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일, 목요일, Bucharest, Apartment Studio U (오늘의 경비 US $41: 숙박료 $36, 식품 19, 환율 US $1 = 4 lei) 요새 날씨는 매일 30도 정도의 청명한 날씨다. 좀 덥긴 하지만 한국같이 습기가 높은 찌는 더위는 아니다. 오늘은 Bucharest의 Old Town과 그 근처에 있는 국회의사당 구경을 하고 어제 갔던 Carrefour 수퍼마켓에 들려서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Bucharest의 Old Town은 그동안 본 유럽의 Old Town 중에 제일 초라했다. 유럽 도시들에 보통 있는 중앙광장도 없고 노천 음식점들로 가득한 옛날 건물이 좀 있는 길들이 있을 뿐이었다. 별로 볼 것이 없는 Old Town인데 관광객들은 제법 많이 보였다. Bucharest가 루마니아의 수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안 왔을 것이다. Old Town에서 멀지 않은 국회의사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라는데 (첫째는 미국 국방성 건물인 Pentagon)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Ceausescu가 1984년에 30억 euro의 거액을 들여서 지었단다. 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약 9조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이다. 수년 전 쿠바를 여행했을 때 Washington, 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쿠바 국회의사당을 봤을 때 느꼈던 기분을 오늘 다시 느꼈다. 국회가 있을 필요도 없는 나라들이 국회의사당 건물을 그렇게 크게 짓는 것은 참 희극적인 일이다. 루마니아 전에 여행했던 Budapest에 있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건물도 마찬가지다. 루마니아의 김일성으로 비유되는 Ceausescu는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국민들에 의해서 처형당한 유일한 공산정권 지도자다. 1989년 말 루마니아에 한국의 4.19 혁명과 비슷한 국민혁명이 일어난 후 수일 만에 체포되어서 한 시간의 약식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부인과 함께 같은 날 총살형을 받았다. 오늘 Bucharest 구경은 한 시간 정도 밖에 안 걸렸다. Bucharest는 정말 볼 것이 없는 도시다. 숙소에 돌아와서 중국 TV 채널에서 중국 70주년 전승일 기념 중계방송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국의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은 한국의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 동안의 일본과의 전쟁에서 약 2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소련의 2차 세계대전 희생자 숫자 다음으로 높은 숫자로 일본군이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은 언젠가는 중국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오늘 갑자기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왼쪽 빨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다 나은 발이 왜 다시 아프기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얼마나 오래 갈지 걱정이다. (귀국 후 X-ray 검사를 한 결과 왼쪽 엄지 발가락뼈에 실오라기 같이 가는 금이 간 것이 발견되었다. 아무런 외상이 없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뼈는 아무런 치료 없이 자연적으로 거의 붙은 것 같다.) 이것으로 2주 간의 루마니아 여행을 끝내고 내일 기차로 불가리아로 떠난다. 루마니아 여행은 수도 Bucharest 전 까지는 참 좋았는데 Bucharest 때문에 좀 잡쳐진 기분이다. 여행지도 Bucharest의 Old Town에는 음식점들만 많다 아직 점심시간이 멀어서 손님들은 안 보인다 관광객들이 좀 보인다 멋있는 건물들도 보인다 아름다운 건물이다 소련식 건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넓은 길 보도도 널찍하다, 국회의사당 건축의 일부로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라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Ceausescu가 1984년에 30억 유로를 들여서 지었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이나 소련의 Kremlin 궁전보다 더 크게 지으라고 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