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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님의 RPG [RPG]내 중국에 문혁은 필요없다! : 예고편
E.E.샤츠슈나이더 추천 0 조회 393 21.12.13 01:00 댓글 17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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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1.12.14 02:38

    실제로 대숙청 때 살아남을 확률이 제일 높은 방법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게 아니라 똥배짱을 부리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정보총국 간부였던 알렉산드르 오를로프는 숙청이 가까워오자 “내가 죽으면 니놈 치부가 가득 담긴 비망록이 자동 출판될것이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미국으로 망명해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물론 그건 뭐라도 있는 고위직들 얘기고 말단들은 답이 없었지만…

  • 21.12.14 02:39

    히틀러도 의외로 예스맨 보단 좀 대드는 애들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딱 그부류려나요...

  • 21.12.14 09:40

    한간이 된 줄 알았는데 공산당에 입당했구나... 부부가 문혁의 피해자가 되진 않았겠죠...?

  • 작성자 21.12.14 10:13

    워낙 오래전에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은퇴한 상태라 홍위병들은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오히려 대약진 때 영양부족으로 고생했을 수는 있겠네요. (…)

  • 21.12.14 10:25

    여기서도 130살 살아야 할텐데... 뭐 그래도 어찌어찌 먹고살곤 있겠죠?

    + 평행세계에서는 국민혁명의 주역이자 살아있는 역사책으로 존재하며 수억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비참하군요...

  • 21.12.14 10:19

    뭐 저는 39-45 사이에 사망을...

  • 21.12.14 10:21

    행보가 딱 유고의 그 사람이 생각 나는군요. 사망 원인은 이쪽이 예후는 그쪽이 안 좋은점에서 반 반 느낌...

  • 작성자 21.12.14 11:39

    쑹칭링이랑 친해서 정치협상회의(정협) 같은 데 자문도 많이 나가고 할겁니다. ㅋㅋ

  • 21.12.14 11:41

    다들 제캐보단 낫네요 하하!

  • 21.12.14 01:58

    이름: 후종밍(胡中明)

    - 생년월일: 1930년 8월 8일

    - 성별: 남성

    - 민족: 한족

    - 모국어: 관화(북방화)

    - 사용가능언어: 소련어(러시아어), 진어

    - 능력치: 통솔(+++)/체력()/지능(++)/지혜()/매력(+)

    - 기술: 지휘(+++)/관리(++)/사격(+)/격투()/조사()/연구()/설득()/토론()/기만(++)/협박()/선동()/심문()/매혹()

    - 트레잇:

    - 배경: 후종밍은 인민해방군의 고위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후챠오밍은 국공내전과 조국해방전쟁에서의 공로로 북부전구의 동원국장과 육군 정치위원직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지난의 북부전구 육군 사령원으로서 북부전구 내에서의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였습니다. 후종밍은 그러한 아버지의 위세를 덕에 청소년 시절부터 저명한 군사 전문가들에게 개인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로 중국인민해방군군사학원에 1대 입학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인민해방군군사학원에서 재학하는 동안, 북부 전구 지역 출신의 생도들과 파벌을 형성하였고,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북부 전구의 장교로 임관하여 고속 승진한 그는,

  • 21.12.14 01:57

    아버지의 입김을 빌려 중국인민해방군군사학원 재학 시절 자신이 형성하였던 북부 전구 출신의 파벌원들을 북부 전구의 주요 요직에 앉히며, 북부 전구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그는 대외적으로 중앙정부에게 능력있고 당에 충성하며 비교적 젊고, (마오 주석이 만든 군사학원의 초대 졸업생) 장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킴으로서 사십 대의 나이로 북부 전구의 부사령원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마오 주석이 사망하고 정국이 혼란스러운 지금, 그는 겉으로는 당에 충성하는 면모를 보이며 최대한 당을 자극하지 않고 있지만, 은밀히 공청단과 접촉하고, 북부 전구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등 면종복배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 21.12.14 01:59

    삼국지의 동탁 포지션을 살포시 잡아봅니다...

  • 작성자 21.12.14 02:10

    목표는 중앙군사위원회! 뭔가 좀 덜 부각된(?) 린리궈 느낌이네요. 그쪽은 20대의 나이에 공군사령관이 “공군의 모든 일은 린리궈 동지의 뜻에 따라 처리한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 다만 아무래도 중국이 나름 국가체계를 잡은 뒤이다보니 부사령원보다는 북부전구사령부 판공실 부주임 겸 작전부 제1부부장 같은 비선실세 느낌이 더 맞을 것 같긴 합니다. ㅋㅋ

  • 작성자 21.12.14 23:48

    프롤로그화 올라왔습니다~

  • 21.12.14 12:15

    그런데 다른분들이 올린걸 보니 저도 제 캐릭터를 올려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작성자 21.12.14 12:22

    네 물론이죠. ㅋㅋ

  • 21.12.14 12:51

    이름: 샤오나이(肖奈)
    생년월일: 1942년 10월 1일
    성별: 남자
    민족: 한족(북방계)
    국어: 푸퉁화
    구사 가능 언어: 영어, 독일어, 헝가리어, 러시아어, 광동어

    능력치:
    통솔: 9
    체력: 9
    지능: 11
    지혜: 10
    매력: 11

    기술:
    지휘()/관리(++)/사격()/격투()/조사(++)/연구(++)/설득(+)/토론(+)/기만()/협박()/선동()/심문()/매혹()

    샤오나이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인 샤오즈푸의 자식으로 태어나 공산당 수뇌부의 일원으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샤오즈푸는 마오쩌둥의 최측근으로 정강산 시절부터 공산당의 자금 수급과 재정 관리를 도맡아 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재정부 부장과 상무부 부장을 역임했습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데다, 다른 형제들이 하나 둘씩 전란에 휩싸여 죽고 그만 유일하게 남은 터라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별 탈 없이 초중고를 졸업한 뒤. 대학도 국내에서 다닐까 했으나. 해외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보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동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선택한 유학지는 헝가리였습니다. 부다페스트 칼 마르크스 대학에서의 유학생활은 그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 21.12.14 12:51

    1956년 헝가리 혁명과 소련군의 잔혹한 진압을 대학 친구들에게 듣자, 그가 태어나고 자랐을때 생긴 가치관에 조금씩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1968년 프라하의 봄 무력 진압 이후부터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믿음마져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습니다.(비록 내색은 안했지만) 그리고 굴라쉬 사회주의로 만들어진 (다른 공산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헝가리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의 가치관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친 후 경제학 교수로 취직했습니다. 1966년 약혼녀인 베이웨이웨이(贝微微)​와의 결혼을 위해 잠시 귀국한 것을 제외하면 교수로 재직하며 헝가리에서 지내다가. 저우언라이의 부름을 받아 1975년 11월에 중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렇게 샤오나이가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때. 조국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습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인해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으며, 반우파 투쟁으로 인한 국내의 대대적인 숙청. 그리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실로 경악할만한 사건으로 인해 중국은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따로 없었습니다.

  • 21.12.14 12:59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유학 시절 보고 배운 경험 및 경제학 지식을 이용해 화궈펑을 도와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고있습니다. 과연 그는 마라탕 사회주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기타:
    - 문혁 당시 본가도 팽덕회나 류샤오치 꼴 날 뻔 했으나 저우언라이의 보호 덕분에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체적 위협만 없었지, 모든 직책에서 은퇴하고 반강제로 칩거를 해야 했으며. 친척들은 문혁의 광기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처가는 싸그리...

    - 아내 베이웨이웨이와 결혼하게 된 과정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데. 사실 둘은 헝가리에서 유학생으로 만나 연애하던 사이다. 그런데 본가에 잠시 들렀을때 부모님이 약혼녀 가족이랑 상견례를 한다고 억지로 끌려나갔는데, 그곳에서 베이웨이웨이를 만난 것이다. 그 후 서로가 약혼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으며, 얼마 안있어 바로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 21.12.14 15:12

    "나이. 이 아비가 살면서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 언제인지 아니?"

    "대장정때요? 항일전쟁이나 국공내전? 아님 대약진?"

    "그때도 힘들긴 했지. 하지만 내가 내일 무서웠던 시절은 바로 홍위병들이 날뛸때였단다.

    내가 문혁때문에 모든 직책에서 은퇴하고 칩거해야 했던 건 알지?"

    "알죠.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홍위병들에게 고초를 겪지는 않으셨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땐 참 참혹했단다. 내 동생, 그러니까 너의 작은아빠는 홍위병들에게 잡혀가 고초를 겪였단다.

    어느 날 밤 자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나질 뭐냐. 그래서 내가 나가봤지. 알고보니 동생이 수용소에서 겨우 빠져나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거였어. 하지만 문을 열어주면 홍위병들이 우리 부부를 잡아갈거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단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동생을 찾기 위해 나온 홍위병들이 걔를 봤는지 욕을 하면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그걸 들은 동생은 더욱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하더구나.

    나는 무서워서 문을 열어주지 못했어. 그렇게 조금 지나지 않아 동생이 홍위병들에게 구타당하며 끌려가더구나. 계속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하면서..."

  • 21.12.14 16:17

    "... 그래서요? 작은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 후론 아무런 소식도 못들었단다. 다른 친척들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고...

    난 아직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죄책감과 후회로 잠을 못잔단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지. 나중에 너의 처남이 수용소에서 간신히 도망쳤을때는 문을 열어주고 집에 숨겨주었어."

    "처남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문혁때 고초를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베이징은 싫다며 고향인 광저우로 내려갔단다."

    + 참고로 처가에서는 처남 빼고 전부 죽거나 실종당했습니다. 본가도 부모님을 빼면 외가(엄마쪽) 친가(아빠쪽) 가릴 것 없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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