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로 보내는 편지, 큰 형의 마을에 서서
2의4 김웅기 -
사랑하는 내 동생 웅기야
형이 네게 보내는 메시지야
아직 노을 풀리지 않는 습지공원에 서서 본다
네가 아버지한테서 여행 선물로 받은 옷 입고 그리 환하게 웃던 웃음처럼
오늘은 노을빛이 몹시도 곱구나
네가 가 있는 곳은 어떤지 모르지만
어디에서든지 순정한 영성이 충만했으면 해
내가 평소 엄하게 굴었지
뭔 일을 할 때 머뭇거려서 약해지지 말자는 나에게 하는 다짐이었어
그게 안쓰러워서 그랬던 거야 이해할 수 있겠니, 웅기야
우리 삼형제 키우신 아버지 지금 네 생각 정말 많이 하신단다
어머니가 따로 나가신 후 우리 세 가족 참 힘 많이 들었지
하지만 네가 있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단다
너는 우리 집에서 팥소 같은 존재야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너는 그랬지
중요한 건 뭐가 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라고
그래 네 말이 백번천번 맞는 말이다 웅기야
나이 먹은 나보다 네가 더 인생의 문제를 미리 고민했던 것 같아
시간이 흘러 어느덧 별이 뜰 무렵이구나
별 사이에 네가 있을 거라 믿어
넌 영혼이 맑고도 거울 같으니까
넌 늘 우리 가족들 사이에 있을 거라고도 믿어
우리와 함께
피시게임 만큼이나 노을을 좋아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넌 참 단단한 아우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한테 메시지를 전해 주었으니까
우리는 지금
별 사이에 있는 너를 보고 있어
누가 그날이 부끄럽지 않으랴
2의4 김윤수 -
누가 그날을 생각하면
하늘을 쳐다볼 수 있으랴
평택에서 어머니가 오신 날 파마를 한 윤수
새집으로 떠나던 엄마의 쓸쓸했던 뒷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 다녀오면
다른 집에서 사는 엄마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해야지
그 간의 섭섭함은 날려 보내고
이모가 사준 검정 바지를 입고 흰 셔츠를 걸친 윤수
엄마에게 손톱, 발톱을 깎아달라고 응석 부리면서 하는 혼잣말
‘엄마, 불행은 가난이 아니라 이별에서 온다는 것 알아?’
날려버리고 싶은 것이 많지만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일도 많았다
제주도 여행에 앞서 말끔히 정리하고
엄마를 다시 이해하는 것, 작가의 꿈을 제주 바다 위에다 올려놓아야지
윤수의 꿈은
엄마와 함께 사는 것
방송작가가 되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
아빠의 삶을 드라마처럼 세워 드리는 것
윤수는 인생의 의미는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란 걸 안다
물을 유난히 피하려 했던 윤수
온 가족을 다 만나고 예감한 이별인지 모른다
그날 배는 안개 때문에 제 때 출항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나눈 문자
윤수야, 싫으면 돌아오너라.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가 된 메시지
우리는 바라보고만 있었다니
누가 그날을 떠올리면
목이 마르지 않으랴
부끄럽지 않으랴
야구공이 날아간 바다
- 2의4 김호연 -
딱 쳐 봐,
공은 배트에서 튕겨져 하늘을 날았다
호연이는 그날도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공을 치고 있었다
어디에서 공은 멈출 수 있을까
어둑해지는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는 호연이
어머니가 몹시 슬픈 표정으로 목욕탕을 가셨다
별일 아닌 일로 정말 난생 처음으로 엄마한테 대들어서다
호수 공원을 혼자 걸어본 적이 없는데 엄마 얼굴이 떠올라 어쩔 수가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망설이다가 엄마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고
호연이는 가슴에 눈물 같은 게 가득 차 올랐다
- 엄마, 미안해
호연아 너 어디니? 어서 집에 와서 엄마랑 밥 먹자
호연이는 이후로 어머니의 마음을 늘 느꼈고
친구와 축구를 할 때도
형과 함께 학교 이야기를 할 때도
학원에서 기타를 칠 때도
엄마가 옆에 있는 게 느껴졌다
엄마 역시 호연이를 보면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바다까지 날려 봐
공은 배트를 떠나 바다를 향해 멀리멀리 날아갔다
돌아오지 않는 공을 받으러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서성거리고
바다는 공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구나
누가 호연이의 공을 받아 주어야 하는가
사랑의 수호신, ADHD 밴드
- 2의4 박수현 -
벌써, 세 번의 여름이 지났구나
올해 여름은 플라타너스 잎이 코끼리 귀처럼 늘어지는 폭염이었어
시화호 가는 길 식물원 아치 아래서 너의 밴드 공연을 다시 들어보고 싶단다
떨지마, 공연을 앞두고 넌 늘 떨린다고 했지?
네가 꾸렸던 ADHD 밴드가 지금도 귀에 쟁쟁거려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여름밤에 딱,이라고 네 기타 연주를 떠올리곤 해
늘 사랑해,를 말하던 너는
사랑의 수호자로 통했어, 지금은 수호신이 됐겠지?
그래, 넌 우리들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수호신이야
아버지랑 헉헉대면 올랐던 설악산은
토왕성폭포가 45년만에 개방되어서 야단법석들이야
그때 그랬지?
대학생이 되면 다시 오르자고
가족 넷이 다녀온 김삿갓 계곡길
그때 못 가본 곰봉이랑 외씨버선길은
시간의 잎을 문 가막딱따구리가 아직도 딱딱 시계를 돌리고 있다는군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열리기를 여태껏 기다리고 있는 거지?
우린 너의 ADHD를 떠올릴 뿐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어
그러나 언젠가 너와 함께 갇힌 친구들 모두 건너올 문을 꼭 만들어낼게
건너와, 수현아
넌 우리의 수호신이잖니?
우주로 간 왕자
2의4 빈하용 -
그림 속의 하용이는 바닷 속을 헤엄쳐 다녔다
도시의 빌딩 수초 사이로 물고기가 되고
알록달록 작은 별에 앉은 곰 왕자가 되기도 했지
먼 길이지만 헤엄쳐 다닐 수 없는 도시란 없어
날아갈 수 없는 별도 없었지
그러나 지금
헤엄 쳐도 넘나들 수 없는 다른 나라에 갇힌
왕자의 꿈
석화石化한 수초다
무채색 별이다
그곳에는 네가 좋아하는 태권도장이 없어
미술학원의 골방도
아버지의 소란스런 마트도
보이지 않아
알록달록한 빛이 사라진 캄캄한 별 나라
그림 밖은 무한히 회전하는 반복의 꿈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니?
다 같이 만들어 가야하는, 다시 별나라의 꿈
우주로 가려던 너의 꿈이 꿈이 아니길 바래
그러나 하용아, 별 나라의 일러스트가 되어
지구의 가난한 우리를 그려줄 수 없겠니?
가을의 약속
2의 4 슬라바 -
추석 보름달이 뜨면
어머니의 고향 노보로시크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지
제주도의 푸른 봄바다에서 훈련이 아닌 수영을 맘껏 해 보려 했는데
그 사이 세 번의 여름이 가고
가을달 솟았네
블라디보스톡까지 일주일 걸려서 기차를 타고 온 아버지의 나라 꼬레, 처음 배를 타고 다녀본 흑해를 닮은 서해 바다, 수영 훈련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대한 모국 러시아와 조국이 된 꼬레, 수영 출발선에서 외던 자신을 향한 주문, ‘앞으로 빨리 나가면, 모든 것은 쉽게 뜰 수 있어’
제주로 가는 배는 물 위로 떴고
빨리 달렸지만 모든 것을 실은 채
깊이 가라 앉아버린 무서운 바다
슬라바는 출발선에서 아직 스타트도 못해 봤는데
검은 눈 들어 바다 저편을 보니
바다는 어머니의 어머니
둥근 눈이다
둥근 달이 뜨고 있다
첫댓글 헉,
박일환 샘이 벌써 써 둔 친구가 둘 있었네...
제 건 빼고(혼자 너무 많이 써서...ㅠ) 선생님 시로 하면 될 듯합니다. 제가 쓴 건 지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