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육백 년 세월을 품은 도읍,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세월의 변천에 따라 뜨는 분야가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는 분야도 있게 마련이다.
아는 지인 중에 고등학교에서 주산 부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 분은 주산이 7단
인가 상당히 고수에 속하는 분으로 그 분야에 책도 몇 권 내기도 하고 잘 나가던 분이다.
하지만, 세월에 밀려 주산은 국가 고시에서도 제외되고 부기도 학과목에서 빠지는 낭패를 당했다.
다행히 재단 이사장의 배려로 야간 대학에 편입해서 국제 통상 분야의 공부를 다시 해 정년퇴직까지
과목을 바꿔 교직에 있을 수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종이책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없으니 요즘은 출판해서 3천 부만 팔려도 베스트 셀러 라고 할 정도로 출판계
형편이 어려워졌다. 이런 환경에 견디다 못한 서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더니 이제는 웬만한 도시에서는
서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어쩌다 서점이 있다 하더라도 갖춰 놓은 책이 많지 않아 바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종각에 위치한 교보 문고를 찾아가는 게 두 번 걸음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은 생존이 어렵게 생겼다.
* 세상에 태어나 한 수레 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옛말이 무색하다. 이 많은 책 중에 몇 권이나 읽고 세상을 떠나게 될까?
피맛골,
화창한 봄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책도 몇 권 사고 기지개 켜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로 거리는 조선 시대에도 넓은 도로였다. 넓은 도로 양편에는 가건물이 가득 들어서
소위 육의전이라는 점포들이 장판을 벌이고 있었고, 나라의 행사가 있거나 임금의 행차라도 있으면
가건물을 싹 헐어 길을 원래대로 넓혔다고 한다. 지금의 종로 3가에서 종각에 이르는 길(인사동 쪽)을
따라 소위 피맛골이라 하여 좁은 골목이 있어 벼슬아치의 행차 시 자신보다 지체가 높은 분과 마주치면
잠시 피하도록 마련한 골목이 있는데, 이 골목에는 서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밥집들이 많아 이들이
굽는 생선 냄새가 진동하여 시장한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 하던 예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종로가 개발되며 이 피맛골도 개발의 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깨끗하게 꾸려진 신 피맛골은 간판 만 바꿔 달면 일본의 어느 골목이라고 착각이 들 만큼 일본과 흡사
하다. 작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대는 일본인들의 재간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새로 꾸며진 피맛골은 일본의 어는 거리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꾸며진 가게들이 많다.
옛말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흔치 않다는 말도 있듯, 장식에 공을 들인 식당이나 시설이 좋은 곳에서는
맛있는 음식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곳의 음식은 동서양의 입맛이 뒤섞인 소위 퓨전 음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이 든 분이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법이다.
* 벽제소리 요란하게 행차하다 더 높은 분의 행차와 마주치면 얼른 행차를 접고 피하던 곳이 피맛골이다.
* 일대가 개발 되며, 옛 피맛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본의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퓨전 가게들이 자리 잡았다.
식당은 허름해야 편하게 찾게 된다.
허름하다는 것과 불결한 것은 다른 얘기이다. 외장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지 불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 피맛골을 기웃거리며 적당한 먹거리를 찾았지만, 딱히 먹을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걷다 보니 신 피맛골이 끝나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옛 피맛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었다.
예전에는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전 부치는 광경에 식욕이 자극되던 곳이지만, 개발에 밀려
가게 몇 곳만이 아직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생선구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임연수어
구이를 시키고, 막걸리 한 병도 같이 시켰다. 문명의 발달은 구시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며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에 막걸리를 마셨다.
* 아직 개발되지 않은 피맛골이다. 옛 정취가 조금은 남아 있다.
* 원래 이곳에는 생선구이 집이 많았다. 노릇하게 구운 임연수가 입맛을 돋웠다. 누룽지 끓인 것도 상에 딸려 나왔다.
* 옛 맛을 그나마 지키는 것이 반가워 사진 한 장을 올려 주겠다고 했다.
종로 3가 파고다 공원 인근을 노인 해방구라고 한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파고다 공원 근처에 가면 노인들이 모이는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수입이 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모든 물가가 상당히 저렴해서 옛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몇천 원 짜리 음식을 파는 곳이 이곳 말고는 서울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다.
보기 딱한 것은, 대낮임에도 술에 취해 길에 누워 자는 사람도 보이고 길바닥에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이라고 빈부의 격차가 없을 수는 없다.
찻집에는 넥타이를 맨 노인 신사들이 쌍화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한잔에 천 원 써 붙인 길가
노점에서 공짜로 주는 양파 한쪽으로 막걸리를 서서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더 세월이 지난 후에는 서두른 개발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곳곳에는 옛 관청 터였음을 알리는 팻말이 있고, 옛 주거 터를 발굴해 유리로 덮어 두기도 했지만
600년 역사를 간직한 왕도로서의 면모로는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피맛골을 두 곳으로 나눠 신 피맛골, 구 피맛골로 각각의 특성을 살려 개발했다면 멋진 역사의
장이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켰다.
* 파고다 공원 뒷길은 노인 해방구이다.
* 등을 보이고 앉은 이는 낮술을 마시고 있었고, 술에 취해 길에서 자는 모습도 보인다.
* 노인들이 돈이 없으니 2천 원짜리 국밥도 있다.
* 바지 하나에 천 오백 원 이천 원이란다.
* 이곳에도 빈부의 차는 있었다. 넥타이를 맨 노신사들은 이런 차를 아늑한 잣 집에서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서울은 좋은 도시이다.
6백 년 이전에 터를 잡은 왕도가 인구 천만을 수용하는 도시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풍수지리를
떠나, 이곳을 왕도로 선택한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도 있고, 임금이 사시던
궁궐도 있고, 서민들이 살던 옛터도 어우러진 도시가 어디 흔한 일인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으로 꽉 찬 교보문고에서 달랑 책 세 권을 사 들고, 피맛골에서 밥도 먹고
노인 해방구에서 차도 마시고, 행복한 봄날의 좋은 기운을 듬뿍 받은 셈이니 그래도 좋은 나들이였다.
* 이런 첨단 빌딩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 이런 옛 건물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보신각)
옛 하천의 흔적을 복원해 놓았다.
옛 우물터를 복원해 보존하고 있다.
* 지금의 검찰과? 기능이 비슷한 관청 터,
* 옛 주거지는 지금의 지표 보다 약간 낮았던 듯, 터를 복원해 유리로 씌워 보존하고 있다.
* 서울 곳곳에는 우리 옛 삶의 흔적이 살아 있습니다.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느긋하게 돌아보는 것도 힐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