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국어 연구원을 없애야
국립 국어 연구원이 생긴 지 올해로 20년이 된다. 지난 84년 학술원 밑의 임의 기구로 출발하여 91년부터 문화부 소속의 국립 기관이 되었다. 이 기관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운영은 합리적인가. 우리는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고 국가 기관으로서 국립 국어 연구원은 이런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물음에 대해 국어 연구원이 책임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까닭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 기관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런 중요한 물음 자체가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말글의 현실은 미국말 배우기가 선진 문화와 신분 상승의 수단인양 알려져 어린이에게 혀 수술까지 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어 공용화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한자 혼용파에선 한글 전용의 흐름을 뒤집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국립 국어 연구원 같은 데서 한자 섞어 쓰기의 흐름에 제동을 걸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런데도 현실은 이와 반대다. 한글 사랑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운동의 한 가운데에 국립 국어 연구원이 서 있다. 지난 해 10월에 ‘법률 한글화를 위한 특별 조치법’을 법제처에서 마련하자 한 국회 의원은 ‘한자 교육 진흥법안’을 냈다. 지난 해 연말에 이른바 경제 5단체에서는 중국 및 일본과의 무역에 필요하다며 신입 사원을 뽑을 때에 한자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맞추어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어 연구원의 이 준석 님은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경향신문>>03.12.17)
왜 국어 연구원이 이런 데에 앞장서는가?. 이 기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먼저 이 기구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기관은 이 희승이 일본의 말글 정책을 본받아 일찍부터 세울 것을 주장해 온 것이다. 이 희승의 삶과 활동은 한자 혼용 운동을 떠나 이해할 수 없다. 이 국어연구원은 처음부터 중국 글자 섞어 쓰기를 위해 만든 기관이었다. 그와 함께 어문 교육 연구회를 이끌던 남 광우는 국어 연구소(원)를 세울 무렵, 이를 공정하게 운영하겠다면서 마치 이 기관의 대표인 양 말한 적도 있다. (<국어 연구원 설립 제안의 이유를 밝힌다> <<어문연구>> 83.9 ) 처음부터 한자 혼용을 위해 만들어졌다. 99년 2월에 있었던 중국 글자 섞어 쓰기 소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 종필 국무총리는 문화부 장관과 손잡고 공개된 논의도 없이 밀어 부쳤는데, 국어 연구원이 이런 정치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신문에 실린 이 준석 님의 글에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없다. 이번이 중국 글자를 둘러싼 마지막 논쟁이 되기를 바라며 논박해 보려고 한다. 잘못된 곳이 있으면 누구라도 나서서 가르쳐 주시길 바랄 뿐이다. .
먼저 ‘한글만으로 표기하는 것이 지고지선’이라는 주장은 한글 전용을 바로 알지 못한 것이다. 맞수의 주장을 잘 알고 논박해야 훌륭한 논증이 될 수 있다. 한글로만 쓰기란 한글로 적어 뜻이 통하지 않는 글은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이므로 이를 바꾸어 쓰자는 것이다.(이 오덕 지은 <<우리글 바로 쓰기2>>(한길사, 92) 13-7쪽) 내용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야 여기에서 예외가 된다. 글살이가 단순해야 하고 글보다 말이 앞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는 매우 합리적인 주장이다. ‘외래어와 국적없는 신조어가 범람하는 우리 국어의 현주소’는 한자 교육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고 한문 숭배의 사대주의에 그 뿌리가 있다.
‘우리말은 한자어와 토박이말이 어우러질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은 뜻으로 읽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일본어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전통이 무척 다르다. 철저한 사대주의와 한문 숭배로 우리말 어휘의 70%가 한자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 글자와 한글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없다. 한자말이 50%가 넘지 않게 애써야 우리말다운 우리말이 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한글 전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한자의 조어력(造語力)’이란 말과 글의 범주를 마구 뒤섞는 일이다. 말이 먼저고 글자는 말을 적는 도구로서 말의 구조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새말을 만든 힘이란 모든 자연 언어에 공통적인 것이고 모든 언어가 동등한 것이다. ‘한자의 조어력’이란 표현은 우리에게 한자 숭배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겉으로야 한글 전용을 위한 한자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말 어휘 체계를 한자 중심으로 만들어 한글 전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전문분야에서 무분별하게 외래어와 외국어를 사용하는 현상’을 한자 어휘를 늘려서 막자는 주장인 것 같으나, 학술 용어를 토박이말을 중심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한자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중국 글자(한자)를 읽고 쓰게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과 글자의 관계를 알지 못한 데서 나온 우스꽝스런 생각이다.
이 준석 님의 말처럼 한글 사랑의 선각자들이 ‘한자에 대단한 식견’을 지녔을 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한문 교육’을 많이 받았다. 이것이 한자 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의 증거가 될까? 그렇지 않다. 한자와 한문 공부에서 그들은 한자·한문을 숭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고 한글 사랑의 길로 떨쳐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한글 사랑에 앞장서는 한문학자와 중국어학자가 잇달아 나와야 하겠다. 한자 몇 자 더 안다고 자라나는 세대를 옛날 기준으로 ‘한자 문맹’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보기에도 딱한 일이다.
한글 사랑은 우리 지성사에 대한 뼈져린 반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흔히 오해하듯이 단순히 감정에서 나온 게 아니다. 한글 사랑의 깊이와 위대함을 아는 사람은 아직도 얼마 되지 않는다. 봉건주의와 사대주의의 무게가 우리 문화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도 그랬지만 대중이 쉬운 글자 살이를 하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언제나 나란히 나아간다. 대중이 자신을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얻는다는 매우 중요한 발전이었다. 이것은 공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 민본 사상은 일찍부터 있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던 것도 민중들이 글자 살이를 하기에는 글자가 너무 많고 복잡했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민중은 정치의 주제가 아니라 끝까지 다스림과 교화의 대상으로 남았다. 배우기 어렵고 쓰기 어려운 이 글자는 수준 높은 문화를 언제나 지배층만의 소유물로 만들었다. 인쇄술이 일찍부터 발전하였으나 그 인쇄술로 지식의 대중화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복잡하고 수많은 한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고려에서는 쇠활자를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이미 있던 목판 인쇄술과 크게 다른 점도 없었다. 민중을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하는 상황은 한글이 나온 뒤에도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다. 모든 국가의 기록을 한문으로 남겼다. 주 시경이 쓴 <<독립 신문>>창간호 논설(1896.4)에는 “정부에서 내리는 명령과 국가 문적을 한문으로만 쓴즉, 한문 못하는 인민은 남의 말만 듣고 무슨 명령인 줄 알고, 이편이 친히 그 글을 못 보니 그 사람은 무단히 병신이 됨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리스에서도 쉬운 알파벳의 보급이 민주주의의 출현과 함께 이루어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글자를 뒤늦게 갖게 되었다는 것은 끝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 땅의 민중이 스스로를 표현할 길을 갖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한글이 갖는 이런 민중성을 보고 한글 사랑 운동을 사회주의적이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언론인은 한글만 쓰기에 따르는 말다듬기를 파시즘과 연결되어 있다며 우리말 사랑 운동을 비난하기도 한다. 모두 어이없는 일이다.
한글 사랑은 또한 그 극심한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사대주의의 폐해는 오늘날까지 정치와 군사 및 문화에서 살아 있는 주제이다. 외세를 떠받들고 의존하는 버릇을 벗어나지 않고는 겨레의 앞날이 밖을 수 없다. 오늘날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글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 왔던가. 중국 글자는 참글자라면서 우리글은 언문이었다. 우리를 이렇게 눈멀게 만든 것은 바로 중화 사상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제도와 문물이 문화의 표준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중국 글자는 ‘성현의 문자’이고 한글은 학문이나 교육에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글자였다. 한글이 생겨난 지 500년이 되도록 교육은 한문 배우기이거나 일본말 배우기였다. 지금은 몇몇 고등학교에서 미국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일류’ 학교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치와 국방에서 자주성이 값진 것임을 잘 아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한글이 세계에서 으뜸이라면서도 한글로 자주적인 교육과 학문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글 사랑은 남북의 겨레가 하나되는 길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한글만으로 쓰기가 여러 계층이 하나되는 길이 듯이 남북 사이에서도 한글은 하나되는 길이다. 북녘에서 오래 전부터 한글 전용을 하고 있는데, 남쪽에서만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은 남북의 언어가 점차 크게 만드는 일이다. 겨레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말글 정책은 한글 전용이 될 수밖에 없다. 국립 국어 연구원은 끊임없이 북녘의 말글 정책을 왜곡하면서 북녘의 한글 전용 정책이 실패한 것처럼 선전해 왔으나 진실은 그 반대이다. <<북한의 언어 정책>>(92.7)에서 북녘의 한글 전용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자 문화권까지 들먹이고 있다. 남북의 말글 차이는 남쪽에서 한글 사랑이 모자라고 중국 글자와 미국말을 숭배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국어 연구원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지배되고 있다. 지난 91년 10얼에 북녘에서 쓰는 “길섶” 대신에 잘못 만든 말인 “갓길”을 것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월간조선>>92.1>) 국어 연구원의 임 동훈 님은 북녘에서 66년에 ‘문화어’가 정립됨으로써 ‘국어 공식 분단’이 이루어졌다고 보면서 ‘북한의 글을 읽을 때 그 뜻을 짐작키 어려운 낱말이 적지 않고 그 규범이나 문법도 매우 낯설게 된 까닭을 북한이 평양말을 중심으로 함경도 사투리를 보탠 ‘문화어’를 새로 만든 데 있다고 했다.(<<조선일보>>95.8.19) 한글 전용은 ‘국어사 그 자체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며 남북의 통일적인 언어를 논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세나라 시기 언어 역사>>김 수경 89. 216쪽)
국어 연구원은 한글 전용 반대만이 아니라 그밖에도 여러 말썽을 빚었다.
1. <<표준 국어 대사전>>을 둘러싼 속임수-92년부터 99년까지 만든 이 사전을 만든 목적은 겉으로는 통일을 대비한 <<종합 국어 대사전>>을 만든다고 언론에 흘렸다. 국어 연구원의 ‘가장 큰 사업’(안 병희 님 표현<<국어연구원 10년사>>2000.12, 226쪽)이었던 이 사업은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는 속임수였다. 사전의 이름도 바뀌었고 편찬 계획을 여러 번 변경하였다. 나온 사전마저 엉터리임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심 재기 님은 이를 ‘국어학계의 총력을 모아 발간’(<<국어연구원 10년사>>25쪽)했다고 하나 이는 거짓말이다. 학연이나 지연 때문에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큰 목소리로 똑똑히 말해야 한다. 공개적인 토론의 마당이 없이는 이런 속임수는 되풀이될 것이다.
2. 한중일 한자 표준화 사업 -이것은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는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나온 것인데, 이 작업을 하느라고 수많은 중일의 학자들을 초청하고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고 한자 약체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냈다. (<<국어 연구원 10년사>> 77-93, 111-2) 이런 작업은 중국 글자 섞어 쓰기를 전제한 것이다. 이 작업도 이 희승과 함께 한자 혼용 운동을 하던 남 광우 등이 주장해 오던 것이었다. 지난 92년부터 시작하여 아직도 이 작업에 돈을 쓰고 있다.
3. 이 희승을 94년 10월의 문화 인물로 추천-한자 혼용을 이끌고 국어 연구원의 사실상 설립자인 이 희승이 옥살이를 했고 조선어 학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 알고 그의 학문 세계를 모르는 대중의 통념을 파고들어 그를 미화 왜곡하려 했다. 이 희승은 경성제대에서 배운 바 ‘과학적’ 언어학을 내세우며 주 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에 반대해 왔다. 이는 나라의 권위를 빌어 주 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월간 <<말>>94년 10월호에서 처음으로 이런 왜곡에 대한 폭로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한자 폐지 운동은 서울대에 전해지고 있는 경성 제대의 식민지 유산을 없애는 일이기도 하다.
4. 우리말 연구의 관료화·국가화- 일반적으로 유교 문화권에서 지식인들은 관료 예비군이므로 관료가 되는 것을 학문의 완성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난날 과거제도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와 다양성을 통제하는 매우 효율적인 도구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료주의적 전통과 일제 시대의 식민지 전통은 주 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을 민간 전통이라며 깎아내렸다. 89년 3월부터 시행 중인 한글 맞춤법은 바로 이런 당파심이 낳은 것이다. 민간에서 만든 사전은 권위가 없다고 여기며 나라에서 만들었다고 <<‘표준’ 국어 대사전>>이라고 우기는 것도 학문의 관료화 및 국가화가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부르는가를 보여 준다. ‘국립’이라는 데 대한 눈먼 신뢰를 거두어들여야 한다. 지난 93년에 있었던 이 기문 님의 학술원상 받음과 96년의 남 광우의 학술원상 받음도 여러 국가 기관을 혼용파가 장악하면서 나라의 권위를 빌어 학문의 권위를 치장해 보려는 잔꾀에서 나온 것이었다. 학문에서의 권위는 학문 공동체의 검증을 거쳐야 참된 권위로 인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말 연구에서 활기찬 토론이 시든 큰 까닭이 바로 이런 관료화에 있다.
이런 여러 가지로 미루어 국어 연구원이 우리말글에 적지 않은 폐해를 끼쳤음을 알 수 있다. 그 활동은 민주주의와 자주적 통일이라는 겨레 문화의 큰 방향에 어긋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국립 국어 연구원이 폐지되어야 한다. 식민지 제국 대학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는 특정 학맥이 해방 이후 우리 말글 정책의 큰 줄기인 한글 전용을 뒤흔들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국어 연구원을 이대로 둔다면 정부가 우리 말글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어 연구원이 하던 일부 조사 기능은 한국학 대학원에 맡겨도 좋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용역을 주어도 될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을 거리낌없이 논의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글쓴이: 한글 철학 연구소장 김 영환
* 이 준석 학예 연구사의 반론을 받아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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