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는 술병을 피해 달아나던 윤선의 발목이 접질렸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무릎이 꺾어져 진흙 속에 처박혔다.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무릎이 까지진 않았지만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다. 온몸에 진흙을 묻힌 윤선을 향해 해피가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화가 난 윤선은 해피를 걷어차며 짜증을 부렸다. 해피가 깨갱대자 사육장 안에 들어 있던 개들도 덩달아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지가 멀쩡하면 나도 이러고 다니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이런다. 하여튼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저런 걸 보고 병신이 꼴값한다고 하는 거라니까.
윤선은 손에 묻은 진흙을 씻어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윤선이 어제 잔반을 얻으러 나갔다 외박을 하는 바람에 남편은 밤새 술을 퍼마셨다. 아들 준이가 학교에 가고도 한나절이 지나 들어온 윤선을 향해 남편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술병을 던져댔다. 그래도 용케 술병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거나 하지 않았다. 윤선은 술병 피하는 재주가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외박할 생각은 없었다. 안골 여자가 얻어 가던 잔반을 윤선에게 주면서 참숯불갈비집 사장이 지분거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반년이나 되었다. 그 집 종업원들 사이에 사장은 황소개구리라고 불렸다. 얼굴 좀 반반하다는 여자는 오사장 손이 닿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오사장은 윤선에게 도움이 될 성싶지 않았다. 그까짓 잔반은 참숯불갈비집에서 못 얻으면 다른 곳에서 얻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땅주인 영감이 집세를 올려 달라고 채근했을 때 윤선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참숯불갈비집 오사장밖에 없었다.
오사장이 윤선의 허리춤에 슬쩍 손을 댔을 때 그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돈을 해 준다고 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백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 돈이 없으면 당장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라고 하자 오사장은 순순히 지갑을 열어 수표 한장을 윤선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윤선이 머리에 술병을 맞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방문 밖으로 뛰어나와 다시 병을 던졌다. 이미 그의 눈빛에 감돌던 살기는 죽었고, 이렇게 끝내기 민망하니 한번 더 소란을 피우는 기색이 엿보였다. 윤선은 읍내 사는 친구가 아파서 차마 놔둘 수가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윤선의 목소리가 커진 만큼 남편의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남편은 니 말을 믿느니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을 믿겠다고 웅얼거리며 방으로 되돌아갔다. 윤선은 어제 받아 놓고 오늘에야 가지고 들어온 잔반을 끓이기 위해 서둘러 가마솥이 있는 뒤란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얻어 온 잔반에는 이쑤시개며 냅킨, 담배꽁초 등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 냅킨 따위는 상관없지만 이쑤시개를 꺼내지 않으면 나중에 애먼 개를 잡는다. 한말짜리 통에 들어 있는 잔반에 고무장갑 낀 손을 집어넣어 휘저었다. 이 통은 갈비집 잔반이 아니라 자장면집 잔반이라 춘장의 짠 내와 매운 짬뽕 냄새가 뒤섞여 난다. 이쑤시개보다는 부러진 나무젓가락이 먼저 나온다. 면발이 고무장갑 소매부분까지 너덜너덜하게 붙었다. 윤선은 팔을 들어 해피에게 내밀었다. 좀 전에 걷어차인 기억 때문인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 말고 코를 킁킁거리며 대들었다. 해피의 작은 혀는 소매의 얼룩까지 남김없이 핥았다.
참숯불갈비집 잔반은 세통이나 된다. 이 집에서 잔반을 얻어 오면서 개들이 훨씬 조용해졌다. 배가 부르니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던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잔반통에서는 소주병 뚜껑 세개와 이쑤시개 십여개, 그리고 일회용 물수건 봉지 몇개를 꺼냈다. 가마솥 위로 한말들이 통을 들어 올릴 때마다 윤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좀 전에 접질린 발목이 힘을 쓰지 못하자 허리가 휘청거렸다. 균형을 잃는 바람에 잔반 국물이 얼굴로 튀었다. 밥알이 윤선의 눈썹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무심코 입술을 핥자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가마솥 밑으로 장작 몇개를 집어넣었다. 재가 날려 눈이 시큰거린다. 준이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도망치듯 학교에 갔을 것이다. 신문지 뭉치에 불을 붙여 나무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날 평소대로 윤선이 혼자 왔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윤선은 따듯한 불기운에 몸이 녹자 부질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버스에서 잠든 준이를 추스르기 어려워 남편 보고 데리러 나오라고 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어둑어둑한 길 가장자리에 서 있던 남편은 뺑소니차에 치여 논바닥으로 굴렀다.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에야 뺑소니차가 트럭이었다는 사실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불두덩이 뼈가 으스러지고 요도가 파열되었다. 세번에 걸친 수술로 파열된 요도는 복구되었지만 그가 더는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잦은 수술로 요도 괄약근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무의식중에 바지를 적신다. 당시에 남편이나 윤선은 발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여력이 없었다. 후에 상황을 깨달은 남편은 치료 대신 술을 선택했다. 밥을 챙겨 주기 위해 들어가 보니 남편이 방바닥에 고꾸라져 잠이 들어 있었다. 윤선이 베개를 받쳐 주기 위해 남편의 머리를 들었다. 잠결인 남편은 무의식중에 윤선의 손을 뿌리치며 중얼거렸다. 갈보 같은 년, 너 때문이잖아.
검둥이는 윤선이 종견으로 쓰는 수캐다. 오십근이 넘게 나가는 도사견은 검은 털이 반지르르하게 흐른다. 어깨가 다부지게 벌어져 있고, 살집이 좋아 단단하게 생겼다. 윤선은 검둥이를 종견으로 쓰기 위해 강아지 때부터 손을 태우며 길렀다. 암캐 다루는 솜씨가 여간 노련한 것이 아니어서 검둥이를 본 개장수들은 입맛을 다시며 탐을 낸다. 아무리 사나운 암캐라도 검둥이 앞에서는 얌전하게 꽁무니를 들여댄다. 개장수 최씨는 그런 검둥이를 볼 때마다 한가락 하던 놈이 개로 태어난 모양이라고 감탄했다.
암캐는 개장문을 열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윤선이 막대기로 피가 말라붙은 엉덩이를 한번 치자 그제야 송곳니를 감췄다. 윤선의 손에 이끌려 검둥이가 있는 교배장 앞까지 따라오긴 했지만 막상 들여놓으려 하자 네다리에 빳빳하게 힘을 준다. 윤선이 목줄에 힘을 주고 잡아당겼다. 목이 늘어난 암캐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검둥이는 암캐를 무시한다. 암캐가 잔뜩 경계를 하며 짖어대도 검둥이는 귀찮은 듯 흘깃 쳐다볼 뿐이다. 암캐가 경계를 풀 때까지 검둥이는 느리게 움직인다. 서두르지 않는 검둥이의 행동은 마치 암캐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모두 안다는 듯한 자세다. 암캐는 몸을 바닥에 바싹 붙인 채 검둥이를 노려본다. 하지만 곧 미동도 하지 않는 검둥이의 태도에 지루해졌는지 긴 하품을 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검둥이는 암캐의 꽁무니 쪽에 코를 대며 킁킁거린다. 대부분의 암캐는 이쯤 되면 검둥이를 받아 주는데 이 녀석은 가르릉 소리를 내며 몸을 피한다. 검둥이는 좀더 적극적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공략했다. 암캐가 몸을 사리자 검둥이는 대뜸 엉뚱한 사육장을 향해 짖어댄다. 마치 어떤 녀석이 자기를 방해라도 한 듯 신경질을 부린다. 둘 사이에 무슨 교감이 있었는지 암캐의 몸짓이 좀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틈을 보일 것 같지 않던 암캐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검둥이 쪽으로 돌렸다. 그 모양새가 제법 교태를 부리는 듯 싶었다. 윤선은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홑치마 하나만 입고 나와 있었다. 치마 사이로 이른 봄바람이 맨다리를 휘어 감았다. 한기를 느낀 윤선은 양지쪽에 놓인 평상에 팔짱을 낀 채 앉았다. 바람에 치마가 들추어지자 소름 돋은 허벅지가 드러났다. 윤선은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르며 치마를 내렸다. 손은 허벅지의 감촉에 무심했지만 허벅지는 자신의 손에 반응하듯 움찔했다. 어느새 검둥이는 암캐의 등에 올라탔다. 빳빳한 털을 뚫고 드러난 검둥이의 벌건 그것이 암캐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어린 암컷은 검둥이의 물건이 들어가자 앙살을 떨기 시작했다.
윤선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조금씩 벌렸다. 홑치마 고무줄을 들추고 내려간 손이 마치 남의 몸을 탐하듯 가랑이 사이를 천천히 훑어 내린다. 이미 축축이 젖어 있던 아랫도리는 윤선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윤선은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검둥이는 자신의 것이 암캐에게 깊숙이 꽂힌 것을 확인하자 몸을 돌려 엉덩이를 마주했다. 흘레붙은 두 마리의 개는 애초부터 하나였던 샴쌍둥이처럼 자연스럽게 보인다. 윤선이 몇번의 진저리를 친 끝에 손가락 하나를 깊숙이 밀어 넣은 순간 검둥이의 천연스러운 눈과 마주쳤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며 풍기는 흙내에 개 비린내가 섞여 윤선의 코를 자극했다.
밥을 하고 있던 윤선은 준이의 속삭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엄마, 아빠가 또 엄마 지갑을 뒤져. 술 마시러 나가려고 하나 봐.”
윤선이 친구에게 꾸었다며 백만원을 만들어 오고 나서 남편은 민망한지 며칠 자제하는 기색이었다.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그의 몸은 더욱 무기력했다.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며 몸을 긁어대고 공연한 일에도 언성을 높였다.
“뭐 하는 짓이야, 당신?”
윤선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남편은 화들짝 놀라 지갑을 떨어뜨린다.
“읍내 좀 다녀오려는데 차비는 있어야지.”
“그럼 나한테 달라고 하지. 읍내는 무슨 일로?”
대답이 궁해진 남편은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걷어차며 언성을 높였다.
“야, 내가 읍내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지 니년이 뭔데 꼬치꼬치 캐물어. 술 마시러 간다. 왜?”
“당신 또 왜 이래?”
“관둬라, 관둬.”
남편은 짜증이 나 미치겠다는 듯 자신의 머릿속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마구 문질렀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으면 무어라도 다 부숴 버리고 싶은 모양이다. 남편은 시선을 일정한 곳에 고정하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린다.
윤선은 검둥이를 끌고 나가면서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다.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결코 무시할 수도 없는 불안감이었다. 개장수 최씨 비위를 건드려 놓았다가는 개를 아무리 잘 키워도 팔아먹기 힘들다. 더군다나 최씨가 처음 하는 부탁인데 거절할 뚜렷한 명분도 없었다. 흘레붙이려면 암캐를 움직이는 법이다. 윤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둥이의 목줄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산 아래까지 한참을 따라 나오던 해피가 윤선의 으름장에 되돌아섰다. 해피는 몇번이고 뒤돌아보며 아쉬운 듯 산길을 올라갔다.
윤선은 최씨 마누라에게 머리채를 잡혀 본 경험이 있는지라 문 앞에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작년 여름이었다. 의심 많은 최씨 마누라는 윤선이 자기 남편에게 꼬리를 친다며 다짜고짜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개장수라기보다는 개도둑이 더 어울리게 인상이 험악한 최씨는 한줌밖에 되지 않을 자기 마누라한테 꼼짝을 못하는 위인이다. 슬쩍슬쩍 윤선의 엉덩이 만지기를 밥 먹듯이 해 온 주제에 머리채를 잡힌 윤선을 외면했다.
“어서 와요, 준이 엄마. 우리 아저씨는 바쁘다고 나갔어. 저기 구석에 있는 놈 있지, 그놈한테 넣어 주면 돼.”
최씨 마누라는 평소 같지 않게 싹싹하게 굴었다. 잔뜩 경계를 하던 검둥이는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순해졌다. 도리어 빨리 암컷에게 가고 싶은지 윤선이 제어하기 어려운 속도로 내달렸다. 최씨 마누라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윤선은 검둥이만 넣어 놓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씨 마누라는 음료수를 내놓으며 연거푸 기다리라는 소리를 했다.
“삼일 정도 놔뒀다 데려가면 되거든요. 내일모레 찾으러 올게요.”
“아냐, 아냐, 벌써 붙었잖아. 검둥이 쟤가 그렇게 씨가 좋다며, 우리 아저씨가 한번 붙이고 그냥 보내래. 데려오라는 것도 미안한데 삼일씩 데리고 있으면 안되지.”
발정 난 암캐가 있는 집에서 검둥이를 데리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갈 때는 무리 없이 말을 듣던 검둥이가 최씨의 집을 떠나려 하자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암캐의 발정이 끝날 때나 되어야 할 일인데 최씨 마누라 꿍꿍이를 알 수 없었다.
언덕길은 비릿한 흙내를 풍기며 질척거렸다. 이만큼 올라오면 벌써 컹컹거리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인데 어쩐지 오늘은 조용했다. 윤선은 질퍽거리는 흙이 신발 속으로 밀려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걸음을 서둘렀다.
“엄마! 해피가, 해피가….”
집에 들어간 윤선은 마당 한가운데서 울고 있는 준이와 맞부딪쳤다. 윤선은 우는 준이를 달랠 사이도 없이 사육장 쪽으로 뛰어갔다. 개장이란 개장은 모두 열려 있고 한마리의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물며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해피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항상 개 짖는 소리, 개밥그릇 굴리는 소리가 섞여 소란스럽던 마당은 한폭의 정물화처럼 모든 것이 멈추어 있었다. 놀란 윤선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준이의 어깨를 잡고 고함을 쳤다.
“준이야, 어떻게 된 거야. 개 다 어디 갔어? 해피는?”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뭐?”
“아빠가 어떤 아저씨들 데리고 와서 다 싣고 가 버렸어. 해피는 안된다고 내가 울었는데 아빠가 본 척도 안하고 해피까지. 해피는 내 갠데.”
울음 끝이 긴 준이는 계속해서 아빠를 연발하며 흐느꼈다. 윤선은 급하게 검둥이를 개장 안에 밀어 넣고 허겁지겁 산을 내려갔다. 개를 키워 준이를 학원 보냈고, 세식구 먹고살았다. 최씨를 찾아야 할지, 남편을 찾아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윤선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윤선은 가파른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갔다. 걸음을 멈추기 위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었지만 목적지도 모르는 다리는 제멋대로 내달렸다. 첩 죽은 귀신이라서 옷깃으로 파고든다는 꽃샘바람이 목덜미로 스며들었다.
숨이 턱에 차서 멈춘 윤선은 씨근덕거리며 최씨의 건강원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윤선은 다짜고짜 최씨의 멱살을 움켜쥐고 악을 썼다.
“네놈 짓이지?”
놀란 최씨 마누라가 윤선을 떼어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최씨 마누라가 손을 대기 전에 벌써 최씨의 넓적한 손바닥이 윤선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윤선은 순간 고막이 터지는 것만 같은 울림에 몸을 비틀거렸다.
“당신 남편이 나한테 팔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거든. 그 개 주인이 팔아 달라고 통사정해서 팔아 준 건데 내가 뭘 잘못했나? 더구나 나는 끼지도 않고 소개만 시켜 줬거든. 뭘 알고 지랄을 해야지. 니 서방이나 찾아봐, 이 여편네야. 엉뚱한 데 와서 화풀이하지 말고.”
“니가 꼬드겼지. 술 먹고 싶어 환장한 사람 꼬드겨서 헐값에 사 버렸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웃기고 있네. 이게 정말 아직 덜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나. 그렇게 억울하면 어디 법적으로 해결해 보시지.”
“하라면 내가 못할 줄 아니. 두고 봐! 나쁜 새끼. 어디 두고 봐!”
윤선은 최씨를 향해 힘껏 침을 뱉었다. 혀를 깨물었는지 침에는 피가 섞여 있다.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내던 최씨가 다시 손을 들어 올렸지만 마누라의 제지에 팔을 내렸다.
윤선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한짝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신발을 꿰어 신고 비척비척 길을 나섰다. 뺨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부어올랐다.
읍내 술집이란 술집은 다 뒤졌지만 남편을 찾을 수 없었다. 개 판 돈을 술값으로 모두 탕진해 버리기 전에는 윤선에게 들키지 않을 요량으로 꼭꼭 숨어 버린 모양이었다. 결국 그를 찾아낸 것은 윤선이 아닌 119구조대였다. 연락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서 마주친 남편은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고, 앞니마저 부러진 몰골이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 윤선이 두리번거리자 남편은 히죽 웃었다.
“어이, 준이 엄마, 잘 있었는가?”
만취한 채 신축건물 공사장 웅덩이에 빠져 있던 것을 인부들이 신고했다고 했다.
“죽지, 거기 빠져서 죽어 버리지 나를 무슨 면목으로 보려고 살았니?”
윤선의 거친 대답에 남편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준이 엄마, 너무 그러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한번만 봐줘라. 이제 정말 다시는 술 안 마실게.”
“개값은 다 쓴 거야?”
“최가 그 새끼가 별로 주지도 않았어. 며칠 되니까 다 떨어지데.”
남편은 안 되겠는지 다른 사람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계속 이어지는 남편의 사죄에 환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윤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외면한 채 병실을 빠져나갔다.
의사는 남편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요도에 관을 끼우고 소변주머니를 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요도에 소변관을 끼우고 있는 형편인데 빼고 나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괄약근 수술을 권했다. 의사의 말은 간단했지만 사무장의 말은 길었다. 행려병자 같은 남편의 몰골 때문인지 사무장은 병원비 정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선이 나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법적 책임을 운운하며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일관했다.
윤선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보신탕집 여자는 그나마 윤선을 도와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검둥이를 잡아 오면 자기네 고기를 대 주는 집보다 값을 조금 더 쳐주겠다고 했다. 여자도 윤선의 딱한 처지를 그냥 볼 수 없어 일부러 윤선을 불러서 해 준 말이었다. 개는 잡지 않고 넘기기만 했다. 가끔 개를 잡을 일이 생겨도 최씨가 도와주었다. 하지만 지금 검둥이를 잡는다면 오롯이 윤선 혼자 해야 할 것이다. 최씨는 전기충격기나 근육이완제를 이용해 개를 잡았다. 윤선은 최씨가 전에 주고 간 근육이완제 병을 찾아 들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혼자 남은 검둥이는 윤선을 제 소유물로 여기는 듯했다. 개들이 사라진 사육장에서 긴 하품을 하며 게으르게 누워 있다가도 윤선만 나타나면 물건을 벌겋게 세웠다. 수컷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윤선은 그런 검둥이를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검둥이를 보신탕집에 넘기면 그 돈으로 강아지를 열마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검둥이의 목에는 지난번에 최씨에게 데리고 갈 때 사용했던 목줄이 아직 달려 있다. 윤선은 검둥이에게 긴장한 기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행동을 느리게 했다. 검둥이를 살살 어르며 철망 사이로 목줄을 잡아 뺐다. 곧이어 검둥이가 경계하지 않는 틈을 타 힘껏 목줄을 잡아당겼다. 갑작스럽게 끌려 나온 개의 입이 철망 사이에 삐죽이 튀어나왔다. 놀란 검둥이가 뒤로 빠져나가기 위해 목을 틀어 힘을 주었다. 목줄을 바투 잡고 손에 단단히 힘을 주었지만 윤선의 발은 개장 앞으로 질질 끌려갔다. 종견으로 쓰던 수캐의 힘은 완강해서 윤선의 팔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윤선은 서너번 개에게 끌려갔다 다시 잡아당기기를 반복한 끝에 철망 밖에다 목줄을 맬 수 있었다. 철망에 얼굴이 낀 검둥이는 끙끙거리며 앞발에 힘을 줬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숨을 돌린 윤선은 주사기를 꺼내 약을 뽑아 들었다. 근육이완제는 개를 고통 없이 잠재워 줄 것이다. 개장문을 열자 위기감을 느낀 검둥이가 다시 한번 몸을 비틀어댔다. 윤선은 겁에 질린 검둥이의 눈을 외면하며 재빨리 엉덩이에 주사기를 꽂고 피스톤을 밀어 넣었다. 검둥이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윤선은 주사기 피스톤을 밀기만 하고 잡아 뽑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윤선은 죽은 개를 질질 끌고 수돗가로 갔다. 철망 위에 올려놓고 가스 토치(불대)에 불을 붙이는 윤선의 행동에서는 이제 자신감마저 보인다. 가스 토치의 붉은 화염이 검둥이의 몸에 닿자 털이 지글거리며 타올랐다. 누런 연기가 피어오르고 매캐한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가스 토치의 불꽃이 네다리 쭉 뻗고 누운 개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털이 사라진 시커먼 몸뚱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뻣뻣하게 굳어 버린 검둥이의 뒷다리 사이로 오그라들어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수컷의 상징이 보였다. 저것이 한때 검둥이를 오만하게 만든 근원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벼려 놓은 쇠칼로 검둥이의 배를 가르자 잡식 동물의 내장에서 풍기는 구린내가 역겹다. 윤선은 칼을 놓고 돌아서서 헛구역질을 했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내장은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었다. 고무물통 하나를 가득 채운 내장을 칼로 끊자 내장 속을 채우고 있던 기생충들이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심장 속을 실몽당이처럼 채웠던 사상충과 창자 속에 엉겨 붙어 있던 회충들이 더는 숙주가 되지 못할 몸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윤선은 기생충과 내장이 가득 든 고무물통 안으로 굵은 소금을 뿌리며 어깨가 움찔거릴 정도로 진저리를 쳤다.
검둥이를 팔아 산 강아지들은 젖살이 통통하게 올라 아주 튼실해 보였다. 윤기가 도는 갈색 털을 가진 강아지들은 저희끼리 깨물고 앙알거리며 장난을 쳤다. 윤선이 손가락을 들이밀면 분홍빛 혀를 내밀어 핥아댔다. 도둑맞은 해피 때문에 마음을 다쳤던 준이도 강아지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는 환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가 링거 바늘을 뽑아 버리고 무단으로 나가 버렸으니 빨리 병원비를 정산하라는 요구였다.
아빠가 병원을 나갔다는 소리에 준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질경이가 무더기로 피어오르기 시작한 비탈길을 오르던 모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윤선을 잡았던 준이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산 위에서는 강아지가 깨갱거리는 소리와 개밥그릇이 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 윤선은 준이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모자는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준이는 터덜터덜 아랫동네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씨발년아, 나 없는 동안 몇놈이나 따먹었냐? 서방 없으니까 아주 살판났지. 내가 아무리 죽일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환자복 윗도리에 바지만 갈아입은 남편의 모습은 병원에서 볼 때보다 더 나빠 보였다. 병원에서 마시지 못한 술을 한꺼번에 마셔댄 것이 틀림없었다. 앞자락은 술인지 오줌인지 구분되지 않게 젖어 있었고, 맨발로 산에 올라왔는지 발이 진흙투성이였다. 그 꼴로 어떻게 집이라고 찾아왔는지 신통할 지경이었다. 윤선은 그의 욕설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너 이제 아주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 어디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보자. 너, 개새끼가 나보다 더 귀하지. 니가 귀여워하는 개새끼들 내가 확 다 밟아 버릴 거야.”
어떻게든 윤선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애를 쓰던 남편이 강아지 한마리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한손으로 소주를 입에 들이붓더니 금방이라도 강아지를 패대기칠 기세였다.
“강아지 어서 내려놓지 못해!”
보다 못한 윤선이 입을 열자 남편은 그럼 그렇지 싶은 얼굴로 웃음을 짓는다.
“오호라, 드디어 서방이 들어왔는지 보이는 모양이구나. 우리 마누라 이게 얼마 만이야.”
윤선이 강아지를 잡아채려 하자 남편은 비틀거리며 몸을 피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흔들렸지만 용케 강아지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리 와라. 강아지 먼저 밟아 버리고 그 다음엔 네년을 밟아 버릴 거야. 서방을 그렇게 내팽개쳐 놓고 저 혼자 희희낙락 돌아쳐. 이 죽일년.”
윤선은 강아지를 허공에 흔들며 히죽거리는 남편을 노려보았다. 남편의 펄럭이는 환자복 자락 너머로 수돗가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쇠칼이 보였다. 남편의 계속되는 욕설을 뒤로한 채 윤선은 성큼성큼 수돗가로 다가가 쇠칼을 집어 들었다.
“너 이게 무슨 칼인 줄 아니? 이 칼이 내가 검둥이 배를 가른 칼이거든. 내 손으로 직접 검둥이 배를 갈랐어.”
윤선이 칼을 집어 들고 나서자 설쳐대던 남편이 당황한 듯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내가 오십근이 넘는 검둥이 배도 갈랐는데 니 새끼 목은 못 딸 것 같니? 너 매일 죽고 싶다고 그랬지. 나 고생 그만 시키게 죽어 준다고 그랬지. 그래, 너 오늘 내가 죽여 줄게. 우리 이제는 그만 살자.”
윤선의 눈에서는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것처럼 불꽃이 일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차가웠다. 그 기운에 눌린 남편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치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남편의 목 위로 윤선이 재빠르게 쇠칼을 들이밀었다.
“한번만 더 이따위 짓 해 봐. 그때는 내가 정말로 검둥이 따라가게 해 줄 거야.”
남편은 넘어지면서 정신을 잃은 척 눈을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얼추 중개 크기로 자란 강아지들은 이제 사육장 한칸씩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들여놓은 개들이 이십여마리로 늘어나 산비탈 준이네 집은 예전의 시끄러운 모습을 되찾았다. 윤선은 잔반 끓인 죽을 개장마다 한그릇씩 퍼 담으며 개장 끄트머리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흘끔거렸다.
아까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개들보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윤선은 부엌에 들어가 양푼에 밥을 비볐다. 컨테이너 박스 창문을 두드리자 남편이 얼굴을 내민다.
“자, 먹어. 밥 안 굶길 테니 두드리지 마. 개들도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야단이야.”
헤벌쭉 입이 벌어진 남편이 밥그릇을 안아 들며 성급하게 숟가락질을 한다. 컨테이너 안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했다. 윤선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산벚꽃이 지느라 개장 사이로 꽃잎이 흩어졌다. 꽃잎 하나가 코끝에 떨어지자 재채기가 났다. 올해는 어렵겠지만 내년 여름이면 개 마릿수도 늘어나서 돈을 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저만치 산발치에서 준이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준이가 이마에 땀을 훔치는 모습을 보니 여름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윤선은 여름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개장과 컨테이너 박스 위에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