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13>가평 연인산 아제비고개
가평의 터줏대감인 명지산(1천267m)과 최근 인기 상한가인 연인산(1천68m)은 능선으로 연결되는데
그 중간쯤에 아재비고개(애재비고개)가 있다.
이곳은 두 산의 중앙에 자리 잡았기에 어느 산에 속한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때론 그런 애매한 경계에
보물이 숨어있는 법.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에 이르는 3.3㎞ 능선은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원시림 지대다.
게다가 명지산과 연인산의 주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찾는 사람이 뜸하다. 호젓한 능선에서 여름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보자. 명지산과 연인산이 병풍처럼 두른 백둔리는 자연체험학교와 펜션들이 들어선
제법 유명한 마을이다.
백둔(栢屯)이란 잣나무가 많은 계곡이라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은 잣둔이라고 부른다.
산행 코스는 백둔리 죽터 마을을 들머리로 아담한 대골을 따라 아재비고개에 오른 뒤, 연인산까지 원시림
지대를 걷다가 소망능선을 타고 다시 백둔리로 내려오게 된다. 거리는 약 10㎞, 5시간쯤 걸리는 코스다.
“육이오 때 이곳으로 시집왔어. 그땐 말도 못할 정도로 시골이었지. 근데 지금은 길이 잘 나 서울이나
마찬가지야.” 버스 종점인 죽터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밝고 건강해 보였다. 아재비고개에 간다니까
큰 산에는 맑은 날에 가는 거라며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길을
나선다. 마을 안쪽으로 늙은 벚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아래에서 멀리 하늘에 마루금을
그리는 연인산을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 ‘죽터 생태계 감시초소’를 지나는데 땅 위에서
무언가 급히 지나간다. 뱀이다. 무늬가 화려한 것으로 보아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로 보인다. 조종천
상류인 명지산과 연인산 일대는 1993년부터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연인산 5.3㎞’
안내판과 과수원 길을 지나면 철문이 나온다. 2001년까지 출입통제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철문은
잠겨 있지만, 오른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10분쯤 오르면 오솔길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계곡이 시작된다. 이어 제법 큰 계곡을 건너는데 연이은 장마 폭우로 대골에도 물이
넘쳐난다. 나무를 붙잡고 조심스레 건너면 사람의 때가 타지 않은 원시림이 펼쳐진다. 길섶에는 산수국,
은꿩의다리 등이 발길을 붙잡는다. 계곡은 전체적으로 완만하다. 서너 번 더 계곡을 건너자 갈림길.
이정표가 없다. 길 흔적이 뚜렷한 오른쪽을 택해 30분쯤 더 오르자 계곡물 소리가 잦아들며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계곡과 헤어져 산비탈을 10여 분 더 오르자 아재비고개 정상이다. 아재비고개에는 배가 고파
아이들을 잡아먹었다는 섬뜩한 이야기가 내려온다. 예전 가평 산골에 뿌리를 내린 화전민들의 고달픈 삶이
조금은 과장되어 고갯길에 전설로 서린 것이다. 섬뜩한 전설이 내려오는 아재비고개 이름과 달리 아재비고개는
평화롭다.
층층나무 고목 아래의 벤치가 덩그러니 남아 있고, 빽빽한 나무와 풀들은 바람 따라 춤을 춘다.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 방향을 따르면 본격적으로 원시림 지대가 펼쳐진다. 푹신푹신한 길의 촉감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오고, 수풀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은 이리저리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아름드리 단풍나무들이
모여 있는 언덕을 지나자 땅에는 고사리 같은 양치류들이 그득하다. 서어나무, 층층나무, 까치박달, 가래나무,
물푸레나무…. 만나는 나무들과 눈을 맞추다 신갈나무 고목들이 가득한 곳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우와~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이런 고목들은 강원도 백두대간 구간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다.
아재비고개를 떠난 지 40분쯤 지나면 1천10m봉에서 길이 갈린다. 이정표가 없지만 길이 선명한 왼쪽 길을
따라야 한다. 오른쪽 길은 상판리 귀목으로 하산하게 된다. 이어 바위 지대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연인산
꼭대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문구가 적힌 커다란 하트 모양의 비석이
우뚝하다. 본래 이곳은 우목봉으로 불렸는데, 가평군에서 산을 개발하면서 연인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인산 정상 일대에는 지리산이나 한라산 등에서 볼 수 있는 구상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어 더욱 반갑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크리스마스트리 모습이라 눈에 쉽게 띈다.
하산은 ‘백둔리 장수능선’ 이정표를 따르다가 소망능선으로 갈아타고 내려온다.
이 길은 짧지만 험한 것이 흠이다.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1시간쯤 내려오면 잣나무숲을 만나면서 길이 순해진다.
이어 능선이 끝나면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이어 계곡 물소리가 우렁찬 백둔리에 도착한다.
<이 기사는 대구시체육회가 후원합니다.>
▨주변 명소
△자라섬 북한강에 떠 있는 섬으로 자라목처럼 생겨 이름이 붙었다.
가평군은 이 섬을 테마파크와 국제적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1천500명이 숙영할 수 있는 대규모
오토 캠핑장이 조성되었고, 다목적 운동장과 인라인장ㆍ놀이공원ㆍ자전거대여소 등의 놀이시설도 마련돼 있다.
자라섬은 2004년부터 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리며 올해는 10월 1일부터 3일간 개장한다.
△아침고요수목원 가평 행헌리에 자리 잡은 10만여 평에 달하는 넓은 수목원으로 허브정원, 분재정원 등
20여개의 정원과 산책로로 꾸몄다. ‘아침고요 산책길’은 운치 있는 잣나무 숲 속으로 이어지고, 원추리나
벌개미취 등이 철따라 어여쁜 꽃길을 만든다.
분재정원 뒤편의 연못도 분위기가 좋다. 문의 1544-6703.
▨교통
자가용은 서울춘천고속도로 화도 나들목으로 나와 찾아간다.
버스는 대구에서 직접 가는 편은 없고 춘천을 거친다.
가평터미널에서 백둔리행 버스는 오전 6시20분과 9시35분,
백둔리에서 가평행 버스는 오후 6시20분과 8시에 있다.
▨숙식
가평엔 다양한 숙박시설이 많다.
읍내 모텔여관(031-582-2960), 자라섬 10분 거리에 파멜라펜션(www.pamelapension.com),
자라섬오토캠핑장(031-580-2700) 등. 그밖에 연인산 매점(031-582-0720), 연인벨리(031-582-6568) 등에서
숙식 가능하다. 사진설명 : 명지산과 연인산 사이 아제비고개는 찾는 사람이 뜸해 원시적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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