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28-34 꽃들을 보며
지난주 월요일에 박균영 집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화요일 저녁에 중직자들과 함께 천국환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①주일에 교회 나오시기 위해 토요일에 목욕탕에 가서 준비하셨습니다.
②“죽음이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고백하셨습니다.
③92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시다 몸에 기운이 없다 하시면서 2~3주, 약 3~4주 정도 아프시다가 주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 정도는 감사합니다.
④새벽에 일어나셔서 성경 읽고 기도하셨습니다.
⑤먼저 소천한 윤순화 집사님은 ‘안동역’을, 박균영 집사님은 ‘묻지 마세요’를 좋아하셨습니다.
묻지 마세요 물어 보지 마세요 내 나이 묻지 마세요
흘러간 내 청춘 잘한 것도 없는데 요놈의 숫자가 따라오네요
여기까지 왔는데 앞만 보고 왔는데 지나가는 세월에 서러운 눈물
서산 넘어가는 청춘 너 가는 줄 몰랐구나 세월아 가지를 말아라
세월은 고장도 안 나고 잘 갑니다. 세월을 잡을 수 없다면 주어진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열심히 잘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해 “세월을 아끼라” (엡 5:16)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시고 쉬지 말고 기도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면서 주님 뜻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지자체마다 꽃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꽃들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고 그 아름다운 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면서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염려입니다.
우리 주님이 산상설교 중 하신 말씀입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28-31)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농사, 길쌈하느라 수고도 아니 하고,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귀히 여겨 먹이십니다. 누구를 위해 피었는지, 불러주지도, 이름도 없는 들의 핀 꽃 한 송이, 들꽃 한 포기를 곱게 아름답게 피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새도 꽃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주셨는데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꽃 구경하면서 우리 주님이 너는 꽃보다 귀하라시면서 염려하지 말라 하셨지, 염려 대신에 기도하고 감사하리라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다음은, 사명입니다.
정채봉 님의 <참 맑고 좋은 생각> 중에 ‘풀잎도 할 일이 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 새는 ‘자기’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참새처럼 날렵하지도 못하고, 꿩처럼 아름답지도 못하고, 독수리처럼 용맹스럽지도 못하고, 그리고 부모로부터 내쫓김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늘 웅크리고 있는 그를 이웃들은 별 볼 일 없는 새라고 천대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솔개 사제를 찾아갔다. 그의 푸념을 낱낱이 들은 솔개 사제가 말했다. "당신처럼 생각한다면 풀 한 포기도 살아 뭐 하겠느냐고 하겠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하잘것없는 풀잎도 풀무치의 집이 되어줍니다. 빈 조개껍데기 또한 쓸모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들도 고기 새끼들의 둥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저 실낱같은 여린 나뭇가지 끝도 눈 한 짐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새는 그날 돌아와서 이 숲과 저 숲을 훨훨 날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젊은이 두 사람이 숲을 지나가다 이 노래를 들었다.
"저렇게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 이름 알아?"
"알지, 휘파람새야.”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사명이 분명히 있습니다. 무명의 들꽃은 누가 봐 주든지 봐 주지 않든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간에 자기 자리에서 때 되면 피고 집니다. 들풀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준 사명으로 삽니다. 우리 또한 사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명으로 살았던 사도 바울의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 번째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구 도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방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면 사명으로 산 사람의 생은 언제나 힘이 있고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에 불을 지펴 줍니다. 일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2-24)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합니다. 그 사명은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임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제1, 2,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관광하러 갈까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사명 감당을 위해 목숨 걸고 가겠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사명감이 그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주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었으며 한 차원 높은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으로 삽시다. 꽃들을 보면서 이렇게 화답하세요.
“너도 말없이 사명으로 피고 지지. 나도 사명으로 살련다. 영혼 살리는 사명, 교회 섬기는 사명,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사명이 내 사명이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저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취임사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래 사명으로 알고 하자. 사명이고 약속이다.’
[이사장 취임사] 2021. 10. 25.
봄은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여름은 가을에게 다음 사명을 전달합니다. 가을은 마지막 잎새까지 대지에 모두 남기고 겨울을 맞이합니다. 겨울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1년 사계절을 완성합니다.
1986년 9월 20일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시작된 봄의 계주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할지 더 깊이 생각하면서 여름의 계주를 뛰기 위해 배턴을 전달받은 두 번째 주자 박영일 목사입니다.
20여 년 전 개척교회 시절, 저를 찾아오셔서 제 마음에 신학교에 관한 비전, 사명의 불씨를 넣어주시며 품고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신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이렇게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길을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고 나의 달려갈 길을 주님만 보고 달려가려 합니다.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생명줄처럼 부여잡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말씀 붙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처럼 울면서라도 하나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제가 드린 첫 번째 다짐이며 약속입니다.
(중략)
35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벽이 되지 않고 길이 되게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공동체가 발전하고 성장한다면, 주님 기뻐하시는 선한 마음으로 주신 비전 따라 사명으로 알고 희생이 기다리는 그 한복판으로 당당히 걸어가겠습니다. 그래도 그곳에는 주님이 준비하여 주신 은혜의 볕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성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가장 유의미한 온기가 있을 것입니다. (생략)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다짐하며 고백합니다. 사명으로 받고 사명으로 알고 사명 감당하겠습니다. 사명으로 삽시다.
꽃들 구경하면서 함께 생각할 것은, 타이밍입니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게 아닙니다. 여름에도 핍니다. 해바라기가 피고 접시꽃도 피고 백일홍, 나팔꽃, 장미, 무궁화는 여름에 핍니다. 가을에도 핍니다. 코스모스, 국화, 구절초는 가을에 핍니다. 꽃은 겨울에도 핍니다. 동백꽃, 수선화는 겨울에 핍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때에 나의 꽃을 환하게 피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지못해 피는 꽃이 되지 마십시오.
골짜기에 피어난 꽃에도 향기가 있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잡초 더미 위에도 단비가 내립니다. 온실 속에 사랑받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벌판에서 혹한을 견뎌내는 작은 들꽃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 없이 사랑받는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혹한을 참아낸 들꽃의 생명력이 더 강합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주님께 사명 받은 자로서 남과 비교하지도 마시고 주님만 바라보며 충성을 다합시다. 하나님의 때에 나의 꽃은 핍니다. 신앙은 믿음과 인내로 하는 것입니다. 따뜻하라고 준 봄에 꽃들을 보면서 나의 꽃을 피울 타이밍을 묵상하며 힘을 냅시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따뜻한 봄과 함께, 꽃 소식과 함께 찾아온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 감사하며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죄와 무덤과 사탄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의 죄 위해 죽으시고 나의 의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고 부활의 도를 힘있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봄과 함께 핀 꽃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시면서 주님을 향한 첫사랑과 차가운 신앙의 부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부활, 감사의 부활, 건강의 부활, 사업과 직장의 부활, 사명의 부활이 있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아름다워라 (찬송가 47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