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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에 나타난 광개토대왕의 출생과 정통성
노중평
1 우리와 지나의 기이한 관계
최근에 지나는 우리의 과거사와 또한 미래사와 관련하여 3가지 공정을 들고 나왔다.
첫째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말해서 북한이 붕괴을 때 북한의 영토를 접수하기 위하여 내놓은 저들의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계략다. 고구려역사를 지나 동북3성의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자기네의 영유권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사람이 북경대학의 정치학교수 리앙 첸 이다.
둘째가 단군조선 초기역사와 맞물리는 요순시대의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나는 지금까지 자국의 역사가 5천년이라고 하면서, 황제·유망·치우에서 시작되는지나의 사관에서, 황제·요·순·우로 이어지는 3대를 신화시대라고 하여 정사에 편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그들 스스로 주장해 온 신화시대를 역사시대로 바꾸겠다고 내놓은 것이 단대공정斷代工程이다. 역사와 단절되어 내려온 3대의 신화를 역사로 바꾸자는 프로젝트이다. 저들의 선진사先秦史에서 전씨족시대로 분류하던 시대를 역사시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작업과 맞물려 동북공정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단군신화가 한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신화”라는 주장과 그들의 조상 전욱고양이 고구려 시조 추모왕의 선조이므로 고구려역사는 중국사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동북공정의 주장이다. 이 이론의 중심에는 고구려변방사연구중심의 손진기 교수가 있다.
셋째가 探源工程이다. 탐원공정은 단대공정을 뛰어 넘어 지나의 역사를 1만년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들고 나왔다. 우리 선조인 풍이족 중심의 구황족, 구려족 중심의 배달족, 조선족 중심의 동이족이 중원과 만주를 지배하고 있을 때, 지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구려족에서 갈라져 나온 황제 이후의 역사가 된다. 그러나 지나는 황제 이전의 풍이족을 주축으로 한 구황족과, 구려족을 주축으로 한 배달족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심원공정은 저들이 발굴해 온 역사유물에 이 역사를 코팅하여 자국의 역사로 만들어야만 역사로서 기록될수 있다. 예컨대, 우리 한국의 역사를 저들의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와 연결하면 사실상 이러한 작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학계에서 위서라고 배척하는 <한단고기>, <부도지> 등의 우리 역사서가 저들에 의하여 첨삭되고 부풀려져 지나의 역사로 둔갑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지나의 역량으로 보아서 우리가 딴청을 부리고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동북공정 성공사례에서 보았듯이 이 일도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저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하지 않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저들이 티베트를 강점하고 나서 티베트를 해방하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밀고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3가지 이외에도 또 다른 공정이 있으나,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므로 여기에서는 거론을 하지 않기로 한다.
동북공정에서 가장 이슈화 되는 부분이 영토가 아니라 걸출한 조상들이다. 영토는 이미 저들이 강점하였으므로,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는 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문제는 동북곡정을 내세워 북한이 김정일이 사망하거나 쿠데타로 인하여 북한이 붕괴되었을 때 저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괴뢰정권을 세운 후에 동북삼성에 통합시켜 버리는 작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들이 들고 나온 동북공정에 따르면,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이 전욱고양의 자손이므로 고구려는 마땅히 지나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주장이 있으나, 본문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지나가 고구려를 지나이 역사에 편입하고자 한다면 지나 쪽에서 해명하지 않으면 아니될 가장 큰 부분이 광개토대왕이다. 지나 당을 정복하여 고구려영토에 편입시킨 광개토대왕을 어떻게 지나역사에 편입시켜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광개토대왕의 정통성이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역사조작을 시도하고 있는 지나의 역사가들이 이 난제를 풀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 난제를 풀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괴변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저들이 또 무슨 해괴한 이론을 내세워 광개토대왕을 왜곡하게 될지 적정이 아닐 수 없다.
2 광개토대왕비문에 나타난 皇天之子의 의미
광개토대왕 비문에 따르면, 그의 출생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부문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광개토경평안호태왕(廣開土境平安好太王 - 광개토대왕) 비문 앞부분이 그가 누구의 자손인가를 밝힌다. 이 부분에서 그의 조상이 단군왕검의 후예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나는 단군왕검을 자국의 역사에 편입시키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단대공정에서 단군왕검과 동시대 사람인 요를 역사화 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본다.
<제1면>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 (德) □□□□.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 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 浮龜. 應聲卽爲連 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罡→履)龍負昇天.
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신 땅이다. 스스로 북부여에서 나오셨다. 천제의 아들로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하강하셔 태어나 임금이 되셨다.....수레를 명하여 순행하며 남쪽으로 내려오시고, 길을 따라 어머니강을 따라 가다가, 왕은 나루에 이르러 나는 하늘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라고 하였다. 추모왕이 “나를 위하여 거북이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연결하라.”하심에 말씀에 응하여 계속해서 거북이와 자라가 떠올라 연결하였다.
강을 건널 수 있게 된 후에, 별 골짜기 서쪽 홀본에 산성을 쌓고 부도를 건설하였다. 임금의 위를 즐겨하지 않으셔 황룡이 와서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에서 칠성님이신 용의 등에 업혀 승천하였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德)은 북한의 학자가 살려낸 문자이다. 우리 학자들은 칠성강罡을 없애고 履로하였다. 칠성강罡은 칠성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대목은 왕이 어머니크신강(奄利大水)에서 자기 스스로를 “내가 천제의 아들(皇天之子)이며 하백의 딸이 어머니(母河伯女郞)이다”라고 한 점이다. 이 부분은 자신의 출신을 밝히면서 동시에 자기 조상의 뿌리를 밝히는 대목이다.
황천지자皇天之子는 천자天子를 높여 부른 말이다. 한인천제桓因天帝가 한국桓國을 세우기 전에 구황九皇으로 불리는 9개의 종족이 있었다. 그들을 구한九桓이라고도 하였다. 모두 한인천제의 형제들이었다. 구황족 출신의 천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조상 추모왕은 구황족의 후에가 된다.
여기에서 한인桓因에 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이다. 한인桓因에 대하여, <한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씨는 桓因에 대하여 환인으로 읽지 말고 반드시 한님으로 읽어야한다고 하였다. 한님이 하나님의 호칭이기 때문에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읽기가 한인으로 굳어져 있어서 한님으로 고쳐 읽기는 쉽지 않다. 습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인은 우리 고유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신칭神稱이다.
임승국씨의 해석대로 한인은 하나님을 뜻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한자桓字로 읽으면 천자天子가 된다.
천자는 최고의 신, 유일신이신 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사람이자 임금인 한인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천자라는 명칭은 지나支那의 황제가 아니라 우리 고유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요, 한인임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지나의 학자 채옹蔡邕은 천자에 대하여 그가 쓴 <독단獨斷>에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天子之號稱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천자란 호칭은 동이에서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어머니는 땅이다. 때문에 천자라고 한 것이다.
부천모지父天母地는 우리의 천부인사상天符印思想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천지인의 천은 아버지요, 지는 어머니요, 인은 하늘을 아버지로 하고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곧 천자이다. 천지인사상은 한국시대의 종교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 천지인사상을 종교화한 것이 삼신三神이다. 여기에서의 삼신은 천지인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광대무변한 천을 모두 다
아버지로 수용하지 않고 우주에서는 북두칠성, 태양계에서는 태양으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지를 북두칠성의 부인인 직녀, 태양의 부인인 달과 지구로 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지고 인은 각지다(天圓地方人角)”고 하였는데, 각角은 춘분에 생성되는 춘분의 기氣를 의미하였다. 춘분의 기는 태양이 각수角宿에 드는 때 생성된다.
각수는 28수의 첫 별자리이고, 동쪽 하늘에 뜨는 동방창룡칠수東方蒼龍七宿의 첫 별자리이다.
춘분에 생성되는 기를 이夷라고 하였다.(<태현경太玄經>夷卦) 그러므로 역사에 등장하는 이족夷族은 모두 춘분의 기를 생명출생의 모태로 하는 동족이 된다. 이중에서 동쪽에 뿌리를 내린 종족을 동이족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천자란 결국 동이족과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다. 동이족의 자손이 곧 천자이다.
3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시호 國罡上과 國岡上
<광개토대왕의 비문>은 고구려 시조 추모왕이 유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고, 광개토대왕이 유리왕의 뒤를 이은 역대 왕의 뒤를 이어 17세 손으로 태어나 18세에 등극하였다고 전한다. 또 한 그가 등극하여 39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이 기록에서 또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紹承基業. 遝至十七世孫 國(罡→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大王. 恩澤于皇天, 武威( )被四海.掃除(不)□, 庶寧其業.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 (三十)有九, (晏→寔)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 遷就山陵.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其詞曰...
( )는 빠진 것, (不)은 북한에서 살려낸 문자, (罡→岡)은 칠성강罡을 언덕강岡으로 변조한 경우이다.
기이하게도 광개토대왕의 시호 國罡上을 모두 國岡上으로 변조하였다. 본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세자 유류왕이 추모왕의 고명(선왕의 유언)을 받들어, 도로서 행하니 다스림이 흥하였다. 대주류왕이 기업을 이어받았다.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登祚) 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였다. 황천(천자)에 은혜로운 혜택을 내려, 군대의 위엄이 사해에 미쳐 (뱃길을) 쓸어내었다. 백성은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였다.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번성하였다. 오곡은 풍성하게 익었다. 크신 하늘께서 (대왕을) 돌보지 않으셔 39세에 나라를 버리고 수레에 오르시니, 이로써 갑인년 29일 을유일에 산릉으로 옮기셨다. 비석을 세워 이루신 공훈을 기록하였다. 그 사에 이르기를...자 한다.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은 호를 영락대왕이라고 하였다. 경안호태왕을 줄여 대왕이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를 대왕이라고 하였으니 대왕에 왕검의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대왕의 시호 國岡上이 비문에서는 國岡上이 아니라 國罡上으 로 각자가 되어 있다. 罡자가 원래 四+正으로 구성되어 있는 문자인데, 임금은 궐획한 문자를 쓰므로 正자를 쓰지 않고 止자를 썼다. 그러나 岡은 궐획이 불가능한 문자이므로 岡자를 쓴 것은 사실상 국강상을 왜곡하기 위하여 쓴 문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岡은 음양철학에서 음양의 개념이 성립하기 전에 있었던 강유剛柔에서 강剛에 해당하는 개념의 말로 볼 수 있다. 강岡+도刀가 강剛인데, 여기에서의 강岡은 북두칠성의 성기星氣가 꽂히는 언덕, 다시 말해서 북두칠성이 떠오르는 동북간방에 위치한 산을 말한다. 이 산에 떨어지는 칠성의 기가 강剛하다는 의미가 이 강岡자에는 들어 있다. 그래서 옛날에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서낭당을 지을 때 성기가 꽂히는 곳을 찾아서 지었다. 이 유습이 지금도 그대로 전해져, 대부분의 명찰 고찰들은 동북간방에 솟은 산밑에 자리 잡고 있다.
또 하나 더 지적한다면,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비문에서는 광개토경평안호태왕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점이다.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왜 광개토대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점이 해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태왕太王은 태상왕太上王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상왕은 전왕前王을 말한다. 그러므로 죽은 왕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왕의 생전의 업적을 말하기 위하여 태왕이라고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대왕으로 호칭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을 길게 발음하지 않고 줄여 발음함으로써 발음의 편리함을 도모했다면 여기에는 왜곡의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대왕大王의 대大는 원래 왕王을 의미하는 문자였다. 그러므로 王王할 수 없으므로 대왕이라고 하였다고 본다. 또 왕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 왕검王儉이다. 왕을 신격화하여 부른 것이다. 검儉이 고姑-고마固麻-곰-에서 나온 문자이므로 신격화로 보는 것이다.
강罡은 칠성강자이다. 광개토대왕이 북두칠성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칠성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강罡은 사방四方에 떠오르는 북두칠성을 말한다. 동에 동두칠성, 서에 서두칠성, 남에 남두칠성, 북에 북두칠성이다. 당시의 제관이었던 무당은 굿을 시작할 때 반드시 사방에 뜨는 칠성에게 절하였다. 칠성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기 때문이었다. 이들 칠성이 가는 자리를 정井자로 표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광개토대왕이 젊은 나이에 동서남북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칠성의 대리자로 서 칠성의 영토를 넓혀나갔던 것이다.
칠성신앙은 대단히 오래된 신앙이다. 삼신신앙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신앙이 칠성신앙이다. 삼신신앙이 여성을 숭상하는 신앙이라면 칠성신앙은 남성을 숭상하는 신앙이다. 삼신신앙은 마고를 직녀의 신명에 올리면서 시작하였지만, 칠성신앙은 웅족의 시조가 되는 한웅천왕 때 시작하였다. 하늘에 뜬 큰곰 작은 곰은 곰-고마-고-마를 숭상한 한웅천왕이 이끌던 구려족의 모태신앙이었다. 한웅천왕 때부터 남성이 실권을 쥐면서 여성신앙과 쌍벽을 이루는 남성숭배의 칠성신앙이 생겨났다.
구려족의 주축을 이루는 웅족-곰족의 실권자 한웅천왕은 한국-한인을 계승한 곰족의 천왕이라는 뜻이다. 광개토대왕의 국강상이라는 시호에는 바로 이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4 결어
이상 광개토대왕에 대하여 그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관한 문제를 비문에서 찾아서 살펴보았다. 비문을 검토하면서 그의 시호 국강상이 國罡上으로 불리지 않고 國岡上으로 왜곡되어 불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는 그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된다. 따라서 칠성강罡을 복원함으로써 광개토대왕의 왜곡된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다고 본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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