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0년 Captain Cook에 의해서 처음 알려진 이후 Bank Peninsula라는 이름은 Sir Joseph Banks라는 박물학자에 의해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여기 뉴질랜드 도처에 Bank라는 이름이 있길래 버드나무가 연상이 되었지만 오늘 드디어 그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니 나 자신이 뿌듯해진다.
뱅크 피니술라 트랙은 뉴질랜드 첫 번째로 개인들의 영업을 목적으로 개설해 놓은 트랙이라고 한다. 총 35km의 트랙코스가 8가구 농장들의 사유지를 지나가는데 이 양반들이 트랙을 보수 관리하면서 2 nights, 4 nights의 숙소까지 제공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하루에 횅하니 해치울려다가 담당자 왈, 그럴 수 없다기에 2 nights 트래킹에 신청을 했다. 물론 가이드가 따라 나오는 게 아니라 순전히 자기 혼자 길을 지나가고 정해진 곳에서 점심과 잠자리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지까짓게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도 아니면서 뭘 이렇게까지 요란을 떠는가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하기를 밀포드 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 것이다.
17시 45분, 드디어 날 태우러 오는 버스가 왔다. 백인 할머니 혼자 있는 날 보고 돈 낸 영수증을 보자고 한다. 이윽고 이렇게 저렇게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듣고. 많은 뉴질랜드의 트래킹이 사유농지를 지나가는 고로 이 양반의 설명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안다고 할까? 버스는 꽃들이 활짝 핀 아카로아 시내를 거쳐서 산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더니 Onuku란 동네에 날 내려 놓는다. 오늘은 여기에 있는 산장에서 1박하고 내일 출발한다.
비포장 길을 조금 걸어가면 중턱 중 바다가 환하게 보이는 곳에 산장이 있다. 2 nights 트래커와 4 nights 트래커가 자는 장소가 틀린다. 그 쪽이 값이 비싼 만큼 좀 더 경치가 좋고 좀 더 시설이 좋은 숙소일 것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산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아무도 없다. 이 아무도 없음을 즐기기 위해서 산에 왔건만 실제 아무도 없음은 날 맥 빠지게 한다.
부엌 시설은 좋다. 그리고 사용하고 나서는 원위치를 확실히 해야 한다. 모텔처럼. 물론 전기장판은 없다. 이건 한국의 산장에도 마찬가지다. 전기도 간신이 들어오는 이곳에서 전기 장판을 찾고 안락한 잠자리를 찾는 사람은 트래킹이란 걸 안하는 게 좋다. 그냥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사는 게 여러 면에서 이롭다.
여행으로 한국 분들 모시고 호텔이던 모텔이던 잠자리에 가게 되면 여러모로 조심하게 된다.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춥다는 거…히터시설이 없으면 일단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고 어쩌다 전기장판까지 없으면 거의 초상집이다. 바꾸어 달라면 어찌되었던 바꿔 드려야 한다. 한국 사람들의 심리는 내가 낸 돈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전기란 전기는 다 켜고 히터란 히터는 최고조로 돌려서 마구마구 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한국 사람 흉 좀 봤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자연에서 바람을 피하고 비를 피한다면 이것만 가지고도 천국이다. 물론 산의 경우이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 뉴질랜드가 좀 춥다고 그러지만 나한텐 하나도 안 춥다. 덥다. 우리는 북방민족이고 부산 쪽이 아니라면 겨울에 영하 15도까지도 떨어진다. 크라이스트처치 겨우 영하 3도에 춥다고 말하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저녁으로 양송이 수프하고 식빵에 쨈을 발라 먹었다. 이게 앞으로 이틀간의 나의 주식이 될 것이다. 간편하게 다녀야 하는 것이 트래킹이고 때로는 배고픔에 집 생각마저도 간절하게 나야하는 것이 이 트래킹의 목표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풍족하고 그리고 편리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굶주리고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밤잠을 설치면서 트래킹은 계속된다.
2층 침대가 몇 개씩 있는 방에 침낭을 깔았다. 여기 베게는 2개는 사용해야 좋을 거 같다. 한국처럼 높고 단단하질 않으니. 어둠이 밀려오는 밤이 두려워서 창문도 잠그고 비상구도 잠그고 출입구도 잠그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험한 짐승도 없고 험한 사람도 없는 이 뉴질랜드 촌 골짝에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간밤에 모발 전화가 3통이나 왔다. 간만에 통화하는, 날 걱정하는 오클랜드 윤사장님의 목소리가 정겹다. 그리고 새벽엔 비도 한바탕 오고. 아침에 산장의 문을 여니 훅~하고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벌써 여름이 온 걸까? 아무도 없는 상황이기에 자동 카메라로 자 자신의 모습을 찍는데 배터리 문제로 디지털 카메라가 자꾸 off가 된다. 맨날 나오면 하는 말이지만 좀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나이 탓이다.
08시 30분 출발. 초반부터 이번 트래킹에서 가장 높다는 Trig GG라는 699m짜리 산을 넘는다. 등산로는 농장을 지나서 산정으로 곧장 뻗어있다. 군데군데 말뚝에 이번 BP(Bank Peninsula)트래킹의 표식인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풀을 뜯어먹던 양들은 날 보고 흠칫 도망도 가고, 멀거니 날 지켜보기도 하고. 이게 바로 ‘양들의 침묵’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안부에서 십자가 형태의 나무팻말이 걸려있고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팻말에는 AZAMIDAIRA 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팻말 뒤에는 지금은 생각이 안 나지만 분명히 일본 사람의 이름이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일본인과 관련이 있는 그런 표식이 아닌가 한다. 시람의 이름 같진 않은데 그럼 자기가 사랑하던 개가 죽었을까? 개는 트랙에 안 된다고 했으니 그럼 또 무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우리네와는 전혀 다른 일본인들의 마음씀씀이에 나의 이 오름짓이 지루하지 않다.
Trig GG 699m 정상에는 맑은 날이면 여기서 230km 떨어진 마운틴 쿡이 보인다고 그런다. 웬만하면 산 이름을 하나 만들지 Trig GG는 또 웬 말이냐? 싶다. Trig라는 말이 측량점을 이야기 하는가 보다. 한국에 흔한 정상 돌무더기가 여기도 있어서 돌 하나 주워 올리면서 나도 소원을 빌어본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대피소가 하나 있다. 여기가 오늘 점심 먹도록 되어있는 Flea Bay 까지의 중간지점이라고 나와 있다.
길은 다시 도로를 만나고 그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1km정도 내려가는데 사방이 노란 꽃 천지이다. 남섬의 대표적인 Gorse라는 이름의 가시 금작화, 유럽이 원산지인데 얘네들이 이민 오면서 퍼뜨렸다고 한다. 냄새도 별로 안 좋고 이 나라 농부들한테는 애물단지라고도 하는데 특히 더니든에 가게 되면 그 초입부터 만개한 이눔들을 볼 수 있다.
자꾸만 내려가던 길이 다시 숲 속으로 이어진다. 잔디밭 푸른 초원길에서 이제는 베트남의 정글 속으로 들어온 거 같다. 때로는 질퍽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지천으로 깔린 다양한 나무속에서 어디선가 원숭이가 튀어 나올 거 같은 기분이다. 뉴질랜드에 많은 고사리 중에서 여기 뱅크 피니술라 트랙에서는 나무 같은 고사리가 5종류가 있다고 팻말이 붙어져 있는 곳을 지났다. 나무 같은 고사리 그럼 고사리 나무지…봄이면 새순을 뜯어먹던 나물 고사리가 아닌.
트래킹 도중에 다양한 폭포들을 만나는데 대부분이 기존 트랙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짧은 거리의 2분에서 20분까지. 처음엔 모두 다 가본다는 기분이지만 오후 들어 힘이 빠질 때쯤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래도 대부분은 가 봤던 거 같다. 마치 한국 같은 다소곳한 폭포들이 나를 반기고 있어서 참 좋았다는 생각. 그 중에서 마지막 날 보았던 Ghost Fall이 기억에 남는다. 안 갈려 그랬는데 왜 유령이란 말을 사용했는지 궁금증이 날 가게 만들었다. 왜 이런 게 있지 않는가? 무서운 영화 장면를 안 볼려고 눈을 가리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심리처럼…
산을 다 내려왔다. 멀리 Flea Bay Cottage가 보인다. 4 nights Tracker들의 잠자리이자 나같이 2 nights Tracker들에게는 점심 먹는 장소가 된다. 오리 가족을 만났다. 병아리만한 새끼들을 거느리고 꽥꽥거리고 지나가는데 행여 내가 그 놈들을 해칠까봐 걱정이 대단한가 보다. 가까이 다가서자 마치 기차 고동 같은 소리를 지른다. 웃기는 놈…그래 안 잡아 먹을게…
Flea Bay Cottage 역시 아무도 없다. 일단 양말까지 벗고 나의 발을 자유롭게 한 다음에 신발을 햇볕에 말렸다. 그 다음 밥을 먹고. 아니다. 밥이 아니라 빵이다. 산장은 어제 잠을 잤던 Onuku보다는 시설이 못한 듯 하지만 그럭저럭 해변도 가깝고 있을 거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무난한 상태. 산장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의 설명을 보니 이 집 주인은 이스라엘에서 온 사람들인 듯. 18시에 실시되는 Yellow Eyed Penguin을 볼려면 17시까지는 산장 모퉁이에 보겠다는 메시지를 남기라고 적혀있다. 농장 일도 하랴, 산장 일도, 펭귄투어 가이드도…
또다시 출발. 날이 뜨겁다. 마치 여름 같은 날씨. 노출된 살갗에 썬탠 로션을 발랐다. 남극의 오존층이 망가져서 이 지구상에서 피부암 환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이 뉴질랜드에서
나를 위한 최소한의 방비책으로 말이다. 해변을 지나서 목장 길로 들어섰더니 이 집 주인 아저씨 뭘 하는지 목소리를 높여서 양들을 보살피고 있다. 저 아저씨 언제 크라이스트처치라도 가봤을까?
해변에서 해발 0을 지나서 이제 100m쯤의 고도를 유지한 채 우측이 해안 절벽으로 된 길을 지난다. 뉴질랜드란 나라는 강이나 바다나 호수가 비슷한 색깔을 띤다. 유명한 Tekapo 호수의 Milky Blue까지는 안되더라도 여튼 한국의 빛깔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런 바다를 지나가노라면 마치 천국에서의 산행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붕 뜬다.
오늘 걸어야 하는 길이 오전 11km 오후 8km 도합 19km 정도이다. 짐도 가볍고 길도 험하지 않지만 그 동안 산행다운 산행을 못해왔던 관계로 쉬이 피로해짐을 느낀다. 게다가 오늘이 이번 봄 들어서 가장 뜨겁지 않나 싶다. 마치 여름 같은 날씨에 평소 느끼지 못하던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한동안 바다를 낀 절벽 길을 꼬불꼬불 지나간다. 경치 좋은 데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골짜기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여러 번 하면서도 오늘의 목표인 Stony Bay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개가 서식한다는 동굴도 지나왔다. 정말 물개 몇 놈이 물가 자갈밭에 널부러져 있더라. 한 놈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고. 돌고래 마저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그런 행운은 없었다.
지그재그의 길이 지겨워서 바로 치고 올라간다. 이런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빤히 보이는 곳을 어기적 거리며 빙빙 돈다는 것이 우스워서다. 죽은 새끼양도 몇 마리 보았다. 지난 겨울 눈도 많이 왔고 추위도 심했다고 그랬지. 오면서 본 양들은 모두 새끼를 한 두 마리씩 거느리고 있었다. 모두가 모자 가정? 아빠는 새끼들의 부양의무를 가지지 않나 보다. 애들한테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머니가 최고인가 보다.
발바닥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 때 멀리서 Stony Bay가 시야에 들어왔다. 꽤 넓은 골짜기 사이로 깊숙하게 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쪽으로 비포장 길이 뚫려 있었다. 집 가까이 갔더니 개들이 컹컹 짖는다. 모두들 우리에 갇혀 있거나 묶여 있고. 개 장사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얼쩡거리니 주인 아저씨 나와서 오늘의 숙소를 안내해 준다.
아까 Flea Bay의 산장에서 냉장고안에 들어있던 맥주를 사먹지 않고 온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는데 대뜸 아저씨로부터 맥주가 있다는 이야길 듣고 캔 두 개를 샀다. 여기도 거기처럼 지가 알아서 돈을 계산하면 된다. Export Gold 캔 하나에 2불 50센트, 조그만 토마토 하나에 50센트, 계란 하나에 75센트 또 뭘 하나 샀는데...일단 게눈 감추듯 갈증에 시달린 나의 몸에 맥주를 적셔준다.
Stony Bay Lodge라는 이름보다는 The Kingdom of Stony Bay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이 아저씨, 자기만의 취향으로 산장을 만들어 두었다. 이곳 산장의 차별화로는 나무를 직접 때어서 데피는 노천 목욕통이 준비되어 있고 샤워 룸 역시 기존 통나무가 시설물과 함께 있어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랄까? 하다못해 화장실의 휴지 걸이 조차도 양 뿔을 갖다 부쳐 놓았다.
아마도 대한민국 강원도에 이런 게 하나 있다면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 아저씨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자기 여동생이 한국에서 얻어왔다는 한문이 잔뜩 적혀있는 무슨 족보 같은 문종이 책을 가지고 왔다. 이태백이라는 한문이 나오는 걸로 봐서 무슨 시조집 쯤 되는가 보다. 아는 한문 몇 가지 가리키면서 엉터리 해석을 했다. 하늘 아래 물이 흘러가고 그 물은 마음이다…하하
오늘도 나 혼자 지내게 생겼다. 창문 옆에 자리를 잡았더니 밤새 바람에 나무가 창문을 건드리는지 부시럭 부시럭 거린다. 여기 산장은 전기가 없다. 나름대로 촛불이 있어 운치가 있기도 하다. 아…잠자기 전 야외에 있는 드럼통 반 자른 로그버너에 불을 부쳐서 깊어가는 뱅크 피니술라의 밤을 아쉬워도 했다. 그전엔 마당 한가운데 있는 간이 당구대에서 길다란 나무 가지로 만든 큐대로 포켓 볼도 쳐보고. 네 귀퉁이에 달려있는 빈 페인트 통에 당구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다.
다음 날 꾸물거리다가 09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트랙은 마당 건너편 개울로 Footbridge가 있는데 그걸 넘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길은 어제와 같은 절벽 길의 연속. 그래도 오늘은 상대적으로 짧다. 오전 6km 오후 10km 도합 16km. 이렇게 간만에 나왔으니 뱅크 피니술라의 다른 곳도 가고 싶은데 마침 디지털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이것 마치면 바로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은근히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오면 가고 싶고 가면 오고 싶은 산이라는 귀신…
이쪽 경치가 제일인 거 같다. 등산로가 절벽에 근접해서 만들어져 있으니 그만큼의 긴박감이 지나가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마지막 Otanerito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산 하나를 넘어가면 Akaroa가 나오면서 이번 뱅크 피니술라 트랙은 끝이 난다. 그 동안 산행다운 산행을 못했었는데 이번 트랙이 산에 대한 갈증이 좀 풀렸다는 생각.
멀리서 Pompeys Pillar 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필라는 기둥이란 말이지. 우리 같으면 촛대 바위 쯤이라고 할거다. 모두가 고만고만한 이 지형에서 저렇게 독특한 기둥바위가 있으니 옛날 뱃사람한테는 좋은 표식이 되었다고 그런다. 날씨는 계속해서 쨍쨍. Otanerito 산장을 목전에 두고 비포장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못 보던 모래가 해변에 죽 깔려있어 여름엔 해수욕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장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 아무도 없고. 트랙상에서의 이름이 Otanerito 비치 하우스로 나와있듯이 꾸며진 구조가 민박집 같은 분위기. 식탁에 거룩하게 앉아서 마지막 식빵으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가지고 왔던 남은 버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 동안 고팠던 커피를 잔뜩 먹었다. 햇볕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좀 더 여유 있게 나중에 출발하려는 계획을 바꿨다.
트랙은 우습게도 다시 지나온 해변 쪽으로 돌아가서 시작이 된다. 몇 개의 농장 울타리를 넘어서 이제 마지막 남은 단계, 1,050 헥타나 되는 Hinewai Reserve(보존지역)를 지난다. 지금까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걸어왔다면 이제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가는 길이 된다. 울울창창한 숲 속 길을 가게 되니 마치 한국 같은 분위기에 사랑하는 설악산에 온 듯 감개가 무량하다.
때로는 질퍽거리고 때로는 계단도 오르고 때로는 초원길도 걸으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정말 분위기 최고의 아담한 길이다. 이러다가 또 헉헉거리는 경사가 나타나겠지. 산이란 그런 거야…방심하면 안 된다. 이전에 언급한 Ghost Fall에 다다랐더니 자그마치 왕복 20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왜 고스트일까? ‘사랑과 영혼’의 분위기는 아닐 거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배낭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출발.
점점 좁은 계곡으로 들어가고 점점 흰색 길 표시도 조밀하게 나오는걸 봐서 누가 길을 잃었었나? 사위는 울창한 나무로 인해서 점점 어두워지고 미끈거리는 이끼 낀 바위를 오르락 내리락 거릴 때는 조금씩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겨우 몸이 통과되는 썩은 나무 밑을 어렵게 지날 때는 그래…이런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고스트라고 정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포는 별거 아니었다. 자체로 봐서는 전혀 고스트와는 관계가 없었지만 주 등산로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곳을 찾아내어 고스트라고 명명했던 뉴질랜더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하면서 돌아왔다. 다음에 사람들과 다시 한번 여기오면 겁을 많이 주고 출발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
경사가 이제 급해졌다. Gorse의 고약한 냄새 속에서 산행을 하다 보니 그 놈의 Gorse를 불지르고 싶어졌다. 이제 South Track이니 West Track이니 여러 트랙들을 표시한 간판도 나타나고 나는 계속해서 Akaroa 방향으로 올라간다. 해발 0에서 출발했으니 Purple Peak Saddle까지 590m의 고도 차를 넘어야 한다.
Purple Peak Saddle에 앞서서 Brocherie’s Pond라는 공지에 다다라서 연못가에 놀던 이름 모를 오리한테 남은 빵을 던져주고 다시 출발. 별거 아닌 연못에 이름까지 달아주는 걸로 봐서 바로 아랫부분의 농장 하는 집 주인의 이름쯤 되는 가보다.
Saddle(안부)에 드디어 도착. 왼쪽으로 Purple Peak 646m 40분 소요라고 나와있지만 못 본척하고 하산을 실시. 이제 조금만 가면 발 밑의 Akaroa가 정겨웁게 나를 반길것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마찬가지 농장 사이를 지나는 고로 잔디가 잘 깔려있다. 그렇지만 오름 짓과 달리 내려가는 길은 발끝이 많이 아프다. 아픈 만큼 나의 뱅크 피니술라 산행은 그 동안 무심했던 뉴질랜드 산행에 대한 애정을 깨우치게 하는 게 아닐까?
산을 거의 내려와서 난 깜짝 놀랐다. 금발의 백인 아주머니 열심히 농장 일을 하는걸 보고.
“어? 여기가 한국이 아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