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에서 온 클라이머(1)
조장빈(근대등반사팀)
Wrecker's Slab; Spot the climbers! © James Mann, UKC
“웨스트 서머셋 출신의 히말라야 산악인, 1908년 뉴웰 아버의 첫등반 그리고 50년 지난 1958년, 클레미는 절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루트와 위로 탈출하는 루트를 찾아 바위 해변을 걷는 'easy-bits'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만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만들었고 일프라콤베의 세실 아가와 함께 린튼의 어니스트 몰드 박사의 도움으로 그의 작은 피카루너 보트를 린머스 해안 서쪽의 가파른 절벽 아래 가까이로 항해하여 절벽 하단의 잠재적인 루트 정찰로 절벽 위에서의 루트 관측과 일치시킬 수 있었다.
클레미는 알프스 등반 장비와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외딴 해변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때로는 수직적인 루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의 트리쿠니가 박힌 부츠는 가파른 절벽의 풀밭에 이상적이었고, 그의 긴 핸들링 아이스 엑스는 엑스무어의 불안전한 등반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는 약 3피트 길이의 슈퍼 피톤을 디자인했는데, 이것은 워싱턴의 대장장이인 버트 커슬레이크가 앵글 아이언을 잘라낸 것이다. 뭉툭한 망치로 클레미는 피톤을 크랙에 끼워 넣고 뻣뻣하게 젖은 로프를 어렵게 묶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허리에 로프를 감고 무거운 철제 카라비너를 압자일렌 로프에 걸었다. 고정 로프의 신중한 등반을 위해 그는 전통적인 프루식 루프 시스템을 사용했다.
클레미는 키가 크고, 활달하며, 괴팍하고, 현학적이며,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 의해 빠른 속도로 엑스무어를 횡단하는 것은 겁나는 경험이었지만, 노출된 절벽 위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은 더욱 무서웠다. 처음에 그는 빌레이를 하지 않아 로프는 엉켜버렸고 그는 욕을 하며 크게 화를 냈다. 엉킨 로프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 '셰르파' 케스터는 마지막 하강을 단독으로 하며 파도의 너울에서 그것을 건저 올렸다.
안전하게 해변에 내려오면 클레미는 맥주를 길게 마실 것이고, 때때로 그는 '땀을 대신할 소금 함유!'를 이유로 이 황금빛의 액체를 보충했다. 눈과 얼음을 위해 디자인된 그의 못 박힌 부츠는 매끄러운 바다에서, 닳은 바위 위에서는 쓸모가 없었고 그는 때때로 욕설을 퍼부었고 그 중 하나에 'Bloody Beach!'라 하였다. 그는 웰링턴 부츠에 맥주병을 넣고 다니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수평적인 루트는 암초와 절벽을 따라 바위를 뛰어넘고 기어가는 것의 혼합이었다.
수직 바위를 피하는 클레미의 방법은 단순히 옷을 입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의 긴 아이스 엑스를 큰 바위들 사이에서 가슴까지 닿는 물길을, 스틱으로 깊이를 가늠하며 탐사를 위해 수영을 했다. 그는 종종 흠뻑 젖은 채로 몇 시간을 지냈다. 우리는 가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버려진 맥주병과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그의 독특한 슈퍼 피톤을 발견한다.
클레미는 세실 아가와 함께 뉴웰 아버의 ‘Exmoor Challenge’를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들은 때때로 젖은 발로 벼랑 끝 풍경을 뚫고 포틀랜드 포인트에서 컴브 마틴까지 'walk the beach'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1961년, 클레미는 우디 베이에서 컴비 마틴에 이르는 절벽 아래에서 그의 탐험에 대한 자세한 안내서를 개인적으로 출간했다. 1963년에 그는 자신의 업적을 설명하는 지도만 가지고 반스타플의 퀸즈 홀에서 2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1964년, 반스타플의 시릴과 팻 매닝은 다른 시즌의 탐험을 위해 그와 합류했지만, 1965년 클레미는 림코브에서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 시릴이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다시는 등반을 하지 못했고 2년 후인 1967년에 사망했다.
클레미의 발자취를 따르는 현대의 암벽 등반가들은 더 빠르고 더 많은 스타일로 그것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본적인 등산 장비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에 놀라움과 감탄으로 가득하다.”- David K. Webb & Elizabeth Webb, 〈CLEMENT ARCHER 〉
영국 Exmoor 해벽등반의 개척자 클레미는 1929년 10월 인수봉을 등반한 Clement H. Archer(1902-1967)다. 그는 알프스 등반 장비와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괴팍스런 성품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온 클라이머’인 것은 맞지만, 그의 도전 정신은 가볍지 않으며 ‘Alpinism’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는 임무와 함께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시원을 이룬 클라이머다. 그를, 장대 후크를 사용한 시대에 뒤진 인물로, 인수봉 초등과 관련하여서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임무와 함께 오른 바위에서 등반을 이어가고 있다.
어제 우이동 구곡의 수재정 맞은편 계곡의 환담에서, 아처를 위한 추모의 길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오갔다. 임무 그리고 아처, 기억해야만 할 두 클라이머다.
클레멘트 아처와 함께한 클라이머 팀 웹(Tim Webb)과 진 브림슨(Jeanne Brimson)
첫댓글 꽤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진을 발굴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