彌山
⊙ 54세. 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로 출가. 운문선원·봉암사에서 禪수행. 동국大 선학과 졸업,
인도 뿌나大 석사, 영국 옥스퍼드大 동양학 박사. 美 하버드大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백양사 수행원장,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역임. 現 상도선원 선원장 겸 중앙승가大 교수.
⊙ 저서: 《초기경전 강의》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 54세. 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로 출가. 운문선원·봉암사에서 禪수행. 동국大 선학과 졸업,
인도 뿌나大 석사, 영국 옥스퍼드大 동양학 박사. 美 하버드大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백양사 수행원장,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역임. 現 상도선원 선원장 겸 중앙승가大 교수.
⊙ 저서: 《초기경전 강의》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선원(禪院)의 밤은 고즈넉했다. 출입구에 대롱대롱 달린 예닐곱의 연등(燃燈)은 불꽃이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을 한 채 붉은 빛을 토해 냈다. 인적이 드문 밤 8시,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둥지를 튼 ‘상도선원’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흥미로운 브로셔를 발견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걸맞도록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영상위패를 모실 예정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인터넷에 접속해 조상을 뵙고 참배해 불효(不孝)·불충(不忠)의 송구함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도록 해 드립니다.>
기자는 이 문구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 가지 않아 몇 번을 읽었다. 디지털 영상위패는 뭐고, 인터넷으로 조상을 뵙는 것은 뭐란 말인가. 궁금증은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상도선원’ 주지인 미산(彌山)스님이 풀어 줬다.
“절에서 49재, 제사를 대신 지내 주곤 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을 대신해서 절에서 정성스레 제사 준비를 하지요.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가 조상을 모시는 일 자체에 불편해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상의 중요성 자체를 모른다고나 할까요. 50대 이상은 ‘나는 죽어서 제삿밥도 못 얻어먹을 것’이라고 푸념합니다. 제사 자체를 불편해하는 젊은이들이나, 이를 걱정하는 50대 모두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잖습니까. 기획을 해 봤지요. 절에서 제사 지내는 모습을 동시에 동영상으로 틀어서 제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이 모습을 보게 하자고요. 인터넷상에서 향이라도 올리고, 또 젊은이들에게는 살아생전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엮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고요.”
―시류(時流)에 맞췄다기에는 너무 파격 아닙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신도들 중에서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젊은이들이 내 뿌리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노스님들이 들으면 난리 날 일 아닐까요.
“선뜻 쉽게 하시지는 못하는 일이겠지요. 현대인의 감성과 정서에 맞춰 불교를 포교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절을 지었습니다. 저 역시 아날로그 세대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불교가 젊어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불교라고 하면 산중턱에 자리한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여전히 떠오릅니다.
“승려들에게 자기 성찰과 수행은 기본입니다. 어느 정도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불교에 ‘보리심(菩提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보리’가 깨달음입니다. ‘보리심’은 위로 깨달음을 얻어 아래로는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마음입니다.”
유튜브에서 ‘K팝 스타’ 공연 보는 스님
미산스님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그가 일시적인 화젯거리로 ‘인터넷 제사’를 추진한다는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스님 왼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이폰’이 눈에 들어왔다. 승려와 아이폰, 궁금했다.
―아이폰을 쓰시는군요. 어떤 것을 다운받았습니까.
“아이폰, 아이패드 전부 있는걸요. 이래 봬도 ‘얼리어답터’(early adapter·신제품 출시 직후 구입하는 구매자)예요. 하버드의대 교수인 크리스토퍼 거머 박사가 학회 참석차 한국에 다녀갔는데 그때 아이폰을 보여줬습니다. 저렇게 유용(有用)한 물건이 있나 놀랐죠. 다음 날로 구입하고, 아이패드가 나오자마자 샀습니다. 간단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다운받아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봅니다.”
―‘소녀시대’나 ‘아이유’ 동영상 보셨나요.
“아, K팝 스타들. 참 대단합니다. 유튜브 조회 수를 보면 우리나라 K팝 스타들의 동영상이 상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실감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경쟁력이지 싶습니다. 아이폰으로 공연을 봤죠.”
한 사찰의 주지스님과 마주앉아 ‘아이폰’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또 손가락으로 휴대폰 잠금장치를 열고, 유튜브를 클릭해 ‘소녀시대’ 동영상을 찾는 스님의 모습은 더더욱 상상이 안 갔다. 눈치를 챘는지 미산스님이 말을 이었다.
“스님이 아이폰으로 K팝 스타 공연 보는 것이 낯선가요? 왜요? 스님이라는 고정관념을 깨 보세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저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속에는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은 고정관념에 자신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고목에는 새로운 꽃이 피지 않는 법입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내려 놓고, 흘려 보내세요.”
관계 속의 미학
―나이가 들수록 유연하게 사고(思考)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통제의 욕구가 강해져서 그러는 겁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가 옳다는 느낌이 강해지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보다 정치, 경제, 사회 밖의 것들을 봅니다. 올해 총선, 대선(大選)이 있고 경제 회복이 불확실하다며 불안해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밖의 것만 바라봐서 그러는 겁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문제를 냉정하게 본 적이 있습니까? 유연한 사고를 하기 위해서, 또 요즘처럼 변화가 큰 세상에서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정말 그렇습니까? 실수를 했을 때조차 자기 자신이 사랑스러웠습니까? 아무 조건 없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존귀(尊貴)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째요, 관계의 미학(美學)을 아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관계의 미학이요.
“나는 어디서 왔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그런 식으로 20대를 올라가면 200만명이 관련돼 있습니다. 그런 무수한 존재가 얽히고설켜서 탄생한 것이 ‘나’입니다. 그중 한 명이라도 빠져 있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관계 속의 미학입니다. 모든 존재는 연결돼 있으니 서로에 대해 미워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남을 헐뜯고 미워할까요.
“생각에 생각을 보태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칩시다. 화가 나는 순간은 3분뿐입니다. 생각과 감정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머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불쾌감이 한 달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처음 화났던 그 느낌에 생각을 보태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이상한 상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상하네’라는 식(式)으로 말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크지 않은데 거기에 스스로 생각을 더하고 더해 크게 만듭니다. 이런 것 때문에 남을 미워합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법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의 화가 다스려지고, 타인에 대한 미움을 거둘 수 있습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라
미산스님의 말은 간결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기자는 인터뷰 전에 ‘선문답(禪問答)’이 오가지 않을까 다소 걱정을 했었다. 미산스님이 참선을 강조하는 ‘선방’의 주지스님이고, 불교계의 대표 학승(學僧)이어서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불교 용어나, 질문을 툭툭 던지는 문답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가 편했다.
‘옥스퍼드에서 박사를 받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미산스님이 손을 가로저었다.
“아휴, 별거 아닌 그거. 유명 대학에서 박사 받고 연구한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그것 역시 속세(俗世)의 시각일 뿐이지요.”
―하지만 학위 받은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그것은 허물이고 이름이지요. 실존이 아닙니다. 학위 받았다는 것에 얽매이는 순간, 허깨비가 되는 겁니다.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승려예요. 이 얘기는 하고 싶네요. 10년 넘게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배운 점이 많습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 교우들의 학문에 대한 진지함에 놀랐습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토론할 기회가 많았는데, 의견이 각각이었습니다. ‘저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다르다’고 하더군요.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지요.”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노력을 해야죠. 엄마, 아빠와 중학생 아들이 끊임없이 싸웁니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해서입니다. 부모는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다른 인격체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회사 사장은 내 회사를 정말 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을 전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내 회사가 잘되기 바란다면, 조금 떨어져서 각자에게 힘을 주고 느긋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요즘 말하는 ‘따뜻한 카리스마’지요. 책을 눈 바로 앞에 들이대면 활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중할수록 품 안에 가둘 생각을 하지 말고 일정 거리를 두세요. 서로 다르다는 것, 하지만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세요.”
종교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
세속에서 생각하는 ‘고품격’ 학벌에 답하기 싫었던지 미산스님의 대답이 길어졌다. 그의 다음 얘기는 ‘혜민스님’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교수가 된 최초의 한국 스님인 혜민스님은 ‘트위터’ 팔로워가 9만명이 넘는, 시쳇말로 ‘트위터 스타’ 스님이다. 혜민스님은 지난해 한국에서 지낼 때 이 선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혜민스님이 참 잘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50대 중반인데, 혜민스님은 30대 아닙니까.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지 못하는데 혜민스님은 잘 활용하고 계시죠. 종교인에게 스마트폰은 참 유용하고, 활용해야 하는 기구지요.”
―왜 그렇습니까.
“종교는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살아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자면 신(新)도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종교는 여기 있습니까.
“진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과거는 흘러갔기 때문에 ‘참’이라고 보기 어렵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아 ‘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참’은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마음입니다. 과거,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논해야죠.”
‘隨處作主’를 목표로
미산스님이 ‘참’ 얘기를 꺼냈다. ‘상도선원’의 존재 이유와 가장 닮아 있는 단어다. 1961년 12월, 한 보살의 기증으로 만들어진 백운암은 ‘상도선원’의 전신(前身)이다. 법주사와 불국사 주지(住持)를 지낸 월산(月山)스님, 평생을 독립운동과 민중교육에 힘써 온 운허(耘虛)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석주(昔珠)스님 등 당대의 큰스님들이 이곳에 기거했다. 성철(性徹)스님 이후 최고 선승(禪僧)으로 꼽히는 서옹(西翁)스님의 서울 주(主)거주지이기도 했다. 현대 한국 불교의 큰 기둥으로 불려 온 서옹스님은 특히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좌탈입망은 오랫동안 참선 수행을 한 노스님이 앉은 자세로 열반(涅槃)하는 것을 말한다. 서옹 스님의 좌탈입망 모습은 언론에 공개됐다. 서옹스님이 미산스님의 증조스님(속세 표현으로 하면 증조할아버지)이다.
“큰스님은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을 좋아하셨습니다. 불서(佛書)인 《임제록》에 나오는 말인데 ‘어느 곳이든 내가 주인이 되고, 그 서 있는 곳이 모든 참된 곳이다’는 말입니다. 제 마음의 정진 목표이자 선원의 존재 목적이 수처작주입니다.”
―누구나 ‘참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참마음,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참마음이 있습니다. 잘 모를 뿐이지요. 참마음을 발현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참선법을 배우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쉽게 참선을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갑자기 생겨서 신통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참선이고, 불교이지요.”
3평 남짓한 공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탁자, 손님용 방석 10여 개, 작은 난 하나가 전부인 미산스님의 방 벽면에는 ‘수처작주’라는 글귀가 크게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영어로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취재차, 또 개인적 관심에서 숱하게 스님 방을 드나들었지만 영어 액자는 처음 봤다.
〈this is it〉
이것은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 시인인 틱낫한(釋一行·Thich Nhat Hanh)스님이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써 준 글귀라고 했다. 미산스님은 당시 틱낫한 스님의 통역을 맡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니까요. 스님 방에는 영어 액자가 걸려 있으면 안됩니까(웃음). 틱낫한 스님에게 ‘이것이 무엇이냐(What is it)’고 물었더니, ‘이것은 그냥 이것이다(This is it)’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받은 문구예요. 선수행이 지향하는 것 중에 하나는 단순, 명료하게 살라는 겁니다. 참선은 그것을 지향합니다. 생각이 자유로우면 고정관념이 있을 수 없고, 또 모든 일을 유연하게 사고해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폰’하고 비슷합니다. 아이폰이 얼마나 단순합니까.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기술이 숨어 있지요. 모든 것이 담겨 있지만, 겉으로 표현할 때는 단순한 것이지요.”
14살 때 죽음 목격하고 선방에서 3년 살아
미산스님이 불가(佛家)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셋째 아들이 단명(短命)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열두 살짜리 아들을 전남 장성 백양사에 보냈다. 생소한 환경,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잠 못자던 그를 스님들은 품에 안았다. 절에서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주지스님 방에 심부름을 갔는데, 주무시는 것 같은 스님을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는 것이었다. 미산스님의 나이 열네 살 때였다.
“주지스님의 몸을 막 흔들다가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순간 온몸이 떨리면서 세상이 두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방황했는데, 선방에 계신 스님들이 ‘참선을 하면 나고 죽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터라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 길로 참선을 시작했지요.”
그렇게 3년, 미산스님은 선방에서 참선을 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동국대에서 강의를 들었고, 인도, 영국에 유학했다. 현광(賢光)이라는 법명(法名)을 미산으로 바꾼 것도 외국인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법명을 쉽게 바꿔도 되는 건가’라는 질문에 스님은 ‘그까짓거 뭐, 생각이 자유로워야 한다니까’라고 답했다.
불교 경전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 쉬운 언어로 바꾸겠다는 생각도 대학시절부터 했다. 미산스님이 지난 2010년에 내놓은 《미산스님 초기 경전》은 불교의 핵심 교리를 아주 쉬운 말로 풀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교는 지역, 시대를 거치고, 한자문화가 합쳐지면서 어려운 종교인 양 치부됐습니다. 한자인 불교 경전을 한국어로 바꾸면서 오히려 더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죠. 이런 생각을 바꾸려고 최대한 쉽게, 부처님이 설법(說法)하셨던 화법으로 알아듣기 쉽게 경전을 썼습니다. 어려운 종교가 아니지요.”
불교계의 대표 학승이자 생활불교를 포교하는 미산스님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복된 삶’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고, 나의 그런 기운을 타인에게 나눠 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스님은 “지난 주에는 4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서울랜드 썰매장을 다녀왔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고 했다.
꽃은 하나다
“사회가 불안합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극에 달했고, 못사는 사람들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정치적 기대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생각해야 합니다.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네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계일화(世界一花)입니다. 꽃은 하나입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흙, 비, 햇살, 바람, 벌이 필요합니다. 모든 시스템은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그 자체로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그런 다음에 내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세요. 각각의 객체가 싸우고 불만스러워하고 소외시키는 일을 버리세요.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우리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각자 이런 마음을 통해 전체적인 국민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흑룡의 해라 하지 않습니까. 격동의 기운으로 한 해를 시작합시다.”⊙
<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걸맞도록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영상위패를 모실 예정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인터넷에 접속해 조상을 뵙고 참배해 불효(不孝)·불충(不忠)의 송구함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도록 해 드립니다.>
기자는 이 문구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 가지 않아 몇 번을 읽었다. 디지털 영상위패는 뭐고, 인터넷으로 조상을 뵙는 것은 뭐란 말인가. 궁금증은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상도선원’ 주지인 미산(彌山)스님이 풀어 줬다.
“절에서 49재, 제사를 대신 지내 주곤 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을 대신해서 절에서 정성스레 제사 준비를 하지요.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가 조상을 모시는 일 자체에 불편해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상의 중요성 자체를 모른다고나 할까요. 50대 이상은 ‘나는 죽어서 제삿밥도 못 얻어먹을 것’이라고 푸념합니다. 제사 자체를 불편해하는 젊은이들이나, 이를 걱정하는 50대 모두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잖습니까. 기획을 해 봤지요. 절에서 제사 지내는 모습을 동시에 동영상으로 틀어서 제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이 모습을 보게 하자고요. 인터넷상에서 향이라도 올리고, 또 젊은이들에게는 살아생전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엮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고요.”
―시류(時流)에 맞췄다기에는 너무 파격 아닙니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신도들 중에서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젊은이들이 내 뿌리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노스님들이 들으면 난리 날 일 아닐까요.
“선뜻 쉽게 하시지는 못하는 일이겠지요. 현대인의 감성과 정서에 맞춰 불교를 포교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절을 지었습니다. 저 역시 아날로그 세대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불교가 젊어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불교라고 하면 산중턱에 자리한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여전히 떠오릅니다.
“승려들에게 자기 성찰과 수행은 기본입니다. 어느 정도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불교에 ‘보리심(菩提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보리’가 깨달음입니다. ‘보리심’은 위로 깨달음을 얻어 아래로는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마음입니다.”
유튜브에서 ‘K팝 스타’ 공연 보는 스님
미산 스님이 ‘필수품’ 아이폰을 조작중이다. |
―아이폰을 쓰시는군요. 어떤 것을 다운받았습니까.
“아이폰, 아이패드 전부 있는걸요. 이래 봬도 ‘얼리어답터’(early adapter·신제품 출시 직후 구입하는 구매자)예요. 하버드의대 교수인 크리스토퍼 거머 박사가 학회 참석차 한국에 다녀갔는데 그때 아이폰을 보여줬습니다. 저렇게 유용(有用)한 물건이 있나 놀랐죠. 다음 날로 구입하고, 아이패드가 나오자마자 샀습니다. 간단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다운받아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봅니다.”
―‘소녀시대’나 ‘아이유’ 동영상 보셨나요.
“아, K팝 스타들. 참 대단합니다. 유튜브 조회 수를 보면 우리나라 K팝 스타들의 동영상이 상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실감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경쟁력이지 싶습니다. 아이폰으로 공연을 봤죠.”
한 사찰의 주지스님과 마주앉아 ‘아이폰’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또 손가락으로 휴대폰 잠금장치를 열고, 유튜브를 클릭해 ‘소녀시대’ 동영상을 찾는 스님의 모습은 더더욱 상상이 안 갔다. 눈치를 챘는지 미산스님이 말을 이었다.
“스님이 아이폰으로 K팝 스타 공연 보는 것이 낯선가요? 왜요? 스님이라는 고정관념을 깨 보세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저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속에는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은 고정관념에 자신을 구속하지 않습니다. 고목에는 새로운 꽃이 피지 않는 법입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내려 놓고, 흘려 보내세요.”
관계 속의 미학
―나이가 들수록 유연하게 사고(思考)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통제의 욕구가 강해져서 그러는 겁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가 옳다는 느낌이 강해지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보다 정치, 경제, 사회 밖의 것들을 봅니다. 올해 총선, 대선(大選)이 있고 경제 회복이 불확실하다며 불안해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밖의 것만 바라봐서 그러는 겁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문제를 냉정하게 본 적이 있습니까? 유연한 사고를 하기 위해서, 또 요즘처럼 변화가 큰 세상에서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정말 그렇습니까? 실수를 했을 때조차 자기 자신이 사랑스러웠습니까? 아무 조건 없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존귀(尊貴)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째요, 관계의 미학(美學)을 아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관계의 미학이요.
“나는 어디서 왔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그런 식으로 20대를 올라가면 200만명이 관련돼 있습니다. 그런 무수한 존재가 얽히고설켜서 탄생한 것이 ‘나’입니다. 그중 한 명이라도 빠져 있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관계 속의 미학입니다. 모든 존재는 연결돼 있으니 서로에 대해 미워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남을 헐뜯고 미워할까요.
“생각에 생각을 보태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칩시다. 화가 나는 순간은 3분뿐입니다. 생각과 감정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머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불쾌감이 한 달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처음 화났던 그 느낌에 생각을 보태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이상한 상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상하네’라는 식(式)으로 말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크지 않은데 거기에 스스로 생각을 더하고 더해 크게 만듭니다. 이런 것 때문에 남을 미워합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법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의 화가 다스려지고, 타인에 대한 미움을 거둘 수 있습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라
미산스님의 말은 간결하고, 이해하기가 쉬웠다. 기자는 인터뷰 전에 ‘선문답(禪問答)’이 오가지 않을까 다소 걱정을 했었다. 미산스님이 참선을 강조하는 ‘선방’의 주지스님이고, 불교계의 대표 학승(學僧)이어서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불교 용어나, 질문을 툭툭 던지는 문답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가 편했다.
‘옥스퍼드에서 박사를 받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미산스님이 손을 가로저었다.
“아휴, 별거 아닌 그거. 유명 대학에서 박사 받고 연구한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그것 역시 속세(俗世)의 시각일 뿐이지요.”
―하지만 학위 받은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그것은 허물이고 이름이지요. 실존이 아닙니다. 학위 받았다는 것에 얽매이는 순간, 허깨비가 되는 겁니다.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승려예요. 이 얘기는 하고 싶네요. 10년 넘게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배운 점이 많습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 교우들의 학문에 대한 진지함에 놀랐습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토론할 기회가 많았는데, 의견이 각각이었습니다. ‘저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다르다’고 하더군요.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지요.”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노력을 해야죠. 엄마, 아빠와 중학생 아들이 끊임없이 싸웁니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해서입니다. 부모는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엄연히 다른 인격체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회사 사장은 내 회사를 정말 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을 전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내 회사가 잘되기 바란다면, 조금 떨어져서 각자에게 힘을 주고 느긋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요즘 말하는 ‘따뜻한 카리스마’지요. 책을 눈 바로 앞에 들이대면 활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중할수록 품 안에 가둘 생각을 하지 말고 일정 거리를 두세요. 서로 다르다는 것, 하지만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세요.”
종교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
세속에서 생각하는 ‘고품격’ 학벌에 답하기 싫었던지 미산스님의 대답이 길어졌다. 그의 다음 얘기는 ‘혜민스님’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교수가 된 최초의 한국 스님인 혜민스님은 ‘트위터’ 팔로워가 9만명이 넘는, 시쳇말로 ‘트위터 스타’ 스님이다. 혜민스님은 지난해 한국에서 지낼 때 이 선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혜민스님이 참 잘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50대 중반인데, 혜민스님은 30대 아닙니까.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지 못하는데 혜민스님은 잘 활용하고 계시죠. 종교인에게 스마트폰은 참 유용하고, 활용해야 하는 기구지요.”
―왜 그렇습니까.
“종교는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살아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자면 신(新)도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종교는 여기 있습니까.
“진리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과거는 흘러갔기 때문에 ‘참’이라고 보기 어렵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아 ‘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참’은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마음입니다. 과거,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논해야죠.”
‘隨處作主’를 목표로
지난 2003년 한국을 찾은 틱낫한 스님이 쓴 글귀. |
“큰스님은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을 좋아하셨습니다. 불서(佛書)인 《임제록》에 나오는 말인데 ‘어느 곳이든 내가 주인이 되고, 그 서 있는 곳이 모든 참된 곳이다’는 말입니다. 제 마음의 정진 목표이자 선원의 존재 목적이 수처작주입니다.”
―누구나 ‘참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대승불교에서는 참마음,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참마음이 있습니다. 잘 모를 뿐이지요. 참마음을 발현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참선법을 배우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쉽게 참선을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갑자기 생겨서 신통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참선이고, 불교이지요.”
3평 남짓한 공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탁자, 손님용 방석 10여 개, 작은 난 하나가 전부인 미산스님의 방 벽면에는 ‘수처작주’라는 글귀가 크게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영어로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취재차, 또 개인적 관심에서 숱하게 스님 방을 드나들었지만 영어 액자는 처음 봤다.
〈this is it〉
이것은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 시인인 틱낫한(釋一行·Thich Nhat Hanh)스님이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써 준 글귀라고 했다. 미산스님은 당시 틱낫한 스님의 통역을 맡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니까요. 스님 방에는 영어 액자가 걸려 있으면 안됩니까(웃음). 틱낫한 스님에게 ‘이것이 무엇이냐(What is it)’고 물었더니, ‘이것은 그냥 이것이다(This is it)’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받은 문구예요. 선수행이 지향하는 것 중에 하나는 단순, 명료하게 살라는 겁니다. 참선은 그것을 지향합니다. 생각이 자유로우면 고정관념이 있을 수 없고, 또 모든 일을 유연하게 사고해 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폰’하고 비슷합니다. 아이폰이 얼마나 단순합니까.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기술이 숨어 있지요. 모든 것이 담겨 있지만, 겉으로 표현할 때는 단순한 것이지요.”
14살 때 죽음 목격하고 선방에서 3년 살아
미산스님이 불가(佛家)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셋째 아들이 단명(短命)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열두 살짜리 아들을 전남 장성 백양사에 보냈다. 생소한 환경,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잠 못자던 그를 스님들은 품에 안았다. 절에서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주지스님 방에 심부름을 갔는데, 주무시는 것 같은 스님을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는 것이었다. 미산스님의 나이 열네 살 때였다.
“주지스님의 몸을 막 흔들다가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순간 온몸이 떨리면서 세상이 두려워졌습니다. 한동안 방황했는데, 선방에 계신 스님들이 ‘참선을 하면 나고 죽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터라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 길로 참선을 시작했지요.”
그렇게 3년, 미산스님은 선방에서 참선을 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동국대에서 강의를 들었고, 인도, 영국에 유학했다. 현광(賢光)이라는 법명(法名)을 미산으로 바꾼 것도 외국인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법명을 쉽게 바꿔도 되는 건가’라는 질문에 스님은 ‘그까짓거 뭐, 생각이 자유로워야 한다니까’라고 답했다.
불교 경전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 쉬운 언어로 바꾸겠다는 생각도 대학시절부터 했다. 미산스님이 지난 2010년에 내놓은 《미산스님 초기 경전》은 불교의 핵심 교리를 아주 쉬운 말로 풀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교는 지역, 시대를 거치고, 한자문화가 합쳐지면서 어려운 종교인 양 치부됐습니다. 한자인 불교 경전을 한국어로 바꾸면서 오히려 더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죠. 이런 생각을 바꾸려고 최대한 쉽게, 부처님이 설법(說法)하셨던 화법으로 알아듣기 쉽게 경전을 썼습니다. 어려운 종교가 아니지요.”
불교계의 대표 학승이자 생활불교를 포교하는 미산스님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복된 삶’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고, 나의 그런 기운을 타인에게 나눠 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스님은 “지난 주에는 4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서울랜드 썰매장을 다녀왔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고 했다.
꽃은 하나다
“사회가 불안합니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극에 달했고, 못사는 사람들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정치적 기대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생각해야 합니다.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네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계일화(世界一花)입니다. 꽃은 하나입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흙, 비, 햇살, 바람, 벌이 필요합니다. 모든 시스템은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그 자체로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그런 다음에 내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세요. 각각의 객체가 싸우고 불만스러워하고 소외시키는 일을 버리세요.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우리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각자 이런 마음을 통해 전체적인 국민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흑룡의 해라 하지 않습니까. 격동의 기운으로 한 해를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