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란 말은 인도 내에 존재하는 다른 종교들[예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과 구별하는 말로서는 인도의 가장 오래되고 인도인의 대다수가 따르고 있는 종교의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라고 부르기보다는 인도인의 삶 전체를 지배해 온 성스럽고 다양한 사상적 전통들과 행위의 관습들을 총망라한 매우 포괄적인 문화적 전통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전통은 기원전 15세기경을 전후한 인도유럽(Indo-European)계의 인종인 아리안(Aryan)족의 침입 이전에 살고 있던 인도 원주민들의 인더스문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원주민들의 토착적 신앙과 관습들은 아리안족의 정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존속하면서 힌두교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힌두교의 상층적 문헌적인 전통은 주로 아리아인들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이 상층문화는 다양한 지방적이고 토속적인 전통들과 상호영향 하에 발전되면서 범인도적(汎印度的)인 힌두교의 전통을 이루게 되었다.
아리안족에 의하여 이룩된 힌두교의 상층 전통은 산스크리트(Sanskrit, 梵語)어로 씌어진 여러 문헌들에 담겨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것은 ‘베다’(Veda) 문헌이다. ‘베다’는 아리안들이 섬기던 여러 신(deva)들, 예를 들어 폭풍의 신 인드라(Indra), 불의 신 아그니(Agni), 태양신 수리아(Surya)에 대한 송가와 기도 등을 수집한 것으로서 4종 [리그 베다, 싸마 베다, 야주르 베다, 아타르바 베다]이 있으며, 각 베다에는 제사의 방법과 규범을 다루는 ≪브라흐마나≫(Brahmana)와 철학적 사변과 지식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우파니샤드≫(Upanisad)라는 문헌이 부가되어 있다. 모든 힌두교도들은 명목상으로나 실제상으로나 ‘베다’의 권위를 신성시하며 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나 자이나교와 같은 인도의 토착적인 종교들을 이단시해왔다.
힌두교에 있어서 베다적 전통을 전수해 온 사람들은 주로 사제계급인 브라만 계급으로서, 이들은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atriya), 농업 및 상공업에 종사하는 바이샤(Vaisya), 노예계급인 슈드라(Sudra)와 더불어 소위 사성계급제도(四姓階級制度, varna)를 이루어왔다. 사성제도는 힌두교 전통의 기반으로서 ‘베다’의 권위와 더불어 힌두교의 정통성의 두 기준이 되어 왔다. 이 사성제도를 중심으로 하여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행위에 규범과 의무(dharma)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런 면에서 힌두교는 인도의 사회 윤리질서와 밀착된 종교이다. 특히 사성제도는 실제의 시행상에 있어서는 일종의 직업분권(職業分權) 제도와 같은 소위 ‘캐스트’ 제도(jati)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제도는 오랫동안 인도 사회의 삶의 양식을 지배해 온 것이다.
사성제도와 더불어 힌두교의 전통적 사회 윤리체계의 또 하나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인생의 4기를 규정해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과정을 4단계(asrama)로서 구분한다. 즉 상층 3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아동기를 지나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스승(gum)의 문하에서 ‘베다’ 등의 학문을 공부하며 금욕적인 범행자(梵行者, brahmaearin)의 생활을 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결혼을 하고 자손을 낳고 신과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재산을 증식하는 재가자(在家者, grhastha)의 생활을 한다. 재가자의 의무를 다하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가면 생의 제3기인 임서자(林棲者, vanaprastha)의 생활을 한다. 즉 숲 속에서 금욕과 명상의 생활을 하며 해탈(解脫, moksa)을 모색하는 기간이다. 제4기는 고행자(苦行者, sannyasin)의 단계로서 이때에는 완전히 가족과 사회와의 유대관계를 끊어버리고 걸식자로서 유행하면서 고행자 명상을 통하여 해탈을 추구한다. 이상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힌두교는 세속적 사회적인 의무의 수행과 더불어 영원한 영적인 자유를 조화 있게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힌두교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월적인 삶, 즉 해탈의 길을 제시하는 종교이다. 힌두교는 영혼의 윤회(輪廻, samsara)를 믿는다. 인간은 육체의 파멸과 더불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각기 그 지은 행위[業, karma]에 따라서 적합한 형태의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업을 행하는 한 이 생사(生死)의 반복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해탈이란 바로 이와 같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과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힌두교는 해탈의 방법으로서 지식(jnana)과 신애(信愛, bhakti)의 두 길을 강조해 왔다. 지식의 길은 ≪우파니샤드≫에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는 사상으로서 여기서 지식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질 혹은 참 자아(Atman)는 곧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 그 자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의 해석에 기초를 둔 베단타(Vedanta)철학은 힌두교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로서 이 진리를 해명하는 철학이다. 베단타철학 내에서도 브라흐만을 인격적인 절대자로 보느냐 아니면 비인격적인 실재로 보느냐, 혹은 브라흐만과 현상세계와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철학적 신학적 입장들이 전개되었다. 샹카라(Sankara, 8세기)의 불이론(不二論), 라마누자(Ramanuja, 11세기)의 한정불이론(限定不二論), 마드바(Madhva, 13세기)의 이원론은 대표적 베단타사상 체계들이다.
해탈을 위한 지식의 중요성은 베단타 학파 외의 다른 학파들에서도 인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자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상키야(Sakhya)나 요가(Yoga)학파에서는 인간의 참 자아를 ‘푸루사’(purusa, 精神)라고 부르며 푸루사는 물질적 현상세계의 궁극적 실체인 프라크르티(prakrti, 物質)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라고 한다. 해탈이란 이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영혼이 물질세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요가철학은 이 진리를 요가라는 육체적 정신적 수련을 통하여 깨달을 것을 강조한다.
지식과 더불어 힌두교에서 강조되는 또 하나의 해탈의 길은 신에 대한 신애의 길이다. 신애란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위대한 인격적인 신(主, Isvara)에 대한 전적인 사랑과 헌신을 통하여 그와 연합하는 구원의 길로서, 이 신애의 사상은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일부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에 고전적으로 나타나 있다. 전통적으로 ≪우파니샤드≫를 포함한 ‘베다’의 학습이 상층의 3계급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것이었음에 반하여 ‘기타’는 남녀나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는 문헌으로서, 신애를 통한 구원의 메세지는 ‘기타’로 하여금 힌두교의 바이블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게 하였다. ‘바가바드 기타’의 문자적인 뜻은 ‘지존(至尊)의 노래’라는 의미로서, 여기서 ‘지존’이란 곧 비슈누(Visnu)신과 그의 화신(化身, avatara)인 크리슈나(Krsna)를 가리킨다.
비슈누신은 나라야나(Narayana)나 하리(Hari)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흔히 어두운 색의 얼굴과 네 개의 팔을 가지고 네 팔에는 패각(貝殼) · 원판 · 연꽃 · 활 · 곤봉 등의 상징들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우주의 해체시에 태초의 바다를 상징하는 쉐사(Sesa)라는 범위에서 잠자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의 배꼽으로부터 브라흐마신이 나와서 세계를 창조하며 지배하고 또 파괴한다. 그는 세계의 도덕적 질서가 쇠퇴할 때에 주기적으로 여러 형태의 동물이나 인간으로 자신을 화신하여 나타나 질서를 되찾는 자비로운 존재이다. 특히 크리슈나로서의 화신은 가장 유명하며 바다, 특히 '바가바드 기타'의 설교자인 크리슈나로서의 화신은 가장 유명하며 매우 대중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비슈누신과 크리슈나에 대한 신앙전통은 ‘비슈누 푸라나’(Visnu-purana)나 ‘바가바타 푸라나’(Bhagavata-purana) 등과 같은 문헌들을 통하여 더욱 더 풍부하게 형성되었다.
한편 비슈누신 못지않게 힌두교도들의 대중적인 신앙을 받아 온 신은 시바(Siva)신이다. 그는 아마도 아리아인들의 정복 이전부터 원주민들에 의하여 섬겨진 신으로서 ‘베다’에 나오는 천둥의 신 루드라(Rudra)와 동일시되었으며 ‘동물의 주’(Pasupati)라는 칭호로서 숭배되었다. 시바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성품을 지닌 신으로 묘사된다. 그는 히말라야산 속에서 몸에 재를 바르고 머리는 상투를 틀고 심한 고행을 하는 요가행자(yogin)의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번식과 다산(多産)의 상징인 남근(男根, lingam)으로 흔히 상징되기도 한다. 시바신은 또한 무왕(舞王, Nataraja)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하며 그의 춤에 의하여 세계는 창조되고 파괴된다고 한다. 중세 인도를 통하여 힌두교에는 많은 종교적 시인과 성자들이 출현하여 비슈누와 시바신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과 신앙을 표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비슈누와 시바는 인도 전역에 걸쳐서 힌두교도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슈누와 시바는 각기 아내를 갖고 있다. 비슈누의 아내는 행운의 여신 락스미(Laksmi)이며 시바의 아내는 파르바티(Parvati), 칼리(Kali), 두르가(Durga)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 여신들은 만물의 창조력(sakti)을 상징하는 존재들로서 그들 자체가 대중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슈누와 시바는 온 세계를 창조하고 다스리며 파괴하는 주로서 전 인도적이며 전 힌두교적인 신들임에 비하여, 힌두교도들은 그 밖에도 그 능력에 있어서 제한된 다수의 신들을 섬긴다. 예를 들어 액운을 제거해 주는 코끼리 머리 모양의 가네샤(Ganesa)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주인공이며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라마(Rama)의 친구인 원숭이 하누만(Hanumant)은 인도 전역을 통하여 널리 숭배되는 신들이다. 또한 힌두교에는 지방적으로 혹은 마을에 따라서 숭배되고 있는 각종의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성자들, 성스러운 나무나 동물들, 신격화된 지방의 영웅적 인물들, 신화적 전설적 존재들, 이 모든 다양한 신들이 힌두교의 다신교적 전통을 더욱 더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의 전통에 의하면 사람들은 각자의 성향과 관심에 따라서 자기가 ‘선택한 신’(istadevata)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한 여러 신들을 동시에 섬기는 것에서도 힌두교도들은 어떤 갈등이나 모순을 발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신들은 우리의 언어와 형상적 구현을 초월한 우주의 궁극적 힘인 브라만의 제한된 현현(顯現)으로 힌두교의 신학적 철학적 전통은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특정한 신을 통해서든지 우리는 결국 영원한 실재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