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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
_-_-_-_-_-_-_-_-_-_-_-_-_-_-_ (nosam****)
박정희 대통령각하의 업적중 하나인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과연이 그분이 반대여론을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해 나갔는지도 함께 알아보자.
라도게이들도 이번 구정에 잘 다녀오지 않았니? 지금이야 천안~논산으로 질러가고있지만 회덕까지는 상도 게이들하고 같은 길을 이용하지 않았니?
배워서 남주나 혹시 알어 아고라 게이중에 대통령이 나올지? 시장하고 국회의원은 몇놈 나왔잖아~ 그림만 쭉 보지말고 글도 좀읽어 야동보다 버린눈 정화도 좀 하고~~ 자 그럼 시작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1968.2∼1970.7)은 경제개발 초기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사회간접자본인 도로와 항만 등의 국가기반시설이 경제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적 선결 요소라는 인식 하에, 간선축이던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연결하는 수송망을 구축, 국가경제의 발전을 견인하고 지역격차를 해소할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는 2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 소요되었는데, 이를 위해 429억 원의 비용과 당시의 낮은 토목건설 기술이 총 동원되었다. 고속도로의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미비하였던 때이므로 막대한 건설비를 투입해야 하는 고속도로 건설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국민이 많았던 사실은 당시로서는 당연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초기에 정치권과 언론 등으로부터 호된 비판과 반대를 감수해야 했다. 당시의 핵심 이슈는 사업의 타당성과 우선순위 미흡, 지역불균형 초래, 재원조달 곤란 등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한 반대논리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경부고속도로의 성공적인 완공은1970년대 이후 우리 경제와 지역 간 교통 그리고 자동차문화의 비약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 사업 개요
-사업규모 총 연장 428km (서울 서초구 한남대교 남단 ∼ 부산 금정구)
-공사기간 1968. 2. 1 ~ 1970. 7. 7 (2년 5개월, 888일)
-투 자 비 총 429억 원 (약 1억 원/㎞)
-주요재원 교량 643개소, 터널 6개소, 나들목 19개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 주요 도시 경유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과로 여객과 화물의 수송난이 심각해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 건설이 착수되었으나, 당시
사회ㆍ경제적 여건에서는 전국적인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내걸면서 사업이 구체화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의 목적은 서울ㆍ대전ㆍ대구ㆍ부산 등 주요 도시의 연계 수송망을 구축하여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고, 지역 격차 해소를 통해 국가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총 사업기간은 1968년 2월부터 2
년 5개월이 소요되었고, 총 사업비 429억 원이 투자되어 교량 634개소, 터널6개소, 나들목 19개소의 4차로 428㎞의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반대여론이 많았다. 정치권, 언론, 학계, 재계에서는 대부분 시기상조라며 건설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오히려 투자재원을 농수산물 안정과 중소기업 육성 등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반대하였다. 또한 짧은 기간 막대한 재원이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되어 일반도로 건설에 대한 투자비율이 균형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 대도시에 생산 및 서비스 시설이 집중되어 지역의 불균형성장을 조장함은 물론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부자들을 위한 도로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된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국토공간의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자동차 시대를 열고 ‘한강의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이후 영동고속도로 등 여러 고속도로의 건설 활성화로 이어졌다.
현재 고속도로망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직접효과는 연간 305.7조 원(GDP의33.6%, 2006년 기준)에 이르며, 지역격차의 해소 등 국토의 균형발전에도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역경을 딛고 추진된 국책사업을 통해 ‘할 수 있다(can do)’는 국민적 자긍심을 심어준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사회적 자산이라고 평가된다.
2. 추진배경 및 사업목적
1) 추진배경
우리나라에서 처음 고속도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에 도로기술 공무원(내무부 토목국 관리)들이 미국의 도로 및 도로공사의 상황을 시찰하고 돌아 온 때부터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6.25로 인한 피해복구에 여념이 없어서 고속도로 건설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그 뒤, 일본이 1958년에 ‘메이신(名神) 고속도로’를 착공한 데 이어 1960년대에 2개 노선을 추가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과로 수송난이 심각해지자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내부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대내외 상황에서 1967년 5월에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가 착공되어 고속도로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으나, 당시 국내의 경제ㆍ사회적 여건상 어느 누구도 전국적인 고속도로를 실제로 건설할 엄두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1967년 4월 29일,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박정희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고속도로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 기간중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같은 해 5월 2일 기자회견에서 고속도로 건설계획은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강릉, 부산, 목포를 잇는 기간고속도로망을 건설하는 사업이라고 발표하면서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구체화되었다.
2) 사업목적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서울ㆍ대전ㆍ대구ㆍ부산을 잇는 연계 수송망을 구축하여 국가경제성장을 뒷받침하고 아울러 지역격차 해소를 통하여 국가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었다.
3) 사업내용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서울 서초구 한남대교 남단과 부산 금정구를 연결하는 428㎞의 고속도로를 건설한 사업으로 429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따라서 당시 가격으로 고속도로 1㎞ 당 약 1억 원의 공사비가 소요된 셈이다.
총 사업기간은 1968년 2월 1일부터 1970년 7월 7일까지로 888일이 걸렸다.
1968년 말까지 서울~수원~오송 구간, 1969년 말까지 오산~천안~대전 구간 및 대구~부산 구간이 개통되었고, 1970년 7월 대전~대구 구간의 개통으로 전 구간 개통이 완료되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에는 교량 634개소, 터널 6개소, 나들목 19개소가 설치되었고, 폭원은 전 구간에 걸쳐 22.4m(4차로)로 건설되었다. 노면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으며, 공사 과정에 시멘트 680만 대, 아스팔트 47만 3,000드럼, 철근 4만 9,900톤, 강재 1만 900톤이 소요되었고, 연 892만 8,000명의 인원과 장비 165만 대가 동원되었다.
4) 사업 추진 주체
박정희 정부는 1967년 12월 15일 ‘국가기간고속도로건설계획조사단(이하 계획조사단)’을 발족하였다. 계획조사단은 추진위원회의 심의자료에 관한 계획및 조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계획조사단의 막중한 임무를 감안하여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국무위원에 준하는 절차로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을 수여하였다. 계획조사단은 1968년 2월 1일 기공식 직전까지 약 2개월 동안 존속하면서 방대한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 연구와 각종 계획 및 조사 활동을 수행하였다.
정부는 1968년 1월 29일에 조사계획단을 해체하면서 건설공사 집행기구인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사무소’를 건설부령 제48에 의거하여 설치하였다.
5) 사업 추진 경과
1967년 4월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선거공약을 시작으로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이 완료되기까지의
추진 경위는 아래와 같다.
1967. 4. 29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년) 기간 중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발표
1967. 11. 20 ∙6개 기관 추정공사비 청와대 제출
1967. 11. 23 ∙각 안에 대한 비교 검토를 위한 작업반 청와대 파견 지시(대통령)
1967. 11. 24
∙‘청와대 파견단’ 업무 수행(4명, 20여일)
- 대통령 직접 지시 계통으로 추정공사비 검토, 계획노선 지도 작성, 용지매수자료정리, 표준단면 작성, 예정노선 답사 등 담당
1967. 12. 13
∙국가기간고속도로 건설추진위원회 구성
- 관계부처 정책 조정과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 및 강력한 행정력 구사를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경제기획원장관과 건설부장관을 부위원장으로 한정책 기구
- 1차 회의(1967.12.19):계획조사단의 기본 방향 결정
- 2차 회의(1968.1.24):2월 1일 기공식을 앞두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기본계획 심의
- 1968.11.23 해체:산하 계획조사단과 이후 설치된 공사사무소를
박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다시피 하여 존재 의미 상실
1967. 12. 15
∙국가기간고속도로건설계획조사단 발족
- 명목적으로 추진위원회의 심의자료에 관한 계획 조사 업무 분담이었지만 임무의 막중함을 감안 그 권위를 부여하려는 배려로 국무위원에 준하는 절차로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 수여
- 1968년 2월 1일 기공식 전(1968.1.29)까지 약 2개월 존속하면서 방대한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연구와 각종 계획 조사 활동 수행
1968. 1. 29 ∙건설공사 집행 기구인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사무소 설치(건설부령 제48호)
노선계획 확정 ∙서울~대전간(1968.1.12), 대전~김천간(1968.10.17), 김천~대구간(1968.10.17),
대구~부산간(1968.4.25)
1968. 2. 1
~ 1970. 7. 7 ∙공사
6) 사업 재원 조달
19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구체화된 후 각계에서 건설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들끓었던 논란의 초점은 다름 아닌 건설을 실현시킬 재원의 문제였다. 약 1년 전에 착공하여 진행되고 있던 서울∼인천간 고속도로(1971년 고속
국도로 지정) 건설 과정이 경험이라면 경험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경인고속도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국가적 대사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시험대였던 경인고속도로는 1967년 3월 24일 착공되어 1차로 서울∼가좌간 23.5㎞가 1968년 12월 21일에 완공되고, 이어 포장공사가 미뤄졌던 가좌∼인천 용현동간 6㎞가 1969년 7월 21일 개통하게 됨
으로써 서울∼인천간 29.5㎞가 완전히 개통되었다. 총 공사비가 약 31억 5천만 원으로 정산되었는데, 이는 1㎞당 약 1억 5백만 원의 비용이 든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여러 군데 어려운 구간이 포함되어 경인고속도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재원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거의 처음시도되는 국가적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위 ‘단군 이래 최대토목공사’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이런 대규모 사업을 위해 당초 계획조사단이 제시한 총공사비는 384억 원이었는데 경제차관회의의 심의 끝에 330억 원으로 조정되었다. 본래 계획의 수립단계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기관과 업체에서 너무나 다른 예상공사비를 산출하여 보고한 적이 있었다. 건설부는 650억 원(나중에 450억원으로 조정), 재무부 330억 원, 경제기획원 산출포기, 서울특별시 180억원, 육군공병감실 490억 원, 현대건설 280억 원 등 그 예상 액수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만큼 정부기관이나 업체 할 것 없이 경험이 없던 공사의 예상비용을 산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결정된 예상 비용은 실제 공사가 진행되면서 집행되는 비용과 큰 차이가 났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실제 서울∼오산간, 오산∼대전간, 대구∼부산간 공사가 각각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비용이나 새로운 추가비용 발생 등으로 공사비는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69년 3월 건설부는 당초 예산 330억 원에 99.8억 원을 추가한 총공사비 429.8억 원을 요구하였다.
건설 초기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자차관이나 양곡차관 형식의 외자 도입, 그리고 유류세 인상, 공채 발행, 통행세, 유로도로요금, 군지원등을 통한 국내 재원 조달 등 다각적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결국 국내 재원
이 공사비의 95.6%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만큼 외국자본 도입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차관계획 중지라는 정치적 결정도 맞물려 있었다.
3. 사업추진 상의 찬·반 주장과 근거
1) 이슈와 찬·반 논리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논의 초기부터 여러 갈등이 표출되었다. 이러한 갈등의 유형은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타당성, 서울~부산간 노선 착공의 우선순위, 지역 불균형성장 및 고유의 미풍양속 저해 등으로 구분되며, 각 유형
별로 반대측과 찬성측의 주장 및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타당성
반대측 주장과 근거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하여 짧은기간 동안에 막대한 자금이 한 사업에 집중 투자됨으로써 경부고속도로 외 일반도로 건설에 대한 투자비율이 균형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농산물 가격안정과 중소기업육성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야당 및 미국 관계자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찬성측 주장과 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찬성하는 이들은 도로가 철도나 항만에 견주어 투자효율이 높고 제한된 자금으로 수송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높아 산업발달과 지역개발 촉진, 생활권 확대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타
당하다고 주장했다.
1965년 11월에서 1966년 6월까지 IBRD 조사단의 검토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철도, 해상, 공로 여건이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으며, 특히 경부선의 경우 가까운 장래에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찬성측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당시 국내 여건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8.3%로 고도성장하였고 수송률 또한 13.5% 성장하였으며, 경부선 철도의 화물량은 40% 증가하였다.
(2) 서울~부산간 노선 착공의 우선순위
반대측 주장과 근거
정치권, 언론계, 학계, 재계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대부분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서울~부산 노선을 우선적으로 착공하는것에 관해서 호남 지역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호남 푸대접론이 제기되었다.
찬성측 주장과 근거
찬성측은 당시 여건상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축에 우리나라 차량의 80%가 운행되고 있으며, 해상수출의 40%를 점유하는 부산항과 20%를 점유하는 인천항 및 수도권을 경부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를 이용하
여 연결할 수 있으므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익성이 가장 높아 완공 시 통행료 수입으로 다른 고속도로를 건설하거나 원리금 상환에 유리하다는 측면이 강조되었다. 당
시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축의 인접지역이 국토 면적의 45%를 차지하였으며, 총 인구의 44%, 국민총생산의 46%, 기업생산의 81%를 분담하고 있던점이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3) 지역 불균형 성장, 고유의 미풍양속 저해 등
반대측 주장과 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측은 대도시에 생산 및 서비스시설이 집중되면 중소도시 경제가 위축될 수 있으며, 고속도로의 빠른 이동성을 기반으로 도시와 지방의 교류가 활성화됨으로써 농어촌 소비성향의 지나친 도시화와
고유의 미풍양속 저해로 향토적 민속성 보전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였다.
찬성측 주장과 근거
찬성측은 고속도로 건설이 오히려 인구와 산업의 대도시 집중을 방지하고, 중소도시의 균형적 발전 및 농공업의 공동발전을 촉진할 수 있으며, 유통과정을 빠르게 하여 농어촌의 소득이 증대되고 관광산업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2) 설득전략
정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갈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여론조성 작업과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통한 객관적 근거 제시 등의 설득 전략을 활용하였다
(1) 여론조성 작업
정부는 고속도로에 대한 국민의 인식부족 문제를 여론조성을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무엇보다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일례로, 1967년 12월 5일에 발표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당위성 고찰’ 논문을 언론기관에 배포하였는데, 이 논문에는 고속도로 건설 재원이 이용자의 수익자부담으로 조달되며, 20년 간 통행료 징수를 통해 건설 및 유지관리가 가능하다고 제시되어 있었다. 또한 ‘세대’ 1968년 2월호에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4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는데, 이때 제시된 4가지 이유는 아래와 같다.
• 고속도로의 특징 : 고속도로의 안전성 강조
• 철도건설보다 도로건설이 우선해야 하는 이유 : 철도가 아닌 도로 건설의 이유로 도로가 주는 편리성 부각
• 남북 종단도로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 : 경부고속도로는 20년 간 통행료 징수를 통해 건설비용 회수 및 유지관리 가능
• 국방상의 이익 및 효과의 극대화 제시
(2)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조사
정부는 여론조성 외에도 원칙적 설득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을 정량적 수치로 보여주는 방법으로 계획조사단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경제적 타당성을 연구한 ‘국가기간고속도로 건설계획 개요’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기간고속도로의 건설은 고도 경제성장으로 야기될 수송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국가 백년대계로서 필요 불가결한 사업이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1962~1968)은 약 8.3%이고, 교통수송 증가는 연평균 13.5%수준으로, 현재 교통운송시설 능력은 철도, 도로, 해운 모든 부문에서 시설용량이 부족한 실정이며, 특히 도로의 수송분담은 과소하다. 도로의 개발 없이 경제성장은 곤란하며, 도로의 포장부족으로 인하여 연간 10억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최대 간선인 경부철도 선로 용량은 가까운 장래에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둘째, 서울~부산 고속도로는 대전~목포, 서울~강릉선에 비해 교통량이 많아 수익성이 높으므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를 우선적으로 착공하는 것이 타당하다. 경부고속도로는 총 인구와 국민총생산액의 거의 절반, 총 공업생
산액의 61%를 인접지역에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총수출입 화물의 약 2/3를 차지하는 부산항과 인천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사비 재원은 안정적으로 조달 가능하고, 건설사업 완성 후라도 관련 세입의 증가로 타 고속도로의 건설재원 확보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다른 교통수단 및 일반국도에 비해 수송력 강화 측면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최우선적 대안이다. 철도는 특수화물의 지점 간 수송만 가능하나 고속도로는 집에서 집으로의 수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국도 개량 사업과 효과를 비교하면, 국도 개량에 약 100억 원을 투입하더라도 고속도로에 비해 수송력에서는 여객 20%, 화물 30% 수준에 불과하며, 혼합교통과 평면교차의 제거는 불가능하여 사고율 저하 등 안전성 제고 효과가 미흡하고, 주행시간은 1.5배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하여 국민이 받는 생활상의 직접이익이 크다. 자동차의 성능향상에 비해 기존 도로의 기능이 떨어지므로 근대화한 고속도로를 통한 수송의 고속화, 저렴화 및 안전성을 기함으로써 생활물자를 신속하고 풍부하게 공급하여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신속한 도로수송은 재고투자(생산투자의 약 30%)를 크게 감소시켜 자본비율을 증대시키고 수출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으며, 화물 손상을 감소시키고 포장비를 절감하며 수송장비(자동차 성능개선, 트레일러, 컨테이너 활용)를 개량함으로써 수송비 저렴화에 기할 수 있다. 또한 고속도로 건설로 기대되는 주행비(연료, 타이어소모) 및 수선유지비의 절감, 시간절약, 사고감소 등 수송비 절감의 직접이익이 준공 후 5년간 약 170억 원, 15년 간 약 9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넷째, 농어촌 개발과 지역격차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고속도로 건설은 인구 및 산업의 대도시 집중을 방지하며, 중소도시의 균형 있는 발전과 농공업의 동반성장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유통과정의 신속화로 도시권을 확대시키고 농어촌 소득 증대를 기한다. 1966년 기준 전국 인구증가율은 2.5%인데 비하여 3대 도시의 인구증가율이 6% 이상에 달하고, 중소도시는 2%에 불과하는 등 지역격차가 큰 상태이다. 고속도로 건설을 통하여 공장지대의 지방 분산과 기업화를 촉진하고, 집에서 집으로의 신속한 수송으로 낙농업의 발전, 고등 채소경작의 유치, 수산업의 진흥 등과 아울러 처리 가공업을 발전시키며, 각종 문화시설 활용의 증대 및 관광산업 촉진을 기대할 수 있다.
다섯째, 고용증진과 건설자재 양산화를 통한 산업발전 등 사업 자체에서 오는 이익이 크다. 공사과정에서 고용기회의 증대와 건설자재의 양산화를 도모하고 자동차 및 기계공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며 산업별 인구구조를 근대화시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간 연 2,100만 명의 고용을 유발하고, 약150억 원 이상의 노임을 제공할 수 있으며, 약 60억 원의 건설자재 생산 및 자동차 공업의 발전 육성 등을 통한 제반의 관련 파급효과로 약 600억 원의 증산 촉진이 가능하다.
여섯째, 군사 기동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국방력 강화 등 국방상의 이익이 상당하다. 고속도로를 이용함으로써 평상시의 2배 이상의 수송능력 제고를 통하여 수송량 증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시민연계를 용이하게 하고, 현대 대형무기의 대량이용이 편리하게 된다. 또한 비상시 고속도로를 비상활주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4. 갈등으로 인한 경제ㆍ사회적 비용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구간 건설사업은 앞에서 살펴 본 여러 반대와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국가통치자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으로 2년 5개월이라는 유례없는 단기간에 건설을 마쳤다. 그러므로 찬ㆍ반 논란으로 인한 지연시 추정될 수 있는 경제ㆍ사회적 비용 분석은 해당사항이 없다.
5. 찬ㆍ반 주장에 대한 검증 및 평가
1) 고속도로 건설의 타당성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국토공간 상의 이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어 자동차 시대를 열었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의 초석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2006년까지 구축된 전체 고속도로망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직접효과는 연간 305조 7천억 원(2006년 GDP의 33.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고속도로 이용차량의 증가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 5위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연인원 약2,10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여 실업문제 해결과 국민소득 향상에 기여하였다.
2) 서울~부산간 노선 착공의 우선순위
고속도로의 사업효과를 분석한 국토연구원 연구(2006. 8)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 중 경부고속도로가 가장 높은 편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서울~부산간 노선을 우선착공한 것이 경제적 타당성 측면에서 옳은 판단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2000년, 2005년 기준으로 당시 개통된 모든 고속도로의 편익 분석 결과, 경부고속도로의 편익이 각 13조 원, 15조 9천억 원, 13조 6천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또한 경부축을 중심으로 각종 산업단지가 입주하면서 물류혁명과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경부고속도로 인근 10㎞ 이내에 국가산단과 지방산단의 79%가 입지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3) 지역 불균형 성장, 고유의 미풍양속 저해 우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반대측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의 연결로 가용자원과 산업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적정 입지 조건에 따른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잠재 수요지와 잠재 공급지를 개발하여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실제로 근대화된 고속도로와 함께 농촌의 고수익성 채소 및 낙농의 육성으로 농가소득이 향상되었으며, 산지와 소비지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농어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한편, 전국 일일생활권의 실현으로 전국 각지로의 이동성과 접근성이 대폭확대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각 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제고되어 지역제조업및 서비스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특히 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촉발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6. 사업 추진 효과
1) 사업추진의 효과 분석
고속도로 사업의 효과는 직접효과와 간접효과로 구분된다. 직접효과는 고속도로 통행자들이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편익이고, 직접편익 외에 고속도로 통행자 및 국민 전체가 얻게 되는 편익이 간접편익이다.
(1) 직접효과
고속도로 사업효과 조사(국토연구원, 1995)
경부고속도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설정된 평가대안과 1994년 당시 고속도로 운영현황을 중심으로 설정된 대안을 비교하였다. 1994년 기준으로 직접효과를 산출한 결과, 차량운행거리 8.7% 감소 효과, 차량운행시간 20.4% 감소 효과, 연료소비량 중 휘발유 소비량 18.3% 절감 효과, 경유 소비량 24.9%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8조 2,434억 원으로 1994년 GNP 대비 2.72%에 해당하는 편익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속도로 사업효과 조사 연구(국토연구원, 2006. 8)
1995년, 2000년, 2005년을 기준연도로 하여 연도별로 당시에 개통된 모든노선이 운영되는 경우와 각 노선이 미개통된 경우를 비교하여 사업 편익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경부고속도로가 각각 13조 원, 15조 9천억 원, 13조 6천억 원으로 가장 높은 편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류비 절감
2005년을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대한 휘발유와 경유의 절감효과는 연간 6억 700만 리터로 분석되었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2,704억원에 이른다.
통행시간 절감
경부고속도로 건설 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약 15시간 이상 걸렸다. 그에 비해 현재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 통행시간은 약 4시간 20분으로 축소되어 약 71% 통행시간 절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2) 간접효과
취업 확대 및 국가 경제 발전6)
1967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3,013만 명에, 실업률은 3.2%였으며, 물가상승률은 12% 수준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총생산은 142달러에 불과했고, 수출액3억 2,000만 달러, 수입액 9억 9,600만 달러로 무역수지적자가 5억 7,400만 달러에 달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연인원 약 2,100만 명에 해당하는 고용창출효과가 나타났는데, 당시 가격으로 약 159억 원 이상의 임금을 지불했으므로 실업자 구제의 한 방편으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건설자재의 수요 급증으로 자재의 양상체제가 갖추어졌다. 아울러 자동차를 포함하는 기계공업 발전을 촉진하여 관련 파급효과로 약 600억 원 가치의 자동차가 증산되는 등 관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였다.
지역격차해소 및 지역균형발전 기여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초기에 불균형 성장정책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특정지역에 최소의 투자를 하여 단기적으로 능률을 높인 후, 효율이 낮은 저개발지역으로 균형적 개발을 이루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속도로가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인구와 산업이 도시로 집중하면서 농촌지역의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였다. 그런 가운데 경부고속도로를 통하여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축이 확보됨으로써 가용자원과 산업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지역 격차를 다소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근대화된 고속도로와 함께 수익성이 높은 채소 와 낙농의 육성은 농가 소득을 증대시켰고, 어촌의 생산지와 도시의 소비지를 직결시킴으로써 농어촌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각종 경제ㆍ사회정책으로 수도권과 대도시로 인구와 산업이 모여들었으나, 그 과정에서도 경부고속도로는 오히려 농어촌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역할이 더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GDP 투자효과
1975년부터 1996년까지 21년간 GDP 투자효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제조업 파급효과
1968년부터 1993년까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제조업 파급효과의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해외사업 활성화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해외 건설사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3년 호남ㆍ남해고속도로 개통, 1975년 영동ㆍ동해고속도로 개통 등 1970년대는 고속도로 시대가 본격화된 시기다. 해외건설촉진법과 더불어 고속도로 건설경험이 해외건설의 활성화에 기여하여 해외건설 수주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3) 기타효과
경부고속도로 일평균 교통량 및 통행료 수입 변화
1988년 일평균 15만 대가 이용하던 경부고속도로의 교통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7년 97만 5,852대로서 20년간 6.4배 늘어났고, 이에 따른 통행료 수입도 크게 증대되었다.
2) 경부고속도로의 외부 평가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에서는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라는 주제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제시
하고 있다.
•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짐
경부고속도로는 공업발전의 가속화를 토대로,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우리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의 원활한 유통, 지역격차 해소 및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였다.
• 건설산업의 발전에 기여
건설산업의 기술 향상을 통하여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건설산업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국토방위에 기여
유사시 전투 병력을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하여 국토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토 방위에 기여하였다.
• 정신개혁에 기여
우리민족의 무궁한 저력을 확인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고취하는데 이바지하였다.
4줄요약
1. 박정희대통령각하는 위대한 대통령
2.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각하는 범죄없는 세상을 만들어준 대통령
3. 이명박 각하는 선진국형 수변도시에서 풍요로운 삶을 이룰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대통령
4. 박근혜 각하는 바통을 이어받아 부칸의 돼정은을 투항하게 만들어 평화통일한국을 이룩하는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