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금호미술관에서 인상적이었던 구본숙 사진전 보고 톤 쿠프만 공연보고 귀가해서 이것저것 하다 오늘 하루를 완전 늦게 시작했습니다.
바흐를 음반이든 라이브든 숱하게 들어도 어제처럼 바로크 시절로 그대로 가 있는 듯한 라이브를 경험하는 일은 드물 것 같습니다.
우아함과 고풍미, 순수미를 통해 느낀 바흐의 오리지널리티를 제대로 느낀 하루였습니다.
지휘하랴, 하프시코드와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랴 열일하신 톤 쿠프만 옹의 천진난만한 소년같은 이미지도 인상적이었고요.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는 선명함과 정갈함을 특징으로 제대로 자리잡아가고 있었고 롯데홀의 음향은 세계적인 콘서트홀의 어느 곳과 비교하더라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관객이 만석이었을 때는 정확하게 들리던 소리가 조금 비었을 때는 잔향이 더 들린다는 점이 이채로웠습니다.
말러처럼 동시대와 현대인의 심성에 따라 치열하게 고민하며 해석되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어제처럼 순수 그 자체를 구현하려는 연주가 있겠죠.
또한 바로크나 바흐에서도 깊은 정신성을 탐구하는 칼 리히터,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사이 스즈키가 있는가 하면 소리의 순수성과 색채에 주목하는 트레버 피노크, 헬무트 릴링, 조르디 사발같은 이도 있을 겁니다. 톤 쿠프만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어제의 톤 쿠프만과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이들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바로크 시절의 바흐에 가장 근접하여 재현한 하루를 들려줬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겹게(!) 듣는 G선상의 아리아(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 2악장 Air)가 기존에는 서정적인 선율 위주라면 어제는 기품과 고풍미가 함께 하는 연주였습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칼 리히터가 바흐의 정신을 추구하는 진국의 설렁탕이라면 톤 쿠프만은 고악기 위주의 음악적 순수성으로 고춧가루가 살짝 들어간 맑은 콩나물국같다고 할 수 있겠죠.
바로크와 바흐를 음악기술적으로, 해석적으로 다양하게 만날수 있는 이 시대에 톤 쿠프만이 그려내는 바흐와 하이든의 옛스러운 매력을 직접 느꼈던,
잊을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우오~진심 부럽습니다. 일찌감치 예약까지 해놓고 손꼽아 고대하던 공연을 못가게 되어서 얼마나 안타깝던지 ㅠㅠ 그래도 율리시즈님이 리뷰 올려주시니 이것으로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설렁탕과 콩나물국의 비유에서 빵터졌어요ㅎ) 톤쿠프만의 바흐 연주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감동을 우려낸 맛이 있어요. 그저그저 오래오래 장수하셔서 한번만 더 내한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빵터진 비유일진 몰라도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보지 못하고도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바로크시대의 느낌.
늘 눈팅만 해오다 오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글을 읽으며 언젠가는 그 곳에 가볼거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비행기타고 가서 새로 개관한 롯데홀의 음향에 빠져보리라는 작은 목표를 세운 날이기도 한 11월 3일 저녁
벤쿠버에서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