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초상 6: 스메타나

[박민]

스메타나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몰다우는 블라타의 독일식 이름이다)에 나오는 몰다우 강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가로지르면서 흐르고 있다. 몰다우 강은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강으로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내려 체스키, 크룸로프, 프라하를 관통한다. 이 몰다우강은 라베 강과 합류하여 결국 독일의 엘베 강으로 유입된다.

프라하는 1918년부터 체코의 수도이며 전에는 보헤미아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그 전략적 요새로서의 입지 때문에 일찌기 열강의 지배를 받아왔다. 프라하 최고의 바로크 건축물이 모두 독일식이라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체코 민족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자유라는 면에서는 불행했던 반면에 항상 서구문화권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까닭에 경제적, 문화적인 면에서는 고도의 발전을 이룩했다. 따라서 음악생활은 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한다. 도시의 크기를 감안한다면 다른 서유럽의 대도시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음악활동이 전개되어 왔다. 특히 음악청중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프라하의 지리적 위치는 북쪽으로는 드레스덴과 베를린, 동쪽으로는 바르샤바, 남쪽으로는 비인, 서쪽으로는 뮌헨이 위치하고 있다. 프라하는 베를린, 부다페스트, 바르샤바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중 거의 폭격을 받지 않아 고색창연한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스메타나 기념박물관은 몰다우 강변에서 강물줄기를 응시하고 있다. 조금더 북쪽으로 가면 드보르작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스메타나 기념관 아래쪽의 강변 도로는 스메타나 거리로 명명되어 있다.

체코는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소련에 맞닿아 있는 나라이다. 체코는 역사가 깊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종교개혁가 얀 후스를 낳은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연방국가로 성립되어 있다.  1620년 체코 신교연합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다음 오랜동안 가톨릭과 게르만 문화로의 개종이 강요되었고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었고  19세기 초에 민족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체코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18세기말 체코어에 대한 탄압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도브로브스키에 이어 융만에 의해 어원학과 체코 역사학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1791년에는 프라하 대학에 체코어와 체코문학을 가르치는 학과가 개설되었다. 1785년에는 체코어로 된 시집이 출간되었고 1800년에는 이것을 가곡으로 만든 악보가 출판되었다.

한편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체코어로 번역하여 상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독일어 대본을 사용하고 만다. 1800년대 초의 체코 음악의 상황은 독일의 영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낭만주의 시대에 널리 사랑받았던 살롱 음악 분위기의 피아노 소품이 많이 작곡되었던 것이다.

1859년 롬바르디에서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함으로써 야기된 정치적 상황은 체코음악의 미래에 밝은 빛줄기를 던져 주었다. 비인 정부는 독일계통이 아닌 소수민족에 대해 탄압정책을 다소 완화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860년 이후로는 치하에 있는 수많은 시끄러운 민족들 중에서 자기들과 손잡고 나머지 민족들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연합세력을 형성하는데 전념했다.

그러나 이제 합스부르크 제국은 이 모든 민족들에게 교육및 언어 상의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879년까지만해도 합스부르크 제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구성원인 중산층 자유주의자들을 가장 편리한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체코의 경우에는 강제적인 이중 공용어 체제가 유지되었다.

스메타나는 1848년 혁명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나 학교에서 독일어로 말했으며 체코어로는 말하기와 쓰기가 불가능했다. 1856년에 그가 난생 처음으로 체코어로 된 편지를 쓴 적이 있긴 했지만 1861년 그가 체코어를 완전한 모국어로 구사하기 전까지는 일기에도 독일어를 섞어쓰는 경우가 많았다. 여태까지 스메타나는 체코어를 말하고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가 체코어로 쓴 두번째 편지는 1860년 3월 11일 스웨덴에서 루데비트 프로차카 박사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남성 합창단을 위한 작품 위촉의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이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나의 모국어로 당신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조국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귀중한 것임을 이렇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때부터 체코어를 숙달하려는 스메타나의 힘든 노력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가 체코어에 대해 보여준  열정이 없었던들  오늘날 체코 민족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되거나 오페라 작품이 중요시될리 만무했을 것이다.

1862년 체코 오페라를 상연할 임시 가설 극장이 세워졌고 얀 하라크 공작은 창작 오페라와 대본에 600 플로린의 상금을 내걸었다.  이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이 스메타나의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이다. 스메타나가 귀국하여 왕성한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대소수민족 문화적 유화정책의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기까지는 수많은 체코인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리스트와 슈만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 Ma Vlast 은 리스트 식의 교향시 작곡법에서 탈피하여 스메타나 특유의 민족적인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핀란드 민족음악의 대표 작품이  핀란디아 라면 체코의 경우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이다. 이 두 작품은 둘다 민족정서를 고취하는 음악이며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전6곡으로 구성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은 1872년부터 7년에 걸쳐 작곡된 체코 민족의 음악적 대서사시이다. 제 1 곡 비셰흐라트 Vysehrad는 몰다우 강 연안에 우뚝 솟은 옛 성인데 여기에 나오는 주제가 제 2 곡  몰다우 에서도 재현된다. 몰다우는 체코의 남부 고원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프라하를 지나 엘베 강과 합류하여 독일로 흘러들어가는 체코 민족의 젖줄인 셈이다. 아름다운 제 1 주제의 뒤를 이어 나오는 숲속의 사냥 광경, 마을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마을 축제에서의 춤 등이 묘사된다. 밝은 달빛과 그 아래 벌어지는 물의 요정들이 춤추는 소리도 몰다우 강의 물줄기를 따라 들린다.  몰다우 는  나의 조국  중에서 가장 친근하면서도 풍부한 선율이 포함되어 있는 곡이다.

몰다우강은 차이코프스키(`로미오와 줄리엣')와 생상이 표제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지 얼마 안되어 나온 작품으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이후 가장 영웅적인 기악음악으로 손꼽힌다.
스메타나는 에피소드의 나열식의 방법을 택하고 있지만  나의 조국 을 구성하는 각 작품에 단일한 주제를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결합시키기도 한다.

스메타나는 1824년 3월 2일 보헤미아의 중부지역에서 발트슈타인 공작 소유의 양조장을 경영하던 프란티체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우 정력적인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틈틈이 음악을 즐겼다. 그는 아내를 세번 맞이하여 이미 딸을 일곱 명이나 두고 있었다. 스메타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맏아들이었다.

대부분의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확립되기 이전에는 피아노 연주 혹은 지휘, 레슨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스메타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공개석상에서 연주가로 데뷔했다. 그는 5세 때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는 4중주단에 가담하여 연주했고, 6세때 피아니스트로 청중앞에 최초의 공개연주를 가졌다.

바이올린 연주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체코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민속음악에 접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었는데, 스메타나는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1859년 오스트리아가 이태리와의 전쟁에서 패패하자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정책을 완화했다. 이에 따라 프라하에서는 민족문화 재건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국민 극장에 건설되었고 오페라 창작에 열을 올렸다. 스메타나는 체코의 민족음악 운동을 이끌어 간 주도적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보헤미아 황제 프란시스 1세의 명명일을 축하하는 연주회에서 오베르의 `포르티치의 La muette 서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고 보헤미아의 서부에 있는 도시와 온천 휴양지에서 피아노 순회공연을 직접 기획했다. 그러나 1847년 체브에서의 첫 공연 때의 청중동원에 실패함으로써 이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는 20세때 부모로부터 독립해 단돈 20플로린을 들고 프라하로 건너갔다. 여기서 그는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운좋게 그는 1844년 1월 18일부터 1847년 6월 1일까지 레오폴트 공작의 집에서 피아노 교사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 숙식제공 외에 연봉 300 플로린을 받았다. 그러나 작곡가로 성공하고 싶었던 그는 작곡 공부를 위해 여기서 박차고 나왔다.

레오폴트 공작의 집에서 나오자말자 그는 빈털털이 신세였다. 그가 1848년 8월 8일 리스트의 도움으로 음악학교를 개설해 피아노를 가르친 것도 우선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발발로 인해 음악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스메타나가 스웨덴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는 작곡가보다는 피아니스트나 음악선생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바이얼리니스트 페르디난드 헬러와 함께 음악원을 열어 한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지휘 경력은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 1856년 10월 16일 예테르보이에 도착한 후 헨델, 멘델스존, 쇼팽,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추어 남성합창단을 지휘했으며 예테르보이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시절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의 레퀴엠, 자신의 `승리 교향곡'을 지휘했다.

스메타나가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던 것은 레오폴트 공작의 집에서 피아노 교사로 일할 때와 스웨덴에서 활동할 때 뿐이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자유로움의 반대급부로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감수해야 했던 것은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경제적 위기였다.

스메타나는 대부분의 낭만주의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시민혁명을 몸소 겪는다. 문제는 이들이 꿈꾸던 혁명적 이상이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요한 시트라우스 2세는 여전히 합스부르크 제국의 위엄을 찬양했으며, 바그너는 바이에른 공국의 루드비히 2세의 후원을 갈망했다.

1848년 프라하 혁명에 가담하여 바리케이드를 지키던 스메타나는 `학생연대 행진곡' `민족방위군 행진곡'등의 혁명행진곡과 `자유의 노래'를 작곡해 함께 불렀다. 1849년 4월에는 씨크루프의 지휘로 스메타나의 `장엄 서곡'이 소피아 섬에서 연주되었다.

혁명이 끝나고 자유주의 개혁을 약속했던 알렉산더 바흐의 독재정권은 체코의 애국지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1848년은 국제적 시각에서 볼 때 서로 경쟁하는 민족들의 자기주장의 시기였다. 민족정부의 수립은 온 유럽의 과제였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시민혁명에서 기대했던 바는 궁정과 귀족이 지배하는 보수적 문화를 신흥 부르조아 세력의 진취적이고도 새로운 기운으로 뒤엎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자기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향상되고 아무런 간섭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848년 유럽 전역에 확산된 혁명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체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5월 황제의 망명으로 작전 행동의 자유가 커진 합스부르크군은 새로운 진용으로 6월 프라하에서 일어난 급진파의 반란을 진압했고, 더 나아가 이 제국의 경제적 중심부인 보헤미아 지방을 재정복했다. 또 곧이어 북부 이탈리아 지방도 되찾았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혁명 이후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부르조아들은 혁명으로 재산이 몰수될지도 모르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자 혁명의 강령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질서유지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늙어빠진 보헤미아 황제 페르디난드 1세가 물러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스메타나는 자유주의자이며 애국독립지사임에 틀림없었으나 체코의 상황 때문에 그는 결과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스메타나는 혁명이 끝난 후에도 귀족의 자녀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퇴위한 페르디난드 황제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프라하 성문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는 전임 황제의 전속 궁정악장이 되었다. 그는 또 하이든이 작곡한 오스트리아 국가(國歌)를 주제로 하여 `승리의 교향곡' Eb장조를 작곡해 신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결혼식에서 연주했다. 크로아티아인이 작곡한 오스트리아 국가를 주제로 하여 오스트리아 황제를 위해 체코 음악가가 작곡한 결혼축하 음악이었다.

그는 신임 황제에게 적잖이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에는 혁명으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보헤미아의 왕권수립을 인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러한 유화적 제스추어는 오래가지 못했다. 비인 3월혁명 이후 혼란기에 황제가 된 요제프 1세는 인종별 통치로 혁명 이후의 상황에 대처했고 1861년 2월 헌법을 발표하여 슬라브족의 반발을 샀다. 이 헌법은 연방분립주의에서 다시 독일인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소수민족을 억압하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마자르 민족과 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을 성립시켜 슬라브계의 체코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스메타나가 결국 스웨덴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현상황에서는 민족적으로는 정치적 자유와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자립의 면에 있어서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그너가 1849년의 드레스덴 5월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스위스로 망명한 것과, 베를리오즈가 프랑스 혁명 이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던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오페라 `팔려간 신부', 교향시 `리차드 3세' `나의 조국', 현악4중주 `나의 생애에서' 등을 남긴 스메타나는 1874년 1874년 완전히 귀머거리 신세가 되어 고생하다가 여기에 정신착란증까지 겹쳐 60세의 나이로 프라하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반회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