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소설) : 군대 이야기 - 4. 군인의 길

[삼일 이재영]

4. 군인의 길

우리 중대는 원주 시내에 있는 제1 군수지원사령부(제1 군지사) 예하의 차량 수리 병기 대대인 `307 병기 대대` 소속이었다.

중대급이지만 부대명은 ‘802 화포 수리반’이었고, 대공 기관총인 캘리버-50 같은 대공 화포 종류를 수리했다.

군단 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배치된 부대들을 순회하면서 화포 정비와 수리를 하므로, 중대원 대부분은 수개월씩 장기출장을 나가고 중간에 일부 병사만 귀대해서 부품도 수령하고 휴가도 가곤 한다.

나는 서무병인 사수 황 일병 밑에 조수로 배치되어 중대본부 사무실 근무여서 수리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평에 제3 군수지원사령부(제3 군지사) 신설 계획이 있어, 타 부대에서 차출된 2명의 일등병이 2개월간 교육 연수 차 우리 중대로 파견되어 왔다.

출장 중인 우리 중대원이 나흘 후에 오게 되어, 두 명은 내무반에서 머물며 대기하게 되었다.

“쟤네 들 놀리면 안 되니까, 심 이병이 맡아서 교육 좀 시켜라.”

전공 덕분에 전자 주특기 250 받았지만, 보직도 서무병이고 화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사수 황 일병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내무반 옆 비품 창고에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불편하지 않게 해 주고, 화포 관련 ‘운용 및 수리 교범’을 나누어 주었다.

“현지 출장 따라가서 배우게 될 겁니다. 우선 읽어보고 낮에는 여기서 쉬세요.”

황 일병이 시킨 대로 위병 보초 근무와 짬짬이 잡초제거도 하게 하고, 점심과 저녁 식사 후에 교범 숙독 진도를 점검하겠다고 했다.

둘이서 다른 부대에 있다가 함께 차출되어 낯 설은 타 부대에 교육받으러 왔으니 의지할 데라곤 서로들뿐일 것이다.

입대는 나보다 5개월 이상 빠른데 이등병인 내 지시와 통제를 고깝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분고분 따른다.

둘 다 성실해 보였지만 어쨌든 소속 부대에서 방출 대상이 됐으니까 속 사정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야, 너희들 군인의 길 암기해봐라! 너부터 해봐.”

파견 온 두 명이 거들어서 일석점호 준비를 일찍 끝내고 쉬고 있는데, 할 일 없어 종일 빈둥거리던 내무반장 정 중사가 심통이 발동한다.

“예, 일병 윤 00.

군인의 길,

나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다.

하나, 나의 길은 충성에 있다. 조국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하나, 나의 길은 승리에 있다. 불굴의 투지와 전기를 닦는다.

하나, 나의 길은 통일에 있다. 기필코 공산군을.. 아니, 공산 적을 쳐부순다.”

“됐어, 그만!  그 옆에, 세 번째 길부터 해봐!”

“예, 일병 박 00.

군인의 길.. 세 번째..

하나, 나의 길은 통일에 있다. 기필코 공산 적을 쳐부순다.

하나, 나의 길은 규율에.. 균율에 있다. 군율에 있다..”

예고하고 해도 어려울 텐데 남의 부대에 와서 잔뜩 쫄아 있는 데다 불쑥 암기하라면 제대로 되겠나?

매일 밤 하는 것도 아니고 훈련소에서나 달달 외우던 건데, 신참인 나보고 하래도 술술 나오기는 어렵겠다.

“짜식들, 군인의 길도 모르고 어떻게 근무했어? 개판 부대에서 왔구먼. 심 이병, 내일 점호 때까지 확실히 교육시켜!”

“예, 알겠습니다. 확실히 교육시키겠습니다.”

취침 전에 종이 두 장에 큼직한 글자로 적어서 나누어 주었다.

다음날 점심때, 교범 진도 체크를 하고 군인의 길을 암기하게 했는데, 네 번째 이후

`하나, 나의 길은 군율에 있다. 엄숙히 예절과 책임을 다한다.`

`하나, 나의 길은 단결에 있다. 지휘관을 핵심으로 생사를 같이한다.`

에서 자꾸만 빠뜨리거나 뒤섞인다.

“내무반장님이 성격이 별로 안 좋아요. 오후에는 교범 안 읽어도 되니까, 군인의 길 만 제대로 외우도록 하세요.”

선처해주고 당부를 했다.

그런데 저녁에 확인하니까, 두 명 모두 완벽하지 않고 자꾸만 틀린다.

후다닥 내무반 청소와 침상 정리를 끝내고, 창고에서 암기 연습을 더 시키고 나서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제대로 했나? 어디 한번 시켜봐.”

안쪽 침상에 기대앉은 정 중사가 징그러운 웃음을 히죽거리며 지시한다.

입구 침상 앞에 차렷 자세로 선 두 명에게 교대로 암기하게 했는데, 둘 다 뒷부분을 어물거리고 버벅댄다.

“빨리 안 해도 되니까, 찬찬히 목소리만 크게 다시 해보세요.”

“하나, 나의 길은 단결에 있다. 지휘관 생사를.. 핵심으로 한다. 이상!”

듣고 있던 고참들이 키득거리고, 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는다.

“심 이병, 이리 와. 뛰어!”

정 중사가 얼굴이 벌게져서 침상 끝으로 걸어 나온다.

깜짝 놀라 잽싸게 뛰어가 차렷 자세로 섰다.

“그렇게밖에 못해?”

-퍽!

냅다 뻗은 정 중사의 양 손바닥 안쪽이 내 양쪽 가슴을 내려치고, 나는 충격에 자빠질 듯 두 걸음 물러섰다가 곧바로 원위치해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예, 이병 심 삼일. 시정하겠습니다!”

말이 손바닥이지, 제대로 치면 기왓장 4장은 나갈 수 있는 태권도 권법이다.

훈련소에서도 안 맞아 봤는데, 내 잘못도 아니고 억울하기 그지없다.

두 일등병 앞에 와서 어쩔까 하다가 다시 한번 암기를 시켰다.

내가 당하는 걸 보고 놀라서 더 긴장했는지, 세 번째부터 공산군이 나온다.

힐끔 보니 정 중사가 달려올 기세다.

`에라 모르겠다, 살리고 보자.’

“그렇게밖에 못하겠습니까?”

-퍽!

이등병 양 손바닥이 일등병 가슴팍을 소리만 크게 친다.

침상 앞에 서 있던 일등병이 종아리가 걸려 침상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퍽!

다음 일등병은 “어이쿠” 소리까지 지르며 침상 위에 발랑 드러눕는다.

“심 이병, 그만해라! 그러다 너 인마, 가들 잡겠다!”

정 중사가 만족한 듯 야비한 웃음을 짓는다.

두 명을 일으켜 세워 창고로 데리고 갔다.

얼른 담배를 꺼내 주고, 라이터 불을 붙여주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아니요, 괜찮아요. 아프지도 않았고.. 내무반장 엄청 열 받은 거 같던데, 안 그랬으면 지금 어찌 됐을지 모르지요. 푸~”

누구 말처럼.

‘군인의 길은 막다른 길이고, 군인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인가?

처량한 세 졸병의 화랑 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하나로 뭉쳤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蘭亭주영숙]

군인의 길! 저거 지금도 외우시나요?
리얼하게 잘 그리셨습니다.

[삼일 이재영]

네, 난정 작가님. 저 글 쓰던 7년 전에만 해도 외운다고 해서 인터넷 뒤져서 올린 겁니다.
지금은 군가 교육도 자율화라서 모르는 병사가 태반이라고 하니, 참 한심한 군대 됐다 싶습니다.
그린 게 아니고, '캐리버 50' 사진이 귀해서 2차 대전 때 작은 사진을 확대했더니 저리 됐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