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상북면 대석리 죽림산방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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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산소가 부족하면 병이 생깁니다. 산소를 채워주는 음식을 먹으면 만병을 예방할 수 있어요." 식약동원(食藥同源), 음식이 곧 약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연구가가 있다. 효소를 36년간 연구한 권민경 대표. 그 노하우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죽림산방(055-374-3392)을 찾았다.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홍룡사 인근마을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자 대나무숲에 둘러싸인 한옥이 나온다. 권 대표가 14년째 운영하고 있는 약선요리 음식점이다.
권민경 대표의 약선요리 논리는 단순하다. 원래 우리 땅에서 나는 음식재료는 몸에 해로울 게 없지만 지금은 오염으로 산성화된 토양에서 자라 독을 품게 되었다. 이 음식재료들을 요리하기 전에 해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 해독제가 권 대표가 직접 개발한 산야초 효소이다. 효소로 해독하면 보통 이틀이면 물러지는 채소들이 보름이 지나도록 거뜬하단다.
권민경 대표는 약선요리 체험교육장을 만들어 대중에게 건강한 요리를 보급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
우리 산야에 자라는 초근목피가 다 효소 재료가 된다. 선친이 유명한 한의사여서 어려서부터 약초를 가까이하며 자랐다. 전국을 다니며 직접 초근목피를 채취해 맛을 보고 요리에 활용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 끝에 생약효소가 탄생한 것이다. 권 대표가 개발한 효소의 특징은 음양오행에 맞춘다는 것. 잎 줄기 열매 꽃 뿌리의 오행에 따라 단오 이전에 50가지 재료로 효소를 빚는다. 봄에는 새순을, 여름은 줄기와 신선한 잎, 가을은 뿌리와 줄기 잎, 겨울에는 뿌리를 취해 기의 균형을 맞춘다. 산방 뒤의 야산 1만5000평에 약초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전국 각지와 울릉도에서까지 구해온다고 했다.
이렇게 빚은 효소는 7개월 정도 발효시킨 뒤 3년간 숙성한다. "숙성을 오래 할수록 효능은 커집니다. 효소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죠." 권 대표가 직접 만든 약차를 권하며 말했다. 효소는 또한 탁월한 천연조미료이기도 하다. 죽림산방의 모든 음식은 화학조미료 대신 이 효소로 맛을 낸다. "이렇게 요리한 음식은 많이 먹어도 속에 부담이 없다"고 덧붙였다.
주위의 흔한 산야초로 병을 예방한다는 주장에 반신반의하다가도 권 대표의 얼굴을 보면 믿음이 간다. 곧 칠순이 된다는 얼굴에 잡티나 주름 하나 없다. 나이보다 20년 이상 더 젊어 보인다.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지만 본인의 약선 요리로 수술 없이 이겨냈다고 한다.
권 대표는 요즘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치료에 관심이 많다. 호주의 어느 지자체에서 연구소를 세워 함께 연구하자는 제의가 와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전통 발효식품 연구와 안전한 먹을거리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명인 문화예술 교류회로부터 '약선요리분야 1호 명인'으로 지명받았다. 특히 2007년에는 죽림산방이 문화관광부 주최 '대한민국 베스트 한식당 100곳'에 선정되었다. 지금은 셋째아들에게 식당일을 물려주고 식당 입구에 있는 부경해독연구소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요리만큼은 아직 직접 챙긴다. 음식점을 나오는데 일꾼들이 막 베어 온 땅두릅을 손질하고 있었다. 권 대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직원들에게 '뿌리는 이렇게 잎은 저렇게' 손질하라고 주문했다.
영산대학교 약선학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던 권 대표는 정년 퇴임 후 전국에 특강을 다닌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수십만 평의 부지를 구해 약초를 가꾸고 직접 와서 배울 수 있는 체험교육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면 위나 장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는 무궁화를 대량 재배해 약선요리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권 대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해독하는 방법을 배워서 다 같이 건강해지도록 하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라며 "가능하면 효소 백과사전도 만들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효소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헛개나무 청미래 황매목 삼백초 등으로 만든 약차를 '몸차'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에도 나섰다.
■ 전통 약선한정식 코스는
약선코스요리 중 '장수상'을 먹어봤다. 산야초 효소무침①과 유자떡무침②이 먼저 나왔다. 해독한 산야초로 만든 효소무침은 아삭아삭하면서도 씹는 맛이 쫀득쫀득하다. 유자청에 버무린 유자떡무침은 쌉싸래한 금귤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올방개묵③과 순두부④에 이어 나온 해물버섯찜⑤은 들깨 맛이 구수하다. 콩고기 잡채⑥는 일반 고기잡채보다 담백하다. 가장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장수 약초쌈. 쌀가루 등으로 만든 오색 전병에 색색의 약초를 올려⑦ 먹는데 재료 고유의 향들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재료를 볶을 때도 기름은 아예 안쓴다. 효소가 대신 쓰인다. 오리떡갈비와 대통밥 된장찌개가 밑반찬⑧과 함께 나온다. 이날 상의 유일한 육류는 오리다. 다른 육류는 산성이지만 오리는 중성이라고 권 대표가 귀띔했다. 숟가락을 놓을 때쯤 효모가 들어간 구수한 숭늉이 나왔다. 약선 연밥정식(1만5000) 죽림상(2만2000) 장수상(3만2000) 용궁상(4만5000). 가장 비싼 용궁상에는 전복찜 왕대하 인삼과 송이요리가 더해진다. 지치주 매화주 오가피주 엉겅퀴주 등의 전통주도 있다.
출처 :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