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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창면
가. 신창면 마을 1 (궁화리)
1) 조사일정
1994. 12. 17., 한혜인 기록
10시40분경 오목리 노인회관을 나와 사전조사 때 조사한 궁화리로 향했다. 궁화리 입구에 오목국민학교가 있어서, 그곳에 오래 근무한 교사 이수병 씨에게 구연을 부탁했으나 자료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11시45분경 궁화리 노인회관에 도착하니 10여 명의 노인들이 화투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노인회장이 그곳에 있긴 하였으나 협조적이지는 않았다. 여러 노인들의 추천으로 그곳에서 안웅중 씨를 다른 방으로 모시고 가서 <순흥 안씨 유래>, <순흥부사 이보흠의 행적>, <순흥의 패도(貝島)>, <중국에서 온 3남매>, <안일관의 효자정물>, <궁화리의 유래>, <고불 맹사성의 생일잔치에서 돈 번 낚시꾼> 등을 구연해 주었다. 역사적인 것만을 구연해서 더 이상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서 노인들이 많은 방으로 왔다. 달리 구연에 참여해 주는 노인이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 고담이나 다 이야기해도 된다는 조사자의 설명을 듣고, 안웅중 씨가 <도둑이 개과천선한 이야기>를 구연해 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정교식 씨가 <동서간의 우애>를 구연해 주었다. 안웅중 씨와 정교식 씨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또는 서로 상대방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웃으면서 안웅중 씨가 <선을 베풀고 좋은 묘자리 잡아 부자된 이야기>를 구연하였고, 또 정교식 씨는 <호랑이 도움을 받아 효도한 이야기>를 구연하였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안웅중 씨가 <효성으로 어머니 병 고친 형제>를 구연해 주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열심히 구연해 2시20분에 노인회관을 나서서 숙소인 오목리 노인정을 향했다.
2) 마을개관
【신창면 마을 1】
336-880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궁화리.
1994. 12. 17., 최소정 조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논 사이로 구불구불 나있어 정취가 있고 낭만적이다. 앞마을과 뒷마을로 나뉘어져 있고 큰 교회 2개가 마주 보고 서 있어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노인정은 작은데 노인들은 많아 노인정이 가득 찬 느낌이다. 마을이 작아 학교도 공공기관도 없다. 자연 부락 이름은 금골, 장승불이, 국시미 이렇게 셋이나 있다. 총인구는 294명으로 농가가 87가구, 비농가가 6가구로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이 마을도 남자가 143명, 여자가 151명으로 여자가 역시 많다. 보기에는 발전이 덜 되어 보이는데 특용작물과 과수농사를 많이 하고 축산업에 종사하는 가구도 많아 전반적으로 잘 산다.
3) 구연자
【궁화리 구연자 1】
신창면 궁화리 1구 459번지, 안웅중(安雄中), 남, 77.
1994. 12. 17., 전정옥 조사.
안웅중 씨는 11대조 할아버지가 순흥에서 낙향한 후 12대째 궁화리에 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꾼으로 꼽을 만큼 이야기 솜씨가 대단했다. 조금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진행해 갔으나 줄거리는 잡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얼굴에 비해 코가 유난히 컸고 머리는 반쯤 벗겨졌으며 귀가 당나귀 모양 컸다. 할아버지는 안씨가 단종복위 노력을 하다가 순흥에서 쫓겨난 이야기며 궁화리의 옛 지명과 맹정승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구연 도중 손 동작을 많이 하며 격한 표정을 지었고 조상의 영웅담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할아버지는 안씨에 대해 자긍심이 대단했으며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청중들은 몇 번 들은 이야기라 그런지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안웅중 씨는 정교식 씨가 옛날 이야기를 할 때 자신도 아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며 <도둑이 개과천선한 이야기>, <선을 베풀고 좋은 묘자리 얻은 이야기>, <효성으로 어머니 병 고친 이야기> 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궁화리 구연자 2】
신창면 궁화리 1구, 정교식(鄭敎植), 남, 80.
1994. 12. 17., 전정옥 조사.
정교식 씨는 이번 답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다. 해방 전부터 아버지와 궁화리에 살았다고 한다. 몸이 뚱뚱하며 머리가 많이 벗겨져 있었고 얼굴이 굉장히 빨갰다. 귀가 굉장히 컸으며 치아가 별로 없어 발음이 분명치 않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할아버지는 <동서간의 우애>와 <호랑이 도움받아 효도한 얘기>를 해 주었다.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고 거짓말 이야기한다고 경찰한테 말하지 말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은 착해야 복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 분은 나의 답사 구연자 중 가장 애처롭고 불쌍해 보인 분이었다.
4) 설화 자료
【궁화리 설화 1】
신창면 궁화리 노인회관, 1994. 12. 17., 한혜인, 전정옥, 최소정 조사.
안웅중(남, 77)
효성으로 어머니 병 고친 이야기
* 정교식 씨의 구연이 끝나자 구연자 이웃에 언젠가 스님 한 사람이 찾아와서 들려준 얘기라면서 시작했다.
궁화, 오목2 앞 뒤
그 대사가 얘기하기를 (조사자: 예.) 평안도 어디 사람이라 그래. (조사자: 예.) 아니. 얘기 얘기의 주인공이 의술이 용해. (조사자: 의술이요?) 에 근디 어느 환자가 와서 모셔 갈려면 꼭 송아치 한 바리 값이머는 땡 아니다. (조사자: 송아지 한 마리 값이요?) (청중: 돈 백만 원은 있어야지, 결국은.) 그이께 어느 누구든지 그 분을 데러 갈려면 송아지 한 마리 값을 내라. (조사자 : 예.) 그럼 송아치 한 마리 갭이 쉬운 게 아니거든 그게. (조사자: 그렇지요.) 안 내면 안 돼. 그 (발음불명) 이웉에서 형제들이 살고 있어. (조사자: 예.) 살구 보는데 형도 잘 살고 그 사람도 괜찮아. 다 괜찮게 사는데 그 어머니가 병객이여. (조사자: 병객? 병들어 있다. (조사자: 예 예.) 해소병이여. (조사자: 해도요?) 응. (조사자: 예.) 그런데 송아지 한 마리 갑이 아니먼 안 봐 줘. (조사자: 예.) 그러이 어떤 분이 (조사자: 예.) 안이서 (발음불명) 용하긴 용한디 갑을 얘기하먼 소 한 마리 값 내라. 안 간 거야. (조사자: 못 가죠.) 응. 그 시어머니 되는 자가 그 며느리가 그 애 데리고 날품도 파고 다니면서 약은 (테이프 뒷면으로 교체) 그 뒤로 그 며느리 (조사자: 예.) 그 의사의 며느리 (조사자: 예.) 며누리가 그렇기 와서 빌고 해도 안 되는 시아버지가 아주 미워 죽겠어. (조사자: 그렇지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 응. 안 사람 안 문 거기에설랑 서서 비다 빌다 그냥 회정해서 돌아가는 것을 보구만 됐어. 가는 걸 며느리가 이렇게 냉겨다 보고 섰어. (조사자: 네.) 섰는데, 으응 하면설랑 시아버지가 으응 남 잠도 못 자게 소 한 마리 값가지고 오지도 않구설랑 잠도 못 자게 그라구 있, 약이나 어려운 겐가 (발음불명) 태워서 멕이면 금방 나을 늠의 거. (조사자: 응.) 남 잠만 자, 한다구. (조사자: 예.) 아이 (발음불명) 담박질로 쫓아가서 (조사자: 예.) 가서 뭐 인저 말을 해서 갈쳐 줬어. (조사자: 예.) 밝을 때야. 가서 인삼을 좀 칼루 (조사자: 긁어.) 가이 긁어가지구 그 늠을 태워 가지구 그 재를 물이도 띄어설랑 묵어. (조사자: 응.) 시아버지 하는 거 들었지. 해보라 그랬어. 아 그래 가설랑은 그걸 해 멕여 봤어. 금방 나아. 금방 나아. (조사자: 아.) 먹게 무섭게. 그 뒤 그런 사정이 또 있었다 이 말이여. (조사자: 예.) 거기 그냥 (발음불명) 해서 잘 거기 했는데. (조사자: 예.) 거기도 없는 저기 기달리다 또 그냥 가는 기여. (조사자: 아.) 그 늠은 오래 빌도 않구 몣 마디 해 보다가 안 니께 그냥 가는 기여. (조사자: 예.) (발음불명) 머 먼저 얘기도 들었은께 뭐 그 몇 마디 해 나았이니 그에 해 봤어. 그냥 갔어. 가니께 이 큰 며느리가 쫓아가서 와서 저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아이 정신이 났으니 그렇게 해 보라구. (조사자: 예.) 그에 해봤어. 그냥 직사해 버렸어. (조사자: 아~.) 그레 인제 그 말이 안 날 리가 없지. (조사자: 그렇죠.) 그러이께 아 며느리 그냥 뒀다간 큰 일 나갔거든. 너 이리 앉아 청수백이다1) 침을 한 방 놔가지구 그대로 말을 못해여. 벙어리 맨들어 버렸어. 그렇게 그렇게 고약한 늠이야. 그러나 자기 어머니 병은 못 고쳐. 안 고쳐줘. (조사자: 응, 왜 그런가요?) 그 실마리가 나와. (조사자: 예.) 그래 인저 저는 의술을 그렇게 잘 알면서도 부모의 병 난 것 고쳐줘야 되는데 그 작은아들 집에 가서 살았다는 말이여. 그러이 작은아들이 가서 그래 형님은 이 근방서 유명하다는 의사가 남의 병은 고쳐 주면서 내 어머니 자식들이 못 고쳐 드리고설랑은 그러냐고. 그랬더니 송아 송아치 한 마리 가져 와라. 얼마나 속상하겄어. (조사자: 그렇죠. 형제 그 같은 부몬데.) 그에 “예이 죽일 놈아. 나만 어머니냐. 너는 어머니 아니 그에 죽일 놈아. 너 같은 놈하고는 상대를 하먼 자살한다.” 지기 당시 자기 아내서 애들은 친정으로 보내 버리고 모두 (발음불명) 어머니 병을 못 고쳐. 이렇게 (발음불명) 업구 댕기면서 그 해 가면서 어머니 좋다는 약 해드려가면서 낫어야지. 한 번은 온 (발음불명) 볏은 상당히 내려쬐서 덥기는 불볏이 내리 쬐는데 노인네 그 어머니는 저기저기 하이께 축 늘어져가지구 업구설랑 그 고개를 넘게 됐어. 그에 있다 쫓아 업으매 어머니를 모시고 인제 산등성이를 올라갔는데 나뭇꾼이 있다 “거기다 뉘어다 자게. 땀이 저기 하니께.” 어머이는 목이 말르다고 하네. 그래서 그 밑에 산꼬랑 뒤로 물을 찾아내려 갔는데 그 때 가물었던지 물이 없어. 찾아 댕기다가 한참 댕기다 이렇게 보니께 그 뒤쪽에다 허연 바가지 같은 게 있는디 그 안이 물이 조끔 괴였다 이거여. 그러이 그릇이 있이야 그걸 따러다 드리지. (조사자: 예.) (발음불명) 그것째 그리면 드럽다고 안 잡수실 거고. 가만히 보니께 손수건이 하나가 있어. (조사자: 예.) 그래서 그 손수건에다 그 물을 전부 묻혔어. 묻혀가지구서 가서 “아이구 골짜기에 물이 없시우. 그런데 물이 자작자작한 데가 있어설랑은 수건에 이렇게 해 왔으니 어머니 들어 보시우.” (발음불명) 수건을 갖다 쭉 짰어. 그래서 그 물이 몇 방울이나 됐던지 그 뭐 한 방울이라고 됐게야? (조사자: 네, 그렇지요.) (발음불명) (조사자: 예.) 그래가지구서 인제 가시자구. 아 그거 자신 뒤로 “아이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 (조사자: 예.) 기운이 나는 것 같으니 나 좀 걸어보자, 내려 가는 길이니.” 아 걷는 거야. 이 인제 그날두 저 업구 갔던데 그렇게 지냈는데 점점 차도가 있어 가지구 야 아무리 쫓아가든 못하게 정도로 됐네. 그에 병을 고치고 나니께 큰 아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여. 그래 인제 그것도 자식이냐구 하면서 보고 싶으먼 그냥 (발음불명) 근디 노상 노래가 큰아들 보고 싶다는 거야. 하도 그라니께 그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그 그러면 들어가시지도 말구 나는 동구 바깥에서 기다릴테니 잠깐 가서 얼굴이나 보구 되돌아 오시우. 나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그에 걸어 들어갔어. (조사자: 예.) 그이께 큰아들이 (발음불명) 막 쫓아 나오네. “들어 가셨다·····.” “난 못 들어간다. 여기 안 올 거인데 내가 하두 저기 하니께 네 동상이 잠깐 니 얼굴만 보고 와라.” 그에 되돌아 어떻해. (발음불명) 아우 있는데 비는, 무릎 꿇구 동상에게 사죄해. “어머니 병환은 내가 약을 못 구해서. (조사자: 예.) 못 고쳐 드린 게 아니다. (발음불명) 어머니 병환은 천 년 두골에 쌍룡수가 아니면 (조사자: 천 년 두·····.) 두골 (조사자: 두골에.) 사람의 해골에 (조사자: 아, 천 년 두골에 있는 물. 예.) 천년 묵은 두골에 그 쌍룡수라는 게 있어. (조사자: 예.) 그 물을 구해야 어머니 병을 고치는데 그걸 어디 가서 구하느냐. 동상 보구설랑은 이 동생은 정성이 지극해. (조사자: 예.) 동상이 부애를 질러줘야 어머님을 모시고 고생 고생 끝에 동생이 그 약을 저기 하니께. 그래서 내가 알먼 뭐 하느냐. 약이 없는데. (조사자: 예.) (청중: 그게 다 거짓말이고.) (웃음) 동생네가 비는 어머니에게 비는 거야. 그러니께 동생이 가만히 생각하니께 사실이 그렇거든. (조사자: 그렇죠.) 그래서 어머님이 형님 집에 들어가서 살어야겠다고. (조사자; 예.)
【궁화리 설화 2】
신창면 궁화리 노인회관, 1994. 12. 17., 한혜인, 전정옥, 최소정 조사.
정교식(남, 80)
호랑이 도움받아 효도한 이야기
궁화, 오목2 앞
옛날 5월달이먼 양력으로 7월 되나? (조사자: 예.) 시방 감이 없어(조사자: 예.) 옛날 없었어. 근데 저의 어머니란 사램이 감을 그러고 찾드레야. 감을 좀 먹었으면·····. (조사자: 예.) 그러이 감을 암만 사러다 시장으루두다 이리저리 댕기야 감이 있어야지. 못 사오 잖아. 하루 저녁은 (조사자들이 일제히 구연자를 바라보고 있자) 왜 쳐다봐? 나는 참말 말하는 사람이지 거짓말 안 해. (조사자: 웃음) 나는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여. 그에 감을 찾으러 다니다가 인자 저녁이 인자 못 찾구서 인자 마당 끝에 와서 안 앉아가지고 있으니께 호랭이 호랭이 다 무섭지.(조사자: 예.) 호랭이 사람 잡아 먹으니께. 그게 서픗하고 앉더래아.(청중이 “참 거짓말도 잘해야.” 하자 일제히 웃음을 터뜨림.) (조사자: 네,그래서요?) 그래서 호랭이를 타구서 (조사자: 예.) (발음 불명) 항상 떨리잖어(조사자: 예) 그에 인자 거기서 내리니께니 이 궁뎅이를 빼며 내리라고 하더래. 내려가지고 있으니까닌 어딘지도 모르지. 동쪽인지 서쪽인지고 모르고 내렸는데 아 누구시길래 밤이 오래? 그 때는 여름 6월달이니께 아즉 한여름이지(조사자: 예.) 그러니께 밤이 찾는 아니 그 지나다가 여기 와서 떡 섰는데 어떻 할 수가 없었어. 불을 켜 놨, 불을 켰는 거지. 그대로 들어가서 잘 살더래. 살기는 있으니 얼매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더니 오늘 저녁에 우리 어머니 제사니께 제사 다 지내고서 나왔어.(조사자: 예.) 나왔는데 제서 차린 거 차려 와야 되잖어? 손님이 왔으니께. 근데 골고루 다 차려 왔는데 감을 몇 개를 놨더랴 (조사자: 응~.) 거다가 자기가 찾는 감을,(조사자:웃음) 감을 찾아서 이렇게 댕꼈는데 감이 왔으니께 이걸 좀 가져갈 생각을 다, 먹을 건 생각 안 하고 저거 한께 염려하, 잡수시어. 감은 우리 그제는 놔 두머는 많이 결단 나더니 올해는 감이 풍족하게 남았어. 감 풍족할끼어. 그라면서 인자 들어가더니 그 찾는 놈의 감이 한 삼십 개를 담어 가지고 나왔더랴.(조사자: 예.) 그래서 인자 어덴지도 모르지 인자,범이 업어다 놓았시거시니 (조사자: 예, 그런데요?) 먹는 거는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지만 인자 그 싸가 인자 저기 어머니 아버지 인자 가지고 나왔는데 나와서 인제 문 앞에 와서 앉 저기 이렇게 둘러둘러 하니게네 그 범이 또 나왔더랴.(조사자: 예.) 그래 궁둥이를 또 디밀더랴 인자 (조사구: 타라구. 예.) 타라구. 그 간 큰 인자 탔는데 뭐 순식간에 범이 그 얼마나 날라. 그래서 그 범을 저기 구해준 감을 자기 어머니 저기 했다는 그런 얘기고. 그랬다는 얘기야. 그래서 효도한 기지.(조사자: 예.) (청중: 그럴듯한 얘기를 해야지.) (잡담으로 소란스러움)
나. 신창면 마을 2 (남성리)
1) 조사일정
1996. 12. 16., 유정 기록
숙소인 읍내리에서 오후 2시 50분에 출발하여 남성 2리에 도착하니 3시 20분이었다. 그런데 노인회관은 문이 잠긴 채 아무도 없었다. 과수원이 많은 마을이라 겨울인데도 일거리가 많아서 노인들도 노인회관에 나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3시 30분에 남성 1구를 향해 출발하여 4시에 도착했다. 노인회관을 들어가니 노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화투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화투에 몰두하여 조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화투를 하는 노인들 중 한 분에게 몇 차례 부탁한 끝에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덕준 씨가 <솔거의 소나무 그림>, <선녀와 나무꾼>, <혹부리 영감> 등을 구연해 주었다. 그때 커피를 내와서 잠시 마시고 난 후 <금도끼와 은도끼>, <효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대부분 동화나 TV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이어서 자료적 가치는 크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2) 마을개관
【신창면 마을 2】
336-880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1996. 12. 16., 지명현 조사.
남성리는 3구로 나뉘어 있는데, 한 쪽은 농가 주택이 띄엄띄엄 있어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라는 인상을 주는 반면 다른 한 쪽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공장도 여럿 들어와 있어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수가 자리 잡고 있어서 경치가 아름답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특히 2구에는 과수원이 많다. 대부분 과수원 아니면 논농사를 한다. 젊은 계층이 적고 노인층이 많으며 교육시설은 전혀 없다. 종교는 대부분 불교를 믿고 있으며, 카톨릭 신자도 약간 있다. 전래하는 민속행사는 정월 대보름에 호수 옆 큰 버드나무에 제사지내는 ‘방죽제’가 있다.
3) 구연자
【남성리 구연자 1】
신창면 남성리 1구 509-12, 김덕준, 남, 79.
1996. 12. 16., 서화일 조사.
현재 벼농사를 지으며 서당 훈장을 하고 있다. 28살에 이곳에 와서 51년 정도 살고 있고 학력은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 외모상의 특징은 대체로 검은색 머리와 눈썹을 가졌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져 있고 피부는 약간 검은 편이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많고 턱 주변에 특히 주름살이 많다. 키는 작은 편이다. 구연 시 웃음이 나올 때면 입을 다시고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오른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구연하고 왼손에는 동전을 들고 만지작거리면서 구연한다. 시선을 조사자들에게 주지 않고 자주 화투판을 넘겨다 보았다. 주위의 몇몇 청중들은 화투를 치면서 종종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대부분 화투에 열중하거나 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다소 시끄러운 편이었다.
구연자료는 <솔거의 소나무 그림>, <선녀와 나무꾼>, <혹부리 영감>, <금도끼와 은도끼>, <효자 이야기> 등인데 대부분 동화나 TV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이었다.
4) 설화 자료
【남성리 설화 1】
신창면 남성리 1구 노인회관, 1996. 12. 16., 유정, 서화일, 지명현 조사.
김덕준(남, 79)
혹부리 영감, 솔거의 소나무 그림, 선녀와 나무꾼, 금도끼와 은도끼, 효자 이야기.
남성, 죽산, 신동 1 앞
혹부리 할아버지가 혹부리 사 사람이 있었어. (조사자: 아~.) 혹부리 앵 혹부리가 있었는데 나무를 하러갔다구, 혹부리가. 나무를 하러갔는데 나무를 가설라므네 해가지고 아주 멀릴 갔어, 아주. 먼 산에 갔어. 나무를 해가지고 오다오다 못 오구서 빈집이서 잤다구. (조사자: 예.) 에 나무짐을 내 내려놓구서 아 밤이 아슥아슥하니깐 노래를 불렀단 말야, 거기서. (조사자: 예.) 혼자서는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응. 노래를 불르는데 아 저기서 쿵쿵쿵 소리가 나. (조사자: 예.) 엥. 아 가만히 보니 도깨비 한 놈들이 왔어. 도께비들이 죽 몰려와가지구서는 “아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났냐?”구 해가지고, “아 내 혹에서 난다.”구. 응. 아 혹에서 그런 소리가 난다고 하니께, 아 이놈들이 거기서 그런 소리가 난대니깐 혹을 뚝 떼어가지고 갔다구. (조사자: 도깨비가요?) 응. 도깨비가 혹을 떼갔어. (조사자: 예.) 그랬더니 아 사실 혹이……. (웃음 섞인 소리여서 발음불명) 집이 와서는 동네 사람들 보구 했다구. “나 나무해가지고 오다가 그 빈집이 있길래 거기서 자는데 아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나 내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어디서 나냐구 해서 내 혹에서 난다구 하니께 혹을 떼갔다.”구. 그러니깐 그 동네 혹부리가 또 하나 있었다구. 그 사람이 “야 나도 혹 떼게 혹 떼야겠다.”구. 하하. 그럼 혹 떼야겠다구 그저 나무를 하러가서는 나무를 해 가지고는 일부러 그 곳에서 잤다구. (조사자: 아~.) 거기서 자면서 또 노래를 불렀어. 노래를 불르니께 아 이눔의 도깨비들이 우루루 몰려와서는 “아 그런 소리가 어디서 나느냐?”고 그러니께 “하하, 아 내 이 혹에서 난다.”고 하니께 (조사자: 또?) 아 이눔이 거짓말 한다구. 어 그저께 하 하아 거기서 난데니 가져갔더니 아 그런 소리 한나 안 나드라. 해설라므네 또 혹을 마자 이짝에다 붙여줬다구 이짝 혹에다는 (조사자: 두 개 네요?) 그래. 쌍혹부리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어. 다 한 게야.
옛날에 솔거라는 사람이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 솔거가 그림을 갔다가 그 소나무를 가지구서 그 어느 절이, 아이고 절 이름을 잊어먹었어. (조사자: 이름은 모르셔도 돼요. 얘얘.) 무슨 절. 절 벽에다 갔다가 그 그림을 붙여났다구 붙여났는데 참새고 무슨 새들이 그기 참말 소나문줄 알구서 그 그림에다 와서 벽에 부딪혀 떨어지고 떨어지고 응. 그랬다는 옛날 얘기가 있어. (조사자: 아~.) 그것도 옛날에는 그게 저 왜정 때 응 왜정 때 저 그때는 보통학교라 그 했어. 보통학교 보통학교 때 그 교과서에서 있던 얘기야. (조사자: 보통학교 교과서요?) 음 옛날에.
이거두 젊은 총각이 장개들기 전에 총각이 (조사자: 예.) 나무를 하러 산엘 갔어.(조사자: 예.) 응. 산엘 가설라므네 음 나무를 하는데 음 나무를 하는데 사슴이 하나 막 달려와 그 사람 앞으로 달려와서는 오는, 오는걸 갔다가 아 그걸 갔다가 그 옛날에는 아마 사슴들이 말을 했던지 살려달라고 하니께 나무 속에다가 뭍어 났어. 나무를 덮어가지고서, 나무를 긁어서는 인제 나무를 긁어서는 수북이 쌓났던, 그 그 사슴을 덮어났어. 그 동안 그 뒤로 포수 왜 사냥꾼 에 노루 저 사슴 잡으러 쫓아 왔다구. 포수가 쫓아 오는데 응 쫓아와봐서 물어봤다구, 그 나무꾼 보구서, 응? 여기 저 사슴 오는 거 못 봤냐구. 못 봤다구 그랬다구. 응. 못 봤다구 하니께 그걸 찾으러 가삐랬어. 그 댐에2) 이 사슴을 나무를 다 헤쳐서 그 응, 그 놈을 열어줬다구. 열어주니께 사슴이 그냥 안 가고 그 총각 보구서 얘기했어, 응? 저 요기요 마을에 들어가먼 응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을 할 테니께 거기가서 선녀의 옷을 감차 오라고3) 했어. (조사자: 아~.) 어떤 선녀도 하나 이제 제일 이쁜 선녀를 골라서 허허 얼른 감쳐라고 했다구. 그래서 아참 그 하는 그 사슴이 말하는 대로 거기 가보니께 아 정말 선녀들이 아니 거 와서 목욕을 한단 말이여. 연못이 있는디 그래 으흠. 목욕을 하는데 그냥 가서라므네 옷 하나 감췄다고 (조사자: 아~.) 하나 숨겨뒀어. 그 그래 숨겨 놨는데 아 선녀들이 일어나있다. 한곳에 숨어서 보노라니께 내 나와서 이제는 목욕도 하고 나와서 옷들 다 입었는데 한 선녀가 옷을 좀 옷을 하 없으니께 못 갈게 아녀, 못 올라갈게 아녀? 그래니께 그 하나는 떨어졌어 .(조사자: 음.) 그 댐에 그게 날개옷이라는 게야. 날개옷 뭐냐믄 이 속에 옷은 요런 거 다 입구 날개옷이 없었다구 (조사자: 녜.) 그래 날개옷을 그때 줘야 이게 이 날개옷을 찾아줘야 올라가는데 에 하늘에 올라가지 못혔지. 그래가지고서 그 총각이 그 선녀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 응. 그러니께 그 새악시를 삼았지.(조사자: 아~.) 응. 그렇게 해서 선녀랑 살았어, 그 나무꾼이. 그리이 이제 사슴을 살릴 때는 살려줄 때는 사슴이 그런 이 얘기를 그랬는데 그랬는데 아아 집에 와설라무네 사는데 아들을 쌍둥이를 낳았어. 아들 하나 둘 둘을 낳아서 하나 낳고 둘 낳고 응.(조사자: 쌍둥이가 아니고요?) 둘 낳다고. 둘 낳는데 그래는 그 사슴이 이야기 해줘서. 그 이제 애 셋 낳기 전에는 그 날개옷을 주지 말라고 그랬거던, 응. 사슴이 그렇게 얘기 해줬는데 아 둘 낳는데 자꾸 보채네, 그 그 좀 날개옷 달라구. 둘씩 낳고 내가 살았는데 자꾸 날개옷을 달라고 허니께 둘 낳는데 줬다구. 주니께 그 날개옷을 입고서는 몰르게 밤이4) 몰르게 날개옷 입고서 애는 한쪽에다 하나씩 둘을 끼고서 그래 올라갔다구. 그래 연못에 가서는 매일 그러면 하늘을 오려다 보고서는 가설라므네 아 막 빌었어. 저기 우선 옛날에 호랭이 그 저저 그렇게 가 빌으니께 하늘에서 참 동애줄이 내려와. 아 동애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구. 하늘에 올라가서 그 여자를 만나가지고 하늘에서 살았어.
연못가서 크다란 나무가 하나 서있어. 응. 나무가 서 있는데 그걸 해다 떼라구 비어다 뗄라구 가설라므네 도끼를 가져와 그걸 비었다구.5) 비어가선 그게 그만 도끼가 놓쳐가지고선 그 연못에 도끼가 들어갔어. (조사자: 예.) 응. (조사자: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응? (조사자: 그래서요?) 아 들어갔는디 아으 난데없는 어떤 아주 머리 하얀 백발 노인네가 그 도끼를 들고서는 물에서 나왔어.(조사자: 예.) 도끼를 두 개를 들구 응 은도끼 이 이 인가 아마 금도낀가 은도낀가 하구. 또 그 저 자 그 사람 비던 도끼하고 두 개를 갖고 나왔다구. 갖구 나와서 “이게 네 도끼냐, 이게 네 도끼냐?” 하니께 그래 이 은도끼는 제 도끼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고 (조사자: 예.) 응 금도끼는 응 참참 쇠도끼 집으신 것 이게 내 도끼라 하고 그래. “아주 양심이 반듯하구먼.” 그랬다구. 그 은도끼하고 다 줬다구 (조사자: 은도끼까지요?) 그럼. (조사자: 어머.) 그래 부자가 되지 않았어? (조사자: 예.)
옛날에 옛날에 (조사자: 예.) 어 저 그 시골서 참 농사짓고 아주 어렵게 사는 사람인데 (조사자: 예.) 아주 늙은 어머니 노모를 갖다 모시고 사는데 응? 모시고 사는데 그게 애가 하나 있어. 애가 하나 있는데, (조사자: 예.) 노모. 효자야 효자 효부라구, 내외가. 효자 효분데 이 애가 한 아마 두세 살 아마 세 살이구 두 살이구 이렇게 먹은 앤데 그 어머니 무슨 괴기 같은 걸 사다 극진히 해드리먼 애가 다 뺏어 먹어, 애가. (조사자: 예.) 그래 어머니가 잡숫질 못해. 애가 다 (조사자: 예.) 뺏아 먹구, 응? 그르니께 아주 어머닌 그케 잘 잡숫질 못 허니께 말, 말른다구. 그래, 돌아가시문 다시는 어머니는 이, 구하질 못하잖아, 난 어머니는. 그런데 그 자식은 그거 하나 참 그 앨 갖다 없애문 이? 또 나문 된다구 (조사자: 예.) 그래서 이 애를 겠다가 갖다 어디 산에 갖다 어디 갔다 묻는다구,(조사자:예.) 살은 노무 애를. 아 그래 어머니는 돌아가시문 다시 못 생기구 못 얻어두 응? 자식은 또 나문 된다. 그래서 두 내우가6) 이 애를 어 안 없애겄나 하구. 남자는 도구 밭 팔 도구 같은 것을 사리나무 곡굉이 같은 걸 가지구 산에 묻으러 갔어어. 애를 묻으러 갔는데 가서 이제 묻을라구 땅을 팠어. (조사자: 예.) 잇 땅을 파니까 무슨 소리가 나 (조사자: 예.) 파보니께 아주 크으다란 무지하게 커다란 노무 저 종을, 왜 크은 절에 왜 그 종 있잖아? 그게 순전히 그게 놋쐬야 (조사자: 예.) 놋쐬 응 아 종이 나왔어, 그 자리에서 (조사자: 거기서요?) 그러니까 애를 묻진 못하구 돌무덤에. 아 애 때문에 이게 나왔다구. 그러먼 종은 또 그게 갖, 집으로 이렇게 사람들 불러서 갖구 왔나아 전부 갖다 와서는 나랏님한테다 받쳤어, 그 종을. (조사자: 나랏님 한테요?) 어 응 (조사자: 어~,예.) 왕한테다 바쳤다구, 그 종을. 그래 나랏님이 그 소문을 듣구서 야 이런 효자 없다구.(조사자: 아.) 아 그 사람 아주 한평생 먹구살 아주 재, 재산을 줬다구.(조사자: 나랏님이요?) 그럼. (조사자: 어~.) 나라에서 어 그래되문 뭐 애도 그 갰다 묻을레다 허허 그 참 살리구. (조사자: 아이구.) 완전 부모님 보양 얼마든지 하게스리 애두 참 아주 한평생 먹구 살걸 주었으니 말야. (조사자: 이야, 효자네 복 받았나 부다.) 그럼 큰 효자지, 그럼. (조사자: 어~.)
다. 신창면 마을 3 (오목리)
1) 조사일정
1994. 12. 17., 한혜인 기록
조사 첫날인 오늘은 다른 조들이 조사지로 떠난 9시50분쯤 텅빈 노인회관에서 노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조금 넘어서 노인 한 분이 오셨으나 조사에는 응해 주지 않았다. 조사자들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다른 사람을 추천하는 것까지도 꺼려하여 애를 쓰고 있는데 안영주 씨가 와서 <학성산의 유래>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구연해 주었다. 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10시40분경 사전조사 때 조사한 궁화리로 향했다.
궁화리 조사를 마치고 조금 일찍 오목리로 향했다. 3시20분에 다시 오목리 노인정에 도착하여 조사를 하려 했으나 협조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정건조 씨가 <버린 남편이 급제한 이야기>, <열 아내에 열 아들 얻은 선비이야기>를 구연해 주었다. 노인회장이 이원영 씨를 추천하자 더 이상 구연하지 않고 그 분이 이야기를 잘 할 것이라고만 하였다. 4시20분쯤 이원영 씨가 도착하여 중국 역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등 기대에 어긋난 이야기만 하였다. 5시25분까지 지루하게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마쳤다.
2) 마을개관
【신창면 마을 3】
336-880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오목리.
1994. 12. 17., 최소정 조사.
면사무소사 위치하고 있어 비교적 번화하다. 그 인상은 60~70년대의 시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든다. 다른 마을에 비해 가게도 많고 새마을 금고에 농협, 우체국, 지서, 소방서까지 갖추고 있어 신창면에서는 매우 번화한 마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썰렁하다. 자연부락 이름이 ‘정안이’이며 총인구가 732명이다. 전 가구 중에 82가구가 농사를 짓고 비농가는 128가구로 비농가가 더 많다. 남자가 351명, 여자가 381명으로 여자 인구가 더 많다. 오목1구에는 오목국민학교가 있다. 마을 주민의 10% 정도가 안식교민이고 그 나머지는 불교도와 기독교도가 반반이다.
3) 구연자
【오목리 구연자 1】
신창면 오목리 1구 308-13번지, 안영주(安榮注), 남, 68.
1994. 12. 17., 전정옥 조사.
안영주 씨는 오목리에 65년 동안 살고 있는 이 지방 토박이이다. 원래 고향은 바로 옆 동네인 궁화리이다. 자신은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하며 이야기를 꺼렸으나 학성산의 유래에 대해 조금 언급해 주었다.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지만 그에 비해 눈썹은 굉장히 진했다.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와 야윈 얼굴이 더 야위어 보였고 귀가 당나귀 모양 컸다. 68세의 나이에 비해 얼굴에 검버섯이 많았고 매우 친절했다. 청중들이 별로 없어 썰렁했지만 할아버지 말솜씨가 좋아서 재미있었다. 강습소에 2년 다니고 서당에서 한문을 조금 배웠다고 하였는데 한문 지식이 매우 많은 것같다. 구연한 자료는 <학성산 유래>, <단종 복위운동으로 수난당한 순흥 안씨>, < 궁화리 지명유래>, <중국에서 온 이여송 3남매>, <안일관의 효자정문>, <고불 맹사성의 낚시 친구가 메밀묵 선물한 이야기>, <도둑 마음 바로잡은 가난한 집 부인> 등이다.
【오목리 구연자 2】
신창면 오목리 593번지, 이원영(李元永), 남, 73
1994. 12. 17., 전정옥 조사.
이원영 씨는 이 동네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오후 5시경 만난 이 할아버지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유난히 짙었고 한복과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 입어 조선시대 선비를 연상케 했다. 조리있는 말솜씨와 유교에 통달한 높은 지식으로 청중들을 압도했다. 효를 비롯한 예절과 화목정신을 우리 국민들이 잊은 것같아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한다며 칭찬도 해주었다.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는 <고불 맹사성과 감동받은 원님>, <맹정승의 효성>이다.
【오목리 구연자 3】
신창면 오목리 1구 434번지, 정건조(鄭健朝), 남, 72
1994. 12. 17., 전정옥 조사.
정건조 씨는 외지에서 살다가 이 오목리 고향에 돌아온 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궁화리 정교식 씨에 비해 굉장히 힘이 있어 보였고 노래를 잘 부른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앞이마가 유난히 튀어 나왔고 머리숱과 눈썹은 거의 없었으며 코가 매우 컸다. 어금니가 없어 양쪽 볼이 움푹 패인 것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할 정도였다. 목청이 굉장히 컸고 손동작이 많았으며 얘기 중에 숨찬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버린 남편 급제한 이야기>와 <열아내에 열아들 둔 사내> 이야기를 들었는데 구연을 잘 해서 청중들의 호응이 좋았다.
4) 설화 자료
【오목리 설화 1】
신창면 오목리 노인회관, 1995. 6. 22., 한혜인, 전정옥, 최소정 조사.
안영주(남, 68)
학성산 유래, 단종 복위운동으로 수난당한 순흥 안씨, 궁화리 지명 유래, 중국에서 온 이여송 3남매, 안일관의 효자정문, 고불 맹사성의 낚시 친구가 메밀묵 선물한 이야기, 도둑 마음 바로잡은 가난한 집 부인 .
궁화, 오목 1 앞
그전 옛날 양반네들 성싸고 그랐는디, 그래 그 (조사자: 그거에 대해서 좀 아 ~.) 왜정 말년이 (조사자: 예.) 한 거여 그게, 왜정 말년 전에. (조사자: 예.) 왜군들하구 싸울 즉이 이기저기 한 적이가 고려시대, 신라 그 때이 그게 다 한거라구. (조사자: 예, 학성산이 그 때 지어진 거라구요? 아~.) 예전 사람들 그 성 싸고 그랬는데 그게 아산군 아녀? (조사자: 예.) 그게 옛날은 군이 에 아산, 신창, 아산, 배방인가 어딘가 어딘가 시가 어디랴? 군이 시 가운데여. 지끔 인제 십이 개 면이 인저 한 군이지먼, 그 이전이는 군이 싯이 있었어. (조사자: 싸움할 때 방패같은 거.) 그 그전에 활로 활 쏴대가서. (조사자: 예.) 그래 게 인저 에 왜놈이나 뭐 이런 사람들이 인저 무리 올 직에 말이여, 못 올라오게 까맣게 (조사자: 예.) 삥 둘러 가지고 와서 인자 뭐여 활로 쏘는 거지. (조사자: 근데 왜 학자가, 성이 학모양이에요?.) 에? (조사자: 성이 학 모양이에요?) 어. (조사자: 아, 성이 학 모양으로 돼 있는 거예요?) 그렇지. 똥그랗게 쌓은. (조사자: 아, 그래서 학성산) 이름이 학성, 거기가 학성산이여. 옛날에 인저 뭐 옛날 노인들이 얼매나 근력이 세여. 그래 생전 노동일을 했지. 지금처럼 기계로 어 했으믄 말여. 어 그렇지먼, 그저 인력으로만 했단 말여. 그러게 참 얼매나 셌어. 그냥 에 이따위 바위를 갖다 그냥 올려 쌓으니께, 그리고 저 이런 거기 저 학성봉에 가므는 이 자리를 깔고서 (조사자: 예.) 저 거기 위에다 자리를 까고서 두러눤 자리가 있는데 그게 막혀 있더라구(조사자: 예, 누가 누가 누었대요?) 그러니까, 저 장코들이 (조사자: 장군들이요?) 에 응. 그 그건 있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있더라구. (조사자: 장군들이 왜 거기에 누워 있었대요?) 왜냐하면 거 저 잠도 자야 할거 아녀. 잠두 자구 거저 거기 저 장군들이니께 몰러 저 뭐여 한 7일 있어두 다 모른다는 겨 인저. 그런데 옛날에 인제 그런 얘기가 있던 거여. 그저 옛날에 인저 장군이 드러누워서 잠 잘 잠 잘 자구 그런 얘기가 있었던 거여.
궁화, 오목 1 앞·뒤
대강 다 아는 대로(조사자: 예 예.) 얘기 하자믄, 우리는 원리 이 궁화리의 원거인이여. 제일 먼저 여기와설랑은 정착을 한 저기가 우리 여긴데, 에 내게로 그러니까 11대조가 일루 낙향이신데 원리 우리는 원 고향이 순흥이야. (조사자: 예, 그 순흥이 어디 있는 거죠?) 영주 음 (조사자: 영주요? 고향이 영주예요. 순흥 알아요.) 응 저기 거기가 지금 아마 순흥면일거야. 그래선 세조 적에 세조 적에 우리가 거기서 살았어. 게 거 순흥 읍내에 우리 선조 유적비들이 많이 서있어. 지금도 거기 살어. 거기 비봉산이라구 풍기설랑은 순흥으로 오는 길가에 보머는 거기에 주로 순흥 안씨 선조들 식절한 묘를 저 산소를 전부 비 세우고 이렇게 한 게 거기 그 질로 가면 뵐 게야. 바루 질루야, 비봉산. 그때 우리가 절단났다. 왜 그랬냐면, 세조가 수양대군 아닌가베. 수양대군이 단종을 드러냈어. 드러내고설랑은 조카를 드러내고서 왕위에 올랐거든. 그 때 우리가 거기 살았어. 살았는데 (기침) 그 때 순흥부사에 이보흥이라는 분이 거기에 있일 적에, 이제 세조의 아우 되는 금성대군이라는 분이 세조한테 몰려가주고설랑은, 귀향을 보냈어 동생을. 인지 수양대군이 그 왕 세조되기 전에 전근보란 사람들은 죽였어, 동기간을. 안평대군두 죽이고, 금성대군은 그 때 고기에7) 가머는 순흥서 쪼끔 건너들어가는 들판에 패도라고 있어, 패도. (조사자: 패도요?) 조개 패(貝)자 (조사자: 예.) 패도야. 그래서 그 섬보구 조개섬이라구 그래. 패도라고 하는데 물 가운데 섬이 아니고설라믄, 논 가운데 소복한 여기가 그게 조개섬이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 그래 금성대군을 그리로 귀향을 보냈어. 그래 인제 그 뒤에 세조가 인제 단종을 영월로 보내구서, 자기가 왕위에 올랐거든. 그 뒤에 단종을 복위시킬라고 복위운동을 했어. 금성대군이 주축이 되가지고서 그 고을 원되는 이보흥이라는 분하고 같이. 그라다가 인제 저 그 근방 행세하는 분들하고 합세해서 세조를 물리치고서 단종을 다시 복위 시킬랴구 그 운동을 했었다 이거야. 그 운동 할 적에 서로 얘기하구 저기 하는데, 그 이보흥, 그 원의 거기서 일보는 종이, 오늘날 따지자면 여자, 고개 엿을 들었다 이런 말이야. 그래가지구선 그 종이 자기 남편한테 가서 그 얘기를 했어. 그 인제 누구누구 명단을 거기서 뽑은 그 서류를 훔쳐 오라 했어. 가서 그 종년이, 잠든 세에 그 원의 게 그 할아비 누웠다가 넣은 거를 문들 훔쳐다가 냄편한테 줬어. 그 늠을 가지구서 인자 서울로 올라온겨. 그것만 가지고 가서 세조한테다 지깔대면 자기는 냅다 올라 서거든. 역모가 하고 있었으니까. 아 이보흥이 그때 볼 일이 있어 들렸거든, 그걸 알았어. 그래서 인제 순흥이나 인제 풍기는 게가 고기 이웃 골이거든. 그래 죽령이나 이쪽으로 와야 서울을 오거든. 그때 풍기군수에게다 기별을 하구, 풍기사람 또 가서 붙잡았어. 붙잡았는디, 그 인제 서류를 태울라 그러니까 그 먼저 훔쳐 (조사자: 남편.) 어 그 사람이 “그걸 왜 태우십니까? 이걸 내가 가지고 가설랑은 조정에 가서 저기 할 것 같으면은 내가 잘 될끼고, 내가 쥐고 이렇게 빼겼는데 태우지 말고 당신이 그것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서 이것 바치면 큰 대관을 할텐데 왜 저기 하느냐?” 그 사람이 가만히 생각하니께 사실이 그렇거든(조사자: 예.) 그렁께 태울라다간 그냥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어. 이건 역사에도 나 있는 거야. 요전에 지난 정월 열나흔 날 보름 전날 저녁인데 텔레비에 전부 나왔어. 금성단 그 지사8)관계와 그 이보흥이 그 저기 그것 빼구 전부나오고. 우리는 고기 순흥 순흥 안가야 거기 집단적으로 살았는데, 거기 연루되 가지고설알은 붙잡힌 사람이 전부 죽였어. 세조가 그때 모사가 한명회 뭐 텔레비젼 나오지. 그때야 그때 (조사자: 그러니까 순흥 안씨들은 그 단종을 복위시킬려고 노력을 하다가…….) 하다가(조사자: 하다가…….) 인저 발각이 됬어. 그 인제 그 풍기군수로 있던 사람은 그걸 가지고 서울로 올러 갔어. 그 종의 남편 자리는 자기자 돼야 될걸 빼긴거거든. 그렁께 속이 상할 것이, 안동으로 갔어. 요 안동으로 댕기잖어. 안동도사. 그게 한명회 사촌인가 뭔가 안동도사여. 그래 안동도사한테 가서 찔어댔단 말여. 한명회 사촌인가 되는데 그렁께 서울서 파말 오기 전에 가서 안동꼴에서 와서 점령하고설랑은 저기해 가지고 막 잡어죽이고, 금성대군, 세조 동생두 잡어 죽이고, 그래서 우리 안문9)은 근 이백년 동안을 역적에 몰려가지고 들어가들 못했어. 순흥에 그에서 안가는 별로 많지가 않아. (조사자: 그래서 인제 그때 이후로 여기로 오셨나요?) 이제 그때 우리는 인제 풍지박산을 당해가지구 각처로 인제 피난을 가구 인저 우리가 원래 내 선조들이 시흥에 많이 기셔. (조사자: 시흥요?) 우리 내게로 17대조가 태조가 태조 이성계 등극할 때 공신이시거든 개국공신. 그래서 거기 문화재로 되가지구 산소 시흥에 내게로 17대, 16대, 15대가 시흥서 약간 쪽 동쪽으로 관악산 기슭에 올라가면 있는데, 무형 문화재루……(말끝이 흐려 채록 불가) 그때 한 번 몰리고 중종 적에 중종. 중종 때 내려오는 얘기가 있어. 그 밑에 내려오면서 예, 이씨 조선 적에는 학생간 동기간 분들끼리 서로 살상을 하고 이런 저기가 계셨거든. 나중에는 당파가 생겼어. 인제 왜척10)세도라는 게 그때도 있었어. 임금의 왕비가 한 번 되머는 친정 쪽들을 다 일루 갖다 벼슬을 시켜 가지구 예나 지금이나 외척세도를 많이 썼거든. 그래서 인제 역사책들을 모두 보고, 지끔은 텔레비를 보구 이러기 땜에 역사에 대한 저기를 학생들두 거의 다 아는 저기가 많을거야. 그래서 우리 내게로 직조는 아니지만 당조되는 분이 안당 안성 안정승이라고 아마 고담 얘기하는 데도 많이 나와. 그 안당, 안정승 저기 그렇게 중종 시기야. 중종 때 거기에 조광조라고 한양 조씨에 정안11)이여. (조사자: 예.) 조정안 그 분이 인저 안당이 인제 천거하다시피 해가지구선, 나이가 젊었어. 지금 따지면은 정치를 개혁을 시켰어. 급진적으로 이렇게 저기하구. 신정치를 필랴구 그렁께 구관들이 어디 대고 물러나야 된다구. (조사자: 예.) 그래서 연산군 다음에 연산군을 드러내구서 중종을 저기 했잖아, 이 역사에 다 나있는 거거든. 중종을 들여 세웠는데 그때에 훈구파 즉 따지자면 중종을 이여 저기 하는데 공신들이야. 연산군 드러내고 중종을 저기 했었거든. 그 훈구파들이 가만히 하니께 조광조도 안 되겠거든. 그래서 그 하나를 내쫓어야겠는데 말이야. 그 저 무오사화니 무슨 그때 사화가 계속 번질 때가 그때야. 그 훈구대신들이 이걸 저게 똑똑해가지구 저기하는데, 자기네들은 물러앉어야 할 저기가 잘못하면 다 죽게 됬거든. 그 요거를 어떻게들 모사하기 위해거 별 모사를 다 꾸몄어. 요새 저게 텔레비에 나오는 한명회를 더러 보나? (조사자: 예, 가끔 봐요.) 음 고 끄트머리에 있는 게 연속되 있는 거야. 연산군이 현재 등극해 가지구선 고 외조모가 저희 어머니 그 사약받고 피 토한 것 가지고 가서 저기하는 저 먼저 저기들은 저부 연산군이 죽였…….(테이프 뒷면으로 교체) 그 분네들이 가만히 본께 이 다 쫓겨나게 되있 되일 것 같아 앞으루, 그러니께 조정암을 물려치기 위해서 주초위왕12)이라고 말이여. 오동나무 잎새기에다 가서니 주초우왕 주자는 이 달아날 주(走)자여. (조사자: 예.) 종이에다 글자를 쓰면서 이게 달아날 주자거든 (조사자: 예.) 초자는 이래. 조 조 주초는 조자를 예기해. (조사자: 아, 그러네요, 예.) 우왕은 하 위(爲)자, 이렇게 된 (조사자: 하 위자요?) 하 위자여. 하위자를 쓰는지 벼슬 위(尉)자를 쓰는지 모르겠네. 위자가 벼슬 위자를 썼나? 내가 이 정신이 없어. 나도 나이 근 팔십이니께. 위왕이여. 아 보면 (조사자: 조씨가 임금이 된다 이런 말이구나, 예.) 그래서 중종 앞에 가서 꿀로 오동나무 잎새기에다 지금 이렇게 쓰니까, 고 꿀빠르 쳐먹느니라구 벌거지들이 고길 다 주서 먹었어. (조사자: 예.) 그래서 엄연한 산 나무 나무 잎들이 주초우왕이라구 되있네.(조사자: 예.) (기침) 그걸 떼가지구설랑은 중종에게다. 그래서 조중암을 당장 삭탈관직해서 귀양을 보냈어. 그 뒤 완석종친은 다 사약을 내렸어. (조사자:예.) 그래 고다음에 안당, 안정승까지 몰려서……. (발음불명) 고 밑에 한림학사 안병세라는 분이 있어. 그때 한림학산데 그 분도 바른 말 하다가 몰려가지고선 죽구, 이렇게 집안에서 이렇게 되니까 우리 안가는 아주 풍지백산을 했어. 그래서 내 11대조가 형조판서신데 (조사자: 예.) 일루 낙향을 했지. 사오백년 전에, 그 요게 드러오는데 오목국민학교 (조사자: 예.) 거기서 철뚝13) 따라 들러오먼 저 들판에 조그만 동네가 있어. (조사자: 예.) 들어오면서 첫 번째 동네요. 예 거기 봤어요.) 아니 오목서 그도 오목인데, (조사자:예.) 고 들판에 있는 (조사자: 예.) 고 철뚝서 고 아래 동네 있어. (조사자: 예.) 같이 우리 선조들이 와서, 그 이름이 정안이야. (조사자: 정안요?) 응 (조사자: 예.) 거기 가 봐뒀다가 거기 벌판 동네가 되가지구 (조사자: 예.) 한 걸음 더 올러와서 예 와설랑은 정착하신 후루 한 시향14)에도 별로 댕기도 못하구. 또 그렇기 모든 저기에 모든 껄꺼루우니께 발전성이 없어. 그래서 예 와서 근 인제 20대 여기두 낙향하신 분들이 근 20대 가까이 나왔어. 지끔 한 17, 8대 정도 17, 8대 이렇게 (기침) 살고 있는데 예 와서도 그 전이는 특별히 등급이 많잖아. 대게로 4, 5 등급이, 저기를 내가지구선 양반이니 뭐 상민이니, 천민이니 그 때는 신창군이야. (조사자: 예) 신창현 북면이야. 예가 북면. 그 땐 동서남북으로 면이 있었어. 신창현 북면 궁동이야. 근데 여기가 산혈이 전부 활체로 되있어. (조사자: 활체요?) 음. 활. (조사자: 활?) 그래서 궁동이라는데 활 궁(弓)자여, 활궁.
* 산혈이라는 말을 듣고 조사자가 궁동의 혈은 살아있느냐고 묻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혈을 끊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느냐고 하자 이여송 이야기를 꺼냈다.
궁화, 오목 1 뒤
임진왜란 적이 여기설랑은 중국으루 구원 저기를 청해가지구 중국서 삼 남매가 (조사자: 예.) 여길 찾아서 중국서 나왔거든, 그 때. 그 때 이여송이라구 있어. (조사자: 이여송이요?) 음, 이여송. (조사자: 예.) 이여매 여자. (조사자: 예 예.) 이여매라는 여동 여자, 그 삼 남매가 왔단 말이야. (조사자: 예, 이여송, 이여매.) 음 이? 아이구, 이놈의 정신봐라. 하나는 생각이 잘 안 나네. (조사자: 예 예.) 삼 남매가 왔었어. (조사자: 예.) 그 조선이라구하니 저기 너무 좋아. (조사자: 예.) 그래서 그 이여송이가 댕기메 좋은 혈을 끊었다는 얘기. (조사자: 아~.) 음 속담이 있지만 자세한 건 모르겠어.
게 여기에 인제 낙향해서 여 와서 사는 동네에 보면 아까 저 식구재라고. (조사자: 예.) (발음불명) 앞에 앞에 정문이 있어. (조사자: 정문요?) 효자정문. (조사자: 아 예, 그걸 그때 당시…….) 그 그 분은 강자 휘자15)는 날 일(日)자하구 볼 관(觀)자, 일자 관자셔. (조사자: 날 일자와 볼 관자요? 예, 일관) 음. (조사자: 성은 성씨는요?) 안가. (조사자: 아, 안.) 우리 집안 얘기하는 거여 그러니깐. (조사자: 예 예.) 그것들을 인제 부모 계실 때 바람직고16)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서도 그 부모님이 잡수고 싶다고 그래서 여기에 들어보는데. 철뚝서 이렇게 ㄱ자로 꺾어서 들어오는데 있지? (조사자: 예.) 고기가 방죽이었어, 그전에. (조사자: 아 예.) 고기 와서 기도를 드렸는데 어림이 달아서 창나도록17) 무릎굻고 기도를 드렸데. (조사자: 예.) 그러니 그 구녁으로 잉어가 나왔데. (조사자: 아, 그 방죽에서 잉어가 이렇게 나왔다구요?) 음. (조사자: 예.) 그라구 꿩괴기를 잡수고 싶다고 했는데, (조사자: 예.) 집안으로 꿩이 날라들었어. (조사자: 아, 그 하늘에서 효심이 ·····.) 기도를 했는데 (조사자: 예.) 그런 저기가 있어가지구서 (발음불명) 인제 효자에 대한 전례18)를 받게 됐거든. (조사자: 예.) 그래서 효자정문이 세워지구, 그 후에 인제 근대 저기에 와서는, 선조가 아주 논도 이 많들 않구 밭만 인제 많었었는데 그 재경19) 일한 합방 이후에 (조사자: 예.) 전부 그 늠들이 착취해가는 이런 저기가 생겼잖아. (조사자: 예.) 고전하게 돼 있었어. (조사자: 진주 강씨요?) 응. (조사자: 예.) 그래서 신창면장, 온양면장 형제가 저기를 해서 그 분네들이 (웃음) (발음불명) 거길 떼다시피 했어. 그 온양면장으로 있다가 온양이 인제 원이 온천이 자상한 저기는 몰르지만 (조사자: 예.) 뭐 온양 빵씨20)가 요기 선장면 (조사자: 예.) 신승리21)라는 데 살고 있는데 (조사자: 예.)자상한 저기는 잘 몰라. 여기서는 별로 행세를 못했어. (조사자: 예.) 대우를 받지 못해.
(조사자: 혹시 또, 뭐, 고불 선생님 얘기는 모르나요? 맹사성.) 그 어른은 유래가 여기 많이 나오고 있구. (조사자: 예.) 암소, 검먹암소를 타고서 (조사자: 예.) 서울 조회22)에 댕겼다는 이런 얘기가 있어. (조사자: 예.) 그래서 측지법23)을 하는 그런 얘기가 있고. (조사자: 예.) 근데 그 근방에 가난하게 사는 한 사람이 (조사자: 예.) 그 사람도 낚시질을 좋아해서 그 방죽일 가서 낚시질을 해. (조사자: 예.) 그란데 늘짱 인제 그렇게 만나니께 서로 아주 친분이 두껍게 되서 연령은 비등했던지 벗을 했어. (조사자: 예.) 맹정승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 사람은. (조사자: 예.) 그 인지, 어느 날 맹정승이 “내일 모레가 내 생일이니 (조사자: 예.) 그 날 같이 술 한 잔 먹으세.” (조사자: 예.) “그렇하라.” 그 인제 친분이 있어 그렇게 지냈으니까. (조사자: 네.) 무얼 가세는 너무 못하고 해서 가지고 갈 게 없어. (조사자: 예.) 그러니까 메밀묵. (조사자: 메밀묵요?) 음. 메밀이라는 것 알지? (조사자: 예, 알아요.) 냉면 맨드는 메밀. (조사자: 예.) 메밀묵을 한 동그리를 해서 그거를 포대기에다 싸서 짊어지구서 거기가 그 동네 지끔 세일이라는 데야. 맹정승 지끔 저택 있는 데가 그 동네가 세일이야. (조사자: 세길요?) 세일. (조사자: 세길?) 일, 세일. (조사자: 세일?) 음. (조사자: 예.) 거기를 찾아갔어. 아 가니께 사람이 인산인해 저 뭐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굉장해, 사람들이. 이 사람은 전혀 그걸 몰랐어, 정승인 걸. “아, 내 오라 그래설랑은 온 사람이라구.” 드라가서 만나고 간다고 하먼 문지기를 못 들어가게 해, 그냥. (조사자: 예.) 지끔이나 옛날 뭐 지끔 따질 것 같으면, 장관 삼부 장관의 하나라고 봐야되, (조사자: 예.) 정승이니깐. (조사자: 예.) 그 들어갈라하건 못 들어가게 하건 잡구 막 그레 할 때. 맹정승이 보니 그 사람이여. (조사자: 예.) “그 어른 이리 들여보내라.” 그 뭐 정승인데 (웃으며) 어찌 안 들여보낼 수가 있어? (조사자: 예.) 그걸 짊어지구 들어간 게여. (조사자: 예.) 아 그런 줄을 몰렀거든 이 사람은. (조사자: 그렇겠죠. 정승인 줄을 몰랐죠. 같이 낚시를 했으니까.) 그래서 들어가서 “이거 뭐 대접할 것은 없구. 내가 한 야기지만 알지 않느냐?”구, “그래서 내 빈 손 들고 오기가 저기해서 메밀묵을 조끔 해가지고 왔다.”구, 드려났거든. 그러니께 맹정승이 참 고맙다구 말이여, 철판하구 칼 가지고 오라구. (조사자: 예.) 해가지구선 그 참석사들이 다 대관집 있는 사람들 내빈들 아니여? (조사자: 예.) 전부 썰어서 돌리는 겨. 이 우리 친구가 해 가지고 온 거니 한 점씩 먹어보라구. (조사자: 예.) 그러더니 다 먹은 뒤에 메밀묵 먹은 값 좀 내라구. (조사자: 예.) (웃음) 그래서 메밀묵 먹은 사람들 보구 값내라는 겨. 그 인제 그분네들이야 인제 뭐 이레든 저레든 대관집 있는 사람들이 뭐 정승이 그러는데 안 내겠어. (조사자: 예.) 전부 받어서 동굴저 묵동그리24)에다가 넣어서 이렇게 보냈다는 전설을 들었어. (조사자: 재미있는 얘긴데요, 할아버지. 오늘 처음 듣는 얘긴데요.)
고담, 저기 얘기 한 마디 할게. (조사자: 예.) (주위가 몹시 소란함) 한 사람이 가계는 유복하고 저기 한데도, 1년에 도둑질 한 번씩은 꼭 해야되여. (조사자: 예.) 그게 습관이 되있어. (조사자: 예.) 그 자기는 부자여. 그런디도 1년에 한 번씩 도둑질을 한다 이거야. (조사자: 예.) 그래 1년에 한 번씩 하는데, 그 해에는 어디 가서 훔쳐올 게, 자기가 아쉬운 게 있어야 훔쳐오는 건데. (조사자: 그쵸.) 에 이웃이 참 가난하게 사는 분이 하나 살고 있었어. (조사자: 예.) 원이 벼슬아치의 후손으로서의 공무에만 열중하다가시리 과거 못하구 한미하게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렇게 가난하게 살어두, 고 가구에 대한 유기지명25)같은 건 좋은 걸 많이 지니고 있거든. (조사자: 예, 양반그릇…….) 그리. 그 사람이 에 아무 것도 없는 놈의 집인데 유기나 좀 훔칠까 하구서 (조사자: 예.) 들어갔어, 그 집에. 드러가 보니께 잠을 안 자고 있거든. (조사자: 음.) 그러니 한 동안 훔쳐 가져갈 수가 없어. (조사자: 예.) 그러니께 마루밑으루 기어 들어갔어, 마루 밑에. (조사자: 예.)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서 동정만 살피고 있는 게야. (조사자: 예.) 자면 유기지명 좀 훔쳐갈려구. (조사자: 예.) 아 그런디 잠을 안 자네. (조사자: 예.) 그 잠자기를 바라구설랑 마루 밑에 이게 이렇하구 있는디. 가만히 실정 보니까 그 집 실정이 어떻게 됐는고 하니, 당장 조석거리가 없어. (조사자: 당장 조석거리?) 먹고 살 식량이 없어. 그래이 그 날 저녁도 못 저기하구 몇 때 굶은 모양이여. 근데 그 남편은 책만 읽고 앉았네, 책만 읽고. (조사자: 예.) 그러니께 주인이 워쩌 입만 다실 때 뭐 좀 해줘야 할텐데, 해드릴 게 없어. 그 사립문을 열고 나가면, 마당 가시에는 벳논26)이여. (조사자: 예.) 벳논인디. (옆에 있는 노인이 기침을 심하게하여 구연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음.) 그저 먼저 팬놈은 고개 숙여 (발음불명) 벨라고 누른 밥을 채 안기되어 이렇기 되가 저기 돼 있었거든. (조사자: 예) 그 도둑놈을 마루 밑에서 지금 까지 엎드려 있는 거야. (조사자: 예.) 그 부인네가 사립문을 열고 나가, 나가더니 그 마당가시에 있는 여기저기 댕기메 고개 숙인 놈으로 벳이삭을 한 웅큼 뽑아가지구 들어와. 그 도둑놈은 마루 밑네 엎드려서 그걸 보구서 얼마나 시장하면 저럴까? 저걸 뽑아다 어떡할까? 이렇하구서 동정만 살피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 부인네가 그걸 갖다가 확정도라고 돌그릇 있잖아? (조사자: 예 예.) 거기다 넣더니 돌구땡이로 박 짛어.(조사자: 예.) 짛더니만 그걸 뭐 저기 하더니 채를 갖다가시니 놓더니만 (발음불명) 걸 보고 쥐어 짜. 그러이게 그 베 간여울도 안 된 그거 뭐 저기하면 물만 나와. (조사자: 예.) 그 물을 저기 해설랑 짜. 짜먼 인제 그게 금방 (발음 불명확) 그걸 갖다가시니 끓이는 거야. 그러이게 들떼기도 아니고 시큰둥둥한 거야. 그거 하는 거를 도둑놈은 마루 밑구녕에서 그대서 엎대어 쳐다 보고 있는 거야. ‘그에 저걸 어떻할라구 그래. 하도 배고프게 그 멀물이래도 마실라구 하구나.’ 그렇게 인제 생각하고 있는데 안마당에다시니 상에다 정화수 한 그릇하구 그 풀뜨기27) 같은 거 그걸 갖다가시니 상이다가 앉아 놓고서 비는 게야. 남이 진력내 피 땀 어려서 진 농산데 진인이 자천신28) 먼저 먹기 전에 (발음불명) 이렇게 (발음불명)시니 그 조상들은 먼저 얻어서 이 음석을 흠향하시라구. (조사자: 예.) 그렇게 빌어. 아 도둑눔이 마루 밑구녕에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께 ‘나는 입성이나 먹는 게나 부자로 숭천봉지29)하구 살꺼야. 그래도 년년 도둑질 한 번씩은 했거든. 그래 그거 베 한 주먹 뽑어다가 저 저게 하는 게 그게 죄시러워서 저렇게 중시를 받들고 조상들이 먼저 농사진, 조상들이 먼저 와 흠향하시라구 이렇게 빌으니 난 천에 죽일 눔이다 말이여. 개 아들만도 못했으니…….’ 아 생각하고 있는데 가까이 맡은게 (기침) 남편게다가 저 이렇하먼서 갖다 주는 거여. 중께 남편이 이게 뭐냐구 말이여. 그 얘길 꾸밈없이 자기가 생각한 거 얘기해. 아 그러이께 펄쩍 뛰더니 남이 피땀 흘려 가면서랑은이 지은 농사를 그분넨 천신도 안 한 걸 농그도 안 한 걸 갖다가 우리가 먼저 먹어? (발음불명)는 지금 종아리 걷고 거기 서라구. 종아리 채 그 부인네가 종아리채를 해 가지구 그 앞에 걷어 선기여. 그렁께 남편이 채를 들구서 때릴라구 하더니 그 채를 집어 내삐더니 “내가 소위 장분데 호구지책을 못하구 착한 아내가 이런 모루개를 저질러기 됐다.”구. (발음불명) 그러니 도둑눔은 다 들어. 벌을 받아도, 저분네들은 남의 것을 참 어렵게 생각하는데 나는 닥치는 대로 (발음불명) 가서 닭 한 마리 잡고 밥 하래서 밥 저기 하구 술 안주 (조사자: 예.) 해 가지구,(조사자: 쫓아 갔다구요?) 응. (조사자: 예.) (발음불명) 아 그러이께 깜짝 놀랬지. 얼마나 시장하겠나? 허기나 좀 면하게 음식이나 좀 들고 할 얘기가 있어. (조사자: 허기가 허기가 좀 면하게 음식이라도 들구서 하자구요? 예.) 그런 사실 뒤에 그때서 “나는 당신이 아다시피 나는 (발음불명)없는데도 일년에 도둑질 한 번씩 했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당신네 집이 유기지명이 내 눈에 (발음불명) 그걸 좀 훔치러 왔다가 당신네 지난 저녁 때 그런거야. 당신네 말을 듣고 나는 천벌을 맞아 죽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야. 이렇게 살지 말고 나도 차후로는 개과천선해야 돼겄구. 내가 아쉽지 않게 지나면서 당신같이 양심있게 (발음불명).” 모든 걸 도와줘서 잘 살게 됐어.
【오목리 설화 2】
신창면 오목리 노인회관, 1994. 12. 17., 권민정, 이재향, 박주영 조사.
이원영(남, 73)
고불 맹사성과 감동받은 원님, 맹정승의 효성
* 오늘 일정을 끝내고 좀 일찍 숙소에 돌아와 보니 다른 조가 조사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따로 구연자를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목 앞
거저 정승으로 이실 적에 아산군 배방면 중리여. (조사자: 녜). 동네 이름은 세일리여. 옛날에 온양군 관애30)여. 옛날, 옛날에 그때 온수군이여. 온양군이 아니고 온수군이여, 응, 더울 온(溫) 자, 물 수(水) 자, 온수군인디 온수 군수가 처음 부임해서 내 고을이 정승이 산다니께 가서 인사해야 할 꺼 아녀. 애 그래 부하들을 몇 대리고서는 소일으로다가 정승이한테 인사를 갔어. 가서 대문간에 가서 “이리 오너라.” 그러니께 하인이 나왔어. (조사자:예.) 해서 “나 온양 군수로 온 사람인데 대감을 뵈러 왔는디 계시냐?” 하고 물었어. 시방 내가 그냥 잠깐 기다리시라고 내가 모시고 오겄다고 하인이 그러니께 모셔올 거 없다. 대감이 어디 계시냐고 꼭 뵈야 한다고 해서 가서 하니까 일러주는 저거니께 뒤에 가서 뒷밭 밭이 가서 열무밭에 가서 호미들고 풀을 뽑고 계셔, 밭을 메고 계셔. 맹정승이 애 그래서 거 온양군수가 열무밭에 가서 밭 메는 정승한티 그 뭐 계급이 아주 하늘 같이 높은 상사니께 밭에서 그냥 그대로 큰절을 하고 “제가 온양 군수로다 부임한 아무게 올시다.”하고 이렇게 맹정승이 아구 이 더운디 먼디, 고을일도 많은디 뭐할 날 찾아보러 왔느냐고 고맙다고 하니 아이 집에 들어가자고 그래. 데리고 집으로 들어 왔어요. 그래 사랑에 와서 인저 주고받고 얘길하고 있는 기여. 군수가 새로 왔은께 자기 소개도 해야 되고 내가 또 군수로 왔으니께 뭐 어뜩해 고울군을 잘 다스리겄다고 얘기하고 인저 주고받고 얘길. 근데 점심 때가 돼서 밥상이 들어와. (조사자: 예.) 아 그런디 군수가 생각할 쩌게 관직 고관이로다가 몇 십 년 하셨고 하니께 아주 반찬이 참 출중하닸단 말이여, 몰고.31) 아 밥상이 들어오니께 새까만 보리밥이야. 쌀은 안 섞였어. (조사자: 응, 꽁보리밥.) 아 국 한 가지가 있는데 파로다 끓인 파국이여. 그 간장하구 고추장하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반찬이. (조사자: 예.) 그래서 아이구 대감이 나를 시험해 보느라구 이러는게 부다. 이렇게 생각했어. (조사자: 예.) 앵, 너 군수로 왔으니껜 한 번 이런 거 좀 먹어봐라. 그래 시험 보는 줄 알았다구. (조사자: 예.) 그저 이 군수가 생전 그런, 먹어 봤어야지. (조사자: 아). 그런데 아 맹정승은 이렇기 밥상을 이렇게 놓구 인제 숟가락 들구 말아서 다 잡숫구 상을 이렇키 물리는디 아 군수눈 밥상을 하나도 안 줄었네. (조사자: 예.) 밥풀만 몇 개 입에다 기냥 냉기는 둥 마는 둥 (조사자: 예.)그래서 상을 물리구서는 맹정승이 하는 말이 이런 음식을 안 먹구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는냐. 그래서 (조사자: 예.) 삼정승 그 보고 삼공이라 그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삼공이야. 육판, 육경이라 그랴. 그때 우리나라가 팔도 아녀? (조사자: 예 예.) 예, 팔도감사, 삼백육십 수레며 (조사자: 예.) 예, 해서 이 기 다 백성을 챙기고 정치하는 책임자들 아녀. (조사자: 예.) 삼공, 육경, 얘, 팔도감사, 삼백육십 수령이 첫째가 임금을 잘 보필해야 되고, 둘째는 백성을 다 잘 다스려야 되는데, 이 음식을 안 먹고 어뜩키 백성을 잘 다룰 수 있느냐. 걱정을 했어. 그래서 이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입구 잘 살으며는 없는 고생을 하는 사는 고생을 몰러. 나도 같이 그 어려움을 겪어야 알지. (조사자: 예.) 잉, 겪어야 안다. 그래야 되는데, 우리 고을 수령이 이 음식을 안 먹으니 이것도 못 먹는 백성이 얼마나 많은디. (조사자: 예.) 이렇게 좋게 말을 했어. 그 군수가 거기서 감복을 했어. 조롱이 아니라 진짜 일언창화라는 걸 그래서 그리루 나와서 자기도 그와 같은 음식을 먹어가매 백성을 잘 그 선정을 했다. 그 온양군 가는 온양 온천서 조금 요기 공주쪽으로 가면 옛날 군청 소재지여. (조사자: 예.) 거서 한 3키로 가며는 (조사자: 예.) 거기에 그 군수 선정을 잘 하가지구 비각을 다시 해놨어. (조사자: 아, 흐흥.) 그래서 그 군수는 부모 덕분에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편안히 공부해서 과거봐서 베실하러 와서 그런 음식은 하나도 안 먹고 큰 사람이야. 늘 좋은 음식에다가 좋은 반찬에다가 좋은 옷만 입고 해서 그런 건 생전 아아네서 그래서 맹정승한티 그 감동을 느껴가지구 잰부 자기도 맹정승을 똑같은 생활하메 구석구석 군민의 어려운 걸 살펴가지구 정치를 잘했다. 이것이 이 고장에 아주 내려오는 아주 거 사실이여. 거 (조사자: 예.) 허허. (조사자: 허허.)
근디 아무리 약국에 가서 약을 지구 의원한티 물어도 백약이 무효여. (조사자: 예.) 누가 잉어를 (조사자: 예.) 잉어 (조사자: 예.), 붕어보다 큰 잉어 있잖여? 이걸 다려서 드리문 낫는다하고 그래서 그때 때는 시방처럼 꽝꽝 얼은 아주 엄동 절기여. (조사자: 예.) 이런 절기에 잉어가 워딨어. (조사자: 예.) 시방은 뭐 양어장에서 길러는 많이 힘은 그때야 천안서 온양 오자믄 거 새계라고 있지. (조사자: 예.) 새계 그 앞에 들판에 (조사자: 예.) 연못이 크게 있었대요. (조사자: 아.) 거기까정 와서 여덟 살 먹어서 (조사자: 예.) 잉얼 구할래면 연못이 가 구해야 헌다구. 연못이 와야 꽝꽝 얼어서 다 뭐뭐 어디 뭐 뭘로 잡어. 그물이 있나 낚시가 있나. (조사자: 예.) 게 꽝꽝 얼었는데 돌막을 줏어다 한아름 안어다가 (조사자: 예.) 연못에다 자꾸 던지는 겨. 한 몇 번 던지니께 구녁이 하나 뚫어졌어. (조사자: 예.) 연못이, 그런데 그 구녁이 이리 뚫어졌는데 인지 물이 비치는디 잉어를 어뜩키 잡어. 그 어린 여덟 살 먹어서 두 무릎을 꿇구 (조사자: 예.) 그 옛날 옷이라는 게 내복이 있나 뭐 있나. (조사자: 예.) 뭐 홑에 한가지 걸치면 그만이쟈. 옛날이야 무릎 꿇고 두손 모고 그저 잉어 좀 하나 제발 좀 나와서 우리 어머니 좀 병 좀 살려달라고 그냥 아주 참 정성을 다해 기도드려. (조사자: 예.) 이거 다 얼어 붙어 얼음이 되길 정도 추운 것도 모르고 아,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서는 했는디 얼마간 하구 나니께 어서 펄떡 소리가 나, 그 구녁에서. 잉어가 하나 이렇게 나와 가지고 이렇게 펄떡펄떡 해야. 해서 그걸 붙잡을래니 여기서 뭐야 윗도릴 벗어서 냅대히 응 껴안아 갖구 집에 와서 달여 멕여서 어머니께 올렸다. 응, 그랬던 거야. (조사자: 허허허.) 그래서 삼 년 더 살다가 맹정승이 열살 먹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조사자: 응.) 근데 이레 동안 아무 것도 안 잡수셨어, 상제 노릇하다. 아까 대련 소련이 단군시절에 대효라 그랬지. 이 맹정승도 그랬구. 인제 그래 아무 것도 안 잡숫구 그냥 슬픔을 다 하구 초상을 치르구 장사 지내구 동생이 있어. 맹정승이 동생 데릿구 열살 먹어서 데릿구 산소 앞에다가 여막을 짓구 삼 년 동안 산소 앞에다 살았어. 이런 효자여. (조사자: 예.) 그래서 나라에서 알아가지고 대효라구, 아까 밀양 손씨 시조 손순지효자지문. 맹정승이라 나라에서 효자 정문 세운 시방 정문이 있어. 고향이 정문이 있어. 그 아랫대도 또 효자가 있고 또 충신도 거기 정문이 세 개 있어. 고 고향이 호텔 옆에 애 그에 참 맹정승 얘기하면 한이 없고 허허. (이 이야기에 이어 삼강오륜을 내용으로 하는 긴 노래를 읊조리고 이어서 삼강오륜이 우리의 전통이므로 잘 지켜야 하고 효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목리 설화 3】
신창면 오목리 노인회관, 1995. 6. 22., 한혜인, 전정옥, 최소정 조사.
정건조(鄭健朝), 남, 72.
버림받은 남편 급제한 이야기, 열 아내에 열 아들 둔 사내.
궁화, 오목 2 뒤
옛날에 에 어떤 한 사람이 저 동리에 내외가 살았는데. (조사자: 어디에 내려가서요?) 어? 옛날에 (조사자: 내외가 살았…….) 내외가 살았는데 그 남자가 말이야 잉? (조사자: 예.) 글 읽기 해서 저 살림이 없거든. (조사자: 예.) 인저 옛날엔 과거 본다고 그러잖아, 과거. 어? 그러헌 목적 땜에 내가 한 번 어떻게든 과거 좀 봐야 겠다. (조사자: 예.) 이런 정신적인 그거밲이 몰라. (조사자: 예.) 앉아서 여자가 뭘 하든 먹을 거 장만하든 하 관심을 안 둬. 근데 그 때 뭐 인데서는 이 백미 보리쌀 이게 없을 때여. (조사자: 예.) 피 있잖아, 피. (조사자: 예 예, 뽑아버리는 거요.) 어어. 그거 먹고 살 때거든. 근께 오래 전 역사지. 어 근데 인저 먹을 게 없은 거 옛날에는 어떻게든지 먹을 것만 장만하먼 살 수 있다 이런 목적이라. 옛날 생활이라는 게. (조사자: 예.) 근데 피를 영근 것도 아니고 중간 쯤 (발음불명) 그걸 훓어 가지고서 마당에다 널 거 아녀? (조사자: 예.) 그럼 그 널었거나 뭐 했거나 남자는 그냥 관심이 하나 안 둬. (조사자: 보기만하는…….) 글밲이 몰러. (조사자: 예.) 그래가지구서 인저 냅다 소내기 갖다 퍼붙던 걸 마당에 물이 막 내려가잖아? (조사자: 예.) 이게 떠내려갔다 말이여. 에? 근게 부인이 딱 보아하니 젊은 새댁이지 인저. 아 한심하더라 이거야. (조사자: 응.) 그에 남자가 남자보구 얘기가 (청중이 같이 나가자고 하여 잠시 소란함.) 근데 이 여자가 인제 신경이 올라가니까 (조사자: 예.) 말을 해야 듣지도 않구 그라니까. 예라 너하고 살다간 내가 (발음불명) 나와 버렸어. (조사자: 아~.) 여자가 (조사자: 예.) 차후는 내가 어떻게 됐건 말건 여기서 살 바에는 그에 남자도 나가거나 말든 관심을 안 둬. 그러고 몌칠 있다가 과거 보는 그 날짜가 딱 찼어, 찼어. 가가지구서 참 공부 얼메나 많이 (발음불명) 과거에 덜컥 붙었더란 거여. (조사자: 예.) 그에 인제 붙어가지구서 인저 관복을 다 입구. 옛날에는 (발음불명) 그렇기 오는 도중에 이 여자가 그 근방이 재가했어. (조사자: 예.) 재가했는데 에 옛날에는 혼자서는 못 살어. 추세가 그렇게 돼있어. 그래서 이 여자가 (발음불명) 누군가 한 번 봐야 겠다. (조사자: 예.) 근데 길가에서는 보는 기여. 일하다 말고 나와서 이? (조사자: 예.) 근게 가만이 보니께 자기 남편이더라 이거여. ‘참 내가 생각하는 게 실수했구나.’ (조사자: 조금만 참았으면…….) 근데 지내고 난 뒤에 인제 집에 와서 가만이 생각하니까 내가 이 얘기를 사정하며는 혹시나 들어주지 않을까? (조사자: 예.)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여. 나의 행동은 갖춰주고 어떻게든 바꾸자. 해 봤던들 안 들어준다 이거여. 집 떠나갔으면 그걸로 간 거지. 나 배반한 기 뭘 또 말이야 이러구 말았어. 그래서 인저 부부지간에 그 헤져서 결국 그 남자가 과거 봐 가지구서 벼슬했다는 거 그거 뿐이여.
* 여학생들 앞이라 얘기하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조사자들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자,“괜찮으냐?”고 다짐을 하더니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내외서 사는데 (조사자: 예.) 이 가난하지, 몰라. (조사자: 예.) 땅도 한 마지기 없어. 근데 남이32) 산밑이다가 띠쟁일33) 해다가 풀 차고 걷어 가지고 밭을 맨들어 가지고 그 때 시절도 참 신명이 어려울 때여. (조사자: 으응.) 근데 여자가 남자가 일을 가며는 때를 놓치지 말고 온전히 밥을 해 줘야 할 거 아녀? (조사자: 예.) 그니 점섬을 지어가지고 산 너머를 갔다 이기야. (조사자: 예.) 가난 도중에 어느 중이 말이야. (조사자: 예.) 가다가 배가 몹시 고퍼서 쓰러졌어. (조사자: 예.) 중이. (조사자: 예.) 근데 그 아주머니가, 가만히 누워 있으이께 그냥 지나갔어. (조사자: 그렇지요.) 그래 인제 딴 사람도 아니고 중인데 그렇게 하고 어 저기 하고 말이야. 그에 말은 못하고 글로 지어있어. (조사자: 응.) 배고프다고 그에 가만히 눈치 보니까 근력이 없다면서니 참 글 지었다면서니 나이로 봐서는 그런 처지가 안 되거든? 그래서 인제 그러먼 배가 고파서 그랬잖느냐 하니께. 그러면 이거를 우선 잡수라고. (조사자: 응~.) 점섬 내가는 거여. (조사자: 그렇지요.) 이 본래 자기 남자 줄라고. (조사자: 예.) 근데 가다 보니께 그 중한테 뺐겼어. (조사자: 예.) 그 멕이는 기여. 멕이면서 집이로 부랴부랴 와 가지고 급하게 와가지고 또 짓는 거여. (조사자: 그렇지요.) 자기 남자가 얼마나 나를 기다리고 얼마나 원망하랴. 인제 이러구 밥 짓는 거여. 그라구 또 이고 가는 기여. (조사자: 예.) 가더니 본께 중이 거 가 있거든? “그 어디로 가십니까?” 이 산 넘어 (발음불명) 일하는데 남편이 시장기가 돌거라구 그래 갖구 그 얘기를 해. 그냥 가 버렸어. 그에 점심을 인저 멕여서 보니께 자기 남자는 못 멕이고 하니 때려 누치구선 이제 왔느냐니께 그 그런 사실을 얘기했어. (조사자: 응.) 그 참 잘한 짓이라구. (조사자: 예.) 근데 내외가 사람은 착실하지. 잘했다구 말이야. 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 그 멕여 가지고, 그에 오다 보니께 중이 또 거기 앉았거든. (조사자: 예.) 앉었는데 참 한 어피 넘어가게 됐는데 (조사자; 예.) 자기네 집에 데려 간 거여. (조사자: 중을요?) 서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 보니까 (조사자: 예.) 도사는 좀 뭐 아는 척 하잖아? (조사자: 예.) 내다보는 거? 그 사람 (발음불명) 근데 댁은 아들을 열을 두겠다고 하는 기여. (조사자: 응.) 아들만. (조사자: 아들만요? 예.) 근데 이 남자가 그 소릴 들으께 인제 (발음불명) 지금 애들이 남매를 뒀어. (조사자: 예.) 딸 하나 아들 하나. (조사자: 예.) 그런데 그거 마자 신명이 쩔쩔매가지구서 멕여 살리기두 어려운데 (조사자: 예.) 에라 이 여편네와 갈러서는 수밖에 없다 말이야. (조사자: 응.) 자석자꾸 나면 뭘로 생활질해야 (조사자: 예.) 마누라에게 얘기할 거야. 내가 떠나야지 안 되겠다. 떠나되 내가 어느 집이 가서 머슴살이 해가매 돈 보내야 한다고 말이야. 그레 인제 마누라에게 (발음불명) 내가 살기 위해선 도리 없다 이러구서 떠났어. 가다가다 보니께 큰 옛날에 큰 기와집이 있어. 그 집이 가서 있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물어져 가지고서 한 방이라도 있으먼 하루 저녁 유해 가자고 이렇게 사정한 거야. 근게 그 주인이 그 그 나오더라 이거여. (조사자: 예.) 그래 이만저만 해서 저물었는데 재워줄 수 없냐고. 그 주인이 가만히 거들어 보니께 참 일을 할만한 체격이 좋더라구 이거. 그래서 우선 데려다 놓구서 저녁 멕여 갖고 기왕 여기서 하루 밤 재워 달라니 떠나지 말고 우리집서 함께 살자구 사정을 해. 이러먼 어떻것소? 내가 머슴살이하러 나왔는데 아 잘 됐다구. 그런데 그 집이다 머슴살이하게 됐어. (조사자: 예.) 근데 그 집이가 돈은 많은데 자손은 없어. (조사자: 아~.) 자손은. (조사자: 예.) 그에 남자가 시원찮지. 그래가지구 인자 아이 했었지. 그래가지구서 이 남자는 말야 그 주인보고 약속해기를, (조사자: 예.) 마누라쟁이가 아홉인데 (조사자: 예.) 몸만 이렇게 자꾸 얻은 기여. 돈은 많고 아홉인데 하루 저녁 한 달 씩 여자 방 들어갔다 나오란 기여. (조사자: 예.) 그에 인저 첫 날부턴 이 방 들어가고, 그 이튿날 요방 들어가고 근데 말이여 근께 마누라쟁이 아홉인께 말이여 아홉방 다 들어간 기여. (조사자: 예.) 마지막은 기둘린 거여. (조사자: 아~.) 이 남자가 (조사자: 예.) 근데 이 아홉 번째 저기 하는데 12시 넘어서 말이여 칼을 갈더라 이거여. (조사자: 예.) 그 남자를 죽일라고 말이여. (조사자: 예.) 이 막내 그 마누라가, (조사자: 예.) 마누라쟁이가 당신하고 나 하고는 하루 저녁 유약을 했는데 여기서 떠나야지 금방 떠나야지 죽는다 말이여. (조사자: 응.) 얘기해줬어. (조사자: 아.) 그에 창문으로 나가버렸어. (조사자: 아.) 그래고 나서 한 일 년 넘어서 에라 이거 내가 이래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글로 집이로 갔거든. 갔는데 머슴살이하고 나서 한 달인가 있다가 집이 와 있으니까 어떤 여인들이 아홉 명이 광우리다 잔뜩 뭐를 이고 들오더라 이기여. 그 집으로 찾아가지고. 그래서 인제 그 남자가 아 이거 왠 아주머니들 오셨냐구. 아이구 자기 남편인데 다 절을 하는데 남편이라 이거여. (조사자: 예, 그 아홉부인이 다 온 거예요?) 어. 어린애 하나씩 업구. (청중: 웃음) (조사자: 근데 그게 다 사내 아이였어요?) 에에. 전부 다 사내아이여. 아홉 명, 집이 아들이 하나 있구 그이 열 치34)여. (조사자: 열~, 아~.) 거 거짓말 같지? 거짓말은 거짓말이야.
1) 정수리에다
2) 댐에 : 다음에
3) 감차 오라고 : 감추어 오라고
4) 밤이 : 밤에
5) 벴다구.
6) 내우가 : 내외가
7) 거기에
8) 제사
9) 안문 : 安門. 안씨 가문
10) 왜척 : 외척(外戚)
11) 정안 : 정암(靜巖). 조광조의 호.
12) 주초위왕 : 走肖爲王. ‘走肖’는 조광조의 성인 조(趙)자의 파자로,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으로 조광조를 모함한 말.
13) 철뚝 : 철로가 나 있는 둑
14) 시향(時享) : 매년 정기적으로 조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
15) 휘자(諱字) : 죽은 사람의 이름.
16) 바람직고 : 바람직하고.
17) 어름이 달아서 구멍이 나도록.
18) 전례 : 典例. 전거가 되는 선례.
19) 재경 : 財經. 재정과 경제.
20) 빵씨 : 방씨
21) 신승리 : 신성리.
22) 조회 : 朝會. 모든 벼슬아치가 함께 정전에 모여 왕께 조현함.
23) 측지법 : 축지법.
24) 묵동그리 : 묵동이
25) 유기지명: 鍮器之皿. 놋그릇, 제사에 쓰는 그릇 종류.
26) 벳논 : 벼논.
27) 풀떼기 : 풀처럼 쑨 죽.
28) 자천신 : 盡人自薦新. 모든 사람은 천신하고 난 다음에 먹어야 한다는 뜻인 듯함.
29) 숭천봉지: 崇天奉地. 하늘과 땅을 숭상하고 떠받듦.
30) 관애 : 管內
31) 몰고 : 모르고
32) 남이 : 남의
33) 띠쟁일 : 개간을
34) 치 : ‘이’의 방언. 열 치 : 열 이, 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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