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교洗越橋 이야기
송경애
나는 시한부
곧 지구를 떠나야 할 조그만 하천 공작물 콘크리트 다리
Ⅰ
전설로 스며드는 세월교,
여름마다 가마솥더위 피해 몰려왔던 사람들
딸랑딸랑 압력밥솥 추 춤추던 소리
번개탄 위에서 삼겹살 익어가던 연기에 철들고
사내들 내 옆구리에서 빙어, 곤들매기를 낚아 올려
계곡을 뒤흔들어 놓던 환호성
아직 귓불에 달려 있는데
Ⅱ
구름처럼 밀려와 물 구경하던 사람들
수천수만 개의 팀파니들의 포효로
계곡을 뒤흔들던 물의 노래
그 성스러운 합창 물안개로 피어오르던
소양댐 수문 열던 날들
꼭꼭 여며 품으리 그 기억
무지개다리 위로 울려 퍼지던 탄성
즉흥곡 하모니도
Ⅲ
소양댐 수문들 그 문을 여는 일 잊은 지 오래
나는 세월洗越을 잊은 지 오래
나는 세월교洗越橋, 콧구멍 다리
누구도 불러 주지 않는
불리기 전 잊힐 이름
내 이름은
hume pipe
베네치아에서 온 부채
송경애
장식장 유리문을 닦다가
조그만 꽃무늬 부채와 눈이 맞았다
목숨 줄 꽉 잡고 둥둥
물 위에 둥그렇게 앉아있는 섬
핏줄 같은 물길 따라 이마 맞댄 레이스 공장들
동화 같은 작은 유리거울 속으로
미끄러지듯 이끌리던 사람들
할머니들 손끝에서 피어나는 레이스 꽃 앞에서
별처럼 반짝이던 눈빛들
뭉툭한 손가락 마디마디 그 끝에서 환하게 피어나던 부채 꽃
유리 상자 속에서 피어난 별꽃 꽃부채
그 꽃 부채가 툭 기억의 창을 흔들었다
아득한 고향의 기억을 향해 모딜리아니의 연인 같은
목 길게 기울여 세운 조그만 부채
숨죽이고 귀 기울이니 부채에서 이는 꽃바람 그 숨길
깊은 잠에 들었던 베네치아의 시간이
하르르 하르르
꽃으로 부채꽃으로 피어오른다
곤돌라 사공들의 산타루치아 노랫소리가
줄무늬 같은 물결을 타고 날아올라
내 작은 방에서 베네치아의 햇살을 뿌려 놓는다
*송경애: 2003년『문학예술』로 등단. 제40회 이효석 백일장 산문 최우수상.
* 시집『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바람의 암호』 『계보의 강, 그 얼음 성』
*현/강원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시를뿌리다시문학회회장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