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천금(千金)같이 귀하게 여기고...
오늘이 12월 9일, 금년 한해도 이제 20여일 남았습니다. 새해를 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금년 한해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세월이 더디게만 가는 것 같더니, 인생 700고개를 넘어서니 세월이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어나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가 하면 어느새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어느새 월말이 되어 있고…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 마음이 급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월이란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 것인가? 성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소년위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미각지당 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아직 연못가에 봄풀이 돋는 꿈에서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벌써 섬돌 앞 오동나무 잎에선 가을 소리를 듣는구나."라고 했고,.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여로역여전(여로역여전)-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30대 초 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지은 『선가귀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꿈만 꿈이 아니고 인생이 한바탕 꿈이다."라는 귀절을 읽고 '꿈은 꿈이고, 인생은 인생이지 왜 인생을 꿈과 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니, 이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거니와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모하는 것이 어찌 인간사(人間事) 뿐이겠습니까? 올해 핀 꽃도 엄밀히 따지면 지난해 피었던 꽃은 아닙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유전(流轉)하고 모든 것은 물처럼 흐릅니다. 똑같은 시냇물에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물이 다르듯이 발을 씻는 나 자신도 늘 변모합니다.
그러함에도 사람은 누구나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다고 생각하고 합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나는 안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 세상에 확실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안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도 안녕, 오늘도 안녕, 내일도 안녕, 글세요? 내일은 기약이 없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발부둥치며 살다 예고도 없이 부르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만 합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해야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다보니 부모와 자식의 도리, 인간 도리를 제대로 못했는데, 앞으로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삶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가보지 못한 곳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 할 운명이 오면 갈 수 박에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악한 짓만 하다가 명이 다하여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사람을 염라대왕 앞으로 끌고 가서 "대왕이시여 이자는 세상에 살아있을 때 부모에게는 불효했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치 않았으며 갖은 악행만 일삼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적당한 벌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저승사자의 말을 들은 그는 염라대왕에게 "대왕님 저는 살아생전에 염라국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더라면 제 인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대왕님 정말 너무 하셨습니다.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내가 보낸 세 명의 사자(使者)를 못 보았단 말인가?”
“못 보았습니다.”
“그럼 너는 늙은 사람을 못 보았느냐?
“그런 사람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럼 너는 병든 사람을 못 보았느냐?”
“그런 사람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럼 너는 죽은 사람을 못 보았느냐?”
“그런 사람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이 내가 보낸 사자니라. 너는 그런 사람을 수 없이 보고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느냐. 너는 이제 죄에 대한 업보로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너의 부모나 형제, 자매, 친구나 친척이 한 일이 아니고 네 가 스스로 지은 것이니 죄에 대한 벌도 스스로가 받아야 한다.”
염라대왕이 말을 마치자 저승사자는 그를 끌어다가 활활 타는 불구덩이 속에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노인과 병자와 사자(使者), 우리는 누구나 이 세 명의 사자를 수없이 보고 듣고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기만 할 뿐 정작 저 세 명의 사자가 나에게 보내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세 명의 사자가 나를 직접 찾아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느닷없이 통고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지나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 잘못 투성이였고, 나쁜 일 투성이였고, 후회 투성이였음을 알고 다시는 나쁜 일 않겠다고 애걸복걸 해 보아도 세 명의 사자가 직접 나에게 다가온 후에야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천금(千金)같이 귀하게 여기고 알뜰살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뜻있게 보내야 합니다. 가끔은 친구도 만나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어디 맛집이 있다면 찾아가서 사먹기도 하고,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구경도 다니시며, 남은 인생 즐겁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내가 10여일 전에에 교우회 카톡에도 올렸습니다만,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란 수필이 나오는데, 지금 읽어보아도 이렇게 잘 쓴 수필은 없는 것 같습니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麻衣)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千年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웅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黯然)히 수수(愁愁)롭다.
세상의 부귀영화람 한바탕 굼괴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탐하고, 무엇에 연연할 것입니까? 이제 모두 다 내려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갑시다, 때로는 흘러가는 힌 구름도 바라보고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어가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