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 (1) /귀스타브 플로베르
사해 동부 해변의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는 마캐루스 성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성의 둘레에는 네 개의 깊은 골짜기가 에워싸듯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산의 기복을 따라 세워진 성벽 안에는 민가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 마을은 현무암의 암반을 깎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길을 통해 요새와 연결되어 있었다. 요새의 벽은 120큐비트(1큐비트는 약 46-56센티미터) 높이로서 그 위에는 흉벽(胸壁)이 둘러져 있고 여기저기에는 망대가 세워져, 요새는 돌로 된 거대한 왕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아름다운 현관들이 돋보이도록 지은 궁이 있었다. 그 현관들은 무화과나무로 만든 난간과 햇빛을 가리는 차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느 날, 새벽이 열리기 전에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난간에 기대어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산봉우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허리 부분과 골짜기들은 아직도 어두운 채였다. 산허리를 끼고 돌던 안개가 흩어지면서 사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벽이 걷히면서 붉은 햇살이 마캐루스를 감쌌다. 곧 태양은 해변가의 모래사장과 언덕길, 사막 그리고 멀리로는 톱니 모양의 뾰족뾰족한 유대의 산들을 비추었다. 가운데에 검은 막대 모양으로 엔게디가 보이고 그 뒤로 헤브론이 둥근 돔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애쉬타올은 석류나무들로 가득했고 소렉은 포도 덩굴로 뒤덮여 있었으며, 가르멜은 참깨밭으로 싸여 있었고, 엄청나게 큰 정육면체의 구조로 이루어진 안토니아 요새가 예루살렘을 위압하고 있었다. 영주 헤로데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예리고의 야자나무를 바라보며 갈릴래아의 다른 도시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가파르나움, 엔도르, 나자렛, 티베리아 등 아마 다시는 가게 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도시들을 생각했다. 요르단 강은 메마른 대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그 땅은 눈으로 덮인 것처럼 온통 하얀 사막이었다. 호수는 연한 하늘색을 띠고 있었는데, 멀리 예멘 방향의 서쪽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군용 텐트들과 기마들 사이로 창기병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꺼져가는 모닥불들이 그 마지막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랍 왕의 군대였다. 헤로데는 아랍 왕의 딸을 거절하고 정계에서 은퇴해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던 아우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선택했다.
안티파스는 지금 로마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리아의 총독인 비텔리우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 그는 불안했다.
혹시 아그리파가 황제에게 자신을 모함하는 말이나 하지 않았을까? 그의 세 번째 아우이며 바타네아의 영주인 필립보는 비밀리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안티파스의 우상 숭배적인 문화정책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의 횡포한 통치방식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두 가지 계획을 세워놓고 갈등하고 있었다. 아랍인들을 속이느냐, 아니면 파르티아인들과 동맹을 맺느냐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날 자신의 생일 축하연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군 지휘관들과 자신의 재산 관리인들 그리고 갈릴래아의 지도급 관리 인사들을 모두 초청한 것이다.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사방은 고요했다.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 있었고 병사들은 성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으며,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땅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헤로데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그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으나 소리는 곧 멈추었다. 다시 그 소리가 들리자 그는 손뼉을 마주치며 소리쳤다.
“마네우스! 마네우스!”
목욕탕 마사지사처럼 윗도리를 입지 않은 한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는 매우 키가 크고 바싹 마른 장년의 사나이로 허리 뒤쪽에는 동으로 만든 칼집에 든 단도를 차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으며 눈썹은 일부러 높이 치켜 뜨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나른하게 풀려 있었으나 치아는 하얗게 빛났고, 대리석 위에 놓여 있는 그의 발은 매우 예민해 보였다. 그의 온몸은 원숭이처럼 유연했지만 얼굴은 미라처럼 무감각해 보였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나?” 영주가 물었다.
마네우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말이야.”
안티파스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이아오카난에 관해 물었다. 이아오카난은 라틴 사람들이 세례자 성요한이라고 일컫는 사람이다. 영주는 몇 달 전에 세례자 성요한이 갇혀있는 토굴에 면회하도록 허락해준 두 사나이가 또다시 나타났는지 물었으며, 그들이 세례자 요한을 찾아온 목적을 알아냈는지에 관해서도 물었다.
마네우스는 대답했다.
“그들은 한밤 뒷골목의 강도들처럼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라면서 북부 갈릴래아로 떠났습니다.”
안티파스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경계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를 지켜. 잘 지키라구! 아무도 토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문을 꼭 잠그고 토굴의 구멍을 잘 막아라. 아무도 그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마네우스는 영주의 명령을 받기 전에 이미 그러한 조치를 취해 놓았다. 왜냐하면 이아오카난은 유대인이었고, 모든 사마리아 사람이 그러하듯이 마네우스도 유대인을 몹시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중심이라고 지정했던 그들의 게리짐 성전이 히르카누스 왕조 때에 허물어져 버렸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사마리아인들을 불만에 싸이게 했고 그 이후로 폭동과 반목이 지속되어왔다. 마네우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욕되게 하기 위해 사람의 뼈를 제단에 흩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보다 재빠르지 못했던 그의 공모자들은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두 언덕 사이로 성전을 바라보았다. 성전의 하얀 벽과 지붕의 금빛 무늬가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빛나는 신과 같았으며 그 권위와 위풍당당함으로 모든 것을 내리누르는 듯한 초월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네우스는 시온을 향해 팔을 벌리고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마치 자신의 말에 어떤 능력이 있다는 듯한 어조로 저주를 퍼부었다.
안티파스는 그 저주의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 사마리아인은 안티파스에게 계속 이렇게 보고했다.
“이아오카난은 때로는 탈출하고 싶어하고 누군가 자신을 구출해주기를 바라는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병든 짐승처럼 쥐죽은 듯 조용한 모습일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왔다갔다하며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분이 커지기 위해서 나는 작아져야 한다!’”
안티파스와 마네우스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나 영주는 무표정했다.
그의 주변에 그를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파도의 장막과도 같은 산들과 절벽 아래로 보이는 깊은 계곡들, 광대한 창공, 눈부시게 맑은 날씨 등,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사막의 융기(隆起)를 바라보니 그 모양이 파괴된 궁전과 원형 극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안티파스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글픔을 느꼈다. 저주받아 패망한 도시들이 묻혀있는 호수 밑바닥으로부터 유황 냄새가 뜨거운 바람에 실려오는 듯했다. 이러한 천벌의 징표를 느끼고 그는 기가 꺾였다. 그는 양팔을 난간에 기대고 초점을 잃은 눈을 한 채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몸을 돌리자 헤로디아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옅은 자줏빛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급히 뛰어나오느라 목걸이나 귀걸이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녀의 검은 머릿단은 한쪽 어깨로 흘러내려 그녀의 가슴사이에 묻혀 있었다. 흥분해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영주의 팔을 잡아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시저는 우리 편이에요! 아그리파가 감옥에 갇혔어요!”
“누구에게 전해 들었소?”
“확실하다구요.”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카이우스(原註: 칼리귤라 황제)의 제국에 대항해 일어선 죄랍니다!”
아그리파는 로마인들의 원조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왕권을 쟁취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골칫거리는 사라졌다. “티베리우스의 감옥에 한번 갇히면 나오기가 힘들죠. 뿐만 아니라 감옥생활도 말이 아니라더군요!”
헤로디아가 아그리파의 여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렇듯 잔인한 마음이 안티파스에게는 정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사건은 정치적인 형세의 결과로서 왕족들에게는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헤로데의 가문에도 그런 일이 빈번했다.
그녀는 자신의 계략을 이야기했다. 부하들을 매수하여 우편물을 가로채고 곳곳에 첩자를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발인 역할을 한 유티체스를 유혹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나를 막지는 못해요. 당신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한 일도 했을 거예요. 저는 당신을 위해 제 딸도 버렸답니다.”
이혼 후, 그녀는 딸을 로마에 남겨두고 왔다. 헤로데 영주와의 사이에서 또 다른 자식들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녀는 헤로데에게 아직 한번도 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헤로데는 그녀가 왜 이제 와서 딸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지 의아했다.
햇빛을 가리는 천막이 펼쳐지자 하인들이 커다란 쿠션과 방석들을 가져왔다. 헤로디아는 쿠션에 몸을 묻고 눈물을 흘리며 헤로데의 몸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녀는 곧 눈물을 훔치고는 더 이상 딸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으며, 지금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헤로데와 앞마당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함께 목욕했던 일, 성루를 산책했던 일, 아름다운 별장에서 저녁 시간을 보냈던 일, 분수 아래에서, 꽃밭에서, 로마의 평야에서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며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옛날처럼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는 그녀를 밀쳐냈다. 그녀가 애써 지난날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려 했으나 그의 사랑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의 모든 불행은 그녀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그 후 전쟁은 12년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영주는 이제 늙었다. 그는 어깨도 굽었다. 천막 사이로 스며들어온 햇빛은 하얗게 변해버린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수심 어린 그의 미간을 비추고 있었다. 헤로디아도 역시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산 너머에서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밀려오고 있었다. 목동들은 소를 몰고 오고, 아이들은 당나귀를 몰고 오고 있었으며, 마부들은 말을 몰고 오고 있었다. 그 긴 행렬이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한 무리는 마을로 들어갔고, 다른 무리들은 성으로 들어와 앞마당에 짐을 풀었다. 그들은 영주의 식량 징발관들이었다. 하인들은 손님들을 안내해 왔다.
그런데 테라스 아래 왼쪽에 흰 마옷을 걸치고 맨발에 금욕적인 표정을 한 에세네 사람이 보였다. 그때 오른쪽에 있던 마네우스가 단도를 빼어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를 죽여라!” 헤로디아가 소리쳤다.
“멈춰라!” 영주가 말했다.
에세네인과 마네우스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뒷걸음질쳐서 반대편으로 물러섰다.
“난 저 사람을 알아요!” 헤로디아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파누엘이고 이아오카난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보처럼 그를 살려두었기 때문이지요!”
안티파스는 그를 언젠가는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변명했다. 예루살렘을 공격한 후에 유대인들을 자기 편으로 흡수할 수 있을 거란 얘기였다.
“아니에요!” 헤로디아가 외쳤다. “그들은 누구든 섬겨야만 하는 족속이며 조국을 되찾을 능력이 없는 민족이라구요!” 느헤미야 예언자 이후, 희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는 억압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영주는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아오카난이 위험 인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는 세례자 요한이 위험인물이라는 의견에 비웃는 척했다.
“너무 안심하지 말아요!” 그녀는 언젠가 발삼을 구하러 길래아드로 가던 중 자신이 겪은 치욕스런 일을 다시 강조했다. 그날 강가에서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후 마악 겉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덕 아래에서 한 사나이가 외치고 있었다. 그는 낙타 가죽을 몸에 두르고 있었고, 머리는 사자 갈기처럼 산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성서의 예언자들이 말했던 온갖 저주의 말을 내게 퍼부었어요. 그는 불꽃이 튀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으르렁대며, 하늘에서 번개라도 끌어내려는 듯이 양팔을 쳐들고 소리쳤답니다. 그때 내가 타고 있던 마차의 바퀴가 모래 속에 빠져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외투로 몸을 숨긴 채 천천히 마차를 몰 수밖에 없었어요. 소나기처럼 퍼붓는 모욕적인 욕설에 나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이아오카난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헤로디아가 군인들에게 이아오카난을 체포하도록 명령하면서 혹시 그가 반항할 경우 살해해도 좋다고 했으나, 이아오카난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순한 양처럼 순순히 밧줄을 받았다. 또한 군인들이 그를 가둔 토굴 속에 독사들을 던져 넣기도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독사들은 곧 죽고 말았다.
이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헤로디아는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더구나 그가 자신을 그렇게 비난하고 모욕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일까? 그가 대중 앞에서 열변을 토한 내용은 유대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소문은 어디서든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군대를 대항해서도 끄떡도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아오카난이 한 말은 칼에 의한 상처보다도 깊었고 치유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넋을 잃고 테라스를 거닐던 그녀는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그 고통을 표현할 길이 없어, 분노로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헤로데가 대중의 여론에 굴복하여 자신과 헤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막강한 제국을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꾸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첫 남편을 버리고 헤로데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신 가문에 들어올 때 엄청난 권세를 등에 업고 온 거예요!”
“우리 가문도 당신의 가문과 다를 바 없소.” 영주는 아주 가볍게 대응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혈관 속에 사제이며 왕이었던 자기 조상들의 피가 끓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당신의 조부는 아스칼론 성전을 무너뜨렸을 뿐이죠. 그 외에는 다윗 왕 때부터 유대에 종속된 유목민들, 유랑민들, 대상들이었죠. 나의 조상들은 모두 당신의 조상들을 무찔렀어요. 마카베오 때는 당신의 조상들을 헤브론에서 내쫓았고 히르카누스 때에는 당신의 조상들을 할례시켰죠!” 그러더니 그녀는 귀족이 평민을 경멸하듯, 야곱이 에돔을 증오하듯이 그가 모욕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고 자신을 배신한 페니키아인들에 대해서도 관대하며, 자신을 미워하는 대중들에게도 비굴하게 대한다고 그를 비난했다. “당신은 그들과 다를 게 없어요. 그 사실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당신은 춤추는 아랍 소녀에게 넋을 빼앗겼어요. 그녀에게 가시지 그러세요! 가서 그녀의 천막에서 살며, 형편없는 빵을 먹고, 그녀의 양에서 짜낸 상한 우유를 마시며 사시지 그러십니까? 그녀의 음란한 볼에 입맞춰 주시지요. 그리고 나는 잊으세요!”
영주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떤 집 옥상에서 낚싯대만큼 길다란 파라솔을 들고 있는 한 할머니와 어린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안에서 옷과 베일과 보석들을 뒤죽박죽 두서없이 꺼내고 있었다. 소녀는 즐거워하며 이따금씩 그 물건들을 흔들어보곤 했다. 소녀는 로마 여성들처럼 치장하고 있었다. 줄무늬 튜닉(옛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의상으로 남녀가 같이 입었던 가운 같은 윗옷-역주)에, 에메랄드가 박힌 장식용 술이 달린 페플럼(허리에 둘러 엉덩이를 살짝 가리는 패션의 일종-역주)을 허리에 둘렀고, 자주 흘러내리는 머리 장식을 매만지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무거운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 듯했다. 파라솔의 그늘이 그녀의 상반신을 가리고 있었다. 안티파스는 그녀의 가녀린 목의 선과 귓불, 그리고 작은 입술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두세 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몸놀림으로 몸을 굽힐 때에 둔부에서 목의 선까지 이르는 그녀의 몸매를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숨은 가빠지고 눈은 빛났다. 헤로디아는 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요?” 헤로데가 물었다.
헤로디아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으나 갑자기 태도가 부드러워지더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갈릴래아 사람들과 명필가들, 목장주들, 염전의 감독관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현관에서 영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는 환호에 응답하고 나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 어귀에서 파누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또 자넨가? 자네는 분명 이아오카난을 만나러 왔겠지?”
“영주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며 안티파스를 따라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처마 밑의 기둥들 사이로 햇빛이 어두운 방에 스며들고 있었다. 방의 벽은 진한 석류나무 색으로 칠해져 거의 검은 색에 가까웠다. 한쪽 벽에는 소가죽을 댄 흑단 침대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둥근 금빛 방패는 태양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안티파스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파누엘은 계속 서 있었다. 그는 두 팔을 들어올리고 열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이따금씩 당신의 아들 중 하나를 이 땅에 보내십니다. 이아오카난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를 박해한다면 당신은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나를 학대하고 있소!” 안티파스가 소리쳤다. “그는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했소. 그 이후로 그와의 사이가 이렇게 되었지. 나도 처음부터 그를 혹독하게 대하지는 않았소! 그는 사람들을 보내어 나의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소. 그에게 저주가 있을 지어다! 나는 그가 나를 공격한 것에 대해서 내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 뿐이오.”
“그의 분노는 공격적인 데다 불과 같죠.” 파누엘이 대답했다. “그런 줄은 알지만 영주님은 그를 석방하여야만 합니다!”
“잔뜩 성난 짐승은 풀어주는 법이 아니오!” 영주가 말했다.
“두려워 마십시오.” 그 에세네 사람이 대답했다. “그는 이제부터 아랍, 가울, 쉬티아 등지로 떠날 것입니다. 그의 사업은 땅 끝까지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안티파스는 잠시 환영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해! 실은 나 자신도 내 의지와는 달리 오히려 그를 존경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그를 석방해주십시오!”
영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헤로디아와 마네우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파누엘은 에세네 사람들을 왕에게 복종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영주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항상 흰 색의 마옷을 입고 별자리를 보며 앞날을 점치는 사람들로서, 가혹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는 그 가난한 에세네인들을 대중은 존경하고 있었다.
안티파스는 조금 전에 자신이 놓친 말이 무엇인지 되물어보았다.
“자네, 조금 전에 뭐라고 했나?”
그때 한 흑인이 들어왔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이렇게 보고했다.
“비텔리우스께서…!”
“뭐라구! 그분이 도착하셨나?”
“그분을 보았습니다. 세 시간 후면 이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복도 끝에 드러워졌던 장막들이 일시에 걷혔다. 사람들이 바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가구들을 옮기는 소리,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뜨린 은쟁반이 내는 소리 등으로 성 안은 분주했다. 망대에서는 흩어져 있는 노예들을 불러들이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소의 창문 /엮은이: 앤 프레멘틀/옮긴이: 강우식/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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