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유별난 존재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준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을 기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들이 팽목항에 모여 바다를 향해 자식의 이름을 부를 때 단장지애(斷腸之哀)의 울부짖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세설신어(世說新語)>출면(黜免)편에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사가 있습니다. 촉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죄이고자 진나라 장수 환온(桓溫)이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 병사 중 하나가 강변에서 놀고 있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너무 귀여워하여 배에 태웠습니다. 그 원숭이 어미는 군사를 태운 함선을 100여 리를 쫓아오다 폭이 좁은 협곡에서 새끼를 태운 배를 향해 몸을 날렸는데, 배에 이르러 새끼를 품어 안자마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한 병사가 그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환온은 새끼를 납치한 병사를 매질하고 대열에서 쫓아냈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자식을 잃은 슬픔이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짐승도 그러할 진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의<본생경(本生經)>에도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한 수행자의 품에 급히 쫓겨 들어온 비둘기를 쫓아온 독수리는 자기가 추적해온 비둘기를 내어달라고 하자 수행자는 비둘기에게 대신 그 무게에 해당하는 자기의 살을 떼어 주겠다고 제안하였답니다. 수행자는 허벅지 한 곁을 떼어도, 다른 허벅지를 떼어도 그 비둘기에 무게에 미치지 못하자 급기야 수행자는 자신의 온 살을 베어주기에 이르러 비둘기의 무게와 같아졌다고 합니다. 재물이 있거나, 없거나 권력자이건,아니건 그 생명이 가진 가치는 어느 것에도 비할 바 없는 고귀하고 존귀하다는 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임을 일러주는 경문(經文)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수행자가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말입니다.
어머니는 새끼를 잃어버리고 찾아 나서는 원숭이나 독수리에게 비둘기를 대신해서 자신의 살을 떼어 주는 수행자와 같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위대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이 그러하셨고, 우리들이 그러했으며, 우리들의 자녀들이 바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함부로 대하는 부모가 있고, 그런 뉴스가 있어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그것은 정말 아주 극소수의 사례이고 우리의 사회는 아직도 부모의 맹목적인 자식 사랑은 정말 못 말릴 지경입니다. 그것을 자식들이 알아주든 알아 주지 아니 하여도 아무런 이유가 없이 사랑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길이며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육적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그 사랑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모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와 사랑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차원에서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소통이 먼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사람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언제나 뒷전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한 인간관계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인간관계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머니의 사랑과 수행자의 그것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훨씬 큰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 하느님을 가장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데에는 아주 익숙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면서 사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갑시다.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큰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면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