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월간작은책2월호]
일터 이야기-일터에서 온 소식
놀라운 소식
문백남/ 서울금천우체국 우정주사보
새벽 6시, 자명종이 울린다. 우체국에서는 지옥 같다는 화요일 아침, 하루의 시작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맞이하기 싫은 시간, 눈을 비비고 출근한다. 청소하는 아저씨, 운동하시는 분들을 보며 더 부지런하게 사시는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동질감을 느끼며 출근한다.
일터는 벌써부터 꿀벌 같은 직원들이 들락날락하며 새벽을 질주하고 택배를 싣고 오는 운송 차량들이 북적인다. 말 그대로 택배 천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동별로, 개인별로 택배를 나눠 주며 등기 우편물을 정리하며, 제발 크고 무거운 택배가 오지 않기를 빌어 보지만 어김없이 쌓이는 쌀, 김치, 고구마, 이삿짐 같은 무겁고 큰 택배들, 시작도 전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과 한숨부터 앞서지만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 일들이다. 우선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기 힘든 무겁고 큰 택배들만 골라 배달을 시작한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열한 시가 다 돼 간다. 한숨이 절로 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배달 시작인데 편지와 등기, 택배는 언제 배달하나? 배달할 순서대로 우편물을 싣는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택배죠? 언제 와요? 지금 와 주세요. 수많은 고객들의 개인적인 요구들을 충족시키려면 오늘 하루 일 절반도 못 하는데 그나마 부재 중이니 경비실에 맡겨 달라는 문자에 감사한다. 한 집 한 집 그렇게 편지를 배달하고 홍길동 씨하고 등기를 배달 받을 분을 부르며 시간이 간다. 주소지의 층, 호수라도 정확히 기재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확하지 않은 주소지의 사람들을 부르다 정 안 되면, 우편물 도착 통지서를 발행하고 계속 배달을 한다. 한참 후 전화가 걸려 온다.
“집에 있었는데 왜 그냥 갔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니까 그냥 왔습니다.”
“문을 두드려야죠.”
“주소에 정확한 층, 호수가 없으시니 부르다가 그냥 왔지요. 층, 호수 알려 주시면 내일 문 앞에서 노크할게요.”
그렇게 통화하다 정확한 층, 호수라도 알려 주시면 양반이다. “나 바쁘니까 빨리 갖고 와.” 자기 말만 하고 뚝 끊는다. 답답하다. 말이라도 좋게 하시면 좋으련만 서비스직이라고 하대하고 맘대로 한다. “에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데 오늘 이상한 사람 만났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묵묵히 배달한다. 오늘은 그래도 날씨라도 좋으니 다행이다. 오늘 같은 날, 비나 눈이라도 내릴라 치면 배달 속도는 절반으로 뚝 떨어지고 우편물 젖을까 봐 조심하고 미끄러운 길 조심하다 보면 몸은 지치고 날은 어둑해진다. 편안한 점심이나, 한 시간 일했으니 10분 휴식이란 말은 집배원에겐 사치다. 1분이라도 빨리, 1초라도 빨리 배달하기 위해 달리다시피 총총걸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지친 몸, 고픈 배로 사무실에 돌아오니 오후 다섯 시가 훌쩍 넘었다. 그래도 오늘은 빠른 편이다. 우편물 배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배달하지 못한 우편물을 우편물 보관처로 분류하여 전달하니 내일 배달할 우편물이 박스 한가득 몇 박스가 기다리는 것을 보고 맥이 풀린다. 동료들과 늦은 점심 겸 저녁을 시켜 먹고 내일 배달할 우편물을 번지별로 정리하고 다시 배달할 집 순서대로 묶어 놔야 오늘 작업이 끝난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밤 열한 시를 향한다. 이렇게 20년째를 맞이하는 집배원 생활, 과연 내가 60세 정년이라는 그날까지 일할 수 있을까? 갈수록 고령화 사회가 된다는데 지금 같은 업무량으로는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매일 늦게 끝나다 보니 일하는 동료들과 오붓한 술자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일까. 매일매일이 작업의 반복일 뿐, 동료들과 차분한 대화 한마디 나누기 어렵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만 보이는 건 편지들뿐 마음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조금이라도 직원이 늘어나서 배달할 구역이 줄었으면 좋겠는데 인력 증원은 없고 건물들은 단층에서 고층으로, 다세대로 늘어나고 우편 물량은 줄었다는데 택배나 등기는 늘어만 간다. 편지는 우편함에 투입하면 되지만 등기나 택배는 직접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든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 일도 잦다. 지방의 동료 집배원이 한 달 동안 과로와 사고로 두 분이나 순직하셨단다. 지난 5년간 순직자만 수십 명, 부상자는 부지기수, 일반적인 타박상으로는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할 형편이다. 내가 빠지면 동료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더 나눠서 해야 하기에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해마다 1,000명, 1,900명 인력을 증원한다고 노사 간 합의는 됐다지만 실제로는 한 명도 늘어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복주머니행사에서 집배원 1,000명 증원을 약속한 지도 1년, 그러나 그 역시 말뿐이고 한 명도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힘들다고,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없어서 막연히 힘들다고 했던 업무의 고강도 장시간 노동의 실체가 밝혀졌다. 주당 평균 64.6시간 근무(정규직 평균 42.7 시간에 비해 21.9시간 많음) 특히 특별기인 명절과 선거 기간에는 최장 86시간의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감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조사 대상 집배원의 74.6퍼센트가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 호소자였고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 의심자는 43.3퍼센트였다. 이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성 역시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이러한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받는 임금 수준은 정규직 노동자 평균의 70퍼센트 정도,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평균의 78퍼센트 수준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체국 집배원 중엔 정규직 공무원과 공무원이 되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상시집배원 그 외 재택집배원 등이 근무한다. 모두 다 같은 일을 하는데… …. 집배 생활 20년째, 이젠 이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공무원이지만 노동자다. 하나, 둘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없애기 운동본부’의 깃발 아래 모이기 시작했고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국회 토론회가 끝나고 올려 놓은 두 시간 반 동안의 긴 동영상을 보았다며 새벽에 온 문자 한 통 “힘들게 노력해 주어 고맙고, 고생했다고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며 화이팅을 보내 주신 선배,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배님의 뜻에 동참하며 감사하다는 후배. 지금은 비록 너무 힘들어 동료가 사고 나면 동료의 고통보다 겸배(결원이 발생했을 때 인원 충원 없이 우편물을 나눠 배달하는 것) 걱정부터 해야 하는 이 불행한 현실이 바뀌어 서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직장, 사람 사는 직장으로 바뀌길 기도하며, 하루 속히 인력 증원이 이뤄지길 꿈꾼다.
첫댓글 좋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