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시인의 文鄕詩話(문향시화) 14회
詩는 내게 과분한 축복이었노라
- 나의 詩, 나의 人生
김 대 규
15. 나의 ‘인물시’ 1
高銀의 『만인보』를 당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사람’ 에 관한 시 쓰기를 좋아 합니다. 예컨대 최남선 이후의 한국현대시인 6백인의 ‘실명시’를 비롯하여 (그 일부가 「현대시학」에 연재, 발표된 바 있다.), 유명·무명의 일반인들에 대한 시들도 썼습니다. 그 가운데서 시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시들로부터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朋 友 記
―나의 슬픈 친구 鄭來英에게
그는
불란서 삼류 유랑극단의
엑스트라 같다.
―人生은, 글쎄
누가 쓴 희곡인지
그는 늘
죽는 역만 연습한다.
피곤한 지혜의 늙은 코끼리모양
어깨는 항상 귀보다 높고,
눈썹이 맞닿아
웃어도 웃는 얼굴이 아니다.
―그래서
희극엔 실패했지.
당신도
그런 친구가 있거든
밤 한 시쯤에 물어 보라.
人生은 무엇이냐고.
이것은 내가 대학시절에 쓴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시입니다. 그는 대학졸업 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세대 연극단에서 연출을 맡아 했는데, 거기서 만난 여주인공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의 내용대로 원만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픈 친구’입니다.
우리들의 상감마마
만취가 되면 집에 전화를 걸고 느닷없이 “중전이요? 과인을 오늘 국사가 있어 못 들어가오!” 하고 엄숙히 통보하던 동료직원이 있었다. 졸지에 신하가 된 우 리들의 연회는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 상감마마, 오늘은 과음하셨사오니 서둘러 입궐하시옵지요.
― 과인은 오늘 여염집 아낙네 하고 통정을 하고 싶네.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 근방에 상감마마께옵서 취하지 않으신
여인네가 없온데요.
― 그러한가? 그렇다면 영상대감부인과는
아직 방사를 치르지 못했으니 영상 댁으로 감세.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던 우리들의 상감마마가 명퇴를 했다. 만조백관들은 다 있어도 상감마마가 안 계시니 궁궐은 폐가가 되었다. 우리들은 망명객처럼 모여 왕권정치의 복고 를 획책하곤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인네들을 궁녀로 삼던 우리들의 상감마마, 지금은 택시기사가 되었나니, 어느 교통순경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지갑을 열고 있을까!
오, 우리들의 상감마마시여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위 시의 모델은 나의 직장동료입니다. 나이나 직금은 달랐지만,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학력은 고졸이었지만 풍부한 상식에 유머감각을 지닌 교양인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나처럼 술과 낚시를 좋아해서 여러 차례 밤을 같이 새우곤 했습니다. 술이 취해서 서부영화 얘기를 하며 밤을 지새우던 때가 참 그립습니다. (여기 그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당시의 직장동료들은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박 찬 호
네가 받는 박수갈채
그 얼마나 힘찬가.
네가 받는 돈
그 얼마나 당당한가.
총선의 아우성
대선의 검은 돈들
험악하고 흉측해라.
하의상달의 직구,
타협의 유화적인 커브,
때로는 울분의 핀 볼도
하기야 의외의 폭투도 있겠지.
그러나 너는
‘홈’을 빼앗기면 안 된다.
코리아는 우리들의 홈 베이스.
3·1 만세의 스트라익!
4·19혁명의 스트라익!
이제 세 번째 스트라익이 남았다.
남북을 관통하는 통일의 그 쾌속구!
야구는 투 아웃부터지만
인생은 쓰리 아웃부터다.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으랴만
너에게는 ‘퍼펙트’ 가 있구나.
박찬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기린아입니다. 박세리도 그러했지만, 글들이 보여준 쾌거는 한국인이 난관을 극복하는 위안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경주, 추신수, 박인비, 류현진 등 스포츠계에는 국위를 드높이는 선수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써 본 박찬호 예찬 시였습니다.
이쑤시개
이를 쑤실 때마다
스님 한 분 생각난다.
그분은
이쑤시개 한 개를
3년이나 쓰셨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쑤시개보다 엄청 큰 육신은
더 오래 사용하지 못할까.
우리는
잇발사이의 찌꺼기나 파내지만
그분에겐 세상이
온통 찌꺼기가 아니었을까.
아, 長坐不臥
그분의 육신자체가
너무나 큰
우리의 이쑤시개였구나.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성철 스님의 입적을 맞아 쓴 시입니다. 이쑤시개 하나를 3년씩이나 쓰셨다는 에피소드에, 눕지 않고 앉아서 오랜 세월을 보내셨다는 사실이 시적 가치를 뛰어 넘는 인생교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밖에도 몇 편의 인물시가 있지만, 일반인들에 대한 예는 이것으로 마칠까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