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고 컴페티션이 있던 Teatro Regio.
어느 순간 객석 한쪽의 공기가 수상쩍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환한 조명이 밝혀진 무대 위에서는 컴피티션에 참가한 춤꾼들이 자신들의
코레오그래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열연하고 있는 중이었고,
무대가 제일 잘 보이는 객석 중앙 즈음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들( Jurado) 은 최대한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수상쩍은 공기의 움직임이 몹시 궁금한듯 시선을 분주히 굴리기도 했다.
무대위의 참가자들이 코레오그래피를 끝낸 순간 대회를 진행하던 스태프에
의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지금으로부터 약 15분간 휴식시간을 갖겠습니다.
참가 번호 00번의 파레하 (Pareja) 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한가지, 지금 이 극장에는 위대한 마에스트라 ( Maestra ) 가
와계십니다. >
아.....
순서를 마치고 객석에서 다른 참가자들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극장 뒤편을 살피기 시작했다.
붉은 숏커트 머리에 활달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여인....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인사를 나누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심사위원들도 서둘러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를 꼭 끌어안고는 오른쪽 뺨을 맞대는 그네들의 인사 El Beso 를 다정하게
나누었다.
그녀는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한사람 한사람 푸근하게 등을 두들겨 주며
안부의 인사를 건넸고, 그렇게 십여분이 흘렀을까,
힘찬 어조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얘기하더니
손을 흔들어 극장 안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인사를 전하고는
기운차게 돌아서서 극장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극장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립한 채 힘찬 박수를
오래오래 보내고 있었다.
부에노스가, 그리고 땅고 아르헨티노가 사랑하는 땅게라 마리아 니에베스
( Maria Nieves ) 와의 첫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리아 니에베스는 1938년 가난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여러 형제들과 더불어 가난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보까 ( La Baca ) 항구 근처에서 메이드로 일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일주일을 꼬박 일해야했기 때문에 어린 그녀는 언니인 N~ata 와 그의 친구 Alicia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 그녀였지만 예술적 감각이 풍부했던
언니의 영향으로 춤과 음악에 대한 재능을 키워갈 수 있었다.
1953년 열 다섯살이 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은 한 젊고 야심만만한
댄서의 열렬한 프로포즈를 불러왔고, 마침내 그와 함께 댄싱팀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땅고 히스토리에 커다란 전환점을 불러올만한
위대한 결합이었는데, 이 젊고 야심찬 꼼빠네로( Compan~ero )는 바로
후안 까를로스 꼬페스 ( Juan Carlos Copes ) 다.
두 사람의 재능은 빛을 발했고 그들은 그당시 댄스의 열기와 함께 유명해져갔다.
루나 파크 ( Luna Park ) 에서 열린 콘테스트에서 그들은 우승을 했는데,
그 대회의 심사를 맡았던, 당시 유명한 뮤지션이자 밀롱게로이기도 했던 후안 다리엔소
(Juan D'Arienzo ) 와 판히오 Fangio 는 이렇게 얘기할 정도였다.
< 그날 밤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우리(심사위원들) 은 이미 한 커플을 우승자로 내정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그녀가 춤을 출 때 마치 두사람의 창부가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였고 모든
청중들은 갈채를 보내며 열렬히 환호했지.
정말 굉장한 일이었어. >
그들의 재능만큼이나 빛나던 야심은 그들을 한층 더 왕성히 활동하게 만들었다.
10명의 밀롱게로들과 함께 탱고 팀을 구성했고
그들의 무대는 처음 싸구려 작은 바에서, 다운타운의 살롱으로 그리고 고급스러운
카바레를 거치며 옮겨졌고 그들은 댄서 로서의 욕망과 꿈을 실현시켜 갔다.
마리아와 코페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뿐만 아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으로까지 무대를 넓혀갔고,
1959년 드디어 브로드 웨이( Broadway )의 무대에까지 오르게 된다.
라스베가스를 거쳐 미국의 TV쇼에까지 출연하였으며 당시의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
( Ronald Reagan ) 의 생일 파티에 초청되어 백악관에서 땅고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잠들어 있던 부에노스의 땅고에 새로운 미의 가치 기준을 부여하고,
땅고의 유행을 창조해 갔다.
땅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명! 으로 일컬어지는 간초 ( Gancho - 다리를 차올려
감아 마치 고리 모양을 만드는 동작 ) 는 이당시 그들이 고안해 낸 새로운 유행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간초는 아르헨틴 땅고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동작이 되었다.
또 그들은 누에보 땅고 ( Nuevo Tango- 새로운 ) 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땅고 음악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현대 음악의 거장 아스또르 삐아솔라 ( Astor
Piazzolla) 와 결합하여 진정한 땅고 누에보의 역사를 만들어갔고,
프란시스꼬 까나로 ( Fransisco Canaro ), 뿌글리에세 ( Pugliese ) 같은
땅고 음악의 마에스트로들과 함께 새로운 땅고를 창조해갔다.
그들의 노력의 결실이 풍성하게 담긴 떼아뜨로 오페라 ( Teatro Opera )
' 땅고 아르헨띠노 ( Tango Argentino ) ' 는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 받게 되었고,
재능 넘치는 두 댄서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땅고 오페라는
보까 항구의 이민자들 사이에서, 또는 매춘과 부랑자들의 패싸움 등을 더불은 배경으로
태어난 땅고의 음울한 이미지를
서글프고, 애수 어리며, 관능적인 독특한 이미지와 기원을 가진 예술 쟝르로
승화시키게 된 것이다.
후안 까를로스 꼬페스와 결별한 뒤 그녀만의 땅고를 추어오는 동안에도
그녀에 대한 부에노스의 애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모라 고도이와 ( Mora Godoy ) 와 함께 출연한 뮤지컬 땅게라 ( Tanguera ) 에서
그녀는 늙은 창부 마다마 ( Madama) 의 역할을 맡고 있다.
행복한 결혼과 부를 꿈꾸며 아르헨티나로 온 프랑스 여인 기젤레 ( Giselle) 는 마피아와
연류되어 있는 오리셰로 ( Orillero ) 인 약혼자 가우덴시오에게 속아 착취를 당하며
캬뱌레에서 매춘과 무희로 변모하게 되는데,
끄리오쇼 ( Criollo - 남미로 이주해온 백인들 ) 출신의 로렌조와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랑을 나누어 가게 된다.
여기서 마리아 니에베스는 오랜 세월 삶의 소용돌이를 겪어낸 창부이자 밤의 댄서로
기젤레에게 춤과 인생을 가르쳐 주며 온 살롱의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가난한 어린시절, 살롱과 댄스홀을 전전하며 온몸으로 춤을 새기고
평생을 땅고와 더불어 살아온 그녀의 삶과 그리 다를 것 없는 흡사한 역할이었기에
그녀는 이 ' 땅게라 Tanguera ' 에 진정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
.
.
.
.
.
.
.
.
마리아 니에베스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젊은 댄서의 육체에 비해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춤의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완벽한 춤꾼의 다리 !
무턱대고 찾아갔던 그녀는 활달했던 첫인상 그대로 참말로 열정적으로 땅고를
가르쳐주었다.
음악의 운율( Cadencia )을 온 몸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 Corazon ) 으로
느끼라며 가슴에 지긋이 손을 얹어주던 그녀.
수업 중간중간 회상과도 같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땅고 아르헨티노에 대한
끝이 없을듯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었다.
.
.
.
.
.
.
.
Estadio Obras Sanitarias.... 컴피티션의 마지막날 .
마리아 니에베스의 공연이 있었다.
Recuerdo 에 맞춰서 Claudio Hoffman 과 함께.
그리고 부에노스의 밀롱가 어디서나 마주하게 되는 진정한 밀롱게로 Dany Garcia와
함께 밀롱가 꼰 뜨라스삐에 ( Milonga con Traspie )를.
그녀가 춤 출때 모든 이들은 숨 죽여 온 몸으로 그녀에게 반응했고,
뜨겁고 애정어린 갈채를 오래오래 보냈다.
부에노스의 춤꾼들에게 최고의 땅게라를 꼽아보라 청하면
일말의 주저함없이 그녀를 꼽는 이유에 나 또한 완전하게 공감하던 순간이었다.
아.....
저것이 바로 유년시절 그토록 나의 가슴을 격렬하게 달궈오던,
세계의 춤꾼들을 갈망하게 만든 Tango Argentino 의 몸짓인게로구나 !
페닌슐라.
Maria Nieves Y Dany Garcia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