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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기원정사 가는 길
이승철
그날따라 문득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난 그 누구를 사랑하거나 미워할 뿐이다, 라고 그가 말했던가. 그게 아니라면 베르톨트 브레이트가 했다던, 사랑의 명언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싱싱할 때는 달지만 단물이 다 빠지면 써서 뱉어버려야 하는 코코넛과 같다는 그 말뜻에 몸서리치다가 그즈음 나는 세익스피어의 말씀에 밑줄을 좍, 긋고 싶었다. 사랑은 한숨으로 일으키는 연기, 가잘 분별력 있는 미치광이, 목을 졸라매는 쓰디쓴 약, 생명을 돋우는 감로다. 사랑은 악마다, 사랑 이외에 다른 악마는 없다… 라는 그의 직언에 머리 숙이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십 줄 넘어서도록 목숨 걸고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한 놈이 목숨 걸고 국토 최남단 濟州 馬羅島행 고깃배를 타려고 발버둥친 적이 있었다. 정기여객선이 끊긴 그 시각, 모슬포항서 웃돈을 받고서 밤배를 띄우기로 한 그 船主가 풍랑주의보 때문에 入島를 못한다고 느닷없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줄행랑을 쳤다. 이에 마라도 기원정사에서 주석하는 백태영 處士님께 알아보니 마라도서 짜장면 집을 운영하는 류 아무개 시인과 마라도 원주민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마라도 里長이란 작자가 入島를 못하도록 훼방을 놓아버린 탓에 선주가 도망을 쳤을 거라며 다른 배를 알아봐 줄 테니, 어떻든 입도를 하라고 청했다.
다음날 마라도에서 개최키로 한 文學祝典 행사를 위해 어떻게든 입도를 감행해야 했기에 이를 놓고 문학포럼 참가자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마라도서 桃園結義를 하자고 맹세했던 洪一善 시인의 친구인 毛農과 봉국사 주지 曉林스님과 강원도 萬海마을에서 온 李相國 시인이 생명을 담보로 한 乘船을 할 수가 없다, 고 단언하는 통에 한때 馬羅島 가는 길이 난망한 듯했다. 이에 나는 핏대를 세우며 어깃장을 놓았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온 바다를 표류하다가 도착한 섬이 마라돕니다! 정기여객선으로 삼십 분이면 도착하는데 馬力 좋은 21세기 고깃배니 늦어도 사오십 분이면 당도할 건데, 마라도서 싱싱한 횟감이 우릴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그까짓 파도가 무서워 입도를 못해야 쓰겠소, 하며 거의 생떼로 윽박질렀다. 목숨을 걸고서는 마라도에 못 가겠다던, 그 세 사람을 모슬포항에 남겨 두고서 스물 댓 명의 일행은 고깃배에 乘船할 것을 결행했다. 때마침 사위가 괴괴하더니 어두컴컴한 모슬포항에서 우릴 태운 深夜의 고깃배는 통통거리며 마라도를 향해 세차게 발동을 걸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풍랑주의보가 떨어졌다. 어젯밤 굵은 빗방울이 가뭄에 단비처럼 쏟아지더니, 그새 바람까지 몰고 와 아침이 되니 너울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파고가 높아서 배가 뜨지 않는단다. 파고가 3∼4미터가 되면 풍랑주의보가 발효된다. 하루 일과가 첫 배가 뜨는 시간에 시작해서 마지막 배가 떠나는 시간에 끝나는 이곳, 마라도에서는 배가 뜨지 않으면 모든 게 정지되는 듯하다. 간간이 낚시꾼이나 주민들이 고기 잡으러 가는 발길 말고는 인적이 뜸해지니,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자도 새벽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적막하다.
오늘처럼 이렇게 예보 없이 갑자기 풍랑주의보가 떨어지면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참 많다. 병원이나 관공서 일을 보려고 나가려던 주민들도 그렇고, 민박을 왔다가 나가려던 사람들도 그렇고, 제 아무리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라산과 산방산과 모슬포를 눈앞에 두고도 못 간다. 죽어도 나가야겠다면 가파도나 모슬포 어선을 빌려 타는 것인데,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 하며, 이용료도 무척 비싸다. 웬만하면 하루, 재수 없으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마라도에 눌러앉아야 한다.
집밖으로 나가는 일은 가급적 삼간다. 풍랑주의보라고 바다에만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섬 전체를 삼킬 듯 포효하며 불어닥치는 바람 때문에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신 분이라면 필시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처럼 날려갈 것이니, 몸을 꼭꼭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바다만 요동을 치고 섬 안은 고요할 때가 있다.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허연 포말을 뿌리며 높이 치솟고, 너울은 바다에 닿는 것은 뭐든 침입자로 간주하겠다는 듯 사정없이 오르내리는데, 갯바위를 경계로 섬 안쪽은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마치 태풍의 눈 속에 든 것 같다. 마주하고 있는 서로 다른 세계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축복처럼 햇살도 내리쬔다. 마라도가 가장 특별해지는 때며, ‘환상의 섬’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릴 때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섬 생활이 아무리 오래 되어도 오늘 같은 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애매한 날에는 집집마다 여객선 사무실에 전화를 거느라 바쁘다. 질문은 집집마다 똑같다. “마라도 주민인데, 오늘 정상 운행합니까?”이거나 “마라돈데, 오늘 배 뜹니까? 안 뜹니까?”이다. 그런데 그쪽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파고가 3미터가 확실히 넘으면 고민할 게 없는데, 2.5미터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으면 배를 띄울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는 모슬포에서 오는 정기여객선은 결항이라고 하고, 송악산에서 오는 유람선은 오전은 결항인데, 오후는 파고가 낮아질 수도 있으므로 미정이라고 한다. 이럴 때가 가장 싫다. 장사 준비를 해야 해? 말아야 해? 마라도의 모든 상가가 다 그렇다. 아침 일찍 꺼내놓은 재료들을 일단 그대로 두기로 한다. 열두 시가 지나도록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고 조금씩 불던 바람은 더 잦아든다.
마라도는 텃밭 수준의 농사 이상 짓기가 힘들다. 텃밭 작물도 키가 크면 잘 못 자란다. 해풍이 심해서 바람에 잘 버티지 못하거나 소금기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업도 힘들다. 두 군데 있는 접안시설은 여객선용으로 만든 거라서 어선은 정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마라도에는 어선이 한 대도 없다. 횟집마다 낚시로 잡은 고기를 판다. 물론 낚시 철이 아닐 때에는 가까운 가파도 어선에서 그물로 잡은 고기를 사서 팔기도 한다. 어쨌거나 마라도 앞바다에서 난 자연산 활어들이니, 그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어선을 몰아 고기를 내다팔 수 있다면 마라도가 좀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생계수단이 전부 상업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다 보니, 손님 한 사람 들고나는 것에 민감해지게 마련이다. 돈이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보이면 사회는 강팔라지게 마련이다. 인정에 둔하고 잇속에 빠르다.
우리 역시 관광객들에게 자장면을 팔면서 살아가지만,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좀 적게 와서 좀 여유롭게 거닐며 마라도를 좀 더 많이 알고 갔으면 좋겠다. 지금과 같이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몰려가는 빠듯함과 번잡함은 관광객들에게도, 주민들에게도, 마라도에게도 좋은 점보단 나쁜 점이 더 많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주머니에 얼마나 많은 지폐가 들어오느냐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마라도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은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망 좋은 곳에 마련해 놓은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다 마라도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있는 솔숲 오솔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낮이 한참이나 남았다. 신랑이 “절에 차 마시러 가까?” 한다. “조오치!” 오랜만에 절 나들이다. 육지에서도 그렇겠지만, 마라도에서 가장 여유로운 곳이 바로 기원정사다. 늘 일이 바쁘다 보니, 자주 가지 못하는데, 정말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날이다. 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련이를 너무나 예뻐하시는 처사님, 보살님과 함께 실컷 수다를 떨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왔다. 기련이는 제가 절의 인연으로 태어나는 것을 아는지 목탁 소리를 몹시 좋아한다. 혼자서도 잘 가지고 논다. ― 류외향 시인의「마라도 일기」중에서
모슬포항을 떠나자마자 이내 시커멓게 벌거벗은 만경창파를 덮치고자 야멸찬 폭풍이 생생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고래 입속 같은 아가리를 벌려 뱃전을 후려치던 파도가 와장창 船室 안으로 무너져 쌓인다. 뱃머리가 파도를 넘어서고자 일직선으로 곧추설 때마다 여기저기서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하는 비명소리가 뱃전을 굴러 다녔다. 어떤 이는 救命服까지 받쳐 입고서도 덜덜덜 떨어쌓고, 어떤 허여멀쑥한 여자시인은 상갓집서 哭을 하듯 에고, 에고를 연신 토한다. 선실 안 바닥을 여덟 八자로 끌어안으며 사십 줄 안팎의 젊은 남자시인이 자신의 이마빡을 선실 바닥에 수평으로 갖다 댄다. 흡사 여덟 개의 낙지 발이 빨판으로 바닥을 움켜잡는 듯했다. 또 다른 여자사람의 외줄기 신음소리가 船體의 동아줄에 매달려 예서저서 곤두박질친다. 캄캄한 밤바다의 수평선은 세찬 메아리가 되어 내 심장 한쪽을 자근자근 후려치고 있었다.
아, 이 밤에 入島禁止 풍랑주의보가 불긴 불었는가. 야밤에는 오지 말라고 해서 마라도인가? 웃돈을 챙겨 받은 船長은 승선 당시엔 삼십 분이면 입도할 거라고 큰소리를 탕탕 쳤는데 벌써 사십 몇 분이 지났건만 여전히 萬頃蒼波뿐이다. 몇 분 남았어요? 다 와 갑니까? 오 분 남았나요? 칠 분인가, 십 분인가요, 확실히 말해줘요. 아, 정말이지 이 파도가 무섭네 그려… 여주서 농사짓다가 난생 처음 마라도에 입도한다는 洪農 시인은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문학포럼 회장 金永顯 소설가 역시 점잖은 체면에 말은 못하지만 거의 죽상이 되어 날 쳐다본다. 그때 상큼한 몸매의 인디언수니 歌手가 화들짝 놀라더니 死鬪하듯 선실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즈음 바리톤 성악가로 활약 중인 朴善旭 詩人만이 漁船 뒤꽁무니서 흔들림 하나 없이 용용하다. 하, 대단해 저 사람! 다리도 성치 않은데 저리 고개 한번 숙이지 않다니, 몇 년 전 基督敎에 歸依해서인가? 젊은 날, 神은 죽었다고 예수는 이 땅에 없다고 교회 입구에서 큰소리치던 사람이, 그새 헐, 하나님을 영접했나? 강남에서 이십억 대의 타워팰리스서 거주한다는 정 아무개 시인 또한 입을 닫고, 혀를 굳히고 있었다. 파도소리가 무서운 듯 두 귀까지 막고 있던 또 다른 여자시인 한 분이 뼛속 깊이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선실 모퉁이서 저 혼자 외치고 있었다. 아, 지금 너무너무 오줌이 마려워요, 마라도! 그때쯤 나도 모르게 검은 수평선을 향해 뇌까리고 있었다. 스님, 전 무사히 당도하리라 믿습니다! 제 四柱八字에 命이 칠십 몇 살이라던데 여기서 下直이야 할라고요. 殘命이 얼추 사반세긴데 저 바다에 四溟堂처럼 고요 靜 자를 쓰지 않고도 우린 당도할 겁니다, 나무관세음보살…. 허나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동자들 사이사이에서 밤 파도소리가 시퍼렇게 일렁거렸다. 그래 한번 삼켜 봐라! 船室을 치받고 들어오는 푸른 아우성 소리가 일순 肉體의 모든 구멍을 틀어막던 그 밤, 마라도 앞바다였다.
그때 문득 船上 自殺을 목적으로 말라르메 詩集만 달랑 들고 제주바다서 빠져 죽으려 했다는 高銀 시인의 회고담이 떠올랐다. 서른 살 때 바다에서 투신자살을 하려고 제주도행 배에 승선했다던,一超 禪師 가라사대,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제주도행 배를 탔다가 너무 취해서 죽는 걸 잊어 버렸어! 가방 속의 큰 돌에 로프를 묶어가지고 내 허리에 묶어서 저 깊이 심해로 들어가, 안 떠오르도록 하려 마음먹었는데 말이야. 제주해협이 그때처럼 호수가 된 적이 없었어. 파도가 부드러워진 걸 ‘젠틀 웨이브’라고 하는데, 그보다 더 거울 같았으니까. 때마침 달은 비치고 미칠 것 같더라고. 배 안 매점에서 구입한 술을 아무리 마셔도, 들이켜도 취하지 않고, 명징한 理性만 또렷하더군. 내가 죽음 앞에 있으니까 술조차도 거절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바다 공기가 좋아서 취하지 않았다데. 계속 마셔대다가 결국 쓰러져버렸고,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에 깨어나 보니까 이미 항구였어. 그래서 돌을 매고 죽는 건 실패로 돌아갔지. 이후 몇 년간 제주에서 공민학교를 개교하여 校長을 겸한 국어 및 미술 선생으로 일했지. 언젠가 평론가 김현이 제주도로 날 찾아왔어. 그때 김현이 날 가리켜 假面의 魔術師라고 칭했지. 그 가면은 未知의 婦人을 수없이 얻고 버린 자의 悲哀가 짙은 허무감과 동반되어 나타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여 내가 存在하고 있다고 論評하였지…. 제주도 시절 高銀 시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더니, 입안에서 나동그라지던 통곡소리가 제주바다 저편으로 곤두박질치는가 싶었다. 마침내 희끄무레한 어둠속에서 다가서던 馬羅島 선착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一刻이 如三秋 같더니, 우리는 기어이 그날 밤 목숨을 부지한 채 마라도에 入島했던 것이다.
머나먼 여행은 끝났다. 나는 지금 숨 쉬며 내 몸을 느끼고 향기로운 꽃 같은 너를 찾고 또 다른 나를 찾다가 문득 마라도행 제주 앞바다를 떠올리며 나와 함께 同行했던 그 이름자들을 조용히 호명해 본다. 그래, 캄캄한 하늘에 마라도 별들은 참으로 송송했었지. 혼불이 일듯 사무치는 별들이 아우성치며 다가왔었지. 故노무현 靈駕의 분향소가 차려졌다던 마라도 기원정사 大雄殿 앞마당에서 이제 막 還俗을 감행한 낯선 바람 한 줄기가 사타구니를 시원스레 훑으며 지나간다. 국토 최남단 관음성지, 기원정사 금빛 해수관음보살상이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라도 앞바다를 동트도록 굽어보고 있었다. 그날 마라도에서 그 누가 나에게 말했던가? 평생 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초 한 자루가 평생 동안 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라고….
이승철/1958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성장. 1983년 무크『민의』제2집으로 등단. 시집『당산철교 위에서』『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세월아, 삶아』등.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화남출판사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