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14> 제2편 제1장 비로자나불 ③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실행론」 제2편 제1장 제2절은 ‘법계(法界)의 성(性)’에 관한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이다. 법계의 성은 법계를 포괄하는 성품을 일컫는 것으로서 법성(法性)이라 하며 곧 법신(法身)을 뜻한다. 법계법성이고 법계법신이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은 시방삼세 하나이기에(실행론 2-1-1-가) 법계의 성은 하나인데, 이를 대종사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다.
“법계의 성은 하나이므로 이를 도솔천부처님이라고도 하고, 하나부처님이라고도 하고, 하나법신부처님이라고도 하고,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라고도 하고, 법신부처님이라고도 한다(실행론 2-1-2-가).”
법성으로서의 법신을 도솔천부처님·하나부처님·하나법신부처님·법신 비로자나부처님·법신부처님 등으로 부르시다가, 나중에는 법신 비로자나부처님 또는 법신부처님으로 통일해서 부르셨다. 그런데 대종사께서 법신불을 도솔천부처님이라 하신 까닭이 늘 궁금하였는데, 이 매듭이 풀리지 않아 오나가나 골몰하다가 서울 출장길 열차 안에서 직관이 떠올라서 환희심을 숨길 수 없었다(2024년 4월 29일 오전).
앞서 제12회에서 자성법신을 마음 가운데 두고 말하자면 심인이며 밖에다 두고 말하자면 도솔천이다는 대종사의 말씀에 관하여, 심인의 본심과 도솔의 지족(知足)을 연비(連比)하여 이해한 바 있다. 이 이해는 일차적으로 수용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법신불을 도솔천부처님이라 하신 대종사의 본의를 좀더 궁구해 보아야겠다는 학구(學究)는 제12회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출장길 열차 안에서 직관한 것은, 행자들 저마다 법계법신을 자성법신으로 깨달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미륵부처님이 하생하는 것과 같다는 이치를 도솔천부처님으로 표현하셨다는 점이다. 미륵이 도솔천에 상생하여 미륵보살이 되고(미륵상생사상), 미륵보살이 중생계에 하생하셔 미륵부처님이 된다(미륵하생사상).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56억 7천만 년 동안 밤낮으로 설법과 교화를 하고서 우리가 사는 염부제에 미륵부처님으로 오신다는 미륵하생사상을, 회당대종사께서는 우리 자신이 자성법신임을 깨달으면 바로 자신이 미륵부처님이 된다는 사상으로 진전시켜 직로(直路)의 교설을 설하셨다. 그렇기에 미륵보살이 머무셨던 도솔천에서 오시는 도솔천부처님(미륵부처님)을 자성법신의 부처님 곧 법신불이라 칭하신 것이다.
이러한 대종사의 자증교설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과 인식이며, 불교사상을 자신의 삶과 직결시켜 이해하게 하는 살아있고 특출한 신행적 인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종사의 자증교설은 거개가 이와 같은 방식과 내용이라서 감동을 주는 것이 사실이고, 진언행자들도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행론」을 독송하면 필시 해탈의 길로 접어들 수가 있게 된다.
도솔천은 욕계 제4천이다. 욕계는 탐심도 진심도 치심도 여의지 못한 우리가 사는 중생계이다. 이 중생계에 56억 7천만 년 후에 탐심부터 여의는 지족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시는 미륵부처님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자성이 법신임을 깨달으면 자신이 미륵부처님이 된다는 사실을 정히 교설하신 것이다. 탐심부터 여읜다고 해도 색계이며, 색계에서 진심(嗔心)까지 여의면 무색계이다. 무색계에서는 치심만이 미세하게 남아 있다. 삼계를 이렇게 구분할 것도 없이 자신의 자성을 밝히기만 하면 탐진치 삼독을 여읜 자성법신으로 확립되고, 확립된 자성법신은 법계법신이 내재한 당체로서 온전한 법계법성이 되는 것이다.
‘법계(法界)’란 용어는 너무도 아름다운 표현이다. 세계를 법(진리)의 세계로 이해하는 방식은 불교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세계는 진리의 세계이고, 진리는 세계의 실상이다. 의식의 대상이 되는 세계를 법계라 하는데, 초기불교의 십팔계와 화엄불교의 법계연기를 거쳐 밀교에 이르면 법신불을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로 이해하게 된다. 법계의 체성(법성)의 지혜가 법신불이시다. 법신불은 진리를 당체로 한 부처님이시다. 자신이 자성법신이고 미륵불신(彌勒佛身)임을 인식한다면 법계법성과 법계법신의 대지(大智)는 자신의 것이 된다. 이 얼마나 어떻게나 은혜롭고 감사한 복락인가!
법계의 용어가 아름다운 만큼 ‘법성(法性)’이란 용어는 선하며, 이를 자신에 구현하는 ‘자성법신(自性法身)’은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하다. 자성법신의 눈으로 법계를 해석하면 법계는 심계(心界)이고 각계(覺界)이다. 대종사의 <자성법신>의 말씀에서 ‘가까이 곧 내 마음(심계)에 있는 것’은 법계의 법신불이시고, ‘가까이 곧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먼저 알라’는 심계가 각계가 됨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대종사께서는 이렇게도 표현하셨다.
“법계의 성(性)은 하나이다. 하늘에 있으면 능히 하늘이 되고, 땅에 있으면 능히 땅이 되고, 사람에 있으면 능히 사람이 된다. 오직 이 법계의 성만 믿고 심인을 깨쳐야 한다(실행론 2-1-2-가).”
하나라는 것은 법계의 당체(當體)로서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이고, 사물 그 자체이다. 하늘에 있으면 능히 하늘이 되고, 땅에 있으면 능히 땅이 되고, 사람에 있으면 능히 사람이 되고, 사물에 있으면 능히 사물이 된다. “청정법신은 나의 성품이므로(실행론 4-3-7)” 법계의 성(체성, 당체)만 믿고 심인을 깨쳐야 한다고 설하고 계신다. ‘법계의 성만 믿고’는 어디에든 법신이 내재한 성품(법성, 자성)이 있음을 굳게 믿어라는 뜻이며, ‘심인을 깨쳐야 한다’는 법성(자성)은 심인(본심)으로 발현됨을 알고 심인을 발현시키면서 살아라는 뜻이다. “심인은 나에게 있는 마음의 부처(실행론 2-2-1-다)”이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