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민 100주년 하와이 세미나 발표문
재미 한인의 실존적 고뇌, 그 문학적 대응
윤 병 로(문학평론가, 성균관대 명예교수)
1. 머리말: 이민 생활의 역경을 극복하는 재미 한인
올해는 미주 한인 이민 백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들을 실은 이민선 게일릭(Gallec)호가 하와이 마우이 섬에 도착함으로써 공식적인 첫 미주 이민이 이루어졌고, 이후 미국에서의 한인의 눈물 겨운 삶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자의반 타의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떠난 한인들은 한국에서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고자 먼 이국 타향에서 그들의 삶 전부를 불태웠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민간 한인들이 아무리 억척같이 열심히 일할지라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백인 주류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치곤 하였다. '약속과 기회의 땅'인 미국은 한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게 백인 주류사회로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어려움을 안겨다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 이민 백년의 역사 동안 바깥쪽의 풍경이 빤히 보이는데도 정작 그 쪽으로 넘어가려면 가로막아 버리는 '유리천장' 때문에 겪는 한인들의 실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이민 생활의 역경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각자 처해진 환경 속에서 이 모든 어려움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그리하여 이제는 미국의 당당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한인들의 지위가 확고히 구축되고 있다는 것은 공인하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민 1세대들의 헌신적 고통으로 다져진 한인들의 삶의 토대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민 3세대인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은 "자신의 조상들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계속 기억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 재미 한인들의 미국 사회에서의 위상은 이민 1세대들의 고국에 대한 뿌리를 망각하지 않은 채 미국에 정착하려는 삶의 자세로부터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런데 이러한 재미 한인들의 삶은 미국에서 쓰여지고 있는 문학작품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문학이 구체적 삶의 경험에 대한 진실을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을 깊고 넓게 탐구하는 데 궁극의 목적을 두듯이, 재미 한인들의 문학은 이민 백주년의 크고 작은 역사를 다양하게 그려냄으로써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접해왔던 재
미 한인들의 삶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비록 제한된 발표의 글이지만, 여기에서 재미 한인들의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면서 미주 이민 백년의 현재적 의의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재미 한인문학의 성과와 과제
재미 한인들의 문학적 역량은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축적되어 있다. 강용흘에 의해 영역 소개된 『동양시인선(Oriental Poetry)』(1929)이 한국문학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에 소개된 이후, 강용흘 자신이 직접 창작한 『초당(草堂, Grass Roof)』(1931)과 『행복한 숲(The Happy Grove.)』(1934)이 출판되는 등 재미 한인들에 의해 직접 창작된 문학 성과물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재미 한인들에 의해서 발표된 대개의 문학적 성과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의 삶에 주목하여 그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 주목하였는가 하면, 그 후세들에 의해서는 미국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갈등이 주류를 이룬다고 하겠다. 그 갈등의 구체적 양상은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재 미국으로 귀화하여 정착한 상태에서 미국인으로서 겪는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의식을 갖는 가운데 겪는 갈등이 그것이다. 전자가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와 부딪치는 온갖 현실 문제에 주목했다면, 후자는 완전한 미국인으로 동화되지는 못한 본질적 원인을 한국(인)과 결부시켜 고민하는 가운데 형상화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양상은 별개로 독립시켜 파악되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문학사상사란 출판사에서 발표한 올해의 장편소설 문학상을 수상한 재미 작가 오정은이 수상소감에서 "날지 못하는 펭귄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려는 고뇌하는 교포들의 갈망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듯이, 분명 국적이 미국이지만, 미국 시민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민 1세대들처럼 한국인으로서 강한 민족의식도 가질 수 없는 재미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재미 한인들의 현실을 오정은이 『펭귄의 날개』란 수상작에서 생생히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재미 한인들의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형상화는 어제 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근래에는 이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거의 모든 재미 작가의 주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래, 차학경, 캐티 송, 피터 리, 노라옥자, 단 리, 수잔 최, 린다 박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이 주제는 향후 재미 한인문학의 핵심적 탐구 과제가 될 것이다. 그들 중 이창래의 작품은 각별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지난 1995년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미국 문단에 데뷔하면서 헤밍웨이 재단상, 펜문학상, 미국 도서상 등을 휩쓸어 미국 문단의 주요 작가로 부상한 바 있다. 이민 1.5세대인 이창래의 데뷔작에서
도 재미 한인이 겪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소설의 주요한 관심사였으며, 앞서 언급한 재미 작가 오정은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이러한 재미 한인의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하면 다각도로 그려나갈 수 있는지가 재미 작가들에게 부여된 과제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상기해야 될 것은, 재미 한인문학의 가치를 자칫하면 재미 한인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하는 것에만 비중을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와 결부지어 나는 재미 한인 문학평론가 박영호의 다음과 같은 논의에 귀기울여본다.
이처럼 우리 재외 동포 문학은 국내문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정치적, 사회적, 지리적 배경을 지닌 문학으로 첫째, 조국에 대한 향수와 귀향의 의지를 바탕으로 출발하여 둘째, 정체성의 혼란으로부터 조화된 정체성을 찾아 셋째, 새로운 세계문화 창조에 참여하며 넷째,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이국에 소개하는 등,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박영호, 「재외 동포 문학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 『문예사조』 2003년 3월호, 250쪽.)
위 논의는 재미 한인문학을 포함한 재외 동포 문학을 논의하면서 도출해낸 것으로, 재미 한인문학의 과제와 방향성에 대한 소중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미주 이민 백년이란 역사를 경험한 재미 한인문학의 경우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원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귀향 의지를 형상화내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겪는 재미 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그려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문학은 재미 한인만의 삶을 위한 문학, 즉 재미 한인문학의 가치만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국수적인 편협한 민족문학의 잘못을 부정하여 민족문학의 참뜻이 녹아든 세계문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학이야말로 이후 재미 한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과제이며 방향성이라 생각된다.
3. 재미 한인의 실존적 고뇌: <한국대표 이민소설> 제3집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최근 재미 작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 내가 이번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한국소설가협회가 미주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간행한 이민소설 제3집에 수록한 작품들이다. 모두 18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었는데, 그 중 관심 깊게 읽은 작품은 5편이다. 이언호의 「리자드(Lizard)」, 박요한의 「기를 흔들며」, 이성열의 「승자 게임」, 최유혜의 「콘돔」, 권소희의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
다」 등을 들 수 있다.
이언호의 「리자드」는 정원에 나타난 도마뱀을 쫓아내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험난한 이민 생활 20년 만에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정원에서 아내와 손녀와 함께 갖고 있을 때 불청객 도마뱀이 찾아든다. 정원의 평화를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도마뱀은 가족들에게 위협과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도마뱀은 정원에서 당연히 내쫓겨야 될 처지에 놓인다. 왜냐하면 정원에서 한가한 시간을 갖는 가족들에게 도마뱀은 침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리자드」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도마뱀은 작중인물 '나'에게 붙잡혀 쓰레기통에 처넣어질 운명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도마뱀이야말로 '나'의 가족이 이민 생활에 정착하기 전의 모습을 지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나'가 "이민자들의 삶이란 저 놈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진술되는 데서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비록 지금의 재미 한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에 어느 정도 편입되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미국의 주류사회로부터 과거의 재미 한인들은 마치 정원을 침입한 불청객 도마뱀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음을 작가는 냉철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재의 재미 한인들이 미국의 주류사회로 편입해들어가고 있으나, 자칫 과거의 재미 한인들의 고통을 망각하는 가운데 겪는 심적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작품의 결말에 암시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쓰레기통에 버린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정원에 남겨놓음으로써 여전히 재미 한인들의 과거의 고통은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 도마뱀의 꼬리야말로 재미 한인들의 현재적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이언호의 「리자드」가 재미 한인들의 심적 혼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박요한의 「기를 흔들며」는 한국의 IMF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작중인물 '나'의 한국을 향한 회귀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나'의 택시운전사 동료 미국인 데이비드와의 만남 속에서 부각된다. 처음에 데이비드와 '나'의 관계는 대립·갈등의 면모를 보인다. '고오 유어 칸츄리(Go your country)'를 되풀이하는 데이비드에게 '나'는 전형적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미국 이주민으로 비쳐진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대립적 관계는 9.11테러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던 도중 데이비드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으면서 해소된다. 데이비드는 한 젊은 미국인이 미국 시민의 자격을 포기하고 9.11테러 집단인 탈레반 병사가 된 이유를, 그 젊은이는 돌아갈 모천(母川), 즉 근원을 향한 회귀욕망에 이끌렸다고 얘기한다. 데이비드의 이 같은 얘기는 복합민족과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본질적 결핍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첨단과 자본주의의 맹주를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미국의 속 알맹이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음을, 작가는 미국인 데
이비드의 입장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비록 겉으로 볼 때 경제적 파산을 맞이하여 도피성이나 다름이 없는 미국 이민을 선택하였으나, 성공한 재미 한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기보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한국에서의 또 다른 삶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본질적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삶을 져버리지 않고 있다는 데서 읽을 수 있다. 즉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한국이란 모천(母川)에서 얻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재미 한인들이 직면한 문제는 이언호의 「리자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주류사회에 편입해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심적 혼란의 측면이 있는가 하면, 박요한의 「기를 흔들며」에서 읽을 수 있듯이, 미국의 주류사회에 적극적으로 편입해들어가기보다 다시 한국으로 회귀하여 한국에서의 또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의 양상이 재미 한인 소설의 경향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양상에 대한 이해는 재미 한인 소설의 다른 경향의 작품을 읽어내는 데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이성열의 「승자 게임」, 최유혜의 「콘돔」, 권소희의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 등에서 보이는 경향은 앞서 읽어본 두 작품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 사회에서 재미 한인이 부딪치는 사회적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성열의 「승자 게임」에서는 유별날 정도로 고급차에 집착하며 백인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붙잡혀 있는 재미 한인 프레드를 통해 미국 사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사회적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백인 사회에 대해 맹목적 동경을 품는 프레드를 비판하려는 것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프레드의 백인 사회에 대한 집착이,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있다는 것을 가볍게 지나칠 수는 없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냉대 속에서 재미 한인들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볼 때 안마시술소이지만, 비밀리에 매춘을 하는 불법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고 있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미 한인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간 최유혜의 「콘돔」은 이런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은 매춘을 하다가 경찰의 불신 검문을 피하려다 삼킨 콘돔이 갖는 상징성이다. 몸 속에 들어간 콘돔은 고통을 동반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런 불법 영업을 통해서라도 미국 이민자로서의 낙오된 삶을 살지 않는 삶의 실존적 고통을 의미한다. 그렇게 재미 한인들은 이민자로서의 생존을 위해 치욕을 감내하면서 절박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최유혜의 「콘돔」에서 보이는 재미 한인 젊은이들의 방황과 실존적 고통은 권소희의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에서도 읽을 수 있다. 흑인 슬럼가에서 간판공장을 세워 성공하고자 하는 '나'와 자동차 보험 사기를 하며 살아가는 종철과 백인 상류 계급 여성을 사랑하고 이별하는 가운데 자신의 한국인 옛 연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드디어 자살을 선택한 찬욱 등에게서 보이는 젊은이의 방황은, 현재 재미 한인 젊은이의 또 다른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문제작으로 받아진다.
4. 맺음말: 재미 한인문학의 무한한 잠재력
현재 재미 한인 문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괄목할 만큼 성장해 있다. 문예매체만 하더라도 현재까지 『뉴욕문학』(미동부한국문인협회)이 12집을 내었으며, 『워싱턴문학』(워싱턴문인회) 8집, 『재미수필』(재미수필문학가협회) 4집, 『미주에세이』(미주한국수필가협회) 1집을 발간했으며, 이외에도 『퓨전수필』(재미수필문학가협회)이 발간되는 등 왕성한 문학 성과물을 축적시키고 있다.
이제 이러한 재미 한인문학을 앞으로 어떻게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재미 한인문학은 앞서 최근의 작품을 살펴보았듯이, 재미 한인들이 처해진 현실 속에서 치밀하게 모색해온 문학적 성과이다.
우리는 이들 문학세계를 종래의 단일한 관점에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즉 민족의 정체성 찾기로만 수렴되는 평가척도로써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재미 한인문학을 재미 한인 1세대의 문제로 한정시키는 것은 재미 한인문학을 협소하게 파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어떤 당위성을 실천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의 매순간에 직면한 현실을 정직하게 재현해내며, 그 속에서 훼손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복원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 인간이 당면한 특수한 현실을 어떤 보편적 명제에 종속시킴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구체적 문제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는 문학적 진실이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재미 한인문학을 이해하는데 이러한 점을 거듭 환기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재미 한인문학이 소유한 잠재력은 무한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잠재력은 한반도와 미국의 주류문학적 관점에서 주변부로 취급되는 데서부터 발생한다. 비록 그들이 한국인도 아니고, 완전한 미국인도 아니지만, 바로 이러한 불완전한 속성이 재미 한인문학의 중요한 문학적 가치를 갖게 한다.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놓여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심부를 적나라하게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 때문에 앞으로 쓰여지고 읽힐 재미 한인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