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바라보며
양 은 순
2012년 교통사고를 떠올리며.
내가 사고를 당했기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운명처럼 느껴진다. 아픔을 겪으면서 소외된 절망의 순간들을 딛고 지혜와 안목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삶을 관조하며 소중히 하는 일상을 갖게 해줬다.
바라만 봐도 눈부신 新婦의 계절 유월에. 우리는 통영으로 딸네가족과 함께 손자 손녀 모두 여덟 식구가 가족여행을 하고 돌아오던 중. 대전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순간에 차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박고 튀어 나가 가드 레일에 부딪쳐 멈춰 섰다.
그 순간 차 안에서의 아수라장, 우리를 목격한 사람들이 달려 와 끌어내 겨우 빠져나와 식구들은 모두 길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 아! 나에게도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구나! 절대 절명의 흐릿한 의식 속에 긴급 출동한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우리는 대전의 각 병원으로 흩어져 응급처치를 받은 즉시 서울 소재 같은 병원으로 모두 가족들은 옮겨졌다.
입원하자마자. 나는 고관절이 빠지고 뼈가 부서져 무릎에 마취도 없이 철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힘든 치료를 받았다.
나의 애간장을 태우던 큰 딸애는 중환자실에서 이틀 만에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렸고 사위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피를 많이 흘렸는데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아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젖었다. 다리뼈가 부서진 금쪽같은 손자는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여덟 살 어린것이 소리 치고 우는소리에 가슴이 졸아 붙고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남편은 팔이 두 군데나 부러져 치료 중 수술도 못한 상태에서 가족병실 드나드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천만다행인 것은 아직 미혼인 작은딸은 대학 강의 때문에 가족여행에 같이 가지 않아 무사했다. 그 여린 내 딸이 부모 형제의 참혹한 사고 앞에 침착하게 잘 견디며 힘든 뒷바라지를 다 해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식들이 잘못될까 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었는지. 한식구라도 잘못 돼 내 곁을 떠났다면 나머지 가족들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모두 살아줘서 너무 감사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심장이 아파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현기증이 오면 버텨내기가 힘들다. 95%완치율이라는 최첨단 시술을 두 번씩이나 받았는데도 약물치료 부작용으로 숨쉬기조차 힘든 나날을 보냈다.
착잡해진 심경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주변정리를 생각해봤다.
그동안 남편 그리고 자식들과 좀 더 많은 시간 같이 보내고 싶고.
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후회스러워. 이제부터라도 얼마나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마음을 내려놓고 차근차근 최선을 다해 삶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 문예 창작 아카데미에서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나의 텅 빈 머리를 채우고 가슴으로 느끼는 글을 써보고 싶어서다.
살아가면서 비를 맞기도 했고 바람에 흔들리며 견뎌내기도 했던 힘든 일들. 또 따스한 봄날들은 몇 날이나 되었었는지, 그동안 겪어냈던 인생의 날들을 꺼내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삶의 소리를 다듬어 글로 담아냈을 때 감동은 큰 즐거움이었다. 문학의 감성을 키우며 자연의 이치에서 치유의 방식을 터득하게 되면서, 어느 날 부터인가 내 가슴 속에 아프던 심장의 통증이 멈췄다.
노을을 바라보며
바람처럼 스쳐 간 많은 인연들을 추억한다.
그동안 아름다웠던 만남들을 내 글 속에 담아내 황혼을 즐기며
찻잔의 따스한 향기처럼 사랑과 기쁨과 아픔을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