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간 163.8]
답사기(1)
경북지역 동학혁명 전적지를 답사하고
김영진_경희대 교수
동학학회(13명)는 지난 7월 28일과 29일 1박 2일에 걸쳐 예천, 문경, 상주 등 경북지역의 동학혁명 현장을 답사했다. 이번 답사는 오는 11월에 있을 영해·영덕지역의 동학혁명 학술대회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여정이었다. 6월 중순 영덕군의 요청으로 군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경북지역을 고사하고 동학혁명의 격전지로 유명한 예천조차도 연구자의 관심이 미미하다는 동학 관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경상 북서부에 자리한 예천은 해월 최시형의 2차 기포령 발포하기 약 20일 전 대규모의 무장투쟁이 이루어진 곳이다. 동학농민군들을 핵심 세력으로 이루어진 이 투쟁에 양반들 다수가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조차 묻혔기에 규명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지적이었다.
예천, 문경, 상주 등 동학혁명 현장을 답사
연구자의 사명감으로 동학 관련한 예천지역의 유적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에 관한 자료를 탐색하다가 ‘김두년’이라는 이름에 이끌렸다. 혹시, 예천중학교 국어 선생님과 동명이인일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겨우 알아낸 정보로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예천의 동학 관련한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흔쾌히 돕겠다던 선생님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연구 주제, 예천 동학 기념사업회 등 예천지역의 동학 관련한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지난 7월 20일 예천박물관 주최로 이루어진 동학 관련 학술대회(「아시니껴, 잊어서는 안 될 예천의 역사」)에서 발제문의 토론자로서 역할을 하기까지의 과정인 셈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경북지역의 동학혁명지 답사였다.
예천지역의 동학혁명 관련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대창고등학교였다. 대창고는 올해로 개교 100주년 되는 학교로 동학혁명 당시 관아와 객사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향리들로 구축된 민보군의 보수 집강소로 쓰였던 장소다. 경상지역의 집강소는 다른 지역의 집강소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일반적 개념의 집강소는 농민군을 위한 곳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관군 측을 위해 쓰인 것이다. 경상지역에서의 집강소는 무슨 이유로 다른 삼남지역과 다르게 사용했는지 의구심이 가득했다. 다음 도착지는 동학농민군 11명이 생매장된 곳(「갑오척사록」 기록)으로 알려진 한천이었다. 당시 생매장됐던 11명의 동학농민군은 비석으로 세워져 잠들어 있었다. 비교적 최근인 1996년 예천 동학혁명 기념사업회에서 세웠다고 전해 들었다. 비석은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은 예천 스타디움의 구석진 모퉁이에 세워져 있었다.
동학농민군 생매장되어 한 서린 한천
이어서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맞붙은 서정자들 전투지, 굴머리 전투지, 고산리, 윤치문 장군 묘 등을 답사했다. 표지석도 없이 제멋대로 자란 잡초들로 둘러싸인 윤치문 장군의 묘에 시선을 붙들린 채 한참 동안 서성대다가 다음 답사 장소로 이동했다. 동학농민군 집결지로 알려진 금당실 송림과 동학군의 집강소로 쓰였던 함양박씨 유계소를 거쳐 동학 농민혁명 지도자 전기항 의사 추모비 앞에 멈춰 서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천 지역민들의 동학에 관한 위상과 인식의 현주소가 머릿속을 어지럽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예천 동학 관계자들이 동학학회가 숙소로 정한 금당실 한옥마을 체험학습관으로 퇴근했다. 전장홍 회장님을 비롯한 예천지역의 동학 관계자분들과의 대화는 시간의 흐름을 잊을 만큼 깊고도 절박했다. 같은 방향의 길을 추구하는 동지들의 결속은 의기투합을 넘어 절대적 사명감으로 뿌리내렸다. 답사 이튿날 방문한 용문사는 의암 손병희 선생이 풍기에서 관군을 피해서 21일간 피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뒤이어 관동포 대접주 최맹순이 접소를 설치하며 활약했던 곳으로 유명한 문경 소야리를 찾았다. 그런데도 아무런 흔적도, 표지석도 없었다. 강릉최씨 후손들조차도 조상인 최맹순을 잘 모른다는 회장님의 설명이 있었다. 단절된 역사와 지역의 동학에 관한 인식과 위상을 재정립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감이 엄습했다.
단절된 지역의 역사 재정립 해야
이은 문경 석문 전투지, 그리고 수운 최제우가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길로 동학의 순례지로 알려진 점촌북초등학교 앞 유곡동, 무양동 북천교 남단 천변 공원에 설치된 동학 농민 혁명 기념비, 마지막으로 현재는 상주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당시 동학농민군 처형지 중 한 곳이던 남사정터를 끝으로 답사 일정을 모두 마쳤다. 동학식의 예로써 답사의 해산을 알리는 회장님의 주문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읊조렸다. “심고 합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내면 깊은 곳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 용솟음쳐 오른 건 비단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