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鄕
-김소월
1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2
봄이면 곳곳이 산새소리
진달래 화초 만발하고
가을이면 골짜구니 물드는 단풍
흐르는 샘물 위에 떠나린다
바라보면 하늘과 바닷물과
차 차 차 마주붙어 가는 곳에
고기잡이 배 돛 그림자
어기여차 디여차 소리 들리는 듯
3
떠도는 몸이거든
고향이 탓이 되어
부모님 기억 동생들 생각
꿈에라도 항상 그곳서 뵈옵니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마음속에 고향도 있습니다
제 넋이 고향에 있습니까
고향에도 제 넋이 있습니다
마음에 있으니까 꿈에 뵈지요
꿈에 보는 고향이 그립습니다
그곳에 넋이 있어 꿈에 가지요
꿈에 가는 고향이 그립습니다
4
물결에 떠내려간 부평 줄기
자리잡을 새도 없네
제자리로 돌아갈 날 있으랴마는!
괴로운 바다 이 세상에 사람인지라 돌아가리
고향을 잊었노라 하는 사람들
나를 버린 고향이라 하는 사람들
죽어서만은 천애일방(天涯一方) 헤매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으로 네 가거라 *
* 고향
- 백석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느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故鄕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을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고향
-박용철
고향은 찾아 무얼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무너진 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옛 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 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하리.
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 보랴
남겨 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고향
- 김광균
하늘은 내 넋의 슬픈 고향
늙은 홀어머니의 지팽이같이
한줄기 여윈 구름이 있어
가을바람과 함께 소슬하더라.
초라한 무명옷 이슬에 적시며
이름 없는 들꽃일래 눈물지었다.
떼지어 우는 망아지 등 너머
황혼이 엷게 퍼지고
실개천 언덕에 호롱불 필 때
맑은 조약돌 두 손에 쥐고
노을을 향하여 달리어갔다.
뒷산 감나무꽃 언제 피었는지
강낭수수밭에 별이 잠기고
한 줄기 외로운 모깃불을 올리며
옷고름 적시시던 설운 뒷모습
아득―한 시절이기 더욱 그립다.
창망한 하늘가엔 나의 옛 고향이 있어
마음이 슬픈 날은 비가 내린다.
* 고향
- 김규동
고향엔
무슨 뜨거운 연정(戀情)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을 둘르고 돌아 앉아서
산과 더불어 나이를 나이를 먹어가는 마을.
마을에선 먼 바다가 그리운 포플러나무들이
목메어 푸른 하늘에 나부끼고,
이웃 낮닭들이 홰를 치며
한가히 고전(古典)을 울었다.
고향엔 고향엔
무슨 뜨거운 연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고향
- 고은
이미 우리에게는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다
자란 곳이 고향이 아니다
산과 들 달려오는
우리 역사가 고향이다
그리하여 바람찬 날
우리가 쓰러질 곳
그곳이 고향이다
우리여 우리여
모두 다 그 고향으로 가자
어머니가 기다린다
어머니의 역사가 기다린다
그 고향으로 가자
*고향
- 김후란
내 마음
나직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
지었어요.
울타리는 않겠어요.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
감나무 한 그루
심었어요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깊어 가는 고향집.
*고요한 귀향
- 조병화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 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 고향
- 곽재구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를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독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댁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의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귀거래사
- 도연명
지난날 오랜 굶주림에 괴로워
쟁기 내던지고 벼슬길에 나갔다
가족 부양하느라 절개 지키지 못하니
춥고 배고픔이 참으로 나를 얽매었다
疇昔苦長飢
投耒去學仕
將養不得節
凍餒固纏己
이제껏 마음은 육신의 부림을 받아 왔다
어찌 애처롭게 홀로 슬퍼하고만 있는가
지난 잘못은 탓할 수 없지만
앞으로 올 일은 좇을 수 있다
실로 헤맨 길이 아주 멀리 간 건 아니다
이젠 알겠노라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그 뿌리로 돌아간다
소박함으로 돌아간다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만물의 구별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무극으로 돌아간다
復歸其根
復歸於樸
復歸於嬰兒
復歸於無物
復歸於無極
복희씨 신농씨 떠나간 지 오래되어
세상은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 적었다
노나라 공자 성급히 서둘러
그 순후함으로 미봉하니
봉황은 비록 이르지 않아도
예악이 잠시 새로워졌다
노(魯)나라 강가에 미약한 울림은 멎고
진(秦)나라 광기에 천하가 표류해서는
시서(詩書)가 무슨 죄가 있다고
하루아침에 잿더미를 만들었다
구구절절 여러 노성한 이들이
참으로 부지런히 노력했는데
어찌하여 성인에게서 멀어진 세상이 되어
육경(六經)과 친한 이 하나도 없나
종일토록 수레를 몰고 다녀도
나루터 묻는 이 볼 수가 없다
만약에 흔쾌히 술 마시지 않는다면
머리에 쓴 건(巾)을 부질없이 저버리는 것
다만 한스러운 건 잘못 살아온 지난 인생
그대는 마땅히 취한 사람 용서하시라
羲農去我久
擧世少復眞
汲汲魯中叟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詩書復何罪
一朝成灰塵
區區諸老翁
爲事誠殷勤
如何絶世下
六籍無一親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若復不快飮
空負頭上巾
但恨多謬誤
君當恕醉人
* 고향
- 나태주
바람이 다르다
내 코만이 아는 아, 풀비린내.
* 내 고향은
- 나태주
내 고향은
산, 산
그리고 쪽박샘에
늙은 소나무,
소나무 그림자.
눈이 와
눈이 쌓여
장끼는 배고파
까투리를 거느려
마을로 내리고,
눈 녹은 마당에서
듣는
솔바람 소리.
부엌에서 뒤란에서
저녁 늦게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
* 고향
-김용택
한번 왔다 가는 이 세상
살면은 얼마나 살겠다고
울고 갔던 타관길
들꽃 피는 고향길에
꽃상여로 왔구나
앞산 뒷산 오동동
오동꽃이 피어
흰나비 노랑나비 훨훨 날아
이 건너 저 건너 물 건너
이 산 저 산 청산을 나는데
한번 왔다 가는 저 세상
잘 가소, 잘 있으소 눈짓도 없이
물 건너 저 건너
녹수야 청강 건너서
오월 청산을 가는구나
저 세상에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