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생일
오늘은 친정 나들이 가는 날이다. 년 초 설날에 세배 드리러 다녀오고는 엄마 생신인 5월이 되어서야 길을 나선 것이다.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친정에 가는 일이다.
이번 친정 행(行)은 생신보다도 더 특별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슬하에 삼남매를 두셨다. 아들딸이 결혼하여 사위 며느리 둘을 더 얻었으니 자식이 다섯으로 늘어난 셈이다.
남편과 함께 친정집에 들어서니 오빠내외와 여동생이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두루 두루 안부를 여쭙고 나니 어머니께서는 뭐가 그리 급하신지 낡은 서랍장에서 종이봉투 다섯 개를 꺼내어 자식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셨다. 처음엔 아무생각 없이 노인네가 관광 가서 건강에 좋다는 목걸이라도 사오셨나 생각하고 만져봤더니 묵직한 게 아차! 싶었다.
어머니는 당신께서 간직하고 있던 금붙이를 모두 녹여 목걸이 두 개와 가락지 세 쌍을 아들 사위 딸 며느리 몫으로 만들었다고 하셨다. 순간,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팔아서 쓰실 일이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이리 정리를 해놓으신 건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있는데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살아야 할 집을 찾으러 다녀오자며 채근하셨다. 이게 무슨 뜻인가 어리둥절하여 오빠에게 물었더니, 당신들의 유택을 마련하러 지금 가자는 것이다. 오래 전 충주 선산에 유택을 마련해 놓았으나, 작년부터 큰 비가 내리면 흙이 유실되기를 반복하니 그곳엔 가기 싫다고 하신다.
부모님께서는 젊은 시절 개울 옆에 사셨다. 장마철만 다가오면 노심초사 근심을 달고 살았기에, 저승에서까지 수해 걱정은 안하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는 오빠와 동생 차에 나누어 타고, 어머니께서 수소문해 놓은 여주 부근의 남한강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여 둘러보니 어마 어마하게 큰 규모였다. 걸어서는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없어 차를 타고 훑어보았다. 우리 가족은 매장 묘를 원했지만, 공원 관리인은 장묘문화가 화장으로 변해감에 따라 매장 할 수 있는 곳은 선택의 폭이 적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가 안내해준 곳은 양지바르고 평평한 곳이었지만 오빠는 축대를 쌓아놓은 부근이라 부토했을 가능성이 높다 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화장(火葬) 하는 것을 질색하셨다. 엄마 표현대로 라면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두 번 죽기는 싫다고 했다. 지금까지 근검절약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오신 부모님께서 누리고 싶은 단 한 가지 호사라면, 푸른 대지위에 영면하는 것인데 이것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다.
이천을 빠져 나와 다시 제천 의림지 부근에 있는 개나리 추모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오빠의 장인어른을 모신 곳이다. 처음 들렀던 곳 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런대로 잘 관리 되어 있었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둘러본 후 부모님께서는 이곳을 맘에 들어 하셨다. 저 멀리 보이는 송학산과 용두산 봉우리가 후손들의 안녕을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계신 부모님은, 새로 마련한 잔디가 파릇파릇 돋아난 네 평도 되지 않을 그곳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비로소 안도의 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그 옅은 웃음에서 또 한 번 부모님의 진한 자식사랑을 느껴야 했다. 상을 당하고 나면 허둥지둥 힘들어할 자식들을 생각하여 하나 둘씩 준비를 해놓으시는 그 마음. 돌아가시면 다 알아서 해드릴 텐데 당신이 손수 마련해 놓고는 이 세상 할일 다 한 사람처럼 홀가분해 하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러 갔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마냥 부모님의 유택을 마련한 지금, 멀게만 느껴졌던 부모님의 부재를 언젠가는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졌다.
해가 갈수록 몸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영원히 살아 계실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식의 어리석음을 눈치 채신 아버지께서 “이렇게 준비를 해놓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더 오랫동안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니 무거웠던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이 세상 어느 부모든 자식을 향한 사랑은 끝이 없는가보다. 어느덧 희수(喜壽)를 맞이한 어머니의 생신은 여느 해와는 다른 시간들로 채워졌다. 자식들을 대동하고서 영혼의 쉼터를 찾아 나선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길이지만, 그것이 막상 내 앞에 닥친 현실이 되고 보니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슴속에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특별한 생일은 이렇게 내 마음에 애련의 상흔을 남긴 날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첫댓글 우리 모임한 다음날 친정엘 다녀왔어요..
전날 마신 막걸리 탓에 머리가 맑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일을 걲게되니 더 슬프게만 느껴졌어요.
돌아와서 끝없는 부모님의 자식사랑에 감사하며..
잊혀지기전에 글로 써놓아야겠기에 두서없이 적어보았어요..
고쳐야할곳.. 지적 부탁드립니다..
네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딱 맞는 좋은 글입니다.
지금이라도 신작수필로 한국문인에 보내시면 어떨까요?
시의적절한 글로 문인측에서도 반길 것 같습니다...
이글 쓰면서 삼봉님의 작품 ' 아버지의 유택'을 다시한번 읽어 보았어요.
유택이란 단어도 삼봉님의 작품을 통해서 알았거든요..
응원 감사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지만 가고싶어가는길 또한 아니지요 ...무거운 발걸음이었겠군요
네 머리도 마음도 무겁고 힘들었어요..ㅎㅎ
무거운 소재를 편안하게 쓰려고 노력했는데...그래도 무겁네요... 감사 감사~~
무거운 주제를 , 자칫 격앙될 수있는 감정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소리작가님의 빼어난 글솜씨- 이제 일취월장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하나 예쁜 글자식 탄생을 축하축하!!!
이렇게 글자식을 탄생 시키고 나면 마음이 뿌듯한게 날아 갈듯이 기쁘답니다.
문학의 길로 안내 해 주신 울 회장님 감사 합니다..~~꾸벅
우리 구인회에 미모의 여류작가님 두 분이 계시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늘 고맙게 생각하지요.
정말 잊고 있었던 내 어머니를 생각하게 해주었네.. 마음은 무겁지만 준비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신거 같네 자식들에게 당황하게 하지 않으시려는 부모님 마음 소리님 무거운 마음 살아계실때 더욱 최선을 다해 모셔서 어두운 마음 내려놓길바래..힘내요..~~
친구의 응원에 감사
아마, 우리모두도 자식들에게 피해 안주려고 고민하며 살겠지
우리네 부모에게서 배운것 처럼....
아침에 우연히 TV를 보았는데 어떤 마을에 20년간 아기 울음 소리가 끊겼었는데 젊은 귀농부부 덕분에 아기가 태어나 마을에선 큰 경사(가) 났다며 기뻐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그 예쁜 아기의 탄생과도 같은 효심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님의 가없는 사랑 되새기며 축하 드려요 소리님^^*
이글을 쓸때만해도 시간내서 한달에 두번이상을 찾아 뵈어야지 다짐했었는데~~
에궁 불효여식인가 봅니다..
경사님~ 축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