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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꺼진 여행_3
용연야범(龍淵夜泛)과 한천(漢川) 교교한 달빛 아래의 '석석한' 삶 교교하다---매우 맑고 밝다 (皎 皎 하다)교ː교―하다(皎皎―)[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여행은 저를 천수관음보살처럼 만들어버립니다. 천개의 손을 가졌고 그 각각의 손은 다시 각각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천수보살. 여행에서 이 천개의 눈들이 모두 깨어 기뻐하고 감동 하고 아파하고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천개의 손과 눈은 각각 감각하고 서로 감응하면서 내 몸속 에서 축제를 벌입니다.
제주는 다행히 푸르고 맑았습니다.
예약한 렌터카를 인수하고 내비게이션에 '용두암'을 입력했습니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갈 수 있는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애초계획은 용두암길에서 시작해 서해안로를 따라 서진할 계획이었습니다. 오로지 바다와 바닷가의 자연부락을 스미듯 스쳐갈 속셈이었지요.
바다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은 곳은 용두암(龍頭岩)암 동쪽의 용연(龍淵) 앞바다였습니다.
"바다다!"
아내의 이 외마디는 파주와 김포의 농무(濃霧)로 비롯된 긴장이 마침내 바다와 대면하는 것으로 풀렸음을 의미했습니다.
뭍사람들에게 바다는 의식아래에 잠재된 그리움 같은 것인가 봅니다. 일단 바다를 접하는 것만으로 마치 여행의 욕구가 해소된 것처럼 이완되는 효과가가 있으니까요.
용연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에 매인 두 척의 조각배가 용연야범(龍淵夜帆)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이는 제주도에 유배온 유배인들이 이곳의 풍류객들과 함께 달 밝은 여름밤에 용연에 배를 띄워 밤을 지새우며 음풍영월(吟風咏月)한 것으로 원래는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가 제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놀이었습니다. 용연야범은 제주의 절경을 꼽은 '영주(瀛州 : 제주의 옛 지명) 12경' 중의 하나입니다.
용이 놀았다는 용연(龍淵)은 양안에 주상절리가 솟아 계곡을 이룬 곳에 만들어진 호수입니다. 백록담 북쪽에서 발원한 한천(漢川)의 냇물과 바닥에서 솟아오른 지하수가 괴인 담수(淡水)가 앞바다의 염수(塩水)와 만나는 곳입니다.
이 용연에서 바다로 합류하는 한천(漢川)은 총 길이가 16km에 불과하지만 제주도의 가장 긴 하천입니다. '한'이라는 이름에 크고 길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하천에서 우천 시를 제외하고는 물이 흐르는 것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투수성이 강한 조면암질의 강바닥 때문에 정작 물은 모두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이지요. 한천 역시 건천(乾川)이지만 용연에서 지하수로 용출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의 바싹 마른 제주의 하천 바닥을 볼 때면 제주민이 인내해야했던 거친 과거의 삶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교교한 달빛 아래의 용연 뱃놀이도 각자의 '석석한(차가운)' 처지가 육화된 처절한 아름다움이었으리라
[출처] 제주도, 지꺼진 여행_3 | 용연야범(龍淵夜泛)과 한천(漢川), 교교한 달빛 아래의 '석석한' 삶|작성자 모티프원 용연야범(龍淵夜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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