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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4일 주일메시지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말씀 / 사도행전 16 : 6 - 40
요절 / 사도행전 16 :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오늘 말씀에는 세계선교역사를 이끄시는 분이 누구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중점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선교역사는 바울이 이끌어간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계선교의 주관자요, 인도자 이신 성령님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성령(6-15)
6절을 보십시오. 2차 선교여행은 1차 때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역사가 이루어졌지만 2차 여행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해도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냉담하고 믿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공통적으로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성령이 이곳에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갔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비두니아는 지금 터어키의 북부지방 흑해연안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 즉 성령께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바울 일행은 북쪽으로 가는 것을 그만두고 서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드로아는 터어키의 가장 서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바다 건너 유럽 대륙과 마주하는 곳입니다. 바울이 이곳에 이르러 기도할 때에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환상은 성령님의 특별한 지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환상의 내용은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들이 앞으로의 일을 두고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에 성령의 원하시는 바와 이끄시는 바를 뚜렷하게 계시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이 있음을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은 환상이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그곳 사람들을 먼저 도우라는 성령의 지시임을 영접하였습니다. 바울 일행들은 마게도냐로 가고자 방향을 잡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령께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알려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합니다. 내 욕심을 이루고 싶은데 하나님이 막으실까 근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나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길, 가장 은혜로운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그 뜻과 방향에 따라서 가장 영광스러운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앞날의 일을 알고 싶어 하거나 혹은 우리가 참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성령께서는 그 인도하실 일을 미리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둘째, 바울은 성령의 방향에 순종했습니다. 바울은 다소 출신입니다. 다소는 터어키의 동쪽지방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출신지역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목자의 심정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를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뜻을 영접하고 성령의 방향에 순종했습니다. 성령의 뜻과 인간적인 소원이 상반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성령의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잘 모르겠다면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해도 잘 모르겠으면 말씀에 비추어보고 어떤 말씀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지 모르면 말씀의 종에게 물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성령의 방향에 어떻게 순종했으며 순종했을 때 어떤 역사에 쓰임 받았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지금의 불가리아 남쪽 그리스와 터어키가 만나는 그리스 동북부 항구인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바울 일행은 성령의 방향을 따라서 마게도냐로 들어갔습니다. 그 첫 성이 빌립보입니다. 바울 일행은 거기에 도착하여 먼저 기도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에 왔는데, 여기에서 성령께서 그 뜻에 따라 자신들을 마게도냐 복음역사에 사용하여 주시도록 기도하고 인도하심을 구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도를 마쳤을 때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강가에 모여 있는 마게도냐 자매님들이었습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의 세계는 자매님들을 인정하지 않던 시대입니다. 기도를 마친 바울은 자매님들을 무시하지 않고 정성껏 복음을 섬세하고도 은혜롭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랬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이날 강가에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내면에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사람은 루디아였습니다. 루디아는 비단과 옷감들을 거래하는 여성CEO였습니다.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활짝 여셨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에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이 보내신 종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루디아의 내면에 성령께서 이루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자 루디아는 곧바로 자신의 가정을 마게도냐 선교센터로 오픈하였습니다. 루디아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강권하여 청한 것은 귀한 말씀을 사랑하여 계속 듣고자 함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내신 종들을 귀하게 영접하여 섬기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로써 루디아의 가정은 유럽 최초의 홈센터,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소아시아 지방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바울에게 유럽인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하시고 바울이 순종하였을 때 마음이 준비된 마게도냐 선교동역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의 방향을 따라갈 때 이와 같이 도전적이지만 분명한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의 방향에 민감하고 성령의 방향에 적극 순종하는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2. 빌립보 선교역사(16-40)
빌립보 선교역사는 기도하는 역사였으며, 말씀을 중심으로 한 역사였으며, 주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였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가는 길에 점치는 여자종 하나를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귀신같이 잘 알아 맞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여자종은 귀신이 들려 있었는데, 귀신이 영적인 존재여서 이것저것 알고 맞추는 것이 많아 그덕에 주인이 점치고 받는 복채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 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이 바울 일행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귀신은 알기는 잘 알지만 성령의 역사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순종치도 않는 존재입니다. 여종 속에 있는 귀신은 여러 날 동안 이런 말을 계속 해대며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그러자 귀신은 꼼짝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19-24절을 보십시오. 귀신을 쫓아낸 것이 그 여종에게는 좋았는데, 그 주인에게는 싫은 일이었습니다. 귀신이 나갔으니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게 되었고, 점을 쳐도 알아맞히지 못하게 되어 수입이 중단되었습니다. 주인은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원들에게 고소하였습니다. 죄목은 소요죄, 미풍양속침해, 반사회적 선동죄였습니다. 그들의 고소에 따라 바울과 실라는 정죄를 받았고 매까지 맞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많이 매 맞은 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도 깊은 감옥이었고 그 발에는 착고가 채워졌습니다.
억울하게 매맞고 감옥에 갇혔으니 바울과 실라의 심정은 매우 위축되고 심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고난 받는 두 사람은 거기에서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25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많이 맞았습니다. 그들은 탄식하고 낙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깊은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자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매인 자들이 기도하고 찬양하자 큰 지진이 일어나 온 땅을 흔들었습니다. 그들을 가둔 감옥과 그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둔 착고가 다 풀렸습니다.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모든 매인 것들을 풀어 주는 능력, 자유케 하는 능력입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자다가 깬 감옥의 간수는 죄수들이 모두 탈옥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죄수가 탈옥을 하게 되면 간수는 그 책임을 지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간수는 어차피 사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습니다. 바울은 급히 그를 말렸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탈옥할 수 있음에도 탈옥하지 않는 바울과 실라는 조금 전까지 기도하고 찬양하던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 물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30절) 바울이 말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바울은 이 순간에도 이 한 사람에게 복음을 심었습니다. 바울은 깊은 감옥으로부터 자기 한몸을 빨리 내보내야 겠다는 생각보다도 눈앞에 있는 한 인생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앞섰습니다. 32-3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간수의 집으로 가서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에 간수와 그 집 사람들이 모두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는 새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간수와 그 집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35-37절을 보십시오. 빌립보의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감옥에 가둔 것은 사실은 빌립보 사람들이 흥분해서 요구하기 때문에 그들을 잠잠케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가두었던 바울과 실라를 간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대로 석방시키라고 했습니다. 간수는 그 명령대로 바울과 실라를 내보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기들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로마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시민은 조사나 재판없이 체포, 구금되지 않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채찍이나 고문을 받으면 안되었으며 만일 그런 일이 있을 경우에는 로마 황제의 법정에까지 상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었습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아전들의 보고를 받은 관리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죄없는 로마인을 불법으로 처벌하면 해당관리들은 상부의 조사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처벌은 관리들의 로마시민권 박탈 또는 사형까지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관리들은 바울의 말대로 직접 와서 바울과 실라를 정식으로 석방하여야 했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실라는 석방되어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다시 새로운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루디아의 집은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 만나고 회합을 갖는 곳, 초대교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이곳을 기초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3. 데살로니가 전도(1-9)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에는 마침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외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회당을 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랍비들은 누구나 강론 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구약성경말씀을 공부했기 때문에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기초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바울은 3주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죽으심과 부활을 구약성경 말씀을 기초로 증명해주었으며 예수님이 오랜 역사에 걸처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증거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있는 말씀이 유대인의 회당에 온 헬라인의 큰 무리와 많은 귀부인들의 심령에 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지만 유대교 회당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임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들 속에 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보내신 사도인 바울과 실라를 영접하고 순종하였습니다. 5-9절을 보십시오. 말씀에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공격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제자들을 고소하여 감옥에 가두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유대교를 따르던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의 복음과 그 사도인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것에 시기심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계실 때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시기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동일한 문제입니다. 시기심과 땅위에서의 탐욕은 언제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복음을 방해하는 죄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울 일행의 말씀전파를 통해서 데살로니가에서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을 기초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4. 베뢰아 선교역사(10-15)
10절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서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갔습니다. 바울은 베뢰아 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1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여기 ‘신사적’이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귀족적이다. 명문가문 출신이라는 뜻이 있고, 둘째는 마음이 넓다, 고결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귀족출신이 많았거나,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보다는 베뢰아 사람들이 더 정직하고 공평하고 정의롭고 진리에 대한 열심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 와 있던 사람들은 성경말씀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생명을 주시는 말씀, 마땅히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받은 말씀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받고 묵상할 뿐 아니라 날마다 연구했습니다. 본문의 상고하다는 것은 연구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자세는 매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성경말씀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을 피상적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성경말씀을 소감작성과 발표를 위해서만 보고 딱 덮어두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성경말씀을 진지하고 소중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지혜가 넘쳐서 장차 위대하게 자라날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날마다 묵상하고 연구하고 실생활에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받은 말씀을 묵상하며 날마다 연구하는 베뢰아 사람들 가운데에 성령의 뚜렷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많은 헬라인 남자와 여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말씀은 이들 헬라인들 가운데에 생명의 역사, 영생을 주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시기하는 자들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끈질기게 복음역사를 방해하고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이제 아테네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5. 아테네 선교역사(16-34)
아테네는 당시에 로마 알렉산드리아 와 함께 세계 3대도시였습니다. 아테네는 조각과 문학과 수사학이 크게 발달 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고향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에피큐러스, 제논의 활동지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과 철학이 발달했어도 이들에게는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가, 인생의 최고 선, 최고 행복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하였으나, 인생의 가장 근본문제인 죽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진리가 없는 이들의 영혼은 곤고했습니다. 가장 지성적인 도시에 가장 많은 우상들이 존재했습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도시가 가장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더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의 영적 상황이 극히 피폐함을 보고 영적인 분노가 솟아났고 마음이 크게 동하였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는 유대인, 경건한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성경말씀을 전했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테네의 길거리에 나가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성경말씀을 기초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당시의 대표적 철학사조였던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들과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을 벌였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철학자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끌고 갔습니다. 아레오바고는 아테네의 종교와 도덕에 관한 문제를 강론하고 재판을 열던 장소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레오바고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아레오바고에 바울을 세우고 바울이 전하는 바가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검증하자고 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과 그곳에 와 있던 많은 외국인들은 호기심과 탐구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이론에 갈구하였습니다. 22절에서 31절까지 바울이 전한 바는 이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22,23절,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이 종교성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24,25절). 바울은 수많은 철학자들과 아테네 사람들이 우주의 근원,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들임을 알고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창조자를 사람이 지은 전에 모셔두려고 한다든지, 사람의 힘으로 섬기고 만족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섬김임을 지적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모든 인생들의 참 아버지이십니다. 25후반절과 26절을 보십시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세상의 각 족속들을 다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들을 온 땅에 거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의 모든 질서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따라서 만물에 깃들여 있는 질서와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지으신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며 이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어서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접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그 양심에 나타나는 것으로 혹은 내면의 영적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결론은 그리스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인생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말세를 앞두고 우리들에게 그를 믿을만한 근거를 보이셨으니 그것이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는 이와 같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아테네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서 몇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과 성경을 아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과 성경을 기초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반면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철학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을 기초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전하고 있습니까? 양들이 전혀 교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양들이 마음을 열 수 없는 방법으로 양들에게 다가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32-3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테네에서 아레오바고 재판정의 관원으로 있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다른 여러 사람들을 생명의 열매로 얻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을 믿은 아테네의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선교를 이루시고 선교방향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을 향하여 순종함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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