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다.
배 위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비오는 소리 들으면서 기분좋게 잠들었는데,
지붕에 또 구멍이 뚫린 모양.
혹시나 하고 마루에 나가보니 물이 흥건하다.
짜증이 확. 6년 전 "20년은 보증한다"고 큰소리 치길래
4천불 들여 교체한 지붕이다. 몇년 전 라쿤이 올라가 뜯어내는 바람에
비가 줄줄 샌 것까지는 그래도 이해. 그때, 업자는 한 번 와서 대충 붙여주고
250불을 챙겨갔다. 내가 할 엄두도 못 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정도 되면 아무리 적어도 5백불 이상은 내야 할 터.
옆집 사는 중국 중년 여성이 지붕 위로 올라간 광경이 떠올랐다.
참~ 그 집도 이상했던 게, 남편은 집안 일을 하는지
집 바깥 일은 전부 여자가 하는 거다. 눈도 치우고 낙엽도 치우고
잔디도 깎고. 급기야 부인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까지 보았다.
그녀를 떠올리고는 홈디포로 갔다. 주차장에서, 워런티 운운한 것이
퍼뜩 떠올라 지붕업자를 소개한 컨터렉터한테 전화.
"그럴 리 없는데요? 10년 워런티 맞아요. 그런데, 그 업자가 4년 전에 은퇴를 해서..."
된장~~. 은퇴란다. 화낼 곳도, 하소연할 데도 없는 거다. 은퇴했다는데...
컨터렉터는 요즘 함께 일하는 다른 업자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올랐지만 예전 가격으로 해들릴게요. 미안해서요."
야, 미안만 하면 다냐? 예전 가격? 6년 만에 4천불 또 깨지게 생겼는데,
예전 가격이 뭔 소용?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 홈디포로 진입.
지붕 땜빵용 재료가 여러 종류 있고 전용 못까지 있다.
24불, 6불. 합쳐서 30불 플러스 텍스. 하니까, 33불90센트.
누더기가 되더라도 비만 새지 않는다면야... 6년 만에 저렇게 갈라지져서 뒤집히고 했는데 20년 간다고?
집에 오자마자 비오는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올라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떨어지면 골로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경사면에서 몸을 직각으로 세우면 가장 안전하다는 소리도 들었고 해서
기어서 올라가, 서서 걸을 때는 그렇게 해보았다.
안정적인 자세가 금방 나왔다. 걸을 만했다.
올라가 보니, 20년 개런티는 개뿔. 열 군데 정도가 뒤집히거나
뒤집히기 직전. 떨어져 뒤집힌 곳 사이로 물이 들어온 거다.
밤새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쳤다 해도 이건 아니지.
다른 집 지붕은 멀쩡하거든.
지붕 위에 올라가니 이런 풍경이 보이더라는 거다. 더군다나 큰 비가 온 다음이라 깨끗. 기분이 급좋아졌다.
근데, 지붕 위로 올라와 주변을 보니, 풍경이 아주 근사하다.
이 집에 산 지 10년이 넘도록 이런 풍경을 못 봤구나 하고 혼자 감탄.
좋은 풍경에 기분이 업되어, 빵꾸난 곳을 하나 하나 뜯어내고 땜빵용을
씌우고 못을 박고 보니, 그 일이 퍽 재미나는 거다. 안 해봐서 몰라서 그렇지
해보니 일도 아니다. 심지어 재미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도
비를 맞거나 말거나 길이를 재고 가위로 쓱쓱 잘라, 망치로 머리 큰 못을
때려 박았다. 나무에 박는 거라 팡팡 들어가는 게 박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렇게 지붕 위에서 두 시간을 놀았더니, 누덕누덕 흥부집 지붕이 되었다.
흥부네보다 좀 나은 것은, 멀리서 보면 안 보인다는 거. 어제 밤처럼
비가 왕창 또 한번 쏟아져봐야 새는지 안 새는지 알겠는데... 일단은 안 샌다.
하필 딸이 선물로 받아온 책들이 수해를 입었다. 그래도 읽을 수는 있으니, 뭐.
지붕업자를 소개한 컨터렉터는 미안했던지 전화를 두 번이나...
처음에는 교체하라고 하다가 두번째는 땜질을 대신해 주겠다고...
한 번 올라갔다가 일이 재미있어서 점심도 안 먹고
단번에 끝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좀 미안해 하라고. 내 힘으로 못하면 그때 도와달라고 했다.
결론. 내 몸 쓰면 돈 굳는다. 예기치 않게 재미도 있다.
비오는 날, 지붕 위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논 사람 있음 나와 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