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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미나 준비하고 이러는 게 공부하라는 뜻이라고 알고서 늘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 보면 하나씩 둘씩 또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그다음에 대종장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이 포인트를 얘기하셨던 거구나 하면서 전혀 모르고 지내던,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대종장님 말씀이 막 떠오르기도 하고 이러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공부를 했는데 간이 세미나가 정식 세미나보다 더 긴 시간이라서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일단 대종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던 “증산 신앙인들이 왜 단주를 찾아야 되나”에 대해서 그 질문을 딱 본 순간 이렇게 스쳐 지나갔던 첫 번째 생각이 뭐였냐 하면 비유해서 좀 농담처럼 얘기를 할게요. 예전에 제가 들었던 농담 중에 하나가 공무원들한테 이 세상의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공무원인 사람과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 게 이제 농담처럼 살짝 지나가면서 떠올랐던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증산상제님과 수부님을 알면 좋지만, 하여튼 증산상제님을 아는 사람과 신명이 있을 테고 그다음에 들어보더라도 거의 인지하지 않고 또는 뭐 그냥 스쳐 지나가고 해서 모르고 사는 사람과 신명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타이틀을 “증산 신앙인들이 왜 단주를 찾아야 되나”에 대한 거는 일단 증산상제님과 관련된 것들을 아는 사람과 신명을 대상으로서 좀 이렇게 얘기를 펼쳐 나가는 것이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이제 들었던 고민은 그러면 증산상제님을 모르는 사람과 신명한테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고민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일어났었죠. 그런데 이제 그 꼬리를 물고 일어난 의문들 속에서 대종장님께서 저번에 하셨던 말씀이 하나가 떠올랐어요. 뭐였냐면 단주의 원한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그런 원한의 문제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원한의 문제라는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겠다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이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조화롭게 서로 평화롭게 살 만한 세상이다,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게 좌절되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임금이 있던 그 시대에 보면 역법도 만들거나 기타 등등의 각종 문명들이 좀 발달된 그런 형태들이 보이더라고요. 주위 나라들에 비해서 좀 더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발달된 문명이 주위 종족들한테 퍼져나가는 과정이 있더라구요.
문명이 펼쳐지는 요인을 찾아보니까, 문명을 좀 강하고 빠르게 펼치기 위해서... 당근과 채찍의 방법을 사용하더라구요. 좋은 걸 전수해 주고 대신 니네가 예를 갖추고 상하의 관계, 주종의 관계를 유지해야 되고 조공을 바쳐야 되고 기타 등등
한쪽은 이제 좋은 걸 주고, 다른 한쪽은 형벌을 다스리는 그런 법률로서 말 안 들으면 이제 폭력으로써 제압을 하겠다, 이런 방식을 쓰는 그런 측면이 있더라구요.
단주가 추구했던 거는 제가 공부한 바로는... 주위의 이민족들도 끌어안고서 비록 좀 이렇게 지적 수준이나 또는 문명 수준이 좀 낮더라도 그 사람들을 부족들을 다 끌어안고서 같이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함께 가자고 해서 그렇게 해서 대동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그런 포인트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폭력을 쓰는 것보다는 다독거리면서 좀 더 가르쳐가면서 그래서 크게 그 포인트가 달라서 요임금이 문명을 펼치는 방식과 단주가 펼치는 방식이 달랐던 그런 부분들이 이제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대종장님께서 저번에 하셨던 말씀이 요임금과 단주가 펴는 방식이 달랐다 그 말씀을 얼핏 하셨는데 그게 이렇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요임금의 방식을 옆에서 같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던 순임금이 있었죠. 요순의 정권교체가 선양이냐 찬탈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선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조작됐다는 기록들도 있는데, 1차 세미나 때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죽서기년이라든지 한비자라든지 순자 이쪽에 보면 찬탈이다, 이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찬탈에 의해서 나중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가두게 하고 단주도 못 만나게 하고 하여튼 아버지와 자식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그런 사태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죠.
근데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아까 제가 첫 번째 했던 고민인 증산상제님을 모르는 사람과 신명한테는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것에 대한 그 질문에 대한 해답도 던져주는 방식이 단주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 증산 신앙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 기존의 증산 신앙이 펼쳐졌던 이런 방식들을 보면 요임금의 방식과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그러니깐, 자세히 보니... 증산상제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강제적으로, 약간 강제성을 가지고서 어느 단체 같은 경우에 재산을 다 갖다 바쳐라든지, 아니면 포교를 해야 되니까 사회적인 것들 다 버리고 들어와서 포교에 전념해라든지, 어떻게 보면 요임금의 방식대로 이렇게 진행이 되어 왔었던 것 같아요.
하여튼 요임금의 방식대로 쭉 추진되어 왔고 단주의 방식 같은 경우에 그 얘기예요. 저기 증산상제님께서 처음부터 단주가 진짜 중요한 사람이야 나중에 단주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성사재인이 되고 의통이 집행되고 할 거야라고 강력하게 얘기를 해 주셨으면 당연히 단주의 존재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도 알게 되고 쭉 이렇게 단주를 중심으로 쉽게 모일 텐데 직접적으로 얘기 안 하시고 상제님도 그렇고 수부님도 그렇고 그냥 나중에 한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고 그다음에 올바른 줄 하나 치켜 들면 어떻게 되고 아까 그 얘기하셨잖아요. 그렇게만 얘기를 하니까 상제님 재세 시에 제자들도 그렇고 단주라는 포인트를 놓치고서 자기 방식대로 이렇게 쭉 하게 되는 그리고 단주의 중요성을 놓치게 되는 그런 게 존재했지 않나 라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생각했고 충룡도인이나 충벽도인이나 충양도인도 생각했듯이 은신밀사라는 그 포인트가 이제 잡히더라고요.
요임금 같은 경우에, 1차 세미나 때도 얘기했지만, 요임금이 자기 아들 단주를 이제 순에 의해서 만나지도 못하게 되고 이게 완전히 좀 어긋나고 부자 간의 관계가 끊어지듯이 그렇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면...
1차 세미나 때 제가 드렸던 말씀이기도 하지만 제가 요임금,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자식을 보호하고 싶을 것 같거든요. 제가 요임금 같은 아버지라면 다음에 또 혹시 그런 관계가 된다면 다시는 내 아들 단주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좀 처참히 죽거나 이렇게 되는 거를 막고 싶거든요.
그래서 상제님께서 이제 신축년에 도통하시고 나서 대시, 제가 알기로는 대시국 할 때 그 대시 나라 이름이 대시다. 그다음에 나는 후천의 당요다라고 말씀하신 게, 천명하신 게 신축년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딱 신축년에 선포, 후천의 당요다라고 선포하실 때는 벌써 후천의 단주는 내가 꽁꽁 숨겨뒀다가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세상에 드러나게 하리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그러고서 천지공사를 쭉 짜가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단주 수명자의 역할에 대해서 쭉 보면 1차 세미나 때 그때 드렸던 말씀이 30년 동안 속된 말로 개고생하고 상제님 수부님의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펼치지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이옥수 여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천지개벽경 책 다 없앴다고 하고서 태을도 안 한다고 하고서 거짓말하면서까지라도 목숨을 보존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그런 시간대를 거치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에 단주가 드러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 그리고 이제 그 단주에 대해서 보니까 연구한 것들이 대순진리회보에 보면 몇 개가 좀 있어요. 당요에 대해서 연구한 게 왜 원한의 시초라고 했을까라는 질문, 그다음에 단주에 대해서 신하들이 애기한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쭉 단주가 중요하다는 포인트를 찍고 있는 그런 회보들이 몇 개가 있더라고요.
증산 신앙인들이 단주를 찾아야 되는 이유 간단하게 말하면 아까 충벽도인도 그런 얘기하셨지만 상제님께서 이렇게 딱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약장 공사에서 분명히 단주 수명이라고 못 박으셨기 때문에, 특히 유생들하고 다 불러모아서 수부님께서도 이제 단주수명 약장 정확하게 짚으셨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을 것 같고 그다음에 상제님을 떠나서라도, 상제님을 모른다 하더라도 단주의 방식으로 세상을 그렇게 살 만하게 만드는 건 할 만한 일이겠다. 이번에 내 인생을 걸어도 될 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증산 신앙인이든 증산 신앙인이 아니든 저는 단주에 대해서 드러내고 외쳐야 되는 타이밍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일단 증산 신앙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주는 이제 단주라는 얘기가 처음 나오는 게 임인년에 이제 나오는 걸로 제가 공부한 바로는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임인년의 오선위기와 관련해서 단주 얘기가 나오고 그다음에 무신년의 약장에 이제 단주 수명으로 그래서 천지공사의 저희 거의 첫 부분부터 거의 끝부분까지 단주가 딱 드러나서 쭉 보다가 몇 번 안 나오다가 그다음에 무신년에 이제 단주 수명이 정확하게 나오고 이런 포인트들이 있기 때문에 천지공사의 쭉 흐름에 있어서 이제 조금만 더 공부를 하게 된다면 단주가 왜 중요한지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증산 신앙인들에게 왜 단주를 찾아야 되느냐 이 얘기를 한다면 그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증산 사상을 펼치는 데 있어서 했던 방식이 정말 이게 독기와 살기를 풀고 사랑으로서 은인같이 대하면서 하는 그런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강권과 위압으로써 힘으로써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을 해서 사상을 주입하는 이런 방식이었는지 이런 것들은 질문을 해봐야 된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기존에 단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자기가 상제님을 정말 존경하고 그런다면 이 사람들이 단주의 방식대로 단주가 하고자 하는 그 방식대로 펼쳐나가는 게 옳을 것이다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두서없이 이렇게 저렇게 말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짧아서 어떤 문서 형태나 PPT 형태로도 올리지 못하고 그래서 죄송합니다마는 하여튼 포인트는 증산 신앙인이든 아니든 요임금의 그런 방식보다는 단주의 방식대로 그렇게 펼쳐 나가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처음에 상제님을, 증산 신앙을 접했을 때 생각을 해보면 누군가에 의해서 막 이렇게 강요받은 그런 개념보다는 고등학생인 제가 그 당시 세상을 볼 때 세상이 왜 이렇지 좀 불합리한 것 같은데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불공평한 것 같은데 옳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좀 많았었습니다. 많았는데 증산도 관련해서 이제 얘기들을 책자나 이런 것들을 쭉 보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정말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제 증산도라는 거를 시작을 했었거든요.
그처럼 이제 단주의 후신이신, 단주 수명자이신 이진산 대종장님을 만나고서 그 하셨던 말씀과 책자들을 쭉 공부하다 보니까 상제님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런 느낌으로 다시 태을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인생은 개벽이 오든 안 오든 병겁이 오든 안 오든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진산 대종장님과 함께 생을 가야 되겠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올린 글이라...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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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들 그간의 신앙을 돌아보면, 증산상제님을 만나기까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단주를 만나는 과정도 살펴보면, 신앙을 붙들고 가면서도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풀리지 않는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든 사람들이 단주와 태을도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어렵게 단주를 찾아가는 여정을 생업과 의통수련으로 바쁜 시간 쪼개 가감없이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지부모님의 모사재천을 성서재인하는 주인공이 단주입니다. 천지부모님이 단주를 이진산으로 재생신시켜 의통천명을 내리셨습니다. 단주가 이진산으로 부활한 것을 정확히 알아야, 천지부모님의 의통천명을 받들어 의통성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치열한 구도의 열정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긴 내용 준비하고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