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따사롭고, 바람은 잔잔하며 대기는 조용하다. 침묵하는바람에 창공은 드높고, 드높은 푸른 하늘 가로지르는 구름은 높디높고 그 흐름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날은 햇빛이 아주 따사로운 오후였다고. 그날의 기상은 절기상으로는 겨울이되 겨울같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봄날의 하루같이 맑고 청명한 날이였다고,모두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증언했다.
소리없이 내리쬐이는 햇살이 따사로운 여느 날과 마찬가지인 오후였다. 만약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날은 평화롭고 조용한 겨울의날씨좋은 한 오후로 그냥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을 그들 호아장 무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로 인식되도록 만든 사건이 두 사람의 방문으로 인해 일어났다. 어느 누구도 미처 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날벼락이였다.
평화로운 오후의 명상을 깨는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들! 그 수는 단둘로 바로 비류연과 염도였다. 비록 그 수는 단 두 명이였지만, 그두명이 파생시킨 파급효과는 가히 천지재해 수준과 맞먹었다. 그 만큼그 둘이 끼친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였다.
이 둘의 방문으로 인하여, 그날은 그들 호아장 전무인들에게 씻을수 없는 치욕과 지워지지않는 패배를 안겨준, 잊혀지지 않을 악몽으로 그들의 뇌리 속에 선명한 화인(火印)처럼 깊이깊이 각인되었다.
* * * * *
'호아장의 정문은 만인을 환영하는 듯 활짝 열려있었다'라고 말할수 있어야 원래는 정상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단단하고 굳게 닫혀있어 열릴 줄을 몰랐다. 원래 이정도 쯤이나 되는일류문파가 되면, 특별한 사정(여인들만의 금지(禁地)라던가 봉문(封門)중이라던가, 아니면 특별한 의식행사 중이라던가, 비지(秘地)에 위치해 있다거나, 문규에 의해 속세와의 왕래가 엄금되어 있다거나하는 기타등등.)이 있지 않는한 하루의 해가 떠서, 그 해가 서산너머로 떨어져 질때까지는 정문을 활짝열고 손님을 받는 것이 원칙이였다.
보통 두 명의 정문을 지키는 위사와 한 명의 지객담당 제자가 있어정문에서 손님을 받아 방문첩에 이름을 기재한 다음 손님을 지객당이나 용무가 있는 장소로 안내를 하는 것이 정상이였다. 그것이 강호의 법도였다. 때문에 호아장(虎牙莊) 쯤이나 되는 일류문파에서한낮의 손님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원칙상, 체면유지를 위해서라도 장을, 문파를 방문하는 손님이라면 그 손님이 비록 거지라도 거절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묵시된 법도(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불문율!)였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잘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당금 현 무림의 현실이기도 했다. 거지들까지 신경쓴기가 꺼림직했고, 또 그렇게되면 손님 접대용으로 나가는 엄청난 지출을 견디기가 벅차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초대받은 일부의 방문객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는 족족 모든 이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여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호아장의 재산은 거덜나버려 식솔들 모두 거리로 나앉기 십상이기 ㄸ문이다. 해서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환영받지 못하고, 초대받은 손님은 극진히대접되었다. 관행상 이런 일들이 당연시 되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곳은 무림 최대의 세력중 하나가 있는 남창!지나가는 거지들도 한 번쯤 고수 여부를 의심해 봐야 하는 곳이다.
이곳 거지들 중 과반수 이상이 모두 개방(開放)에 소속된 무림거지들이였기 때문이였다. 이런 현실인 남창에서 호아장 쯤 되는 일류문파라면 날마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호아장측에서도 손님접대에 소홀히 할 수가 없어 손님접대에 만전을기하고 있는 실정이였다. 며칠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런데, 어찌될 일인지 지금은 그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장내에 있다는 뜻!그 이유는 바로 천무학관 입관시험대비를 위한 것으로, 며칠 뒷면 입관시험을 치르게 될 호아장주 호천상의 둘째제자 감운수 때문이였다. 그래서, 호아장은 요 며칠간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침묵에 휩싸여있었다. 제자 감운수의 합격을 바라는 사부 호천상의 자그마한 노력이였다. 크나큰 시험을 앞둔 이에게 소란스러움은 절대금물, 당사자의 정신을 흐트러트리고 집중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독(毒)보다도 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피해야할 상황이였다. 그래서, 호천상은 사랑하는 제자의 천무학관 입관시험 대비를 위해, 주위의 자중과 자숙을 요청하는 의미에서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동시에, 장 주위의 마을 사람들에게도 행동의 정숙과 자숙을 부탁해놓은 터였다.
그 근방에서 호아장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고 호기롭게 고성방가를 일삼을 만큼 간담이 큰 사람은 없었기에 감운수는 조용하고 정숙한 환경 속에서 착실히 천관학관 특별입관시험에 대비할 수 있었다. 아무리 특별전형이라고는 하나 낙오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혹시나의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험대비에 조금도 소흘할 수가 없었다.
굳게 걸어잠근 호아장의 철문은 최대한의 정숙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
거절과 거부란 있을 수 없음을 명명백백히 나타내고 있었다.
이 무언의 압력이 톡톡히 효과를 봐, 지금 호아장의 주위는 쥐가떼죽음당한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이러니 장내의 모든 인물들의촉각이 날카롭게 곤두설 수 밖에 없고, 곤두세워진 신경 때문에, 정문의번(番)을 서게 되는 문도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니, 정문근무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꺼려하고 최악의 불리우는 근무가 정문보초였지만 피해갈 수는 없는지라, 다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억지로 인상 구겨가며 번을 서는것이다.
오늘 장의 정문근무자는 호아장 주력무단인 호무전의 조원 이명이였다. 호무전(虎無殿)은 호아장 내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무력집단으로 전주 휘하 2대 6개조로 1대당 3개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두사람은 범이 날뛴다는 호무전 휘하조 중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1조 검호조에 소속된 이들로, 이름이 각기 이관정과손곤우라 하는 자들이였다. 둘은 검호조에서 둘도 없는 막연한친구 사이이자 경쟁자로, 다음대 검호조 조장자리를 놓고 암암리에 무(武)와 지(智)를 겨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 둘도 지금 결코 좋은 기분으로, 투철한 사명감에전신을 무장하고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벌근무이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뿐...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정문위사근무를 서려고 하겠는가!
한낮의 정문수문위는 정문의 경비뿐만아니라 장을 방문한 방문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들의 용건을 내원에 전하거며, 더나아가서는 손님들의 심부름까지도 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누구나이곳 정문수문위를 맡기 꺼려했다. 이러한 사실은 대다수의 타문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아주 일반적인 일이였다.
그래서, 이런 곳의 근무는 각 조에서도 끝발(직위고하(職位高下)를지칭하는 말)이 없는 사람이나, 아니면 사고를 쳐서 벌당직으로이곳의 근무를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이 두사람은 검호조의 차기 조장의 자리를 다투는 인물들로서검호조 내에서도 고참 축에 속했지만, 며칠전 과음한 후, 술김에흥이 올라 벌인 음주비무(飮酒比武)가 하필이면 재수 지지리도없게, 주위를 순시하던 호무전주 본인에게 적발되어, 그 벌로 한달내내 이곳 정문경비를 서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위 말하는 벌근무인 셈이다. 그래도 둘은 문규에 엄격히 금지되어있는 음주비무를 벌이고도 이정도의 체벌로 끝난 것을 감지덕지해야했다. 한달동안의 정문벌당직과 맹호검법기초수련식 1천번 반복의 벌을 받았지만, 그렇다해도 그들에게 내려진 징계가 그 정도로끝난 것은 천행이였다. 그만큼 음주비무(飮酒比武)-그것도 진검을 사용한 음주비무-는 잠깐의 부주의로도 단숨에 생명을 ㅇ아갈 수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이관정과 손곤우가 이 정도의 징계로 끝난 것도 이둘을 아끼는호무전주의 중재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
하나, 비록 큰 징계는 용케 피했다지만, 이런 상황 하에 놓여있으니, 둘의 신경이 아니 날카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두명 다 매우저기압인 상태였다.
그런 때에, 두명의 초대받지도 않은, 환영받지 못할 인상의손님이 한사람도 아닌 두사람 씩이나 호아장을 방문했다. 괴이한형색을 한 이 일행은 물어볼 것도 없이, 특이사항없는 형색의 비류연과 온통 붉은 색 일색이라 어딜가나 눈에 확 띄는 염도였다. 타오르는 태양같은 강렬한 인상의 염도와 평범한 흑의에 치렁치렁한흑발을 아무렇게나 묶어놓은 비류연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였다.
묵묵히 두 사람의 발걸음이 정문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
"장(莊)!" "아(牙)!" "호(虎)!"
비류연이 큰소리로 소리를 내어, 편액에 걸린 글자를 한자한자또박또박 읽었다. 호아장의 정문에 걸린 편액에는 호랑이처럼용맹무쌍한 기개가 넘치는 필채로, 비류연 식으로 하자면'장아호(莊牙虎)' 라고 멋들어지게 적혀있었다.
"장아호라니...요?"
염도가 보기에 비류연은 분명히 옆에서 분명히 편액을 보고글을 읽은 것같은데 들리는 발음(發音)이 영 이상해 확인차물어본 것이다.
이래뵈도 까막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봤을 때분명히 호아장(虎牙莊)이라고 적혀있는데 왠 난데없는
장아호(莊牙虎)한 말인가?
그러나, 비류연은 염도의 이런 궁금증에는 아랑곳하지않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아? 몰랏어요?
난 현판을 읽을 때 좌(左)에서 우(右)로 읽어요.
해석은 우(右)에서 좌(左)로 하고요! 몰랐나 보네요?"
당연히 몰랐었다.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읽을 땐 좌(左)에서 우(右)로 읽고, 해석할 땐 우(右)에서좌(左)로 해?'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자니간던 똥개 콧방구 뀔 소리였다.
두자로 줄이면 견음(犬音), 세자로 풀어주면 개소리!
비류연의 엉뚱하고 황당한 대답에 기가 막혀버린 염도의 입이쩍하니 벌어졌다. 비류연을 향한 그의 두 눈동자는 강렬한 기광을 발하며, 염도 자신의 확신에 가득찬 의사를 명명백백(明明白白)히 표현하고 있었다.
미친 놈!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왜냐?
......목숨은 아까우니깐!
"그럼 책을 읽을 땐 어떻게하나...옵니까?"
아직도 염도는 비류연에 대해 말할 때 반존칭을 사용해야 되는 것에 대해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염도의 말은 항상 하대로 끝날려고 하다가 아차하는 심정으로 반존칭으로 급선회를 하게 되니,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게 인지상정이였다. 어투가전혀 그답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이 존칭문제를 가지고도 둘사이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가차없는 응징에 곧 염도는 어투를 바꾸는이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자각하고존칭사용실행여부에 동의하게 되었다.배변(排便)이 무서워서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것이 당시 그의 의지를 극명하게 대변해주는 말이였다. 마치 이 말은 그 하나만을 위해 탄생된 말같이 느껴졌다.
비류연도 일단은 염도에게 비록 그가 내기에서 져서 자신의 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비록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라고는 하지만, 염도의 무림의 신분과 나이를 생각해 인심쓴다는 생각에서 반존칭을 사용해주고 있었다.
상호존칭으로 합의가 난 것이다.
"당연히 책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읽어내려가 가죠! 그럼 책을 아래에서 위로 읽어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좌에서 우로 읽는건 가로로 적힌 편액밖에 없어요!"
세 살박이 어린애도 다아는 당연한 사실을 뭣하러 물어보냐는듯한 비류연의 시선이 염도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다. 염도는 자신이 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뒷골이 지끈거리고 뻣뻣하게 땡겨왔다. 참으로 요상하고 괴이한버릇이 아닌가! 이런 짓거리는 단 네자로 간단히 표현 될 수있었다.
절대무용(絶代無用)!
-절대로 쓸모가 없다!-
염도는 자신이 정말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놈을 사부로 모시게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닳았다. 깨닳음을 얻었는데도 그의 눈앞은 더욱더 어둡고 캄캄하기만 했다.
사제관계가 비록 명분 뿐라고는 하나, 비류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모양이였다. 진짜 만년에 받은 제자처럼 진심으로 시킬 일 다시켜먹고 부려먹을 일 다 부려먹고있으니 염도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수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성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정도면 그나마 양호한 편이였다.
그래도, 비류연은 염도에 대해 어느 정도 예우를 해주고 있는실정이 아닌가. 그의 존칭말투 또한 그런 것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너무 염도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면 그의 성격상 미쳐 날 뛸위험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도도제딴에는 나름대로 계산한 모양이였다..
물론 비류연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그런 취급받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미쳐날 뛸만한 상황이였다. 아마 그 때 비류연에게죽도록 얻어 터지지만 않았었더라도, 벌써 참지못하고 미쳐 날뛰었을것이다. 아직도 그때의 악몽이 생생하게 살아있기에 염도는 자신의감정을 누그러트리고 있는 것이다.
* * * *
비류연과 염도가 사이좋게 호아장의 정문 앞에서 사제간의 오붓한 대화를 끝내고 장내로 진입해 들어왔을 때, 이 말많은 소문의 주인공, 호천상의 둘째제자 감운수는 한창 무공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이젠 정말로 시험일까지는 며칠 남지 않은상황이였다. 밤이 낮이 되어도 빠듯한 시간이였다. 그래서, 지금감운수는 모든 기력을 무공공부에 쏟아 붇고 용맹정진하고 있었다.
장의 비전검법인 맹호비격검법 26식에 모든 것을 쏟아붇고 있는것이다. 비록 특별전형이라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지만특혜자에게는 입관한 후가 더욱 문제였다. 왜냐하면, 날고 긴다하는강호의 기재들이 모두 모이는 천무학관에 입관하여 만일 별볼일 없는 무공을 선보인다면 과연 주변의 인물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문파의 이름을 업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심한경우 자격미달이 인정되면 가차없이 퇴관까지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꿀리지 않고 사문에 누를 기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맹수련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니, 만사다 제쳐두고 맹호비격검법의 대성(大成)을 이루기위해 모든 정성을 쏟아붇는 것이바로 지금 감운수의 할 일였다.
그런데, 이런 그의 공부를 방해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문 바깥쪽이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두어번의 격타음과 함께 다시 잠잠해진 것이다.
그의 수련장으로부터 정문까지는 꽤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수련으로 단련된 그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었다.그의 이목은 이미 오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게 다듬어진 후였다.
물론 비류연과 염도는 굳이 은밀함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더욱포착하기가 쉬웠다.
감운수는 무슨 일일까 걱정하여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쾅!
그 때, 천지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문이 활짝열리더니, 보도듣도 못한 불청객 두명이 장내에 발을 들여놓는게 아닌가!고민할 여지도없는 침입자였다.
'선한자는 오지 않고 온자는 이미 선하지 않다!'하였다.
선자불래 내자불선(善子不來 來子不善)!
감운수는 허리에 찬 절호도를 꽉 움켜진체 뽀얗게 일은 먼지가아직도 채가시지 않은 정문을 향해 신형을 옮겼다. 감운수는 그동안의 수련성과로 얻은 검득(劍得)으로 자신의무공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드디어, 맹호비격검법을 극성까지 익혔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를 어쩌나? 감운수는 오늘 운이 억세게도 없었다.
상대는 인간의 척도로는 측량할 길이 없는 인세(人世)에 다시없을괴물 두 마리였던 것이다.
......계산 착오였다.
"왠 놈들이냐?"
소란스러움을 듣고 단숨에 달려온 감운수가 두사람을 보자마자,겁도 없이 당당하게 외쳤다. 대사형이 없는 지금, 그가 이 호아장의 맏이였고 사부님을 대신해 사제들과 식솔들을 책임질 위치에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당당하게 행동했다. 아니 그러하려고노력 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왠 분들이시다! 왜!"
비류연이 감운수의 버르장머리없는 말을 받아 친절하게 정정해주었다.
굳게 닫힌 정문 바깥을 지키던 이관우와 손곤우는 시끄럽게 굴며장내로 들어올려는 두사람을 제지했지만, 비류연의 가벼운 솟짓과발짓 한 번으로 허망하게 대지로 내동댕이 쳐졌다.
아무리 장래가 촉망되는 무인이라고는 하나 둘은 일개조원에불과할 뿐이였다.
그런 그들이 염도와 비류연을 막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일이였다.
우당탕탕탕!
손곤우와 이관우는 나란히 햇살을 받아 알맞게 데워져있던 길바닥 위를 사이좋게 굴렀다. 없던 재수는 끝까지 생기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그 없음을 더해갔다.
문밖이 소란스러워 왠일인가 싶어 닫혀있던 철문을 열고 빼꼼히내다보던 지객담당도 날아오는 비류연의 주먹에 콧잔등을 얻어맞고삼장이나 날아가 보기좋게 의식을 잃고 대(大)자로 쓰러져 버렸다.
문을 닫아 자신의 갈 길을 방해했다는 하찮은 이유 때문이였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과 염도는 별 힘하나 안들이고 너무나 쉽게 호아장 내에 들어섰다. 그런 둘 앞에 감운수가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얼굴에 당혹한 빛을 가득띈 채......
이런 감운수가 비류연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그래서 , 비류연은 그를 싹 무시해 버렸다.
비류연은 전혀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의 존재를 염두해지주지않았다. 이런 비류연의 행동에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
했는지, 감운수의 안색이 씨뻘겋게 변했다.
잘나가는 무림의 후기지수이자 예비천관도라는 자부심으로가득한 그에게 비류연의 무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였던것이다.
그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시당한적은 있었던가?아무리 머리를 쮜어짜내보고, 뇌(腦) 속을 이리저리 헤집어봐도결단코 없었다. 창창대로를 걸어온 일류대문파의 직전제자께서언제 그런 푸대접을 받아보았겠는가!
난생 처음으로 그런 치욕적인 모욕을 받은 그의 인격과 자존심은 구겨질대로 구겨져 처참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의 인내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었다.
당장에 감운수는 절호검을 뽑아들었고, 단숨에 자신에게 최초의 모욕을 선사한 상대를 향해, 스스로 대성했다고 사뭇 흐뭇해하던 비전검법을극성으로 펼쳐내어보였다.
매서운 검기가 엄중히 비류연을 덮쳐갔다.
그를 비롯하여 호아장의 모든 제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사용하고있는 절호검은 그 길이와 폭이 일반 검보다 훨씬 넓고 두껍고, 또한길다. 그래서, 검격의 거리 또한 일반 검보다 훨씬 길어 처음 절호검과 검을 맞대본 이들은 첫째로 그 검권의 영향권이 상상외로 넓음에당황하고, 둘째로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강력한 검압에 당황한다.
폭과 두께, 그리고 무게가 일반 장검보다 넓고. 두껍고 무겁기 때문에이에 의해 발생하는 검력(劍力)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내력이 담기지 않은 일반 장검이라면 두동강나기 십상이다.
이 무시무시한 검력(劍力)과 검풍(劍風)이 맹호비격검법만의 독특한특징이기도 했다.
상대의 검을 무너뜨리는 사나운 검력! 단숨에 적을 두동강이 낼 듯한맹렬한 기세. 이런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는 맹호비격검법 26식이 비류연을향해 시전되었다. 검초를 펼칠때까지만해도 감운수는 자신만만했고 위풍당당했다.
허나, 스스로 대성했다고 여기던 그것으로, 익히면 적수가 없을거라 여기던 비전검 맹호비격검법으로 막상 비류연을 공격해 들어가보니,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검기(劍氣)는 그의 옷자락하나도 베어내지 못했고, 검풍(劍風)은운동 중인 그의 땀을 식혀주는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용지물(無用之物)! 완전 속수무책이였다.
비류연은 살짝 몸을 비트는 간단한 동작 하나 만으로도 이미 그의검세(劍勢)에서 벗어나 있었고(아슬아슬하게 종이 한 장 차이로 감운수의 절호검이 허공을 갈랐다. 헛손질이였다.), 몸을 살짝 비틈과동시에 다시 내딪는 일보(一步)는 섬광(閃光)과 같았다.
퍽!
단 일보로 창졸지간에 감운수의 품 안으로 파고든 후, 그와 동시에 내지른 주먹일격에, 감운수의 숨통은 터질 듯이 막혀왔다.
단 일격에 전신의 기혈이 뒤엉켜버린 것이다.
비류연의 오른주먹이 그의 복부를 직격하자 진기의 흐름이 단번에 끊어져 버린 것이다.
파바박! 퍽퍽! 투바바바박! 파바바바팍! 팍팍팍!
난폭한 우박이 얇디 얇은 철판 위에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퍼졌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참으로 경쾌하고 신명난다느낄 그런 소리였다.
비류연의 우권을 복부에 꽂은채, 신음이나 비명 한토막 내지르지못하고있는 감운수의 면상과 전신에 확인사살용 주먹세례가작열한 것이다.
비류연의 장기 중의 장기, 구타절명권 삼복구타권법이 발동된것이다. 작열하는 수십발의 주먹세례는 단숨에 그의 의식을 앗아가 버렸다.
아......! 그 상황은 너무나 처참해 이만 생략하도록 하겠다.알아봤자정신건강에만 해로울 뿐이기 때문이다. 알면 다치니 모르는게 약인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이하생략 이후 호아장의 기대주 감운수는 대낮에 저승문턱에 올라 감상하는 별구경이라는 기이하고도 신기무쌍한 이색체험을 겪는다. 그리고는, 이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제딴에는 한시라도 빨리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류연은 바닥에 엎어진 감운수를 한번 흘끝쳐다보더니, 얼라리요하는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라, 너무 허약하잖아?"
비류연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싱거웠다. 일파의 명예를 젊어진녀석이 너무도 쉽게 나자빠져버린 것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감운수는 반격다운 반격 한 번 못해본채, 비류연의 한수도 제대로 감당못하고 처참히 나가 떨어져버렸다. 완숙한 경지에 접어들지 못한 맹호검격세를 믿고, 함부로 대들다가 생긴 결과였다. 그 자신은 비전검법을 완전히 극성으로 익혔다고 자만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였던 것이다.
고수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고도 멀은 공부(功夫).
그것이 현재 감운수의 진정한 실력이였던 것이다. 무심한 비류연의 한수에 변변한 저항의 시늉조차 하지못하고, 고스란히 얻어맞고 말았다.
만일 염도가 상대였더라 그의 기도에 눌려, 오금이 저려 제대로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변이나 지리지 않으면 다행이였다.
"쯧쯧! 이정도의 실력으로 그 대단하다는 곳을 들어갈려했단 말야? 거기 사실 알고보면 별거 아닌 곳아냐? 한발짝 나가 찍고 내뻗는 주먹하나 못 막고도 사문의 내일을 이끌어가는 인재라니.
썩은 기둥같은 기대주한테 기대다 쓰러질 일 있나? 사문(師門)말아먹을 일 있어? 너! 당분간 문걸어 잠그고 실력향상에나 힘써.
충고하는데 굴 속에라도 틀어박혀 조용히 검이나 갈고 닦는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밖에 나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이거야 원! 참나! 영 한심하고 형편없어 상대해 줄 맛도 안나네! 이름이 아깝다! 이름이 아까워! 개망신 당할 뻔 한걸 구해준 거니깐 나한테 고마워 해야 돼! 고마워 하라구!"
좀 한다하는 문파의 제일기재(第一奇才)란는 놈이 단 일보일수(一步一手)에 맥없이 무너지자 허탈져버린 비류연이였다. 아니대제자가 천관에 입관해 있으니 제이기재(第二奇才)인가?어쨋든, 무슨 반응이 좀 있어야 흥이 생길게 아닌가.
뇌전보(雷電步) 한발자국에 구타절명권 한수가 그렇게 막기 힘들단 말인가?
' 어? 어라? 살살해줬는데? 근데 왜 한발짝만에 파고 들어갔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멍청해하고, 한주먹 내뻗으니 기절하는거야? 단 한방에 곧 죽을 놈처럼 인상을 찌푸리더니 두방 더 맞더니 기절을 해? 이래서야 어디 안심하고 사람팰 수 있겠어?'
...라는 것이 솔직한 비류연의 심정이였다. 그러나, 그의 말이 다옳다고 할 수는 없었다. 비록 그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몇가지 사실들을 빠트렸다. 때문에 이야기가 과대포장되어버린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구타절명권(毆打絶命拳), 일명 삼복구타권법(三伏毆打拳法)이라불리우는 타구법의 총아는 그 한수가 수십발의 권격연타을 지칭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일부러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을 뿐이였다.
아무리 초복지권(初伏之拳)에 난타당했다고는 하나 그정도면 왠만한 고수도 막아내기 힘든 한수였다.
게다가 뇌전보(雷電步) 한발짝이라면 잔영(殘影)조차 남기지않는 섬전(閃電)의 일보(一步)가 아닌가! 뇌전보는 뇌전처럼 찰나에 흐름 속에 상대의 품안으로 파고드는 보법으로 단 한발짝, 단 일보(一步) 밖에 없는 보법(步法)이였다.
단 한발자국 밖에 없는 보법을 가지고 이보(二步)를 운운한다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그런 건 생각조차 하지않는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 건지는 잘모르겠지만, 비류연은 여전히 변함없이 엉뚱한 녀석이였다.
감운수가 너무 쉽게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무너지자 비류연은왠지 천무학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강해져버린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지켜보고있던 감운수의 사제들과문하제자들은 이 예성치 못한 의외의 사태에 절규했다. 개중에는오열을 터트리는 이들도 있었다. 다...당장 혀를 콱 깨물고 죽고싶을 정도의 수치심이 그들 전체를 지배했다. 냉큼 달려와 쓰러진 감운수를 부축한 셋째제자 인후강이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비류연을 쏘아보며 외쳤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제들의 두눈에도 똑같이, 비류연을 향한 지독한 증오가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사형을...이사형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네...네놈!! 대...대사형만...대사형만 계셨어도 네놈 따위한테 이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안후강이 한맺힌 목소리에는 독기가 가득히 서려있었다.
그의 일갈(一喝)은 호아장 모든 무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일갈(一喝)이기도 했다. '대공자만 있어서도 이렇게 무참히 패하지는않았으리라!' 문하제자들의 공통된 심정이였다.
이번에 천무학관에 시험을 치르기로 되어있던 제자는 호아장주호아맹검(虎牙猛劍) 호천상의 둘째 제자인 감운수였는데, 시험을한 달 앞둔 그는 오늘부로 그 이름 그대로 운수감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진정한 호아장의 기대주는 감운수가 아니였다. 호아장주호천상의 애제자이며, 호아장의 찬란히 빛나는 희망이기도한 이문파의 대사형인 자는 이미 작년에 천무학관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천관도(天館徒)가 되어있어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문하제자들이 이모양 이꼴로 된통 당하고 나서도 그를 굳게 믿고 있는 것을 보니 그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모양이였다.
이만한 신뢰를 짊어질 사내라면 보통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긴 대사형이라 하면 문파를 짊어질 내일의 차기장문인.
아무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니였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불러와요. 언제든지 상대해 주지요! 단! 올 때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오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 때 댁들의 기대를 산산히 부서지게 만들어 버린 나를 너무 원망이나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군요."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에, 기고만장 큰소리 탕탕쳐대는 안하무인 격인 놈이였다.이 비류연이란 놈은......
그리고는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뻔뻔스러울 정도의 당당한 걸음걸이로 내원(內院)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그를 제지할만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이 곳 외원(外院)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아장을 들쑤셔놓음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위험도장애도 없는 실정이였지만, 아까전부터 염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심기가 불편한 듯 이마와 미간에 세겹주름이 잡혀 있었고 안색 또한밝은 편이 아니였다. 이 호아장내로 들어설 때부터 염도는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기운은 자신에게만감지되는 기운인 것 같앗다. 떫떠름한 그 기운은 자신을 불유쾌하게만들고, 심기를 어지럽히며,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고, 행동을 껄끄럽게하는 아주 기묘한 느낌이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좀전부터 계속 자신의 애도(愛刀)인 홍염(紅焰)이 울고 있었다. 검날을 우웅우웅 떨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스스로 소리내어 우는 홍염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염도는 자신의 애도를 달랬다.
고래(古來)로부터 장인이 혼신(魂神)을 기울여 정련한 명검과 명도등과 같은 병기에는 혼(魂)이 깃들어있어 주인이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스스로 소리를 내어 주인의 위험을 알린다 했다. 또한 혼이 담긴병기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여 주인의 잠재된의지(意志)를 반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혼(魂)이 깃든 도검(刀劍)은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게 되어 이미 영물(靈物)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염도의 애도(愛刀) 홍염(紅焰)은영물이라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는 명도(名刀)였다. 그 홍염이 지금 울고있었다. 근데 지금 홍염이 내는 도명의 울림은 주인의 위험을 경고하는 소리가 아니였다.
염도의 기묘하고 찝찝한 기분과는 달리 그것은 애ㄷ은 사랑의 연가(戀歌)와도 같은 애절하고 슬픈 곡조의 울림이였다.
'공명(共鳴)인가? 겨우 이정도의 무림장원에서 나를 떨게 만들정도의 기운을 내뿜는 자가 누구인가?
홍염(紅焰)이 울고 있다. 최강의 암살집단이라 불리우던 흑사회의 일백정예에게 홀로 둘러쌓였을 때도 울지 않던 홍염이......
믿을 수가 없군......!'
염도는 아무리 궁리해봐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호아장에 그만한 인물이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대가리속을 아무리 쥐어짜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불편한느낌은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다. 아까 전부터 마음이 진정되지않았다. 가슴이 울렁이고, 전신의 혈류가 맹렬히 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의 본능이 시시각각 경고성을보내오고 있었다. 이제껏 홍염이 이런식으로 도명(刀鳴)을 울린적은 없었다. 생사를 건 대전에서도, 저번에 가진 천하오대도객의회합에서 조차도 이런 식으로 도명을 울리지는 않았던 홍염이였다.
그런데, 그런 홍염이 지금 애타게 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부르는 듯이 애틋하게, 그렇게 홍염은 울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기분이 드는 염도였다.
이러한 염도의 기분은 신경도 안쓴체 비류연은 계속 사건사고를저지르며 점점 더 깊숙히 내원 안으로 들어갔다.
허나 아무도 그의 앞길을, 그의 행보를 막아 내지는 못했다.
진입 저지에 모두들 실패한 것이다. 실패의 대가는 극심하기그지없는 통증과 대낮의 별구경이라는 생소한 이색체험 뿐이였다.
* * * *
자신의 처소인 묵호전에서 식후 수련에 열중하던 호아맹검 호천상.
항상 이 시간은 정기적인 그의 식후 수련시간이므로 항상 조용히하고 방해하지 말 것을 그렇게 신신당부해 놓고 있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밖이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총관 서문기가 가지고온 전언으로 그의 수련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총관 서문기가 가지고온 전언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식이였다.
그 진위가 의심갈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
자금 장(莊)의 외원(外院)이 두 명의 괴침입자에 의해 풍비박살났고 그 두침입자는 벌써 내원에 들어섰다는 빈객들과 내원무사들이모두 나서 막아보려 했지만, 현재 역부족이라는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호아장은 크게 외원과 내원으로 나뉘는데, 내원무사가 외원무사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고수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내원을지키는 호법들도 이미 경지에 올랏다고 평가되는 고수들이였다.
게다가 무림각처에서 초빙해온 빈객들도 그 실력이 일류라고평가받고 있는 자들 뿐이였다.
그런데 그들로서도 단 두명을 막지못하고 지리멸절하고 있다니, 호천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호천상은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내원(內院) 마당으로뛰쳐나왔다. 마음이 급하기는 급했는지 수련 중이라 벗어놓았던 상의도걸치지 않은 채 맨몸으로 뛰어 나왔다. 마당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온호천상은 두 불청객을 보자 두눈을 부릅떳다. 그의 시선이 두명 중한 명의 중년인에게 집중되었다.
바닥에 기절한 채 차곡차곡 쌓여있는 있는 내원무사들도, 코피를줄줄 흘리며 기절한 빈객들도, 샘솟는 공포심을 가가스로 억누르며 대치하고 있는 아직은 멀쩡한 내원무사들과 호법들,그리고 몇안남은 빈객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한 명의 중년인에게 그의 모든 시선은 집중되어 떨어질 줄몰랐다. 방금 전 그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는데, 지금은 자신의 두 눈을의심하고 있었다. 그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그 명성 자자한 염도 곽영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물론 그의 눈에확띄는 특색있는 형색을 보고도 그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은아마 호아장의 바보제자 감운수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면제까짓게 감히 겁대가리도 없이 분수도 모르고 달려들었겠는가! 호천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장원이 백주 대낮에 습격을 당해 외원이 뚫리고 침입자가 내원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믿을 수가 없었었다.
그 많은 수백명의 제자들과 밥만 축내며 들어앉아있는 빈객들은도데체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인가?손가락이나 빨고 있었단말인가?하는 짙은 의구심도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침입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물론, 비류연과 염도 쪽에서는 단순한 방문 정도로 밖에 생각하고있지 않지만은 말이다.
호천상 자신이 막 현장에 도달했을 때, 업무를 수행 중이던 장의장로와 호법들도 모두 뛰쳐나와 침입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섣불리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침입자 중 한사람이누구인지 그들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현재 내원에 쓰러져있는 무사들은 상대의 신분 확인하지 않고무작정 달려들었다가 초상을 치룬 것이었다. 침입자 중 한명이 염도란 걸 확인했을 때는 이미 수십명의 무사들과 서너명의 빈객들이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 후였다.
잘못하면 장의 기반이 거덜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이였다.
그래서 모두들 서로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며 섯부른 행동을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는 아연 팽배해져 갔고 무거운긴장감이 감돌았다.
비류연과 염도는 이런 소란함과 긴장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단한 일이 괜히 복잡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사람들이 자신들을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았다.
이미 꼬일대로 비비 꼬여머린 난마(亂麻)의 상황임을 둘은 아직모르고 있었다. 신경도 안쓰고 있었다.
느긋한건지 신경이 둔한 건지, 둘다 일반인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족속들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이 대치상황을 깨기위해 호천상이 염도에게 정중히 포권지례를하며 먼저 말을 건네었다. 호아장의 장주로서 그는 상황을 이끌어나갈 필요와 상황을 타계해야할 책임이 있었다.
" 제가 바로 본장의 장주인 호천상이라 합니다. 과분하지만동도들은 부족한 저를 호아맹검이라 추켜세워주고 있습니다.
무림에 명성이 자자하신 천하오대도객의 일인이시 염도 곽대협을뵙다니 삼생의 영광입니다. "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 호천상이 말했다. 비록 초대받지 않은불청객이지만 그의 강호무림에서의 신분을 생각할 때 절대로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무슨 용무로 폐장을 방문하셨는지요? 곽 대협?"
"......."
염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았았다. 단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억지로 끌려왔으니 그의 기분이 담담할리가 없었다.
"곽대협? 폐장을 방문한 용건을 일러주십시요."
호천상이 다시 한번 정중히 물었다. 그의 심기 또한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재차 정중히 묻는 질문에도 아무 반응없이 무뚝뚝하게서있기만 하는 염도의 옆구리를 비류연이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빨리 대답하라는 재촉의 의미였다.
이곳에 오기전에 둘사이의 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비류연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둘 사이의 관계가 탄로날 지도 모를 일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되면 비류연에게는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니지만 염도에게는 매우 낭패스러운 일이 될 터였다. 염도도 그런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염도의 입이 열렸다.
낮지만 위엄있는 목소리였다.
" 한가지 받을 물건이 있어서 왔네!"
"물건? 무슨 물건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호천상으로서는 의아해할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불초는 도저히 알 수가 없소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 하는 호천상의 궁금증을 염도가 해결해 주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주인됨을 칭하고 있는 물건일세.
바로 승룡패(乘龍牌)지!"
"승.룡.패(乘龍牌)!!!"
호천상은 물론이거니와 주위를 둘러싸고 대치중이던 장내의 모든 무사들의 입에서 똑같은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당연한 일이였다.
승룡패(昇龍牌)!
일류라 인정된 소수의 문파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권.
엄선된 일류문파의 제자 한명이 일년에 한 번있는 승천무제를 거치지 않고 천무학관 특별전형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를 증명하는패(牌).
승룡패(昇龍牌)!
용문을 넘어 검을 타고 승천하는 용를 조각해 놓은 이 패는 미래를 꿈꾸는 젊은 무인들에게는 목숨과도 진배없는 소중한 것이였다.
그것을 지금 염도는 달라고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들어보아도 무리한 요구였다.
제정신이 박힌 상식적인 사람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였다.
"곽대협! 그 말씀은 농담이시겠지요? 그 물건은 이미 주인이 따로정해져 있습니다. "
"그래? 내가 알기로는 승룡패의 주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분명히내가 듣기로는 오직 실력만이 승룡패의 주인될 자격을 논하는 척도라 들었는데 아니였던가? 아니라면, 본인의 귀가 잘못된 것이겠지.
할말이 있으면 해보지? "
염도의 말은 모두 사실이였다. 천무학관에서 세운 규칙에 따르면, 실력을 가진 자들이라며 누구나 정당한 비무를 통해서 승룡패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단, 생(生)과 사(死)를 가르지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였다.
만일 비무 도중 생사가 갈리는 일이 발생할 시에는 쌍방 모두자격을 박탈당한다고 관규(館規)에 명시되어있었다.
이런 규칙을 단서로 단 것은 그렇지 않으면 승룡패를 둘러싸고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승룡패가 가진 가치였다. 염도가 한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사실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저희 둘쩨 놈인 운수의 것입니다. 지금 그소유권의 향방을 가르자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부당하신 처사가아닐지요!"
"운수? 아! 아까 맥없이 쓰러진 풋내기말인가? 형편없는 놈이였지. 검법의 껍데기인 검형(劍形)만을 익혀놓고 검법을 다익혔다고좋아하고 있더군. 검의(劍意)가 담겨져 있지 않은 검법을 검법이라할 수 있겠나? 그래서, 훈계를 좀 내려줬지. 좋은 교훈이 되었을걸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망신살이 뻗칠 걸 구해주었으니말이야.
세간에선 이런걸 구사일생이라고 한다지?
자네들은 운이 좋았네."
켤코 염도답지 않은 염도의 긴 비아냥거림을 들은 호천상의 눈이부릅떠졌다.
그는 자신의 애도 노호도의 검병(劒柄: 검의 손잡이)을 으스러지도록 꽉 움겨쥐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빼들고 생사(生死)를 가를 듯한 패도적인 투지가 그의 전신에서 물씬 풍겨왔다.
검병을 움켜진 그의 손이 부들부들 거칠게 떨고있었다.
"우리 운수에게 훈계를 내린게 곽대협이셨소?"
"아니! 훈계를 내린건 내가 아니라 이쪽일세!"
염도의 손이 옆에서 잠자코 서있던 비류연을 가리켰다. 자연히호천상의 시선이 비류연을 향했다. 호랑이 눈처럼 매섭게 번뜩이며내리꼿히는 호천상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도, 비류연은 연신 태연하기만 했다.
오히려 한술 더떠서 싱긋 웃음지으며 호천상을 향해 반갑는 듯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의 이 행동은 개구쟁이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비류연으로서는 전혀 악의없이 행한 순수한 행동이였지만, 호천상으로서는 속이 뒤집어지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였다. 중인들이보기에도 비류연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은 제 무덤 삽질하는 형상이였다.
호천상의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을 능멸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천하오대도객의 일인인 염도라는 초절정고수가, 겉보기에영락없는 풋내기 애송이인 비류연에게 패해 그의 제자로 전락한사실을 꿈에도 알 리가없었다.
그가 신이 아닌 이상 그런 강호의 숨겨진 비사를 어찌 알겠는가? 만일 알았더라면 비류연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그런 섣부른 생각은 품지 않았을 게다.
호천상은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내가 저놈을 징계하지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호천상은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면 그 쪽에 불초가 책임을 물어야 되겠군요?"
그쪽에서 우리 애한테 징계를 내렸으니, 이쪽에서도 같은 값으로 징계를 내려 처벌하겠다는 뜻이였다. 그의 음성에는 진 빚은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염도가 피식 웃엇다. 네까짓게 라는 의미가 다분히담긴 비웃음이였다.
호천상은 제무덤 삽질하고 있는 장본인이 비류연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염도는 그러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호천상에게 가르쳐줄 만큼 자상한 마음씨의소유자가 아니였다. 당연히 그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천만에 하나 비류연이 뒤지게 된다해도 아쉬울 것하나없는, 아니 오히려 엄청난 이득을 보게되는 그런 염도가 의외의행동을 했다. 호천상의 행동을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호오? 할 수 있다면 해보시게! 하지만, 먼저 날 쓰려뜨려야 될거야!"
호천상은 염도의 이 발언에 흠칫했다. 별 것 같지도 않은 풋내기놈을 위해 염도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다니. 풍문에 듣던 것과는영 딴판인 염도를 대한 그의 놀람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였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무리들과 그런 행위들을 가장 싫어하는 염도가 스스로 자청하여 도를 휘두르는 수고스러움을 감당하겠다고나선 것이다. 저 나이 또래에 염도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다시금 비류연을 훑어보아도 호천상은 도무지 짐작이 가지않았다.
아연 심각해진 장내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를 즐기기라도하는 듯, 비류연은 유유자적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그것은 선택받은 사람들 만이 가질수 있는 삶의 여유였다.
비류연은 어린 나이에 벌써 그러한 무소무위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아니면, 단지 그의 바보스러울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에서 기인된 것인가?
아직은 확인된 바가 없다.
"본인께서 하시겠다고요?"
옆에서, 비류연이 염도의 귀에 대고 소곤 거렷다. 그의 두눈에는별빛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기대가 한가득했다.
자신에게 수고끼칠 것도 없이 본인 선(線)에서 직접 해결하겠다니!드디어 마음으로부터도 승복했구나하고 얼토당토않은 지례짐작을하며, 그는 떡 줄 사람은 생각안하고, 혼자서 흐뭇한 마음에 빠져들었다.
"내가 하지!...요"
호천상의 결투에 염도 스스로가 자신이 직접나서서 상대해 주겠다고 한다. 자신에게 번거로움 끼칠 것 없이 그 스스로! 비류연은정말 흐뭇해졌다.
염도는 그의 솥뚜껑만한 커다란 손으로 비류연을 밀쳐내고 자발적으로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왔다. 옆에서 비류연이 막 박수를쳐댔다. 힘내라는 응원인 모양이다.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염도가 이 비무를 맡은 것은 결코 비류연 좋으라고 한 짓이 아니였다.
마음으로 부터의 승복?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동안 비류연의 제자로 전락하면서 암중으로 알게 모르게 받아왔던 셀 수 없이 많은 정신적 육체적 울화를 이번 기회를 통해조금이라도 풀어보자는 의도에서 염도는 이 싸움을 받고 나선것이다. 즉 호천상이 알면 놀라 뒤로 까무라칠 사실이지만, 그는 염도의 마음 속에 그동안 층층이 차곡차곡 쌓여왔던 울화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키기 위한 단순한 화풀이 감인 것이다.
더군다나 염도는 전부터 겨우 이정도 수준으로 검(劍)의 명문을자처하는 호아장이 맘에 안들었었다. 아까전부터 나와 서있는 저어정쩡한 자세의 호아장주 호천상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아까부터 이 호아장의 문턱을 넘는 그 순간부터계속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찝찝한 느낌 때문에, 지금 그의 신경은더욱 극도로 예민해져, 호아장과 그곳의 주인인 호천상에 대한 인상을 더욱 더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현재 기분은 완전 개차반인 상태였다. 그래서 울화해소를겸해서, 이번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하늘 위에 하늘, 천외천(天外天)이 있음을 알게 해주리라 결심한 것이다.
염도에 의해 하찮고 시시하게 비하(卑下)되었지만, 호천상도 엄연한 일문의 주인(主人). 결코 얕잡아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였다.
둘 다 검과 도를 잡는 품세(品勢)와 기도(氣度)가 범상치 않음이무공의 깊은 곳을 경험해본 절세무인들이였다. 쌍방이 부딪친다면 절대 시시한 싸움으로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호천상 쪽이 부족한 감이 많이 들었다. 염도의상대가 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염도 또한 호천상을 단순한 화풀이대상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고 있었다. 약간 반응이 있을 법한 화풀이감.
물론 호천상도 뒤늦게나마 그런 낌새를 느꼈고, 그것이 그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분노와 피끓는 투지와는 달리 그의 애검(愛劍) 성난 호랑이 이빨(노호아:怒虎牙)을 움켜진 그의 우수는잘게 떨리고 있었다. 검병(劒柄: 검의 손잡이)을 움켜진지 벌써일다경이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미세한 잔떨림이 가시지않고 있었고, 그의 두손에는 진땀이 홍건히 베여 있었다.
그의 속에 내재된 본능의 의사표현이였다.
그러나, 현재 그의 형세는 철저한 배수진(背水陣).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호천상이 말했다. 씹어 뱉듯이 말하는게, 절대 눈꼽만치도 배우고싶은 의사(意思)가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한수 가르쳐보이겠다는기세(氣勢). 염도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올 테면 와보라는 의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는 동시에 검과 도를 뽑아 들었다.
선수양보(先手讓步). 염도는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않았다.
자연 호천상이 먼저 도약해와 염도를 향해 무서운 힘으로검을 내리쳤다.
패도(覇道)의 강검(强劍)! 과연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검(劍)과 도(刀)가 맞부딪쳤다.
쾅!
귓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검과 도가 부딪쳤는데 쇳소리는 나지않고 폭발음이 울린 것이다.
검과 도가 격돌한 곳에서부터 발생한 강력한 기(氣)의 폭발 때문이였다.
폭발의 여파로 먼지와 자갈이 분분히 날리고, 성난 바람이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중인들의 머리카락을 나부끼게하고, 그들의장포를 세차게 펄럭이게 만들었다.
중인들의 전신을 타고 찌릿찌릿한 전율이 흘렀다. 모두들 기(氣)의 격돌(激突)과 그 여파(餘波)를 몸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첫 격돌이였다.
격돌로 인해 발생한 분진(粉塵)이 두사람의 시야를 가렸지만, 염도가 손을 한번 스윽 휘두르자, 신기하게도 일진광풍이 불어와자욱한 먼지를 걷히게 했고, 이윽고 두사람의 모습이 사람들의눈 앞에 드러났다.
'아차! 이런!'
호천상은 내심 경악했다. 저쪽 염도는 그 자리에 붙박은 듯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데 반해, 본인은 어떤가? 바닥에 깊고선명한 족적을 남겨놓은채, 먼지를 풀풀 날리며 뒤로 여덟 발자국이나 후퇴하지 않았나.
깊고 선명한 족적(足迹)이 그가 당한 낭패(狼狽)를 여실히 들어내주고 있었다.
바닥에 찍힌 선명한 발도장은, 그가 한수의 겨룸으로 인해 받은낭패의 정도 만큼, 그 자신의 몸이 그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공수(攻守)였지만, 이 한수의 겨룸으로 인한 무공의우열은 확연했다. 호천상 쪽에만 찍혀있는 족적은 물론이거니와,그의 시커멓게 그을여진 면상과 화기(火氣)에 상해버린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그리고, 시커멓게 그을여지고 흐트러진 의복(衣服)은 두사람의 실력차를 여과없이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호천상은 염도와 검을 섞을 때 받은, 마치 화약이 폭발하는 듯한 거센 충격에 하마터면 손아귀가 ㅉ어질 뻔 했다. 폭발과 함께화기(火氣)가 충천하고, 폭염(暴炎)의 폭풍(爆風)이 회오리처럼그의 전신을 거칠게 휘감았다.
몸을 빼기에 급급했다. 반격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과연 방금전 것이 바로 염도의 주특기라는 소문의 폭염기(暴炎氣)!풍문으로 들었을 땐, 으레있는 과정된 소문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직접 마주치고 보니 이건 소문이상이였다. 다시 검을 섞을 생각을하니 덜컥 겁이났다. 자신의 실력이 겨우 이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가하는, 그동안 자신만만해 했던 자신의 무공에 대한 회의(懷疑)도들었다. 완벽한 패배(敗北)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염도가 일부러 검과 도가 격돌하는 순간에 손속을 늦추었다는 사실을. 봐주고도 이만큼의 낭패를 그에게 안겨준 것이다.
검을 뽑아들기는 그가 먼저였다. 발검과 동시에 짓쳐간 일검.
그런데 얕보는건지 선수양보한답시고 미동하지 않고 서있던 염도.
그런 염도가 그의 공세를 똑똑히 보고 확인한 다음 그의 도를 뽑아들어방어했다.
완벽한 후발제인(後發制刃). 완벽한 실력차였다.
속도(速度), 힘(力), 내공(內功), 모든 면에서 그는 염도의 상대가되지 않았다. 단 일검의 교환, 단 한수의 공수전환으로 밑천이 모두 거덜나 버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 하지만 죽더라도 체면상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대로 물러서기엔 너무나 비참하고 초라했다. 호천상은 필살의 각오를 다졌다. 최후의 몸부림이라고 평해도 좋았다.
남자의 자존심이였다.
이 때 그런 그를 구원해준 구원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늘에서 찾아온 광명이였다.
"멈추게!"
막 호천상이 염도를 향해, 풀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려는 찰나, 전각 안에서 한마디 또박또박한 목소리가들려왔다. 결코 크지는 않지만, 이 소란스러운 장내에서 한점 흐트러짐 없이 중인의 귀에 똑똑히 전달되는 위엄있는 목소리였다.
정순하고 중후한 내가진기가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대단한 절정고수임이 분명했다. 그런 자의 목소리 만이 이처럼 중인들의 집단의식을 파고들어 분위기를 쇄신시키고 주위를 환기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당한 고도의 내가상승수법을 사용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염도는 호천상을 뭉개려고 준비중이던 손속을 멈췄다. 마치 정지된 시간 속에 팽개쳐진 사람마냥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과 행위을 멈추었다.
염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의 뇌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 무던까지 들고갈 목소리였다.
그의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의 각인을 남긴 자의 목소리였다.
어찌 그가 그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 각인된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서 의혹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절대로 떨리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주먹이 부르르 잘게 떨렸다.
만일 그 놈이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의 시선이 목소리의 출처인 전각에 못 박혔다.
이윽고 전각 문이 열리며 한명의 단아하고 기품있는 중년인이중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옅은 청색은발에 청염(靑髥), 청미(靑眉).
염도와는 정반대로 온통 파란색 일색인 중년인 이였다. 바다처럼짙은 청색이 아니라, 얼음의 차가움을 연상케하는 투명한 느낌을 주는 옅은 은청색(銀靑色)이였다.
그를 본 염도의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변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를 목격한 사람마냥 그의 두 눈은 부릅떠졌다.
부릅떠진 눈에 붉고 가는 가지처럼 핏대가 서 올랐다.
그의 폐부 깊은 곳으로부터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철___수!!!"
산천초목이 모두 사시나무떨 듯 떨 것같은 위용(威容)의 무시무시한 사자후(獅子吼)였다. 대기를 진동시키는 대갈성(大喝聲)에 모두들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대갈성을 들은 상대 빙검 관철수 본인은 별로 놀라워하는 것같지 않았다. 일부러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그의 얼굴에선 마음의 동요를 읽어낼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의 동요를 일절 내색하지 않은 체 호수처럼 고요한 평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한마디로 북해한설처럼 시리고 차가운 남자였다.
빙하처럼 얼어붙어있던 그의 입이 갈라지며, 눈보라보다 차가운음성이 새어나왔다.
"다시 만나게 되었군! 희(姬)!"
희(姬)란 공주란 뜻의 한자다. 물론 염도의 이름 자는 공주 희(姬)자가 아니라 즐거울 희(嬉)자지만, 과거 빙검은 염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그를 희(姬)라고 불러댔었다.
"놈! 날 그렇게 부르지마!"
다시 한번 염도가 대갈성을 터트렸다. 그는 격심한 분노로 인해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몸은 전율하고 있었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천리밖에 떨어져 있어도 저놈은 낌새는 눈치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애도 홍염이 이리도 애절하게 우는게 당연했다.
놈이 가지고 있는 놈의 애검(愛劍) 빙루(氷淚).
싸늘할 정도로 시린 한광을 머금은 투명한 푸른 검신은, 월광마저 얼어붙게 만든다는 극음(極陰)의 한기(寒氣)를 품은 투명한 빙청색의 검(劍).
자신의 애도 홍염과 한치의 길이도 어긋남이 없는 동일한 길이에,한푼 한량의 오차도 없는 동일한 무게를 지닌 검 빙루(氷淚).
태초에 태어날 때부터 태극(太極)에서 분리되어 음양(陰陽) 한쌍으로 태어난 홍염(紅焰)의 쌍둥이 검. 홍염의 나머지 반쪽을 이루는 검이였다.
그런 둘이 서로 점점 근접하게되니 공명하는게 당연했다.
"과연 너였나? 네 놈 이였나!!!"
"빙(氷).검(劍). 관.철.수!"
염도의 대갈일후성은 장내를 들석일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그 목소리는 거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목소리였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 사람마냥 염도는 행동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염도는 그를 그렇게 대하는가? 알 수 없는일이다. 그 둘만이 아는 일일게다.
그들은 정말 대조적이였다. 기세, 기운, 성격, 생김새, 색깔, 기타등등 마저도 그들은 대조적이였다.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극성. 극과 극의 대립 같아 보였다.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극(極)과 극(極)! 조화(造化)를 이룰 수 없는 엇갈림! 비대칭!
이런 말들로 밖에는 달리 그들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 * * *
빙검(氷劍) 관철수!
천하오대도객과 나란히 칭송받는 무림의 명망 드높은 천하오검수의 일인이자 현 천무학관 진무전주!
진무전은 천무학관 내의 무사부를 통괄관리하고 있는 막중한 곳 이였다. 즉 빙검은 현재 천관내에서 무사부를 책임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란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대단한 지위를 지닌 사람이였다.
또한 빙검은 강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인격, 성품, 무공, 어디하나 나무랄 때 없는 완벽한 무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림에서 가장 검을 잘쓴다는 심검(心劍)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검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무인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미 그가 심검을 터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
천하오검수의 실질적인 수좌는 빙검 관철수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정도였다.
그런 그도 염도 곽영희와는 물과 불,아니 얼음과 불 사이라 해야하나?
그의 고귀한 인품도 염도 앞에서는 발휘되지 않는 모양이다.
물과 불, 물과 기름, 고양이와 쥐, 그리고 개와 원숭이 사이로 표현될 수 있는 원수지간이였다.
그 둘의 과거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둘만이 알 뿐.....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대립하고 있는 두사람이였다. 그리고, 서로가될 수있으면 절대로 마주치지 않고 싶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십년...만인가?"
차갑게 얼어붙어있던 빙검의 입이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북해의 빙하처럼 시리도록 차가웠다.
감정의 잔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랭하면서도 차가운 음성.
한점의 흐트러짐이 없는 꼿꼿한 태도에, 푸른색이 도는 청빛 은발, 같은 색을 띤 단아하게 기른 수염.
염도가 온통 붉은색 일색이라면 그는 온톤 푸른색 일색이였다. 그의 모발색은 짙은 청색이 아니라 투명한 은색같은 수염, 눈썹, 머리칼, 거기에 푸른빛이 감도는 은청색 비단으로 만든 무복,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를 내뿜는 청옥을 연상케하는 푸른 신검(神劒)! 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애검 빙루(氷淚)였다.
"큭큭큭! 과연 네놈이였나? 겨우 호아장 따위의 장원이 버젓이 천관(天館)의 앞마당인 남창 한가운데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준 장본인이? 그렇지! 네 놈이라면 그게 가능하지!"
염도가 괴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와는 옛 부터 안면이 있어 약간의 도움을 준 것 뿐일세! 나머진다 저사람의 노력이지. 난 단지 한명의 조언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세."
"흥! 언제나 네놈은 그랬지! 혼자서 고고한척 온갖 잘난척은 다하고......"
염도는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하나같이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였다.
그의 언행에는 빙겅을 향한 불만과 적의가 가득 배여있었다.
빙검을 향한 불만과 적의을 여과없이 토해내던 염도가 그답지않게 잠시뜸을 들이더니 무엇인가를 힘겹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빙겅을비아냥거릴 때와는 사뭇다른 작고 진지한 어조였다.
"그....그녀는 어떤가? "
마침내 염도는 그것을 묻고야 말았다. 둘사이의 화약고를 건드린것이다. 살짝 스치기만해도 폭발해 주위를 상처입힐 화약고를 뻔히알면서도 건드리고야 것이다.
빙검의 눈에서 기광이 흘렀다. 그는 염도가 끝내는 이 이야기를꺼낼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건드리고 싶지않았다.
"잘있네!"
여전히 감정이란곤 찾아볼 수 없는 맹막한 어조였다.
염도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마음의 동요가 나타났음인가...
그의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빙검도 잠시 그의 말에 뜸을 들였다.
"18년 전, 서로의 길을 갈라섰던 그때도 자넨 그녀의 안부만을 물었지. 그 때 그녀는 임신 중이였고. "
"삼개월 째였지. 죽일 놈!"
염도의 얼굴에 언뜻 고통이 스쳐지나갔다. 잊으려고 노력했던 마음의 옛 상처가 다시금 욱신욱신 아파왔다.
" 십년 전 우연치 않게 만났을 때도 자넨 그녀의 안부 밖에 묻지 않았어."
"흥!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겨루었던 그 때 말인가? 그때 살려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끝장을 냈어야 했다고. 그땐 그녀의 딸아이 때문에 천우신조로 목숨을 건진 줄 알라구."
"누가 할 소리. 딸아이가 그 때 오지만 안았던들 자넨 이곳에 멀쩡히 서있지도 못했을 걸세. 자네야말로 구사일생이였지.
18년 전에도, 10 전에도. 그러고, 오늘 이 순간에도 내가 해줄말은 하나뿐이네. 그녀는 잘있네!"
"그놈의 말은 18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구만. 신빙성 떨어지는 건 여전하고! 다른 할말은 없나?"
"아! 딸아이가 아주 이뻐졌지. 엄마를 닮아 미인이 되었어.
그녀의 소시적 보다 더 예쁘다네. "
난 감정이란 물건 따위는 갖고있지 않은 사람입니다.란 얼굴과 어조로 잘도 그따위 말을 내뱉는구나 씹어죽일 놈이라고 염도는 생각했다.
빙검의 그 한마디는 염도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였다. 염장이란 고기를 골고루 상처내어 그곳에 소금을 뿌려 절이는 일련의 장기보관과정을 말한다. 산채로 염장지짐을 당하면 그 고통이 어떻겠는가?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런 고통일 것이다.
염장 지짐을 당하고도 염도는 그의 인내심의 끝을 짜내어 태연한 척 말했다.
"그래? 좋겠군. 그럼 이제 사양하지 않지."
스르릉.
애도 홍염(紅焰)이 저절로 뽑혀나와 염도의 손에 잡혔다. 주인의 마음을 읽은 것이리라. 빙검의 애검 빙루(氷淚) 역시 스르릉 맑은 검명을 울리며 검집에서 빠져나와 빙검의 손에 잡혔다.
두 사람은 절대로 양립이 불가능한 사이였다. 둘 사이에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각자 움켜잡은 자신의 애검과 애도를 휘두른 것은 일각, 일초도 틀리지 않은 동시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일초.
염도가 지닌 홍염(紅焰)에서는 무서운 화기(火氣)를 띤 적색 무지개가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이에지지 않으려는 듯 빙검의 애검 빙루(氷淚)로부터 달빛마저도 얼릴 듯한 차가운 한기를 머금은청백색 무지개가 허공 중을 갈랐다.
불꽃의 잔영(殘影)을 쾌적 속에 남기며 뻗어가는 홍광(紅光)의 도기(刀氣)는, 멀리 떨어져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는 비류연과 장내에 있는 호아장 무사들에게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의 강력한 화기를 띄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비류연도 염도의 이 한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폭발하는 화산같은 맹렬한 기세가 함포된 한수였다. 그 기세가 너무나 무시무시하여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중인들은 모두 생각했다.
염도의 도에서 뿜어져 나온 도기가 이글거리는 폭염같다면, 빙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는, 차갑게 휘몰아치는 매몰찬 북풍한설을 연상케 했다. 달빛도 빙루의 검기에 닿으며 당장에 얼어붙어 산산조각날 것 같았다.
꽈쾅!
상극의 기(氣)가 허공 중에서 정면으로 부딫쳤다.
폭염과 북풍한설의 격돌! 진기가 검기의 형태로 날아가 허공 중에 얽히게 되면, 시전자의 공력으로 승패의 향방이 판가름나게된다.
둘은 하나의 스승으로부터 하나의 수업은 받은 동문사이! 그 실력의 고하를 가리기란 요원한 일이였다.
둘 모두 이 일격에 혼신의 진기를 모두 집중시켰다.
그러나, 승패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맞부딫친 두 개의 기는 허공 중에서 상쇄 소멸해 버린 것이다.
두사람 다 서로가 그동안 쌓아놓은 내공 수위도 막상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격돌한 두 기가 상쇠되어 버린것이다
슈우우우우우!
힘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분진이 사방천지를 휘감아 중인들의 시야를 가렸다. 엄청난 돌풍을 동반한 분진 속에 중인들은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상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고 시야가 확보되었고, 둘의 대치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났다.
빙검은 중인들의 기대를 싹 무시해버렸다. 빙검의 전신어디에도 피해를 입은 흔적은 없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청백색 무지개 같은 극 음의 검기(劍氣)가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던 염도의 공격을 너무도 쉬이 막아낸 것이다.
"흥! 과연 썩을 놈이 아직 솜씨는 녹슬지 않았구나!"
염도가 씹어 내뱉 듯이 말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모양이었다.
"자네도 마찬가지!"
빙검은 여전히 안면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은 냉막한 얼굴이었다.
이번 것은 단순한 인사치례 였을뿐이였다. 오랜만에 만난 호적수(왠수라는 표현이 더 올바를 것같지만.) 대한 단순한 인사치례! 안녕하세요랑 다름없는 인사였다.
염도와 빙검은 일검(一劍)을 맞교환함으로써 서로의 현재 실력을 가늠해본 것이다. 즉 이번 일검은 단순한 시금석에 불과할 뿐 계속 이어나갈 생각은 둘 모두에게 없는 듯 싶었다.
천하오대도객의 일인과 천하오검수의 일인이 맞부딪친다면, 아마 무림사에 기리 남을 공전절후한 승부가 될게 뻔한 일이다.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닌 것이다.
의외로 단시간에 끝날 수도 잇지만......둘은 상대의 수를 훤히 아는 동문사이. 그렇기에 십년 전의 싸움에서도 삼일 밤낮을 끌고도 승패를 가리지 못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서로 다른 상극의 검기를 구사하는 두 사람이 동문이 될 수 있는지, 그 사실에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철수와 영희, 이두사람이 동문사형제지간이 였다는 사실에는 애석하게도 변함이없었다.
두사람의 승부는 갑작스레 치루어져 결판날 성질의 것이 아니였기에 두사람 모두 ㅅ불리 맞붙질 못하는 것이다.
이 공허한 대치관계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문득 빙검 관철수의 시선이 염도 옆에 서있는 비류연을 향했다.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인가? 제자인가? "
꿈틀!
아이라는 말에 비류연의 명검(名劍)처럼 바르고 곧게 뻗친 눈썹 한쪽이 분노로 꿈틀거렷다, 그러나, 길게 자른 그의 앞머리에 가려 빙검에게는 보이지는 않았다.
'알라'라니! 그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왕(王) 기분나쁜 발언이 아닌가! 비류연 그의 자존심을 열(熱)나게 건드리는 용서가 안되는 발언이였다.
세간에서는 이런 걸두고 망언이라고 부른다지!
하지만 빙검 관철수는 비류연의 그러한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못했다.
혼돈(混沌)의 연못같은 복잡다사난측(複雜多事難測)한 그의 내심(內心)을 짐작하기란, 보통의 상식적인 인간의 입장에서는 거의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밤하늘의 별을 따는 쪽이 더 쉬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이번에는 비류연이 계속 침묵을 지킨채 나서지않았다. 나서길 좋아하는 비류연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없었다.
"흥! 알것없네! 제자는 아니야!"
비류연의 짐작하기 어려운 성격을 잘아는-많이 당해봤다.- 염도는잠시 비류연의 눈치를 살핀 다음, 비류연이 의외로 조용히 있자내심 안심했다.
"그래? 역시 그렇군! 혼자이길 좋아하는 자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제자를 거두었나싶어 이상히 여기던 참 이였지! 난 또 상제께서 실수하여 마이동풍(馬耳東風)이 잘못 분줄 알았네."
" 쳇! 누가 별호가 빙검(氷劍)아니랄까봐,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기가 북해빙산 빰칠 정도로군. 바람은 무슨 얼어뒤질 놈의 바람. 신경꺼 줘. 동쪽으로 불든 서쪽으로 불든 무슨 상관이야?"
그동안 쌓인 악감정이 넘쳐나는지 계속해서 시비조인 염도였다. 건달 같은 염도에 비한다면 빙검 쪽은 그래도 군자라 할 수 있었다.
건달과 군자! 좋은 대비였다.
"그건 그렇고, 자네 이곳엔 왠일인가?"
빙검이 물었다. 뜬금없이 계속되던 둘의 대화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이였다.
"흥! 그건 이쪽 대사야! 가로채지마.
왜, 네놈이 여기있는 거냐?"
절대로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느닷없이 이곳 호아장에 나타났으니, 염도의 궁금증은 이만저만 큰게 아니였다.
빙검 그가 여기 호아장에 있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나 은원관계가 없었던 탓이다.
"아까 자네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이곳은 내가 후견인으로 있는 장원일세! 그러니, 내가 있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
담담히 말하는 그의 신색에는 변화가 없엇다. 빙검은 전혀 동요하는 빛을 띄지 않은채, 침착하게 염도를 맞상대하고 있었다.
매우 냉정하고 심기가 깊은 사람이였다.
"흥! 못보던 사이에 암흑가(暗黑街)의 대부(代父)로 업종 전환을 한 모양이지? 몰라봐서 미안했네 그려!
흥...그래서, 호아장이라는 일개 무림장원이 천관의 앞마당에서 보란듯이 재롱을 부리면서 장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네놈 때문 이였다니 세인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일이로군! "
염도는 빙검을 열과 성을 다해 비꼬고 싶은 모양이였다. 대놓고 최선을 다해 빙검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마치 동문동기 사이라는 사실이 의심갈 만큼 철천지 원수사이 같아보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보기에는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이 너무 유치했다.
티격태격 유치한 신경전을 겸한 말싸움을 하는 두 사람의 검과 도는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 있었다. 아무도 이를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쥐도 새도, 두눈 부릅뜨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다 몰랐지만, 오직 비류연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용건만 이야기하게! 더 이상 길게 끌어봤자 쌍방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네! 시간낭비일 뿐이지."
더 이상 염도와 얼굴 마주대고 싶지 않은 듯, 빙검은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자 했다.
이 이상 염도와 얼굴을 맞대고 있다가는, 그의 냉철하다 자부하던 이성이 다 녹아버려 국물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였다. 그의 이성이 녹아내려 버린다면 남는 건 주변의 닥칠 엄청난 재난과 둘 중 하나의 시체 뿐이였다.
왜냐하면, 염도의 이성은 이미 다 타버리고 남아있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용건은 하나 뿐이야! 아주 간단하지! 바로 승룡패의 인계일세! 호아장이 가진 승룡패를 우리에게 넘기기만 하면 되네! 어차피 이곳에서는 쓸 일이 없을 듯하니깐!"
"그건 안될 말이요! 그럼 우리 이사형은 어쩌란 말이요! 그 추천창은 그를 위해 준비된 물건이요!"
옆에서 그동안 구경만 하던 셋째제자 안후강 녀석이 겁도 없이염도를 향해 버럭 소리지르며 항의했다. 제법 배짱이 있는 놈인것 같았다.
비류연으로서는 부실하기 그지없는, 싹수 노란 둘째제자 감운수라는 놈보다 이 세 번째 놈을 추천해주고 싶었다. 언뜻 보기에도 감운수보다 훨씬 큰 그릇인 것 같았다.
염도 앞에서 말대꾸를 하고, 그의 심기를 건드린 다는 것은 보통담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였다.
"이사형? 아아!! 아까 그 얼간이!!! 검형만 익혔지, 검의하나 제대로 깨치지 못한 놈! 검신일체가 겨우겨우 한계인 놈이였어. 내눈은 정확하지. 검에 뜻을 불어넣는 경지에조차도 이르지 못했더군.
한마디로 형편없는 실력이란 이야기지. 설마 그런 놈을 버젓이 치장해서 천관에 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그랬다가는 바로 당장에 개망신 일걸!
철수 자네의 안목이 그동안 썩은 동태눈과 동류로 취급될 정도로 까지 타락했을 줄은 내 미처 몰랐네. 부디 용서하게.
그런 놈을 내보낸 다면 호아장은 물론이고, 자네의 얼굴에도 스스로의 얼굴에도 자진해서 똥칠하는 형국이 될걸! 모두들 부끄러워 천하오검수의 이름에서 자네의 이름을 빼버릴 지도 모르지. 물론 나로서는 대환영할 일이지만 자넨 아닐걸? 자네의 결벽증이 그런 걸 용납할 리가 없지. 겨우겨우 힘겹게 유지하던 시덥잖은 명성도 뚝하고 땅에 곤두박질 쳐질걸? 물론 떨어질 명성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볼만하겠어."
염도는 그답지 않게 상대를 사정없이 매도하는 지독한 독설을 서슴치 않고 내뱉었다. 원래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탓에 내뱉는 말이 세 마디 넘기가 어렵다는 염도였었는데, 한동안 비류연과 어울려다니더니, 그에게 오염된 탓에 성격이 많이 변한 모양이였다.
게다가 빙검 관철수를 만난 이후로는 흥분한 탓인지, 왠지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졌다.
염도 곽영희란 사람은 주먹이 앞서면 앞섰지, 말이 앞서는 사람은 아니였었는데......
하지만, 비록 염도의 말이 많아졌다해도 그가 한말은 모두가 빈말이 아닌 사실들이였다. 말은 바른말이지 그가 한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 어느시대나 가혹한 법이고, 중인들에게 거부당하고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뭣이라!!!"
제자들은 분노했다. 쪽수를 믿고 당장이라도 염도와 비류연에게 달려들어 요절내기라도 할 기세였다. 물론 모양만 그렇게 잡았지 감히 염도에게 대들 용기는 그들에게 없었다.
진정으로 말만 앞서는 전형적인 인물들인 그런 그들을 빙검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참아라! 애석하지만 그의 말이 맞다. 운수의 검은......
아직 멀었다!"
"대노사!"
모두들 놀라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호아장에서는 그를 큰 스승으로 받들어 섬기고 있었다. 장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엿다. 그런 그가 상대의 억지 요구에 순순히 응낙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였다.
" 그 따위 추천장! 그냥 줘 버려라! "
"안됩니다!"
장내의 모든이가 길길이 날뛰며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빙검의 결심은 이미 금강석처럼 단단히 굳어져 흠집하나 낼 수 없게된 이후였다.
"어차피 운수에겐 소용없는 물건이다. 사실 그 정도의 실력으로 아직 천관의 벽을 넘기 힘들다. 검의를 얻지 못한 상태의 검으로, 의지가 빠진 의미없는 검법을 펼쳐봤자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될 뿐.
오늘 일은 운수에게 따끔한 충고가 되었을 터! 내년을 기약하고 그 추천장은 저들에게 줘버리도록 해라!
운수를 제대로 봐주지 못한 나의 허물이다."
오늘은 감운수에게 이름그대로 운수 감소하는, 재수 똥간에 떨어진 날이였다.
빙검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기 싫다는 무언의 입장표명 이였다. 호아장 문하제자들도 더 이상 그의 말을 거부할 엄두가 나지않았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뿌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호아장주 호천상은 천관특별추천장 승룡패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한장의 종이 쪼가리가 하닌 한 개의 녹옥으로 만든 옥패였다. 그 사각의녹빛 옥면 안에는 검을 타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양각되어져있고, 패의 윗부분에는 천무학관(天武學館)의 네 글자가 살아움직일 듯한, 웅혼한 필체로 새겨져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물건이였다. 아마도 그 기운은 천무학관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의지가 하나로 결집되어 생긴 기운일 것이다. 비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적했던 바를 이룬 비류연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등을 돌려장을 떠났다. 물론 염도도 함께 였다. 둘 모두 눈길 한 번 다시주지 않은채 장원을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현장에는 무수히 얻어맞아 기절해버린 장내무사들과 빈객들, 그리고, 엄청난 액수의 재산손실과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에 새겨진 참담한 상처만이 남겨졌다.
지워지지 않을 치욕의 상처. 이날은 호아장의 치욕일로 길이길이 문하제자들의 가슴속에 기억 될 것이다.
두 남자의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 * *
"대노사(大老師)."
두사람이 뒤도안보고 떠나가버린 내원에서 호천상이 조용히 빙검을 불럿다.
심상치 않던 분위기 때문에 여태껏 묵묵히 잠자코 있던 호천상이목구멍에 차올있던 말을 가까스로 끄집어낸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매우 가늘고 약해져, 그속에 자신감이 결여되 있었다. 그러나, 빙검은 그의 부름에 응답조차 하지 않은채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쉬고 싶네!"
이 한마디만을 남기고 빙검은 전각 안으로 신형을 감추었다.
막 뒤돌아서는 빙검을 잡으려던 호천상의 발이 잘못하여, 주위에 이리저리 나있던 화초 중 하나를 건드렸다.
난초같은 뻗은 잎사귀를 가진 이름모를 꽃이였는데 호천상의 발길이 닫자 마자 마치 유리조각처럼 산산히 부서져 내렸다. 잔 유리조각처럼 부서져내린 꽃과 그가 서잇던 자리를 보고 호천상은경악했다. 반경 일장안의 나무와 화초들이 모두 하얗게 얼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짝 손을 대자 얼음가루가 되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려버렸다. 호천상은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빙검 자신도 의식못하는 사이에 한빙진기가 발출되어 주변을 모두순백으로 얼려버린 것이다. 진기의 조절이 용이하지 못할 만큼심력(心力)을 쏟아부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염도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사정은 염도 쪽도 만만치 않았다. 염도가 서 있던 주위 자리에 존재하던 나무와 화초들은 모두 누렇게 말라 죽어있었고, 그가 디디고 서있던 일장 반경안의 돌들은 모두 벌겋게 달구어져 있어 진기를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손을 대면 당장이라도 화상(火傷)을 입을 정도였다.
말라비틀어진 화초들은 사람의 손길이 가자마자 곧 가루가 되어허공 중에 뿌려졌다.
범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지에 다다른 두사람이였다. 이를 본호천상과 그의 일당(?)들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이런 실력을 지닌 둘이 자신의 장원 내에서 맞붙을려 했다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했다.
비류연과 염도는 목적한 바를 이루고 유유히 돌아갔고-유유히 돌아간건 비류연만 이였다. 염도는 예외.-,그날 이후 빙검 관철수는십일동안 두문불출 전각 밖을 나오지 않았다.
장주(莊主) 이하 호아장 식솔 모두가 허탈한 마음에 올려다 본하늘은 얄밉게도 여전히 한없이 높고 푸르기만 했다.
사람을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이 오후의 햇살만이 자신은 아무런관계도 없다는 듯, 기절한 자들과 부서진 잔해들로 어지럽혀진장내를 계속해서 조용히 내리쬐고 있었다.
정오부터 불과 한시진 사이에 일이난 일이였다.
호아장 방문이 있은지 일주일 후!
순풍산부이 나중해는 약속을 지켰다. 나중해를 만나고 삼일 후,그러니깐 호아장을 평화적(?)이고, 우호적(?)으로 방문한지 이틀후. 천무학관으로부터 사자(使者)가 왔다. 염도가 제시하는 조건은 어떠한 조건이라도 가능한한 모두 들어주겠다는 응답이였다.
물론 기다렸던 일이였으므로 이쪽은 천관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금년 천무학관 입관식날 염도도 천무학관에서 무사부(武師父)로서 입관하기로 의견절충을 보았다.
최고의 숙소와 최상의 대우가 제공될 예정이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염도의 심기가 요즘 계속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것이협상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들은 올 때 그러했듯이 갈 때도 최상의 예의를 염도에게 표하고 물러갔다. 참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였다.
천무관의 사자가 돌아간 후, 비류연은 조용히 방안에 앉아 지는창밖을 통해 보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물건을 꺼내 이리저리돌려보았다. 황금 수실이 달린 사각의 녹옥테두리 안에 한자루의검을 타고 승천하는 용이 양각되어있는 이 옥패는 바로 그 유명한 승룡패였다.
한 문파를 뒤엎어가면서 손에넣은 천관입관추천패 승룡패!그가 이것을 얻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피눈물을 뿌렸던가!
하지만, 심각함이라고는 모조리 개가 물어갔는지 태평작작한 비류연. 그의 기억속에 호아장 식솔들의 피눈물은 이미 까마득한과거의 잔흔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항상 이렇게 그는 심각함이란 것을 몰랐다.
'이게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인가? '
비류연은 그렇게 굉장한 소란을 일으키며 손에 넣은 승룡패를무슨 장나감 다루듯이 이리저리 휘휘 돌리며 장난을 쳐댔다.
그냥 심심해서 한번해본 짓거리였다. 아무생각이 없는 건 여전했다.
호아장 방문 다음날부터 시작된 승천무제는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일주일 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동안, 수많은 관문이 설치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하며 본선진출자를 가려냈다. 그런다음 검장도편(劍掌刀鞭)이 무학(武學)의 이치(理致)와 흐름에 따라 난무(亂舞)하는 수많은 비무(比武)를 통해 본선진출자라 이름붙여진옥석(玉石)이 개때라는 돌무더기 속에서 분간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뜨기운 열기와 관심 속에 진행된, 무림 최고최대의 행사 중 하나인 승천무제가 끝나고 일주일 후. 드디어, 목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격자발표일이 돌아왔다.
구주강호(九州江湖)에 몸담고 있는 전무림인들의 모든 이목(耳目)이 이 입격자발표에 집중되었다.
천무학관 입관시험 승천무제의 입격발표일! 이날 입격공고장의모습은 매년 이맘 때의 여느 풍경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혼잡스러웠다.
새까많게 펼쳐진 검은 모발의 바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군중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웅성거림. 사람을 흥분시키게 만드는 후끈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던 왁작지껄한 웅성거림도 입격자발표가 시작됨에 따라 점점 잦아들더니, 종내는 장내가 바늘 덜어지는 소리하나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침묵에 휩싸였다.
입격자발표는 무당파의 명숙인 옥호진인이 맡아 진행했다. 그는구대문파의 쌍두 중 하나인 무당파의 명숙답게 군중들이 운집한 장소에서도 그들이 정확히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이 실린 또박또박한 어조로 승천무제 입격자, 즉 천무학관 입관자의 출신사문과 성명을 발표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운집된 개미때같은 군중들 한명한명모두에게 명확한 의사전달을 가능케하는 목소리였다. 한명 한명입격자가 발표됨에 따라 웃는 사람. 우는 사람, 기뻐서 웃는 사람, 허탈에서 웃는 사람, 감격해서 우는 사람, 억울하다는 듯이 우는 사람! 허공 중에 던져지는 사람. 무인의 생명이라는 검을 내팽게 치는 사람들까지 별의 별 유형의 사람들이 계속해서생겨났다. 정말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들을 모두 종합적으로 관찰목격비교분석연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발표장은 이런 여러사람의 여러가지 마음과 모습들을 담아내고있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가지각색의 무척이나 다양한 모습들을여과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이날만되면 으레 생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낙방한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낙방의 분함을 못이겨 천무학관으로 항의하러 가는 사람들로, 개중에는 하소연과 항의의 수단으로 검을 뽑아드는 사람들도 간혹, 아니 매우 빈번히 생겨난다.
하지만 천무학관이 어떤 곳인가! 그런 놈들은 관내에는 엄지발가락 발톱 끄트머리도 드리밀지 못한채 문전(門前)에서 흠씬두들겨 맞고 내침당하기 일수였다.
잘못된 판정이라는 둥, 억울하다는 둥, 의미없는 칼부림을 떨어보지만, 실력이 안돼 떨어졌는데 항의할 실력이나 되겠는가.
그것은 한순간의 객기(客氣)! 단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부숴질허무한 몸짓일 뿐이였다.
그들은(판정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린 놈들.) 죽지 않고 목숨부지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좋은 날 피보기는 싫어 손속에 자제를 둔 천무학관측 관계자께 백배감사드려야 마땅했다.
매년 엄중한 징계에도 불구하고, 학습능력이 치명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다시금 대량으로 발생하는 난동자를 진압저지하기 위해, 항상 이날에는 정문 앞에 난동군중전담진압대가 배치되게 된다. 그래서,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최면에 빠진 사람처럼일일이 찾아와 당랑거철식으로 칼을 뽑아드는 한심이들을 처리하고 있다.
이 때 가장 골치 아픈 족속이 친구나 소속문파의 사제,또는 가문의 고용무사들까지 이끌고 떼지어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무리들이다. 이런 때가 가장 골치 아픈데, 이런 무리들이 발생할 시에는 천무학관 측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이런 무리들을 본보기 삼아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혹시나 (혹시라도 항의해보면 만에 하나라도 판정이 뒤집어 지거나,떡고물이라도 떨어 지지 않을까 하는 어리섞고 터무니없는 생각.-물론 있을 수도 없고 있은 적도 없는 일,) 하는 무리들에게 역시나(그럼 그렇지,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어라는 현실직시적 생각.)하는 비정한 현실을 깨우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본보기로 이런 어리석은 무리들이 엄중징계당하게 되고, 그들이 혹은 사지 중 하나가 보기좋게 부러지거나, 혹은 동료들에게 질질 끌려서 의원으로 실려가는 끔찍한 장면을 목도하게되면 사람들은 머리가 좀 시원해 져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런 후면, 소동도 상당히 가라앉는다.
진압대의 구성원은 모두가 천무학관상급관도들로서, 모두들 하수(下手)는 물론 중수(中手:?)같은 평범한 무인은 안구(眼球) 세척(洗滌)하고 찾아봐도 하나없는 고수(高手)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들의 지휘책임자는 무사부 일인이 맡아서 한다.
그러니, 그런 고수들을 상대로 난동과 행패가 어디 통하겠는가!어불성설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술쳐먹고 달려드는 걸 보면 참 인간이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 아닐까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런 놈들은떨어지는게 당연했다. 자기자신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놈이 무슨놈의 무공인들 제대로 익히겠는가.
밑빠진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는 것을......
이날은 남창성내가 가장 소란스러운 날인 동시에, 남창성내 유흥가 전체가 가장 장사 잘되는 날이기도 하다. 한달동안 벌 벌이를하루에 다 벌어버리는 날이 바로 이날이였다. 게다가 이 불야성은적어도 일주일간은 게속 된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술은 퍼마시게 되어있기 때문이였다. 합격하면 축하술이라며 밤새퍼마시고,불합격이면 밤새 화풀이로 모든 것을 잊기위해 마시고 마시고 또마시는 것이다. 일종의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거기다 술로서 부족하면 계집을 찾아 옆에 끼든, 아래에 끼든 제재량껏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유흥가의 매상이 안오를 수 있겠는가! 일년 중 가장 대박인 날은 꼽으라면 남창내 유흥가연합회에 소속된 모든 주루와 기루들의 주인들은 이날을 서슴없이 첫손으로 꼽을 것이다.
모두들 흥청망청 대며 술값과 여자값으로 주머니 속 모든 돈을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한 시끌벅적 난리법석한 요란함을 자기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란 듯이 한쪽켠에서 묵묵히 지켜보고있는 자가있었다. 그는 바로 도대체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아직도 제대로 정체파악이 알쏭달쏭한 인물인 비류연이였다. 지금 비류연의 심기는 승룡패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10일.
아직도 염도는 그날 빙검 관철수를 만난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염도는 게속 입을 꾹다문채묵비이란 이름의 돗배에 몸을 의지한채 침묵이란 이름의 강을 하염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염도의 음침한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비류연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마음이 답답해지기 전에 이미 그 답답함의 제공원인을 제거해버리는 성격의 염도에게 있어, 이러한 행동은 유래가 없는 일이였다.
그런 그를 비류연은 지켜보기가 답답하고 싫었던 것이다. 평소에생각없이 기분내키는대로 과격무쌍하게 행동하던 놈이 평소안하던침묵을 동반한 사색활동이라는 소름끼치도록 어울리지 않는 짓을하며, 조용히 방안 한쪽 구석에 쳐박혀 앉아있으니, 보는이의 마음이 오죽이나 답답하겠는가!
확 패쥑이고 싶은 것을 꾹 참고있어보는 비류연이지만. 그의 인내력(원래 없는 거나 다름없던 것)도 이제는 한계.
날잡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듯 했다.
요즘들어 염도는 항상 생각 속에 깊이 잠겨있기 일수였다. 그것은물론 자신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빙검 때문이였다.
최강의 힘과,최강의 기술,그리고, 최강의 정신을 지닌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천무학관, 그 천무하관에서 자신의 동문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자기자신이 그곳에 들어가려고한다. 그와 같은 입장과 같은 위치를 지닌 무사부로서! 아니, 그는 대노사의 직위이니 그보다 아래인가....... 이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로군.
'사부!
갑자기 죽은 사부가 떠올랐다. 자신과 빙검 둘이서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상대가 될까 아직도 의문스러웠던 사부. 천하제일이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무인이였다. 그 공부와 절기가 너무나 뛰어나 자신과 철수 역시 사부의 모든 것을 물려받지 못한채 반쪼가리로 나뉘어진 무공을 전수받야만 했다.
그때 사부가 얼마나 탄식했었던가! 그 반쪼가리를 다듬고 발전시 킨 것만으로도 각기 천하오대도객과 천하오검수의 한자리를차지했다.
천하제일인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던 사부. 그런 사부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 누가 예상했었던가.
나보다도 더 오래사실 분이라 생각했었는데.....
비록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긴 했지만(아직도 그 사부가 다른사람의 손에 음해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사실 사부의 죽음은 죽음이라 할 수 없었다. 전신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사부의 얼굴은 기이하게도 편온하기만 했다.
그리곤, 여느날과 같은 오후처럼, 단정히 자리에 정좌하신 채 한잔의 용정차을 음미하신 후 조용히 우화등선하셨다.
스스로의 의지로 속세를 떠나신 것이다.
두 개를 하나로 만들 태극의 인재를 찾아라는게, 사부의 마지막유언이였는데 끝내는 지켜드리지 못했다.
앞으로 지켜질 가능성은......
전무(全無)했다.
오래간만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겨잇으니 문득 사부의생각이 떠오른 것이였다. 근래에 들어 떠올린 적이 없었는데.....
결국엔 그녀도 함께 떠올랐다. 그녀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기억의 저편에서 묻어두고 싶엇는데 생각나 버린 것이다.
가슴이 옥죄이는 듯이 아파오고, 지독한 상실감과 고독이 그를방문했다. 잊자!잊자! 수천번은 더 되뇌이고서야 비로서 그녀의영상이 흐려졌다.
사부의 죽음(죽음이라고 하기엔 적합하지 않지만)은 무인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죽음이였지만 그녀는 그래도 슬퍼하였었지.
그 옥같은 얼굴에 수정같은 눈물을 흘려보내며 슬픔에 잠겨있었지. 그런데..그런데.... 가슴이 뜨끔뜨끔 아파왔다.
제기랄......더 이상 생각지 말자는,더이상 생각했다가는 더 큰상처입는다는 경고음이였다. 잔혹한 마음의 상처. 마음에 받은상처는 생을 넘겨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였다. 내세에까지 ㅈ어지고 간다는 상흔를 남긴 그녀. 치유될 수 없는 아픔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지금의 그의 불화같은 성격도 이에 기인한 점이많았다.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던 가장 소중한 것이 상처받았다.
그의 마음에 화인(火印)같은 지워지지않는 고통의 흔적을 남긴 채떠난 그녀. 이제 더 이상은 그녀의 잔영으로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사양이였다. 빙검(氷劍) 그놈에게서도 해방되고 싶었다. 더이상 과거에 얽힌 인연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사양이다.
난 천하오대도객의 일인(一人) 화령염천탈혼도(火靈焰天奪魂刀)곽영희다.
한월빙청낙백검(寒月氷淸落魄劍) 관철수! 그놈과는 조만간 결판을 낸다.
마침내 염도는 자신의 행동지침을 결정내렸다. 그 결정은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결심이였다. 그리고, 그동안 애써 고민해왔던 여러 생각의 꾸러미들을 모든 것을 털어버렸다. 이제 다시는,두번 다시는 그의 면전 앞에서 주저하거나 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결정했다.
첫댓글 갈수록 길어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