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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2021.1.1 ■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 서기 2021 + 2333년 -> 단기 4354년 * 서기 2021 + 544년 -> 불기 2565년 1. ▣ 진입로,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비 * 松廣 이름 구전 ; 松은 파자하면 十八公이다. 장차 十八公이 배출 되어, 廣 ; 불법광포佛法廣布, 불법을 널리 전한다는 의미라 한다. ▣ 조계산 松廣寺(북서쪽), 仙巖寺(동쪽) 일원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송광사 안길 100) * 조계산은 호남 정맥의 명산 * 조계산 옛 명칭; 송광사 뒷산은 송광산, 선암사 뒤 장군봉(884m)은 청량산 * 조계산에는 비룡폭포, 감초암폭포가 있다. *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 보조국사를 비롯한 한 16국사를 배출함. 2 승보종찰의 터전을 닦은 이는 불일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다. ▣ 보조국사 지눌 * 홀연히 깨닫고 나서 그 깨달음의 경지를 잃지 않도록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와 *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였다. * 고려 무신정권기 희종은 지눌을 스승으로 섬겼다.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어 어필사액을 내렸다. ▣ 진각국사 혜심(1178~1234) 때는 최우의 두 아들 만종, 만전를 출가시켜 제자로 받아들였다. 각각 진주 단속사와 능주 쌍봉사의 주지로 갔다. 만전은 환속하여 최씨 정권 3대 계승자인 최항이 되었다. ▣ 조선시대 선교양종으로 통폐합 되면서 9산 선문이 조계종으로 통합되었다. 이 때 무학대사와 제자 고봉화상이 통합에 기여했으며, 각각 송광사 주지로 가기도 했다. ▣ 왜란 후 서산대사 중심으로 조계 일종으로 재통합되는 과정에서 조계종찰인 송광사는 승보종찰 지위가 더 굳어졌고, 서산대사(1520~1604) 법제인 부휴선사(1543~1615)가 중창하였다. 3. 홍보자료 사진 송광사 동명의 사찰이 전북 완주에도 있다. 4. 5. 6. 7. 송광사 입구, 일주문앞 8. 일주문 앞 9. 눈이 와, 스님들의 수고가 많으시다. * 눈이 오면 연병장 눈을 치우느라고, 단가를 만들어 눈을 퍼 담아서 치우던 군대생활이 상기된다. 10. 임경당(별칭 육감정), 마음을 냇물에 비쳐본다는 의미. 11. 척주당과 세월각 12. 삼청교(三淸橋) ; 사찰 입구 다리 ; '1) 물 맑고 2) 바람 맑고 3) 달 맑다' 하여 붙여진 이름. 송광사 8경중 하나. * 삼청교 위 누각을 우화각(羽化閣)이라고 한다. 송나라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에 쓴 대로 날개 돋쳐 날아오르는 신선이 되는 기분이라는 의미. * 우화각 우측, 개울의 상류쪽 이층누각은 침계루(枕溪樓 ; 시내를 베고 있는 누각) * 우화각 좌측, 하류쪽의 누각을 임경당 또는 육감정(臨鏡堂, 六鑑亭) . 육감은 六根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고요히 하여 지혜롭게 마음을 비춰 본다는 것. 임경당이란 거울같은 물가에 임한 집이란 뜻. 13. 삼청교三淸橋 ; 삼청이란 1) 물 맑고 2) 바람 맑고 3) 달 맑다. 일명 능허교凌虛橋 14. 정면, 삼청교와 우화각으로 흐르는 개울물. 꽁꽁 얼어 붙어 겨울 송광사의 정취를 보여준다. 좌측면은 임경당. 15. 일주문 지나면 송광사에만 있는 한 칸짜리 작은 전각 두 채가 있다. * 하나는 척주각 하나는 세월각이다. 재를 지내러 오는 죽은 영가(靈駕)를 목욕시키는 곳. * 척주각(滌珠閣 ; 구슬을 씻기는 곳)은 남자 영가 목욕소, * 세월각(洗月閣 ; 달을 씻기는 곳)은 여자 영가 목욕소. 16. 척주각, 세월각 옆에 고향수 17. 고향수枯香樹 ; 말라 버린 향나무. *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팡이가 자란 나무이며, 입적하자 향나무도 죽었으며, 보조국사가 환생하여 송광사에 오시면, 다시 잎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18. 척주각, 세월각, 고향수 19. 배롱나무 나목에 달린 겨울 연등이 꽃 같다. 20. 한붕화상 글 씌어진 우물, 어디에도 내력은 없다. * 화상은 불교교단에서 가르침을 내려주는 교사. * 법호 한붕화상이 만든 우물로 생각함이 좋을 듯. 아마도 중창불사시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진 스님으로 짐작됨. * 식수로 부적합하니, 접수처 앞 생수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21. 대웅보전(大雄寶殿) ; 1983년 중창, 평면은 亞자형 * 삼세여래와 4대보살을 새로 조성 봉안 - 삼세여래 ; 연등불(=과거불), 석가여래(=현세불), 미륵불(=미래불) - 현재불인 석가모니가 과거 전생에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아 부처님이 되셨다는 것. - 수기授記 ; 수없이 많은 생 동안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장차 부처님이 되리라고 약속을 주는 것. * 석가모니 부처님은 또 미륵불 에게 '56억7천만년 후 미래불이 될 것' 수기를 주셨음을 의미한다. * 4대보살 ; -지혜 제일의 문수보살, 신행 제일의 보현보살. -관음보살은 자비의 화신, 이승의 고난을 구제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운 분. -지장보살은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 저승 지옥중생 구원을 서원하신 분. * 문수 보현은 석가모니불의 좌우협시보살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연등불과 미륵불의 좌우에 배치하였다. 22. 대웅전 계단의 소맷돌 사자상 23. 대웅전 축대 여기저기에 소나무 분재들을 배치했다. 24. 삼일암 ; 제9대 국사인 담당국사가 이 곳 물을 마시고 3일만에 오도悟道하였다 하여 삼일암이라 한다. 낡아서 보수를 계획하고 있다. 25. 26. 삼일암은 방장의 거처. * 왼쪽 높은 언덕위 명당자리에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이 있다. "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먼지와 같다." 27. 비사리구시, 큰 행사 때 밥을 담는 밥통. 쌀 7가마, 4,000명 분 밥을 담을 수있었다 한다. * 재미있는 해인사와 송광사 스님들 허풍 전설 해인사는 밥솥이 크고, 송광사는 해우소가 깊다는 것. 해인사 스님 ; "동짓날 팥죽을 쑤는 데 나룻배를 타고 젓는다." 송광사 스님 ; "아침에 누고 온 변이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것." 28. 무무문 앞으로 한 스님이 지나간다. 효봉스님 영각앞에 있다. * 효봉의 법호법명은 효봉학눌 금강산에서 출가한 효봉의 원래 법호는 운봉이었으나, 송광사에 와서 고봉화상으로부터 몽중 설법을 듣고 효봉으로 바꿨다. 스스로 법명은 학눌(지눌을 스승으로 한다)로 정하였다. * 효봉은 구산수련(1909~1983)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효봉과 구산이 둘다 송광사 방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불교 두 개의 기둥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월간 송광사지 2020년 12월호 이일야 <엣세이 효봉> 에서 松廣의 松자는 十八公이라했는데, 이미 16국사가 나왔고, 다시 송광사가 배출한 효봉, 구산이 나와 18공이 완성됐다고 규정하였다. * 효봉스님은 송광사에 주석하시다가 1945년 해방 후 왜색풍조를 새롭게 정화하고자 해인사가 총림으로 재편되면서 해인사 초대 방장으로 효봉스님이 추대되었다. 효봉스님은 거기 가서 활약하다가 입적하셨다. * 해인사로 가실 때 남긴 시 송광사로 온지 어느덧 십년 옛 어른들 품에서 편히 쉬었네. 무슨 인연으로 조계산을 떠나는가 인간과 천상의 큰 복전 이루기 위함이네. * 팔만대장경을 지킨 효봉 방장 해인사가 6.25 때 인민군에 점령돼, 총부리 앞에서 해인사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인민군이 퇴각할 때 팔만대장경 장경각을 불태우려 하였다. 효봉이 민족문화유산 지키려 결사반대하자, 인민위원회에 붙였다. 5명의 인민위원이 투표를 하였는데, 2 : 2 였다. 효봉이 반대표를 던져 지켜졌다. 그리고 당시 공군 대령이었던 김영환 장군은 인민군을 소탕하고자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팔만대장경을 지키려고 해인사가 아닌 그 뒷산을 폭격하였다. (해인사 초입에 김영환 장군 공적비가 있다) 팔만대장경은 아슬아슬하게 효봉스님과 김영환 장군에 의하여 지켜진 것이다. 29. "생각이 고요해 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된다.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 밝고 또렷하게 깨어 있으면[覺惺寂寂 ,각성적적] 마치 고요한 새벽이 점점 맑아지고 밝아지면서 마침내 붉은 해가 솟아 오르듯 통연洞然히 밝아질 것이다. 분명히 밝은 정견正見으로 연기관계를 제대로 살피면서 바르게 사유하면[正思惟] 세상의 사리에 통하게 될 것이다." (월간 송광사 2020.12. 남은당 현봉, 조계총림방장) 30. 눈속에서 붉은 피라칸사스 열매가 돋보인다. "그리하여 아무런 막힘 없이 연기의 관계를 밝게 살펴 어떤 경계를 당하더라도 맑고 고요히 흔들림 없으면 선정과 지혜를 함께 갖추게 되니, 세상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세파에 휨쓸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아무런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될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밝은 지혜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월간 송광사 2020.12.남은당 현봉, 조계총림방장) 31. 관음전 뒷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아름답다. 32. 관음전 뒤로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사리탑)으로 가는 계단 33. 지눌 대사의 부도(승탑), 1210년 열반 시호 : 불일 보조국사 / 탑호 ; 감로탑 34. 보조국사 활동하던 시기는 고려 최씨무신정권기 최충헌 때이다. 35. 감로탑(불일 보조국사 승탑) 36. 감로탑(불일 보조국사 승탑) 37.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바라본 송광사 지붕과 원경 38.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39.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40.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41.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42. 바로 앞의 이 전각은 관음전의 뒷모습이다. 43. 관음전, 관음보살상 44.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에서 45. 국보 제314호 송광사화엄경변상도 46. 47. 원감국사 시 날마다 산을 봐도 볼수록 더욱 좋고 물소리 노상 들어도 들을수록 좋다. 저절로 귀와 눈 밝게 트이니 소리와 빛 가운데 평안이 있네. 48. 송광사 사진전시 코너에서 작가가 찍은 사진. 딱새 50. 2021년 신축년 새해 소띠 해에 복많이 받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