짝뛸 배정이었다! 연출 생아 각색 청이 조연 호야 반주 자야 그리고 허수아비처럼 헌들헌들하는 나를 지도 교사가 어떻게 보았겠는가? 70여년 무척 노력도 해 보았다. 해도 지금도 자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하나도 없다. 한창 사람들과 어울려야했던 40대 때 였던가? 내자가 하도 성화를 부려 겨울 방학 때 작심하고 ‘문패도 번지수도 ~’를 그녀의 지도 아래 아침 먹고 한번 점심 먹고 한번 저녁 먹고 또 한 번 하루 세 번 새로 장만한 전축을 따라 연습했다. 다음 3월 교사들의 회식 자리 ~ 아예 나에게는 노래를 주문하지도 않던 때라 옆자리 교사의 허벅지를 자청하여 쿡 질렀다. ‘야! 김 선생 노래한단다!’ 와!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 있게 일어섰다. 그런데 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처음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제목 아니 가사 한 소절이라도 말해 보란다. 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아 결국 한 달이나 연습했던 노래도 하지 못한 내가 진짜 음치인지 그게 지금도 궁금하다. 실습도 마치지 못하고 수술 자리가 동이나 중도에 부산으로 가야했다. 해서 버스가 아침 08시경 지나가면 그 차가 전라도 구석구석을 돌다 오후 5시경 내려가면 그만인 경남에서 제일벽지 함양 봉전이란 곳에 야윈 모습으로 교사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음치보다 더한 내가 전 과목을 가르쳐야하는 초등학교 교사로 6년간이나 제직했던 일을 누구에게 사죄해야 할지? 해서인지 6년 동안에 3개교로 전전했다. 그것도 밀려서 ~ 그런데 이상하다 옮긴 순서는 벽지 특급지 초특급지로! 라케시스 노파도 자주 깜박 깜박하는가 보다! 다담풍 다담풍 다담풍 하면서 악을 바락 바락 써대는 선생 앞에서 희안하게도 바람풍이라고 새겨 따라하는 진풍경을 맨 날 보아야 했을 옆 교실 선생님들은 얼마나 신기하게들 생각하고 있었을까? III. 교대 친구들 초등학교 교사생활 6년 3개교를 전전하는 동안 인생살이의 미묘함을 느꼈다.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도 결국은 여자라는 것도 함께! 해서 남의 눈에 비칠 내 모습에 대한 관심 줄을 묶어 버렸다. 졸업 4년째 상윤형을 만났다. 앞으로 학문을 할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수속을 다해 두고 야간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하라고 했다. 영문과에서 석이와 종웅형도 만났다. 석이와 한 달간 한적한 절간에서 The summing up (by W. Somerset Maugham)을 원서로 사전 들추면서 석이의 도움을 받아 읽은 것이 내가 영어를 한 전부였던 것 같다. 나는 대학원에서 교육학 또는 교육행정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 6년 동안에 3개교를 거치면서 오지-특지-특급지 학교를 두루 경험하고, 동료 교사 연수에 강사로 초빙되어 강의한 것이 나의 태생의 오만기를 다시 발동시켜 또 다른 희극을 준비하게 됐다. 괘도 이탈 죄로 받았던 집행유예 기간도 끝나고 제생원에서 자기들 멋대로 배연기관을 들쑤셔 놓고도 그 비용을 나에게 쉬워 6년간이나 갚아야 했다. 자! 이제 빚도 형기도 끝났다! 혼자다! 맘대로 해도 된다! 퇴직금으로 받은 30만원 정도 인가? 그건 얼마 안가 바닥이 나고, 가정교사 자리는 예상한데로 전혀 구하지 못했다. 한 많던 근로자 시절 차대 아니 적재적소를 몰라 라케시스 할멈에게 때도 쓰지 못하고 할멈의 손놀림에 얽혀 얼마나 허벅됐던가? 신장을 하나 떼어 주어도 보고, 평양 기생도 보지 못한 주제에 수시 때때로 반 넘게 치아를 헌납하기도 하고, 결국 밥통도 거의 다 잘라 주고 얻은 지금의 백수 아니 무관도인의 경지에 이르니 참 좋다. 우리 대학 TNT, 한양학당, 문경골프 모임에다 틈만 나면 꼭 가는 5.10 모임 유람은 언제나 즐겁다. 규야가 구워논 삼겹살에 병아가 챙겨온 인삼주 반주 한잔 걸치고 형아가 건어물 양념 듬뿍 넣고 끓인 비지찌개에다 기야가 한 찰진 밥 한술하면 이게 무릉도원이지 세상에 더 바랄게 무엇인고!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는 아내를 모두들 고마워한다. 해서 우리 5.10 클럽의 건배사는 <內子之德> 언제나 묶은지와 담금주를 잘 챙겨주는 병아 아내의 덕을 본받자고 병아가 <內> 를 크게 선창하면 우리는 모두 <子之德>이라고 합창한다. 건배사를 선창하는 병아가 부러워 나도 선창하고 싶은데 시켜주질 않는다! 해서 다음 우리 가족모임엔 가족건배사로 할애비인 내가 <內子之>라고 크게 선창하고 손자 손녀 모두 <德>이라 합창하게 한다면 나밖에 모르는 착하디착한 나의 사랑스런 <內子>가 얼마나 뿌듯해 할꼬? 착각도 가지가지 뿌듯해 할 거라고? 아니다. 진짜다! 오히려! 긴긴 겨울방학 한 달 내내 그것도 하루 세 번씩이나 노래 한곡 연습하고도 친구들 앞에서 부르지 못했는데, 손자들 앞에서 선창할려면 연습해야 된다고 같이 연습하잔다! 내가<內子之> 라고 선창하고 마누라가<德>이라 따라 한다! <內子之> <德> <內子之> <德> <內子之> <德> <內子之> <德> <內子之> <德> .... ... 겨울 밤은 점점 깊어만 가는 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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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경 2회의 상징이 석천, 금천, 천자 돌림이네요.
그렇지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중학교를 건너 뛰고도 교대 까지 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요.
조실부모, 또는 조실모, 조실부 동문들도 더러 있지요.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이겨냈습니다.
벽지,특급지, 초특급지로 이동하면서 경험한 초임교사의 경륜들이 지금은 오히려 그립지 않습니까?
교사생활 6년 만에 세 학교나 거치고,또 퇴직하고..평범하게 교사생활을 이어온 저희들과는 너무 차이가 있네요.
퇴직후에는 어떤 길을 걸어 오셨는지도 궁금하고....사모님의 덕 ! ㅋㅋㅋ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식당에서 한 목소리로 "內子之!" 라고 큰 소리로 외쳐대면 옆 자리에 앉은 아낙네들이 혼비백산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재미 있습니다...
석천님, 운영 책임을 맡아 수고 많습니다. 우정이 돈독하고 참나무 장작같은 정신무장한 동창들이 많다고,들었습니다. 사례 1.
신무용(전 해운대교육장) 제 죽마고우, 초, 중 동기생, 陸士 지원 때문에 한 해 늦지만, 큰 兄 상용,부산시내 중등 여러 학교 교장, 도용 형은 공무원,
3형제의 족적이 대단하지요. 2회 윤한중, 김 용 記者 주소, 전화 아시면 연락 부탁해요. '실버타임즈 논설위원으로 신문을 발송하면 申교육장이 큰형님께 꼭 보여준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1.2회는 허허벌판 한새벌에서 꿈과 이상을 폈던, 잊을 수 없는 마음들이 뭉치면 얼마나 좋은 일이며, 노후에 동창, 또는 벗과 국내여행 갔으면 합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석천님을 무척 사랑하고 계신듯 합니다. 그렇게 시련을 주면서 이 다음에 더 큰 사람이 되라고 좋은 친구분들을 많이 보내주셨네요.세상을 살아가는 고달픔이 지나고 나면 훌쩍 커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용기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다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보다 아프면서 치료하면서 면역을 키워가는 사람이 더 실속형 아닙니까? 아무튼 남자의 재산 1호 (좋은 아내)는 따 놓은 단상이고 건강 잘 돌보시며 즐거운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누님 그리고 형님 귀엽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용 051-865-8323 010-6550-0324
윤한중 055-243-2879 010-9014-3599
신무용 010-3576-6563 mys6563@hanmail.net
신선생은 나처럼 방랑벽이 있어 잘 돌아 다닙니다.
최근 통화에서는 강원도 동해에 있다고 소식 전해 왔습니다.
우리 교2 친구들 모두 참 좋습니다!
간혹 삼천포로 빠진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해온 일이 같고 또 생각이 비슷해서 잘도 돌아다닙니다.
24일 서울 친구들 20여명 만나서 수다 떨고,
다음 27일부터는 부산 경남 합쳐 교2친구들로 구성된 좀 별난 510 팀이
러시아 횡단열차 타고 유람하다 7월 10일경 돌아올 예정입니다.
갔다와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