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權寧河, 號 용강龍江, 저동苧童, 갯벌, 한강韓江
한강문학회 회장, 《한강문학》발행인겸편집주간. 《교단문학》詩부문 등단(박화목 추천, 91년),
《해동문학》천료(성기조, 정광수). 저서:詩集《숨어 흐르는 江》, 劇詩集《살다 살다 힘들면》,
산문집《겨울밤, 그 따뜻한 이야기들》外, 역서:《세일즈맨의 죽음》A.밀러 원작,《파리떼》J.P. 싸르트르 원작
옆 집 여자
권 녕 하
박수 치는 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내다봤더니
열심히 힘차게 손뼉을 치는데
사람이 있건 없건
동네가 쩡쩡 울릴 정도로
누가 본다 싶으면
일부러 점점 더 크게 치기도 하는데
이 여자 억세기가
외모부터 보통이 넘어서
말 한마디 했다가는
싸우려고 덤벼들 것 같아
못 본 척, 못들은 척
애써 무시하며 참고 있는데
아 글쎄
어느 날 부턴가는
야밤에도 치고
더러는 새벽에도 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자기 건강 챙기는 것도 좋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살다 살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동네 사람들을
개무시(?)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밤에도 칠 정도면 이건 숫제
박수무당(?) 인가
그렇게 푹푹 속 썩이며 살던 어느 날인가
박수 소리가 뚝 끊어지더니
온 동네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말았다
늘 들리던 빡빡 퍽퍽 소리가 안 들리자
한동안 조용해서 참 좋더니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동네가 적막강산처럼 바뀌어버리자
이 여자 어디갔나
해외여행이라도 갔나
궁금증이 곰삯다 못해
두리번두리번 귀도 쫑끗
이 여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나중엔 걱정까지 되곤 했는데
겨울비 밤 새 오다
뚝 그친 날 이른 새벽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푹푹빡빡 메아리를 울리며
에구, 건강하니 됐네
되레 반갑네.
속았구나!
〈서동요薯童謠〉가
가짜뉴스였다니
밤이면 밤마다 둘이 얼렸다고
골목길 떠도는 애들 노래 소리 덕분에
선화공주 시집은 갔지만
속았구나, 속았구나
신라가 속았구나
딴 따따단, 딴 따따단
웨딩마치 멜로디에 맞춰
온 동네 아이들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다
어른들한테 혼쭐났던 기억
속았구나, 속았구나
유언비어流言蜚語였다니
홍등가 대형 유리창 안에서
사내들만 지나가면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
따다닥, 따다닥, 띠다닥
・・・, - - -, ・・・, - - -
날 구해주세요
모르스 조난구조 신호인 줄 알았더니
날 골라주세요
날 택해주세요
그런데
이 세상 살다보니
그동안 속고 산 건, 속은 축에도 못 끼더란 말이야
날 찍어요 다 줄께요
날 뽑아요 다 할께요
속았구나, 속았구나
다수결에 당했구나
떼거지 꼴 났구나.
잘 갖고 놀기나 하거라
생명이란
왜 생겼는지도 모르고
왜 사는지도 모르며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언제 죽을는지
어떻게 죽을 건지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이 세상에 생명으로 있다가
사라진다는 것
한 세상 살면서
잘 갖고 살기나 해야 할 터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쟁 겪지 않는 때에
경제발전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
어울렁더울렁 살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니
그나마 고맙지 뭔가!
쥐뿔 만큼이지만
나라에서 주는 돈도 받아보고
지하철도 공짜로 타고 다니고
살다 살다 좋은 꼴도 다 본다 했더니
좌니 우니 주사파니 운동권이니 인민이니 민주니
그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생명 하나 가지고
인권이니 정의니 공평이니 권력이니
니네들!
잘 갖고 놀다 잘 죽어야 돼!
주어진 한 세상
꾀죄죄하게, 비겁하게, 좁쌀처럼
맨날 보는 이웃 상대로
네다바이나 치며 살 거면
왜 태어났느냐?
숨 쉴 때마다 고맙다고
오늘, 한 번 고백이나 하거라.
세상 살면서 어지럼증을 느낀 날
평생 집 나서기 전에 꼭 챙기는 물건들
지갑, 명함, 신분증, 카드, 핸드폰, 시계 그리고 담배와 라이터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지럼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담배 끊고 나면 숟가락 놓는다던데
우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담배를 평소 많이 피우지는 않지만
한 평생 끼고 산 날이 반세기가 훌쩍 넘었는데
이제 와서 이별해야 하나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리하여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심코 한 말, 어지럽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대뜸 받아치는 말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살도 안찌고, 따뜻하지도 않고, 연기만 나더니, 잘 됐다! 였다
담배가 떨어질 양이면, 평생 보루로 사서 대주던 아내였는데
어쩜! 속사포 같이 튀어나오는 그 말을 듣고는
참, 세상 오래 살았나보다!
문무겸전을 꿈꾸던 질풍노도 시절
내 인생, 내 꿈이 익어가던 그 시절
내 추억을 다 이해할리 없겠지만
햇살 밝은 창에 한줄기 파랗게 피어오르던
존 웨인의 말보로 담배 연기!
이 세상 살면서 새삼 어지럼증 느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