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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 오서윤(본명:오정순)
막, 죽음을 넘어선 지점을 감추려 서둘러 흰 천으로 덮어놓고 있던 익사자 최초의 조문이 빙 둘러서 있다 발을 덮지 않는 것은 죽은 자의 상징일까 얼굴은 다 덮고 발을 내놓고 있다 다 끌어올려도 꼭 모자라는 내력이 있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 저 맨발은 결국 물을 밟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복사기처럼 훑던 흰 천 끝내 남은 미련을 뚝 끊듯 발목에 걸쳐져 있는 체면 가시밭길을 걷고 있거나 아니면 용케 빠져나와 눈밭을 지났거나 물길을 걷다가 수습되어 왔을 것이다 발은 죽어서도 끊임없이 걷고 있어 덮지 않는 것일까 만약에 발까지 덮어놓았다면 자루이거나 작은 목선 한 척이었을 것이다 경계는 저 물 속이 아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곳인지 모른다 발이 나와 있으므로 익사자다 고통도 화장도 다 지워진 얼굴은 체면이 없다 누군가 흰 천을 끌어당겨 체면을 덮어준 것이다
당선소감 - 시는 벅찬 동행이자 선물 심사평 - 인식의 힘 보여준 세심한 관찰 응모작들은 대부분 일상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생활에 밀착하면서도 소통과 공감에 주력하는 시들이 많았다.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을 내면화하여 구체적인 실감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타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점은 아쉬웠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사람들이 투고하는 것이 신춘문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응모작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도와 신인으로서의 새로움, 진지하면서도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을 선택하자는 합의를 거쳐 이서빈, 문민철, 오서윤 씨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이서빈 씨의 뒤집기는 유비적인 상상력을 사용하여 아이의 첫 뒤집기와 노모의 화투패 뒤집기를 겹쳐 놓음으로써 탄생과 소멸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비적 상상력이 주는 단순함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문민철 씨 작품의 경우 거침 없는 화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자신만의 문체로 이끌어가는 힘도 좋았다. 신인다운 패기가 큰 장점이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었다. 심사자들은 어떤 이견도 없이 오서윤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택하였다. 오서윤 씨는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인식의 힘을 보여주었다.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고 시의 호흡을 잘 조절하고 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선작 ‘체면’은 익사자를 덮은 흰 천에서 삐져나온 발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의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으며, 발의 드러냄과 감춤이 인간의 근본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통해 몸과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시이다. 고통스럽지만 기쁜,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시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드리며 한국 시단을 빛낼 소중한 시인이 되시길 바란다. <심사위원 최영철 배한봉 장만호>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리시계
이서빈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 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 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 안에 날짜 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 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 놓고 간 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 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시계다.
이서빈- 61년 영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졸
<당선소감> 빨간 불에서 오래 기다렸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울수록 봄볕의 따스함이 소중함을 아는 법이다. 그 먼 길들 위에서 지금은 날개가 없는 말도 날고 소도 날고 있다. 모두 빛나는 천지간을 건너가야 할 때이다. ‘당선’이란 말 한 마디에 일어난 일들. 이제 잡고 올라갈 튼튼한 버팀목 하나 얻었다. 욕창이 생긴 등으로 나날을 뒤척이고 계시는 아버님과 간병하시는 어머님. 당선 소식에 “장하다”를 외치셨다. 너무 좋아 자꾸 우신다는 소리에 가슴이 저리다. 간병에 지치신 어머님도 “고맙다”를 연발하셨다. 과분한 사랑이다. 바람만 불어도 “에미 왔나 나가보라”며 성화하셨다는 말에 많이 울었다. 며느리가 가져온 음식은 뭐든 맛있다고 잘 드시는 아버님, 완쾌하셔서 봄에는 꽃보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길. 늘 말없이 지켜봐 주시는 친정 부모님께도 당선소식 전해 드린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지치고 덩굴손을 잘라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인간이 먼저 되라 강조하신 신세훈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드린다. 당신은 대쪽 같은 선비정신으로 시 정신을 다져주셨다. 이 나라 가난하고 힘든 시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셨다. 헤진 가방, 오래되고 낡은 옷이 어떤 명품보다도 더 값지게 보이는 건 아마도 선생의 삶 자체가 명품인 까닭이겠지. 제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함께 공부하는 ‘자유문학 문예교실’ 화요반 동료들, 나와 친한 모든 분과 이 기쁨 나누고 싶다. 온갖 투정 다 받아주고 도와준 남편이 고맙고, 두 아들 상걸, 치걸, 사랑한다. 심사위원 오세영, 장석주 선생님께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젊은 시인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당신들이 있었다. 그때부터 뒤돌아서 당신들을 따라 가고 있다. 꽃지게 지고 내내 신세 지겠습니다.
<심사평> 오세영 시인, 장석주(글)시인
이담하. 조상호. 정지윤. 성지영. 유준상. 김본희. 임수현. 문희정. 임승훈. 이인숙. 이서빈 등 열 한 분의 시가 본심에 올라왔다. 첨단과 전위는 없었다. 열린 감각, 언어 감수성, 시를 찾아내는 촉觸 같은 시의 기본 재능을 갖춘 시들이다. 이인숙의 ‘갈대모텔’ 임승훈의 ‘순종적인 남자’ 문희정의 ‘몽유 이후’ 임수현의 ‘노곡동’ 이서빈의 ‘오리시계’를 최종 결심작으로 골랐다. 고심 끝에 이서빈의 ‘오리시계’를 선택했다. 완결미가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발상이 천진하고 관찰력이 좋았다.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交響이 있고, 특히 우주 시공을 한 점 구체적 사물로 전환시키는 마지막 연이 좋았다. 자기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신문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작
본심에 올라온 10명의 작품은 예심위원들의 젊은 안목 덕분에 정형화된 신춘문예 스타일과는 다른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심사는 한 편의 ‘잘 빚어진 항아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성적 독법과 화법’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수사적인 표현에만 의존한 시, 지나치게 관념적인 시, 낯익은 발상에 머물러 있는 시 등이 우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박세미, 김잔디, 이현우의 작품이었다.
이현우의 시는 상상력이 활달하고 다양한 소재를 유니크하게 소화해 낸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실러캔스, 달의 착란, 손금의 태계, 프로토아비스…. 그는 무엇이든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어떤 시에도 자신을 전폭적으로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재주의적 경향이 그의 유창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했다. 박세미의 시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증폭시켜 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비극적 인식을 경쾌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는 시적 대상의 슬픔과 고통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안는다. 당선작인 ‘알’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상투적 연민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생설화를 탄생시킨다. 화자의 교체나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행과 연을 조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세계를 향해, 바깥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그 질문과 대화의 자세로 오랫동안 좋은 시를 쓸 것이라 믿고, 또한 지켜볼 것이다. 2014-01-01 37면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신춘문예 당선시에 어떤 유형이 있다고 여겨져 가능한 한 그 유형에서 벗어난 작품을 선택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김고유의 ‘마음론’, 박민서의 ‘구유’, 김미선의 ‘고요한 천둥’, 최찬상의 ‘반가사유상’ 등이 그런 관점에서 최종심에 올랐다.
‘마음론’은 인간의 마음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짐승’에 비유한 점이 신선했으나 ‘순백의 언어가 차갑게 빛난다’ 등의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그 신선함을 떨어뜨렸다. ‘구유’는 왜 굳이 산문 형식으로 써야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주었으며, 이는 한국현대시의 어떤 유형의 유행에 의존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고요한 천둥’은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다양한 의미를 다각도로 추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군더더기가 많았다. ‘이제 당신은 처음의 고요다’ 이후 마지막 두 연은 삭제하는 게 시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나았다. 당선작 ‘반가사유상’은 신춘문예 시의 상투성을 과감하게 벗어난 작품이어서 눈에 띄었다. ‘반가사유’라는 관념과 추상을 ‘반가사유상’으로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 있음으로써 힘의 낭비가 없었다. 둘째 연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는 이 시의 백미다. 외면의 형상을 통해 존재의 내면에 대한 구도적 성찰이 돋보인다. <논어>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해주는 시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당선자는 더욱 인간을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시를 열심히 써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경인일보 2014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의자 위에 두 개의 오렌지가 놓여있어요 나는 저 오렌지를 노란 앵무새라 불러요 한 마리는 어제로부터 날아왔고, 또 한 마리는 내일로부터 날아왔어요 어제의 혀가 내일의 혀를 그리워할 때, 당신은 내게 상큼한 거짓말로 다가왔어요
당선소감
아코디언같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행진곡처럼 돌진하였고, 연가처럼 슬퍼서 주저앉았고, 그러다가 심장 박동같은 운명임을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1인의 총 39편이다. 모처럼 따듯한 성탄 전날, 수원본사에서 회동한 심사위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당선작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2014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박주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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