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 이야기
작성자洪敏植(12會)|작성시간23.01.27|조회수140목록댓글 2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는 올해 우리 나이로 104세로, '국내 최고령 철학가이자 수필가, 교수'라는 3관왕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백세를 넘기면서 대한민국의 '장수 아이콘'이 된 건강 비결이 있었다.
김 교수는 새벽에 기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네 뒷산 등산은 물론, 우유와 호박죽, 계란반숙, 감자반쪽,
각종야채 등을 바탕으로 한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고 또한 꾸준한 관리로 지팡이도 짚지 않는다.
특히 김 교수는 건강의 비결로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을 꼽았다. 지금도 한 해에 진행되는 강연 횟수만
100여 건 이상에 달하고 "삶은 죽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 내가 동양폴리에스터(효성 그룹)다닐 때 세무 담당으로 김 교수가 당시 연대 교수로 사내 교양
강좌의 단골 강사였다. 1시간 강의료 30만원을 자유직업소득으로 소득세 1% 원천징수했다.
강의료의 경우 일시적인 소득인 경우 기타소득(소득세의 25% 원천징수)으로 간주하고 자유직업소득은
말대로 강의가 직업인 경우에 해당되는데 당시에도 김 교수께선 강의를 직업으로 하셨다.
김 교수는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는 연세대에서 30여 년간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지칠 줄 모르는 강의와 강연으로 대중과도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 왔다.
일제 치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만으로도 웬만한 이의 인생 이야기와는 중량감이 다르다. 그 모든 것이
특별한 이유는 100년을 훌쩍 넘기고도 그가 아직 왕성하다는 점은 경이롭고 감동적이다.
김 교수의 놀라운 점은 백세인맥이다. 1920년생이니 근현대사를 모두 겪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인맥은 도산
안창호 선생, 시인 윤동주, 작가 황순원, 김수환 추기경, 안병욱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도산 선생님이 독립운동으로 투옥 중 건강 때문에 가석방 돼 고향에 머무실 적에 교육활동을
하시던 말씀은 내 가슴에 깊숙이 들어왔다"면서 "지금까지도 내 마음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윤동주, 황순원은 김 교수와 평양 숭실중학교 동창이었다. 윤동주가 만주에 있다가 숭실중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그보다는 3살 위였다. 그는 "나는 키가 작으니까 앞에 앉고 동주형은 좀 뒤에 앉았다.
그는 "시를 빼면 사람이 없어질 것 같은, 시로 가득찬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고 했다. 둘이 헤어진 계기는
신사참배 때문이다. 반대한 김 교수가 자퇴를 한 반면에 윤동주는 만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개신교 신자인 김 교수가 카톨릭계 대학교 3학년 때 1학년 후배로 김수환 추기경이 들어 왔다. 교리보다,
인생을 이야기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하나의 나무에서 올라온 두 개의 가지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믿는 종교는 달랐지만, 두 사람이 믿는 진리는 하나였던 것이었다. 김 교수는 "종교는 다르지만 정말
존경스러웠다. 좀 더 일할 수 있는 분인데 나보다 먼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김 교수와 함께 김태길·안병욱 교수는 철학계의 삼총사로 '관포지교(管鮑之交)'다. 동일한 분야의 학문을
전공했고, 같은 영역에서 50년 동안 함께 활동한 철학가이자 수필가로서 명망이 높아었다.
안병욱 교수에 대해 동갑인 김 교수는 "서로 주고받으며 성장하며 존경한 50년 친구였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내가 20대 때 좌우명인 "뜻있게 적극적이고 합리적이자"는 안 교수에 영향받아 지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중앙고 교사였던 김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아시아경제 '굿브레인
2022 국제콘퍼런스' 기조연설자로 나와 '백세인생과 백세철학'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백세시대에서 인생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봤다. 첫 단계는 교육을 받으며 자신을 성장
시키는 30세 이전까지, 두 번째 단계는 일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는 환갑 즈음까지다.
세 번째는 노년을 맞이하는 시기다. "대학 정년퇴직하던 65세까지 직장을 위해 살았는데 세 단계 중 어느 때가
가장 소중한가 생각해보니, 열매를 맺어 사회에 줄 수 있는 세 번째 단계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는 삶의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50~60대쯤 되니 기억력은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사고력은 더 강해졌고 60~75세까지는 성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체기능은 떨어졌지만 95세까지도 정신력은 그대로였다. 지금의 건강도 정신력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고 "이제는 90세까지는 정신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건강한 백세인생을 위한 3가지는 공부를 계속하고, 일을 잃지 말고, 사회에 관심을 두라"고 말했다. "90세까지는 늙었다는 생각 없이 살아달라. 절대다수이면 행복한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